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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이 흐르고 산줄기도 따라 흐른다. 철길은 강물 따라 놓여 있고, 열차는 청춘과 생기와 낭만을 싣고 달린다. 경춘선의 대성리와 청평 구간을 그려본 그림이다.
이른 새벽, 북한강 물 위로는 물안개가 피어 오른다. 깊은 잠속의 아름다운 꿈길 같다. 그리고 한낮의 풍경은 또 어떤가. 강 건너 고동산~화야산~뾰루봉을 잇는 고운 능선 위로는 흰 구름이 한가롭게 걸려 있다. 그것만도 아니다. 해 저문 저녁, 열차 밖으로는 낮 풍경과는 전연 딴 세상. 물길 찻길가에는 네온사인 불빛이 휘황 찬란하다.
감자탕으로 크게 소문난 소문난해장국
경기도 땅이지만 강원도가 훨씬 더 가까운 가평은 강원도의 수부 춘천과 인접해 있다. 강원도 땅으로 착각하기에 딱 좋은 위치에 놓여 있다. 가평땅 청평에서 청평을 강원도 땅으로 알고 막국수집을 찾다가 알게 된다는 집이 감자탕으로 크게 소문난 ‘소문난해장국’(031-584-3109)이다. 청평농협 맞은편 5일장(매 2, 7일)이 서는 곳에 있다.
북한강의 물안개를 헤치고 이 집의 해장국을 먹기 위해 새벽길 멀다 않고 청량리역에서 기차를 타고 찾아오는 단골들이 많다고 한다. 청량리역에서 청평까지는 기차로 50여 분 거리. ‘소문난 해장국’ 소문이 크게 난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들이 있었다.
우선 이 집은 해장국이나 감자탕이라는 음식을 먹기에 딱 좋은 분위기다. 식탁 9개의 작은 규모에 천장이 나즈막하다. 집주인 정명구(鄭明九·58)-박옥순(朴玉順·51)씨 내외의 순박한 인정이 손님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 인정은 푸짐한 음식에 담기고 맛까지 돋군다. 이런 분위기의 집에서 해장국을 끓여내는 안주인은 대한민국에서 해장국을 가장 잘 만들어내는 장인이 되겠다고 늘 다짐하고 있다고 한다. 선지해장국 뼈다구해장국 우거지해장국이 각 5000원, 넉넉하게 차려내는 감자탕이 15,000~25,000원.
가평은 전국적으로 잣 생산지로 유명한데 경기도 전통명주로 이름을 날리는 가평잣막걸리는 이 집 해장국에 따라 나오는 바늘에 실이다.
청평 주변 명산 안내포인트 물찬돼지
식당 옥호가 참 재미있다. ‘물찬 돼지’다. 옥호만이 아니다. 유심히 살펴보면 재미있는 일이 한둘이 아니다. 주인장에게 산꾼이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극구 부인한다. 그런데 왜 월간山은 그토록 오랫도록 정기구독을 하고 있을까. 여러 차례 이 집을 들린 후에야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이 집을 찾는 손님들이 대개 산악단체들이었다. 청평역에 내리면 10여m 전방 오른쪽에 있는 이 집으로 몰려간다. 그러고는 주인장에게 가는 방향을 제시한다. 승합차에 시동이 걸리고 꾼들은 이 차로 운악산이나 화야산 산행길에 오른다. 귀로에 이 집을 다시 들린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생돼지고기를 구워 놓고 술잔을 나누며 기차시간을 기다리는 산꾼들의 정겨운 모습에서 우정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도록 한다. 영업을 하면서도 “명함이 뭐 필요합니까?”라고 주인 내외는 대답한다. 등산화를 벗고 식탁에 앉아야 하는데도 객이나 주인이나 아무런 불편함이 없는 것 같이 보인다(전화 031-584-2995).
송어와 장군의 아들네 집 우미리
송어와 장군-. 연어과 물고기와 만병(萬兵)을 통솔하는 장군과는 전혀 인연이 닿지 않는 말로 들린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불과 40여 년 전만 해도 이 땅에는 무지개송어라는 이름의 물고기가 살지 않았다. 이 물고기는 1965년 1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종란의 상태로 태평양을 건너 왔다.
박경원(朴敬遠) 당시 강원도지사는 식량 증산과 고단백질 공급이라는 기치를 들고 삼방산 줄기에서 자연용천수가 솟아나는 평창땅에다가 도립양식장을 조성했다. 그러고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송어양식을 시작했다. ‘송어라면 평창’ ‘평창이라면 송어’를 연상케 하는 유래다.
박경원 도지사는 한국전쟁 때 백골부대장으로 용맹을 떨치고 혁혁한 공훈을 세운 장군으로 예편 후에는 경북과 강원 도지사를 역임했다. 이렇게 장군과 송어는 인연을 맺었고 그 인연은 지금까지 대를 잇고 있다. 아들 한 분은 평창에서 양식장을 갖고 있고, 세째 아들 박상호(朴商濠·44)씨는 화야산 깊은 골짝에 ‘우미리’(031-584-6220)라는 이름의 송어 보급 양어장을 운영하고 있다. 1984년에 문을 연 ‘우미리’에서는 싱싱한 송어회를 먹을 수 있고 민박도 할 수 있다.
