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콩강이 바다와 가까운 하류에 이르면 여러 개의 지류로 나뉘면서 속도가 느려진다.
육지 곳곳에서 떠내려온 퇴적물들이 쌓이면서 삼각주 지형이 나타난다.
메콩 삼각주의 주민들은 강을 따라 빼곡하게 들어선 수상가옥에서 살고 있는데,
도로가 없는 지역이 많아서 수로 망을 따라 배를 타고 다닌다.
이 미로와 같은 수로는 북부의 베트콩 병사들이 남부로 이동하면서 마지막으로 점령했던 지역이다.
이곳은 해적, 배고자, 정치적 망명자, 밀수업자, 그리고 지하공작에 연루된 사람들의 피난처였으며,
아주 다양한 농산물을 내는 비옥한 땅이다.
그래서 전 국토의 12%인 이 땅에 총 인구의 20%가 몰려 살고 있다.
호치민을 떠나 남서쪽으로 향한지 사흘째, 사람들이 말하던 ‘자연의 경이’가 가슴으로 전해져 왔다.
경치에 넋이 나갈 때마다 론리 플래닛에 쓰여 있던 말이 주문처럼 머릿속에서 되풀이되었다.
오늘의 여행은 이 생생하고 풍요로운 풍경을 정맥처럼 지나는 수많은 운하와 강을 지나서 메콩 삼각주의 심장으로 향한다.
미토를 떠난 지 1시간, 두 갈래 길이 만나는 곳에서부터 교통량이 적어지더니 2시간째부턴 길이 아주 좁아진다.
좁은 개천 오른쪽으로 한적한 시골 도로가 이어진다.
왼쪽 개천 너머엔 정겨운 집들이 보이고, 오른쪽논들은 푸르디 푸르다.
큰 도시에서 느꼈던 삭막한 분위기는 없어지고 푸근한 기분마저 든다.
자꾸 멈춰 건너편 가정집들의 사진을 찍는다.
전형적인 베트남의 시골집은 바로 저런 것이리라.
알맞게 따사로운 햇볕 아래를 지나다가 어느 집 앞에 서 있는, 전통복을 입은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10초 정도 서로를 응시하는데, 할아버지 얼굴 전체에 서서히 환한 미소가 퍼져나간다.
어찌 저리 맑고 정화된 얼굴을 하고 계실까.
메콩 삼각주의 아름다움과 힘, 전쟁으로 인한 고난의 세월이 그 속에 모두 녹아 있는 것 같다.
아무 말 없이 그 표정만 보며 한참을 머물고 싶었지만 이미 자전거는 미끈한 도로를 타고 너무 많이 나아와 버렸다.
큰 거리, 작은 거리에 붉은 베트남 국기가 섬뜩할 정도로 주욱 걸려있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시골길에는 전봇대마다 스피커가 달려 있는데, 새마을 운동가와 비슷한 노래가 흘러나오고,
아나운서가 힘있는 목소리로 뭔가를 자꾸 부르짖는다.
그 내용이 아주 궁금하다.
베트남에서는 자전거 여행자를 전혀 만나지 못하고 15일을 채워버릴 것 같다.
그렇다고 외롭거나 누구와 함께 있고 싶지는 않다.
혼자 있을 때만 가능한, 완전히 생생하게 깨어난 섬세한 감각, 내면으로 응집된 에너지, 잠잠하게 나를 바라보는 느낌이 너무 좋다.
마음 통하는 친구들과 며칠을 함께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깊이 있게 사람이나 마을을 통찰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흘려보내게 된다.
자전거 여행만의 매력은 아무 소음 없이 조용히 바라보면서,
내 몸으로 끊임없이 나아가면서 인간적인 속도로 사물과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 또한 혼자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번에는 그 어떤 다른 여행보다도 더 충만하고 혼자여서 더욱 기쁘다.
예전에는 혼자 다니면서도 식당이나 관광지에서 약간 불안 혹은 외로운 마음이 들곤 했는데,
지금은 완벽한 나만의 미션이 있어서 그런 것에 전혀 신경쓰이지 않는다.
그냥 나 혼자 풍경을 바라보고, 생각하고, 방에서 휴식을 취하는 순간순간이 너무나 귀중하다.
풍족한 음식, 자연의 경이, 베트남 특유의 약동하는 에너지 등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매력을 혼자 온전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 좋다.
하루하루가 다양한 조합의 연속이다.
숙소, 만나는 풍경, 먹는 것, 만나는 사람들이 각각 달라지면서 그날의 느낌을 빚어내는데,
그 모든 것이 가슴으로 잔잔히 스며든다.
이런 과정을 거쳐 점점 더 내 내면 속으로, 메콩 삼각주의 심장부로 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