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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패션업체에서 주최한 가을-겨울 패션쇼. 점점 날씨가 더워짐에 따라 옷이 짧아지고 소재가 얇아지는 추세다. | |
기후는 문화를 바꾸고 산업을 바꾼다. 실제로 우리나라 대구의 명물인 사과가 몇 십 년이 지나면 강원도 양구의 특산물로 변한다는 분석도 있다. 해외로 눈을 돌려 보자. 현재 세계적인 적포도주 산지는 이탈리아다.
향후 50년 동안 이탈리아의 평균 온도가 2도만 올라도 더 이상 이탈리아산 적포도주를 맛볼 수 없게 된다. 대신 독일 라인강 유역과 영국 남부 지역이 적포도주의 최대 산지로 변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점점 아열대성 기후로 변해가는 한반도. 이런 기후변화가 한반도에 위기일까, 기회일까? 아직까지는 위기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기후변화에 따른 뚜렷한 중·장기적 대응 전략이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서서히 국내 기업들이 날씨 변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들 기업은 기후변화를 경영방침에 포함시켜 생산·유통시설 등을 조금씩 변경, 운영하고 있다.
이 중 가장 뚜렷한 변화를 보이고 있는 곳은 기후에 가장 민감한 냉·난방 관련 업계와 음료 등의 식품업계, 각종 의류업계다.
삼성전자는 기후에 민감한 상품인 에어컨, 냉장고 등에 기후변화와 관련된 기능을 추가해 제품 판매율을 높이고 있다. 에어컨의 경우 기존에 추가됐던 공기청정기, 제습기능 등에 ‘열대야 쾌면 기능’을 새로 포함시켰다. 이 기능은 열대야로 밤잠을 못 자는 소비자들을 위해 단순한 냉방기능을 넘어 수면 적정온도를 3단계 과정으로 맞춰준다.
또 냉장고에도 냉장, 냉동 기능을 넘어선 ‘가변형 저장 기능’을 추가했다. 가변형 저장 기능이란 냉장고의 온도를 소비자 임의로 변경해 필요에 따라 냉동고 또는 냉장고로 변경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삼성전자 측은 “우리나라가 점점 아열대성으로 기후가 변경됨에 따라 가전제품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이 최대한 더위와 습기를 느끼지 못하도록 제품 설계와 생산에 신경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 세탁기에는 ‘에어워시’라는 기능을 추가해 황사로 더러워진 옷을 세제가 아닌 공기로 세척할 수 있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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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열대야 쾌면 기능을 추가한 삼성전자 에어컨. 2. 가변성 저장 기능을 장착한 삼성전자 냉장고. 3. 에어워시 세탁 기능을 가지고 있는 삼성전자 세탁기. 4. 황사 전용 필터를 설치한 웅진코웨이 공기청정기. 5. 대한항공 임직원들이 몽골 사막에 숲을 조성하고 있다. 6. 귀뚜라미보일러가 생산한 에어컨. | 간절기 제품 사라지고 반응상품 늘어
국내 보일러 업계 선두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는 귀뚜라미보일러도 얼마 전부터 에어컨을 생산, 판매하기 시작했다. 2005년 에어컨 생산 업체인 범양냉방을 인수해 본격적인 에어컨 시장에 뛰어들었다.
귀뚜라미보일러 조순제 홍보팀장은 “우리나라가 점점 아열대성 기후로 감에 따라 난방 일수가 줄고 있다. 난방 일수가 준다는 것은 보일러 가동을 전보다 적게 한다는 의미며, 이는 곧 기업 매출에 큰 영향을 미친다. 장기적인 기업 생존을 위해 에어컨 생산, 판매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웅진코웨이는 자체 생산하는 공기청정기에 황사 전용 필터를 부착했으며, 경동보일러도 최근 에어컨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식품업계도 점점 더워지는 날씨에 대비하는 것은 마찬가지. 가장 큰 변화는 기존 상온으로 지속하던 유통 과정에 냉장 시스템을 도입했다는 것이다. 롯데제과는 최근 과자와 초콜릿을 운반하는 800여 대의 운반 차량에 에어컨을 설치했다. 올 5월 에어컨 설치를 시작해 7월 초에 완료했다. 이 역시 더워지는 기후에 과자류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롯데제과 문영태 차장은 “최근 출시한 ‘드림 카카오’라는 제품이 열에 상당히 민감한 상품”이라며 “이를 방지하고 과자의 변질을 막기 위해 차량에 에어컨을 설치했다”고 말했다. 또 롯데제과는 얼마 전부터 과자 유통 때 상품 박스에 열 전도 방지를 위한 스티로폼을 넣고 있다.
| 롯데칠성음료와 해태음료 등 음료 주요 업체들도 상온유통을 줄이고 냉장유통을 확대하고 있다. 다들 날씨가 더워짐에 따라 제품의 변질을 우려한 까닭이다.
