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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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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사고 이야기 스크랩 남 눈 똥에 주저 앉고 애매한 두꺼비 떡돌에 치인다.
바나바 추천 0 조회 474 09.11.09 21:17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남 눈 똥에 주저앉고 애매한 두꺼비 떡 돌에 치인다.

 

                            

 

태안반도 원유유출 사태....

우리 손주들이 나중에 할머니 그거이 뭐냐고 물으면 읽어보라고

인터넷 검색을 해서 모아 적어 봅니다.

 

2007년 12월7일 오전 7시 15분

인천대교공사에 투입 되었던 3000톤급 삼성중공업 해상 크레인선이 공사 작업을 마치고

풍랑주의보 속에서 예인선 두 척에 이끌려 경남 거제로 돌아 가던 중

태안군 만리포 북서쪽 10km에서 한척의 바지선 와이어가 끊어지면서 중심을 잃고

정박중이던 14만 5천톤급 홍콩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호와 충돌

왼쪽 기름탱크에 3개의 구멍이 뚫리면서 원유 12547kl[5만2천 드럼]가 바다로 쏟아졌다.

 

해양 방제청에서는 당초 기름이 해안에 도착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36시간정도로 보았으나

풍랑탓인지 불과 12시간이 안되어 해안에는 검은 원유가 들이 닥쳤다.

1995년 여수 앞바다의 씨프린스호 사건 때는 5천35kl이 유출되어 1천5백억원의 피해가 발생하였는데 보상은 6년을 끌어, 지친 어민들이 청구금액의 5/1선인 154억에 합의함으로

2001년에야 이루어 졌다고 한다.

이번 태안사고 피해액은 아직 확실한 집계가 없지만 원유 유출 규모로만 환산해도

2.5배가 넘으니 대략 3750억원의 피해가 예상 된다고 할 수 있을 까.....

 

씨프린스호 사고가 해상국립공원인 청정 한려수도 여수에서 발생했는데

이번사고도 2500여종의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는 해안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태안반도에서 일어났다. 아름다운 해변은 검게 변했고 ,굴양식과 조개를 채취하던 갯벌이 초토화 되고,바다생물이 몰살되며 철새의 떼죽음이 보도 되었다.

아름다운 해수욕장이 즐비한 그곳, 해마다 연 인원 2천만명의 외지 관광객이 다녀가는 그곳이 언제 회복 될지 모르는 특별재난지역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나마 하필 대선 기간에 사고가 발생한 것이 불행 중 다행이랄가?

대선주자들이 홍보용,과시용 선전용으로라도 앞 다투어 방문했고

관련 대기업들이 몰매 맞을까봐 비록 떳떳하게 이름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수백명의 봉사자들과 방제장비를 보내 왔고, 때마침 방학이라 봉사점수를 얻기 위한

의도적인 학생봉사도 있었고, 성탄절 씨즌 이라 각 교회에서 연일 대규모 봉사단을 보내어

보이는 기름은 어느 정도 수거 되고 씻겨져 회복기에 접어 든 듯 보인다.

[연 인원 100만명이 넘었다는 봉사자의 숫자와 복구속도로만 따지자면 과연 노벨상 추천을 할 만하다]

그러나 죽은 갯벌과 어민들 삶속을 강타한 상처는 오히려 크고 깊어지고 있다.

 

여러 채널에서 걷힌 각계의 성금과[우리 교회도 작년말에 전교인이 특별 헌금을 했다] 재난 복구비용이 상부에서는 이미 지급 되었다는 소문은 있으나 피해대상자의 수입이 제대로 환산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면 단위장들의 손에서 잠자고 있단다, 50일이 넘게 수입은 전무한데도 날마다 방제작업에 시달리는 어민들에게는 한푼도 전달 되지 않아 벌써 세명이 아까운 목숨을 버리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고....

 

더 분통이 터지는 것은 가해자인 삼성중공업측도 조사가 끝나기전에 사과했다가는 어떤 덤태기?를 쓸지모르니 몸조심 ,입조심을 하라는 상부의 지시 때문인지 공식적인 사과없이 버티다 어민들의 궐기와 시위가 극에 달하자....엊그제야 사과문을 발표했다.

 

마치 교통 사고를 내어 부상자가 생겼음에도 보험회사가 물어 줄거라고 사과 한마디 안하고 <물어주면 될 것 아녀?>하며 얼굴도 안내미는 뻔뻔한 강심장 가해차 운전자 같다고나 할까?

 

 

 

 

1월 17일, 아침 기온이 영하10도로 떨어졌던 목요일날,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금년 들어 제일 추웠던 날 ,태안반도로 기름 닦으러 갔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지난달 27일에 102명이 갔다 왔고 이번엔 92명이 자원을 해서 관광버스 두 대가 빈자리 없이 꽉 찼습니다.

