인터넷 서핑하다가 다음카페 중 "중국 탁구선수 왕하오(http://cafe.daum.net/wanghao)" 에 실린 글을
아래와 같이 소개합니다.
참고로 본 내용은 중국 탁구잡지인 탁구세계 '04년 3월호 게재된 "왕하오 탐방"이라는 기사를 번역한 내용인데,
내용이 길어 3개로 나누어 등록합니다. 다음은 두번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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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하오가 일곱살이 되던 해 그와 그의 부친은 티브이에서 창춘시 소년궁에서 어린이 탁구회원을
모집한다는 것을 보게 되었고 공교롭게도 감독은 부친의 당시 탁구스승이었던 리우홍치였다.
왕하오의 아버지는 바로 아들을 데리고 리우감독을 찾아갔으며 리우감독은 왕하오의 소질이
괜찮은 것을 보고 왕하오를 남게 했다. 당시는 바로 쉐이크핸드 타법이 크게 유행을 하던 시기였고
펜홀더 이면과 같은 타법은 아직 유행하지 않아 대부분의 사람들이 펜홀더 뒷면을 이용하여 공격을
할 수 있는 타법을 AB면타법이라고 했다. 리우감독은 왕하오에게 이 AB면타법을 선택하게 했는데
비록 이 타법 때문에 어느정도의 위험을 가지리라고 생각은 했지만 2,3개월의 시험후 모두들 왕하오가
경기중 이 양면타법으로 손해를 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많은 이득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고 하여 왕하오는 이타법을 계속 사용하게 되었다.
왕하오가 재목이 되는 매 과정의 일들을 그의 아버지는 가장 잘 기억하고 있다. 1990년 3월 18일
왕하오는 공을 넘기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고 그해 5월 1일 노동절 기간중에 그의 아버지는
왕하오에게 이야기하길 “ 네가 만약 화로 500번 공을 넘기면 내가 바로 할머니집에 데리고 가
놀게 하겠다” 라고 했고 왕하오는 이 제안을 듣자마자 바로 라켓을 잡고 공을 넘기기 시작했는데
단숨에 1시간여를 쳤고 정말로 연속해서 500개의 공을 실수 없이 넘겼다. 어린이들의 경우
탁구를 배우기 사작한 후 화로 500개를 치는 것은 아무리 잘해도 3,4개월의 시간이 걸리는데
왕하오는 일개월반에 해냈던 것이다.
아들이 이렇게 빨리 발전하는 것을 보고 아버지는 더욱 전심을 기울였으며 다년간의 골수
탁구팬으로서 아버지 또한 반은 전문가에 속한다고 할수 있었다. 왕하오의 손이 작아
탁구라켓의 손잡이 부분을 잡지 못했는데 그의 아버지는 바로 그를 위해 라켓을 따로
만들어 주었으니 손잡이 부분에 홈을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십년후 어느 탁구용구회사에서 4면 공격용 라켓(화/백에서 모두 공격 가능한) 을 개발했는데
왕하오의 아버지는 그것을 보고 한눈에 그것이 예전에 그가 창의적으로 만들었던 라켓과
방법은 다르나 같은 효과를 내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자신의 시대를 앞서는 창조성에 득의하였다
왕하오가 탁구를 배운지 두세 달 만에 바로 그럴듯하게 남들과 탁구를 칠 수 있게 되었고
이때부터 왕하오의 아버지는 그를 데리고 창춘의 유명한 고수들을 찾아갔고 또 일정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고수에게 사사하게 하여 왕하오로 하여금 일찍이 다양한 타법에 적응하게 하였다.
왕하오가 창춘에서 탁구를 배운지 5,6년이 될 때까지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무려 17명이나 되는
감독에게 사사케 하였고 평면라버/이면라버/공격형/수비형(커트형)/왼손/오른손 등을
모두 접하게 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때때로 본인이 직접 칼(라켓)을 들고 직접 나서기도 했는데 매일밤 왕하오로
하여금 백을 연습하게 하였고 왕하오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될 무렵엔 아버지도 그를 당해내지 못했다.
왕하오와 함께 탁구를 배우던 아이들은 더욱 참담했으니 창춘시에서 만약 왕하오가 경기에 참가하면
그가 모두 우승을 하였고 다른 아이들은 아무리 열심히 연습을 해도 왕하오를 만나기만 하면
잘해야 2등밖에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탁구를 위해 왕하오는 어릴적 적잖은 고생을 했으니 그의 집이 소년궁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매일 아버지가 그를 자전거에 태우고 탁구를 배우러 갔다.
여름엔 큰비가 내려 아버지는 왕하오의 머리에 비닐백을 씌우고 몸엔 작은 반바지 하나만을 입고서
두사람이 빗속을 헤쳐나갔으며 겨울엔 더욱 견디기 힘들었으니 창춘의 겨울은 무지도 춥고 눈이
유달리 많았다. 아버지는 왕하오를 자건거 앞에 태우고 그에게 솜모자를 씌웠으니 모자를 쓰고
조금 지나면 왕하오는 바로 땀을 흘렸지만 모자를 벗기면 바로 귀가 얼게 되기 때문에 달리
방법도 없었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왕하오는 이를 악물고 계속 탁구를 배울 수 있었다.
비록 운동선수가 된다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지만 왕하오는 오히려 탁구를 좋아했다. 한가하면
공을 만지지 않게 되는데 그럴 때면 왕하오는 손이 바로 근질근질거렸다.
그의 집은 석고판으로 벽을 만들었는데 그는 처음에 일이 없으면 바로 이웃집 벽에 대고
탁구를 쳤고 며칠만에 이웃집 사람들이 달가와하지 않게 되었으니 이런 벽치기는 소리가
너무 좋지않아 작은 공을 벽에 대고 탕탕탕 치는 소리가 남들에게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이에 왕하오는 방법을 바꾸어 자기집 복도의 벽에 대고 탁구를 치기 시작했고 많은 시간이
지나자 그 벽에 여기저기 조그마한 홈이 파이고 말았다. 왕하오가 창춘을 떠나 팔일(八一)팀으로
갈 때가 되어서야 부모는 그 얼룩달룩해진 벽을 새로 발랐다.
< 계속 >
첫댓글 무협지에서 주인공이 성장하는 과정을 보는듯 합니다.^^; 왕하오 대단하네요.
너무 재밌습니다 ㅎㅎ 계속 부탁드립니다 ^^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렇게 피땀을 흘리더라도 늘 챔피언은 한명이라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늘 그 챔피언에게만 열광하게 되고요. 그게 현실이겠지요. 안타까운 현실...(쥐스야. 난 네가 세계 챔피언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래도 늘 너를 응원한다. 쥐스 화이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