의류업계에서 가장 큰 변화는 간절기 제품이 사라지고 반응상품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베스띠벨리’ ‘지이크’ 등의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는 신원그룹은 올해 최초로 간절기 상품을 만들지 않았다. 간절기가 짧아지고 워낙 기후변화가 잦기 때문에 과감히 관련 상품 판매를 포기한 것이다. 대신 반응상품 생산량을 전년 대비 30% 이상 늘렸다. 날씨가 더워지면 얇은 소재의 의류를, 갑자기 찬바람이 불면 긴 소매 옷을 바로 내놓는다는 전략이다.
제일모직에서 운영하는 ‘빈폴레이디스’는 변덕스러운 날씨에 대비하기 위해 ‘날씨 시나리오 기획’을 올해부터 시행하고 있다. 이 기획은 지난 2년간의 날씨 변화 추이를 보고 현 시점에서 출고해야 할 상품을 결정하는 것이다.
더불어 반응상품 전략인 ‘JIT(저스트 인 타임)’까지 동시에 시행하고 있다. JIT전략이란 예년처럼 6개월 전부터 상품을 기획하고 시기에 맞춘 상품을 출시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상품을 소량 생산해 출시한 후 소비자들의 반응을 보고 인기가 좋은 의류를 바로 대량 생산하는 것을 말한다.
이 밖에 전국 백화점 등 의류매장은 간절기 상품을 전년 대비 최대 30%까지 줄이고 있다. ‘크로커다일 레이디’를 운영하는 형지어패럴은 신상품 기획 주기를 1주일 단위로까지 줄여 반응상품에 즉각 대응하려는 대책을 쓰고 있다.
전자가전이나 의류처럼 기후에 크게 민감한 산업은 아니지만 택배업과 항공업 등도 기상이변과 관련된 대책을 세워 ‘날씨 마케팅’을 적극 이용하고 있다. 기상이변으로 사람들의 외출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 한진택배는 최근 전국 7300개 편의점 매장과 업무 제휴를 체결했다. 또 인터넷 쇼핑몰과도 업무 제휴를 추진 중이다.
한진택배 한 관계자는 “무더위와 황사로 인해 사람들이 외출을 꺼리고 인터넷 쇼핑몰 등을 이용해 쇼핑한다는 점을 공략했다”며 “매년 10% 이상의 물류 운송량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 황사가 심하면 비행기 운항에 큰 차질을 빚는다. 황사가 심한 3~4월이 되면 항공기 이륙시간이 지연된 경우가 몇 차례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한항공은 황사 방지 차원에서 몽골 사막 등지에 숲을 조성해주는 사업을 2004년부터 실시하고 있다.
신원그룹의 발 빠른 대응 |
“날씨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시오”
2004년 신원그룹 회의실. 신원그룹 박성철 회장을 비롯한 몇몇 임원은 매출 감소와 관련된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최근 몇 년 동안 신원의 매출액이 계속 감소했으며 특히 2004년에는 전년 대비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우리 기업의 매출이 계속 떨어지는 이유가 무엇 때문이오?”(박성철 회장)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봄, 가을 상품이 기대 이하로 나가고 있어 그런 것 같습니다.”(관계부서 임원)
“봄, 가을 상품이 기대 이하라니요?”
“봄과 가을이 짧아지면서 소비자들이 이 계절의 옷을 구입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럼 어서 대책을 강구하고, 앞으로 급변하는 날씨에 좀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도록 하시오.”
박 회장은 이 같은 지시를 결론으로 회의를 마쳤다. 그의 지시는 의류 매출이 계절에 민감하게 반응하니 이에 맞는 대책을 세우고 기업 매출과 직결되는 기상이변에 좀 더 신경 쓰라는 의미였다. 신원은 여성 의류 브랜드인 ‘베스띠벨리’와 ‘비키’, 남성 의류 브랜드 ‘지이크’ 등을 갖고 있는 기업이다.
이후 신원그룹의 고민이 시작됐다. 급변하는 기후에 민감하고 적극적인 반응책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론은 이미 나온 상태였다. 봄, 가을 상품 판매량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여름과 겨울을 집중 공략하면 된다는 것이다. 신원그룹 판매팀은 봄, 가을 의류를 예년보다 30%가량 줄였으며, 상품기획팀에서는 폭우와 더불어 온난화에 대비할 수 있는 옷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신원 관계자는 “비가 오는 날은 매출이 최대 40% 이상 떨어진다”고 날씨와 의류의 뗄 수 없는 관계를 설명했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신상품 기획과 생산으로 매출액은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증가한 것. 2005년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77억원이나 늘었다. 하지만 신원은 멈추지 않았다. 여름이 길어지고 겨울 온도가 올라감에 따라 여름 의류 출고량을 늘렸으며 겨울 옷의 소재를 교체했다.
