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바다
이윤정
앙증맞은 첫째가 성급하게 태어난 신혼지
남들보다 긴 입덧으로 뼈만 남아
펄펄 끓는 가슴 따가움 바닷가를 걸으며 식히던 곳
첫아이 가져 남산만큼 부른 배 움켜잡고
눈물범벅 젖은 마음으로 바다로 달려가면
나보다 훨씬 평온한 하루를 보낸 바다가
나를 보고 벌떡 일어나 부르르 몸을 떨며
마음을 어루만져주곤 했다
남편은 아이 아빠가 된 것을 실감 못 한다면서
총각들 틈에 껴서 여대생들과 심지 뽑기 미팅을 하고
새벽이 되면 집으로 돌아왔다
꽃보다 더 고운 딸아이가 걸음마를 배워
아장아장 골목길을 걸어 나가던 아릿한 해운대
처녀들과 디스코장, 탁구장, 바닷가를 돌고 돌다
새벽에서야 집으로 오는 남편의 귀가를 기다리며
스스로를 다독거리는 시를 쓰다 잠이 들면
새벽닭 우는 소리 꾸꾸꾸-우 들려오던 곳
남편한테 폭행당해 다친 마음 다친 몸 끌고
맨발로 달려나가 친정 가기 전에 들렸던 바다
모래알 하나처럼 작아지고 또 작아져서
캄캄한 어둠 속에 홀로 퍼질러 앉아 울었던 바다
20년이 지나고 혼자 와서 들려보는 이 바다
세월에 씻겨 조금은 헐거워진 기억들이
수평선 위에 다시 일어나 펄럭이고 있다
닦아도, 닦아도 지워지지 않고 끈으로 칭칭 동여매어도
삐져나오는 내 얼룩이 이 바닷가에 아직도 남아있다
쌍쌍이 손잡고 걸어가는 정다운 연인들 뒤에 서서
바닷가 구석까지 혼자 걸어가며 떨어뜨린 눈물들이
모두 바다로 가 누워있다가 송이송이 피 꽃처럼 떠오른다
터진 나의 귀 고막이 쏴- 다시 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