 

교회에서는 7시에 출발을 한 관광버스가 ,집이 신갈에서 가까운 나를 고속도로 신갈 정유소에서 픽업해주었습니다.

지난번에 김밥이 너무 차가워서 먹기 힘들었다기에 우리 동네 김밥나라에서 140줄의 김밥을 따뜻하게 싸가지고 기다렸으니 두 대의 차량이 나를 태워 가지 않을 수는 없었지요.

 

뒷차에는 주로 나이 든 집사님 장로님들이 탔고 ,내가 탄 앞차에는 청년부와 중고등부학생들이 많았습니다. 아침잠도 많은 젊은 사람들이 교회로 7시 전에 도착하려면 아마 다섯시쯤엔 일어나 준비를 했을겁니다. 다들 골아 떨어져 자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10시 가까이 되어서야 도착한 곳은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

길에는 주민들은 보이지 않고 전국각지에서 새벽을 가르고 달려온 각 교회봉사단을 태운 버스들 [목요일엔 주로 교회 봉사단이 옵니다]이 중무장을 한 교인들을 내려놓고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식구들은 차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 언덕으로 올라가 , 앞서 간 봉사자들이 벗어 놓은 방제복 중에서 지퍼가 온전한 것을 골라 [이미 기름 범벅이 되어있었지만] 옷위에입고,장화가 몰려 있는 곳으로 가서 자기 발에 맞는 장화를 골라 비닐하우스속에 신발을 벗어 놓고 갈아 신은 후 다시 고개를 넘어 의항교회 목사님이 지시하시는 곳으로 이동했습니다.

 

 

도착한 곳은 지난 여름에는 너무나 아름다웠을 자갈이 깔린 반원형의 해수욕장이었습니다.

면장갑위에 고무장갑을 끼는데 나는 너무나 추워 헌 가죽장갑위에 고무장갑을 끼고 집에서 가져온 헌수건을 챙겨들고 자갈밭으로 갔습니다.

일하는 방법은 21세기 디지털 첨단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전형적인 아날로그 방식...

조별로 쭉 늘어서서 그물망을 만들어 자기 주위의 돌들을 옮겨 닦고 밑에 숨어있는 기름까지 빨래를 빨 듯 비벼대는 것입니다.

 

 

 

다행히 좀 남쪽이고 해안가라 그런지 출발할 때의 살을 에는 듯한 추위는 좀 누그러졌고

우리 앞에 몇 차례의 손길이 스쳐 간 듯 바가지로 퍼낼 정도의 기름은 없었지만 바위와 자갈에 들어붙은 검은 기름에서는 여전히 역한 냄새가 났습니다.

다들 두툼한 방한복에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 더러워진 방제복, 비닐우의를 입어서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지 않는 한 누가 누군지 잘 알아 볼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한번 다녀간 사람들은 나름대로 노하우가 생겨서 ,칫솔과 젓가락을 사용하기도 하고

흡착포[부직포]에 유화제를 묻혀 돌맹이와 바위를 닦은 후바로 마른 수건으로 닦아주면 훨씬 빨리 깨끗하게 닦인다는 <숙련된 조교의 시범>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한 시가 다되어 점심을 먹으라는 전갈이 왔습니다.

일하던 곳에 장갑을 벗어 놓고 언덕위로 올라가 비닐 하우스앞에 줄을 섰습니다.

의항교회 목사님과 집사님들이 준비하신 배추국에 김치를 얹은 국밥이었지만

추운 날씨에 언손으로 일을 하다 와서인지 밥맛이 꿀맛이었습니다.

커피까지 마시고 나자 간이 화장실에 길게 늘어서는 행렬들...

원피스로 된 방제복을 입고 소변을 보는 일은 선임자의 시범[소매에서 먼저 팔을 빼고

둘둘 말아 허리에 감고 화장실로 들어 간후 일을 보아야만 안전하다는...]을 보고서야

이해가 되었습니다.

 

 

 

점심으로 중단되었던 돌닦기를 한 시간쯤 하고 있자 성북교회와 순복음교회 사람들이

언덕을 넘어 합류했습니다. 우리들이 옷을 갈아 입었던 동네에서 어느정도 작업이 끝나서

비교적 열악한 우리 쪽으로 온 것 같았습니다.