이 소재는 추위를 막는 기능을 약화시키고 활동성을 강화한 옷감이었다. 또 2006년 간절기 상품 생산량을 2005년 대비 40%가량 줄였다. 대신 반응상품(계절이나 기후에 맞춰 바로 내놓아야 하는 상품) 생산량을 2004년 5%에서 30% 이상 늘렸다.
반응상품을 출시한 이유는 지속되는 무더위 중에도 5일 이상 비가 내리거나 어느 순간 찬 바람이 닥치기 때문이었다. 신원의 이러한 전략은 지난해 연말 바로 증명됐다. 2006년 매출액이 전년 대비 106억원, 영업이익이 23억원 늘었다.
지난 3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신원그룹은 현재 기후변화를 적극적으로 이용해 상품을 팔고 있다. 점점 생산량을 줄여오던 간절기 상품을 올해는 단 한 점도 생산하지 않았다. 신원 측은 “당장 내일의 날씨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상황에다 간절기가 거의 없어지고 있기 때문에 이 시기 상품 판매를 포기했다”고 말했다.
예년 8월 말이나 9월 초 같으면 가을 의류가 전 매장을 차지했지만 요즘은 매장 의류 중 10%가량을 옷감이 얇은 옷이나 반팔 등 여름 상품으로 채워놓고 있다. 언제 갑자기 더워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날씨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매출에 반전을 맞았던 신원그룹은 온난화로 더워질 때를 대비해 소재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신원 측은 “점점 지구가 더워진다는 연구 결과를 보고 미래 전망을 고민한 끝에 특정 의류를 개발하기보다 온도 상승에도 더위를 크게 느끼지 못하는 소재를 개발 중에 있다”고 밝혔다. |
귀뚜라미보일러의 사업 다각화 |
“이젠 여름이 두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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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뚜라미보일러의 에어컨 제조공장. | | 귀뚜라미보일러는 보일러 업계 1위다. 보일러를 하루에 3000대가량 생산하면서 국내 선두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이 정도 수준이면 국내 1위는 물론이고 생산량과 기술력 측면에서 세계 어느 기업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정도다. 보일러 하나로 먹고살기에 큰 지장이 없을 듯하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큰 고민이 생겼다.
날씨가 점차 더워지고 겨울이 짧아지면서 보일러를 찾는 사람들의 수가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바로 기업 매출과 직결되는 문제다. 수요가 사라지면 매출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결과. 당시 이동국 귀뚜라미보일러 회장은 큰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어떤 방법으로 매출을 다시 끌어올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내내 머리에 달고 다녔다. 하지만 도저히 보일러 하나로는 회생의 길이 보이지 않았다.
“날씨가 더워지자 보일러가 안 팔린다. 그럼 더워지는 날씨에 맞는 상품을 찾아야겠구나. 더워지는 날씨에 맞는 상품이라…. 그렇지! 에어컨이 있었구나.”
결국 이 회장은 에어컨으로 승부를 보자고 결심했다. 보일러와 에어컨. 둘은 전혀 관계 없어 보이지만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는 최고의 콤비였다. 보일러가 잘 안 팔리는 여름에는 에어컨을 팔면 되는 것이고, 에어컨이 잘 안 팔리는 겨울에는 보일러를 판다는 전략이었다.
귀뚜라미보일러는 2003년 센추리 에어컨 아산공장을 인수하고, 2005년에는 국내 최초로 에어컨 생산 업체인 범양냉방을 자회사로 편입시켰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연일 내림세를 걷던 회사 매출이 급상승한 것이다. 2006년 매출액은 전년 대비 1300억원, 당기순익은 100억원가량 뛰었다. 귀뚜라미보일러 측은 “부족한 수익원을 정반대 사업군인 에어컨에서 찾은 전략이 적중했다”며 “이제 무더위 등의 기상이변과 관계없이 안정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에어컨을 만드는 아산공장은 올여름이 더 더웠다고 한다. 올 6~7월에 판매된 에어컨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 에어컨 매출보다 28%나 증가했기 때문이다. 회사 관계자는 “때 이른 무더위와 열대야 등으로 길어진 여름이 에어컨 판매에 큰 역할을 했다. 이제는 보일러가 잘 안 팔리는 여름이 밉지 않다”고 말했다.
길어진 여름을 이용해 회사의 위기를 벗어났던 귀뚜라미보일러는 또 한 번의 날씨마케팅 이용을 심각히 고려 중이다. 바로 환기 부문. 황사 등 기상이변이 닥치면 실내 환기가 더욱 중요해진다는 판단이다.
그렇다고 귀뚜라미보일러가 주력상품인 보일러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보일러 생산과 판매는 내수보다는 수출에 집중할 계획이다. 지난 7월 이스탄불에 세운 합작공장 생산품을 시발점으로 2010년까지 터키, 그리스 등에서 2억 달러를 벌겠다는 목표다. 3년 내 5만~10만 대를 판매목표로 정했다. 장기적으로 유럽 진출도 염두에 두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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