 

조금 있자 포크레인이 우리가 작업한 곳의 돌더미를 뒤집기 시작합니다. 그래야 땅속에 파묻힌 기름들을 닦기 쉽다는 거지요. 네시 반이 되자 우리보다 출발지가 먼곳이어선지 두 교회 사람들은 먼저 일어나 올라 갔고 우리는 30분쯤 더 하다가 다섯시가 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작업현장이 워낙 먼곳이라 작업은 잘 해야 5시간정도 하고, 오고 가는 시간은 7시간정도가 걸리니 정말 낙숫물로 바위를 뚫는 생각,개미군단이 바위를 옮긴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아예 올 생각을 말아야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현지 주민들에게 취로사업? 수당으로 7만원씩을 지급 한다는데....

봉사활동을 가는 사람들도 경비가 만만치 않습니다.

지난번에는 봉사자 1인당 1만원씩을 내고도,버스를 빌리고 간식과 김밥,돌아 오는길에 저녁값을 교회에서 내느라 450만원이 들었다니 ,봉사자들의 하루 일을 포기한 값과 보탠다면 주민들에게 지급 될거라는 7만원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드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도 저녁을 먹기 위해 안성 휴게소에 내릴 때 모두에게 밥값으로 5천원이 지급되었습니다.아아 이런식으로 태안에 들어가는 이름없는 돈들을 어디 가서 찾나..

 

태안 주민들이사 <남 눈 똥에 주저 앉고 애매한 두꺼비 떡돌에 치인>꼴이지만...

 

도둑놈은 시끄러운 구석이 좋고,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뙤놈이 번다고,

감사 덕분에 비장 나리 호사한다.

빚내서 잔치 하니 며느리가 좋아한다더니...

 

이세상은 우산장사아들과  나막신장사아들이 동시에 잘되긴 어려운지라.....

 

태안군민들 시커멓게 타 들어 가는 가슴 뒤편엔 ,한겨울임에도 관광버스,방제복 ,,고무 장갑,고무장화 목장갑,마스크,김밥집,일회용 우의를 파는 분들이 때 아닌 호황을 누릴지도 모르겠습니다.

 

  tabs200.JPG

 

 

참 이번 태안 사태 때문에 런투어리즘[voluntourism.]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답니다.

 

volunteer[자발적봉사활동] +tourism[여행] 으로 자원 봉사를 겸한 여행이라는 뜻이랍니다.

하긴 전국 각지에서 달려오는 수많은 봉사자들이 일하는 시간보다 길에 내버리는 시간이 많으니 아예 수련회나 엠티를 이곳 펜션으로 와서 일박을 하면서 돌닦는 일을 도닦듯이 해보는것도 괜찮은 이벤트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안반도가 옛날의 제모습을 찾으려면 앞으로도 몇 년이 걸릴지 모릅니다.

기름 한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태어나 나무 때고 연탄때며 불편한 후진국민?으로 살때는 생각지도 못했던 재앙을 겪으며, 공해라는 단어 조차 몰랐던 나 어릴적 1950년대 그때가 차라리 행복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삼성에서는 차제에 보험금에만 의존하지 말고 옛날에 이름도 안 묻고 차떼기로 대선자금 밀어넣듯,눈 질끈 감고 이참에 고가의 미술품들,[90억짜리 행복한 눈물이니, 100억짜리 베들레햄 병원등]몇개만 팔아 태안주민들에게 위로금으로 내놓는다면 이 들끓는 원성이 좀 수그러들지 않을는지...

 

아직도 태안군 소원면 에는 닦아야할 돌들이 많습니다.

혹시 개인적으로 자원봉사를 가실분들은 태안군청에 미리 문의하시어 지시를 받으세요

 

소근진..망산....개목항....구름포..십리포...백리포,모항항,모항2리,학암포,구례포,양쟁이,천리포,꾸지포,사목,방조제,민어포,만리포,신두리,파도리....이게 다 피해 지역 이름입니다.

 

다음에 갈 때는

1.얇은 옷을 여러겹 입고 버려도 좋을 헐렁한 작업복을 가지고 가서 덧입고 작업을 한후

   벗어서 싸가지고 와서 우리동네 쓰레기통에 버린다.[ 현지 쓰레기 장난 아닙니다.]

2.부엌에서 쓰던 헌 고무장갑, 목장갑,헌 타월등을 챙겨간다.

3.장화 속에 신을 두툼한 양말[수면양말이 아주 좋아요]을 더 가지고 가고

양말을 신고 비닐로 한번 더 싸매면 좋다

4.헌 타월, 운동화 빠는 솔, 칫솔,과 등산용방석을 챙겨 간다...를 기억하면 유용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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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11.13 15:08

    첫댓글 아~~~~~~~~아 이저랴 어찌이날의 기막힌일들을 흠ㅁㅁㅁ

  • 09.11.13 15:14

    자원 봉사 자 님들 정말 고마워요 그런데 태안 군민들은 지금쯤 다있고 있는것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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