장군을 만나고 싶어 두번째 찾아간 여름 한낮에야 만날 수 있었다. 장군께서는 밀짚모자 차림으로 제초작업을 하고 계셨다. 객들을 반갑게 맞아 주시는 장군께서는 직접 담근 산포도주라며 손수 들고 오셨다. 건배를 제의하시기에 ‘청풍백세(淸風百歲) 건강만세(健康萬歲)’ 축원을 올렸더니 뜻밖에도 “무슨 결례의 말씀이냐”며 활짝 웃으신다. “200년 살기로 작심했는데 백년은 너무 짧지 않소!!”. 장군께서는 참으로 건강하셨다.
세 번은 만나야지 예나지나 김털보
경춘선 대성리~청평 구간 강 건너편이 화야산이고 산자락 마을 이름이 삼회리(三會里)다. 세 번은 만난다는 마을이라는 뜻일까. 북한강 새벽안개가 걷힌 이른 아침이었다.
‘예나지나’(031-584-6666)는 빠뜨리지 말라는 환경운동가 김경선씨의 권유에 따라 그의 차편으로 찾아간 집이다. 청평에서 신청평대교를 건너 양수리 방향 2km 지점에 토속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건물의 ‘예나지나’라는 별난 이름의 음식점이 나타난다. 환하게 웃는 검정수염의 털보가 주인이라며 인사를 건넨다. 주인장 김진태(46)씨는 여기 토박이로 남들은 모두 고향을 떠나는데 자신은 고향을 지키며 찾아오는 손님들과 세상사 이야기 나누며 인생을 즐기고 있다고 한다.
‘예나지나’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서로 사랑하며 살자’는 뜻으로 이렇게 옥호를 정했다고 한다. 간장게장백반(20,000원), 올갱이해장국(8,000원)이 이 집 대표음식이다. 간장게장은 안면도 앞바다에서 잡아온 꽃게로 부인이 담는다는데, 가족단위로 이 게장을 먹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단다. 가족단위의 손님들은 하룻밤 묵고 가기를 원하게 되고, 주인은 이왕에 지어 놓은 방 기꺼이 내준다고 했다.
주인장의 입담이 특별나게도 구수했는데 세 번은 만나야 한다는 삼회 마을에서 세 번을 만나야 할 사람이 바로 ‘예나지나’의 김진태 털보로 느껴졌다.
대성리 건너편에도 MT장 화야산장
경춘선 대성리역 주변은 젊은이들의 MT 장소로 오랫동안 인기를 유지 해왔다. 청량리에서 50분 거리에다가 산이 있고 물이 있다. 그렇지만 장소를 얻지 못해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강 건너편으로 눈길을 한 번쯤 돌려봄 직하다. 대성리역 북한강 도선장 건너편이 삼회리 아랫퇴주 마을인데, 이곳에는 비교적 한산한 민박시설 화야산장(031-584-1943)이 있다. MT 과정에 고동산이나 화야산 등산을 포함시키면 산행캠프로도 좋겠다.
영양 만점 서빙 만점 초가집순두부
참으로 놀라운 집이다. 깊은 산골, 물어 물어 찾아 가면 막다른 계곡에서 만나는 집인데, 식당으로서 모든 것이 100점 만점에 200점을 주고도 모자랄 것만 같은 집이다.
‘초가집 순두부’(031-774-4612)는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에 있는 채소 농사를 겸한 식당으로, 주인 김동철(金東喆·41)씨-남명자(南明子·39)씨 내외가 재배하는 채소는 청경채 적상추 엔다이브 청겨자 적겨자 쌈신선초 샐러리 케일 잎치커리 로베인상추 오이 호박 고추 가지 열무 배추 들깨 토마토 참외 등 넓은 밭에서 재배하는 품종이 스무 가지나 된다. 이 채소 모두는 식당에서 소모하는데, 손님은 금방 따온 채소를 먹게 된다.
황토흙을 텃밭에 가득 넣고 짓는 무공해 재배 방법이 특이하다. 예나 지금이나 구하기 힘든 황토에 병든 가축이 뒹굴고 나면 치유가 된다. 상처 난 물고기 어장에 황토 흙을 뿌려주면 물고기의 상처가 깨끗하게 아문다. 상처난 나무를 치유시키는 데도 황토흙을 사용한다. 이렇게 자연을 회복시켜주는 특별한 능력과 힘이 있는 황토로 유기농사법을 개발하고 실용화시킨 농사법이다.
순식물성 채소 식단으로 짜인 식탁 위로는 콩 주재의 음식들로 단백질을 공급한다. 주방에서는 금방 수확해온 감자와 애호박, 호박잎을 가마솥에 넣고 찐다. 식탁에서는 호박 특유의 들큰함과 감자 특유의 담백한 맛이 어울려 별미가 된다. 찐 호박잎은 이 식당 유일의 육류 돼지고기, 삶은 편육의 쌈이 된다.
편육은 각종 한약재와 교나를 넣고 삼는다. 묵은 된장 뚝배기에 갖은 양념을 넣고 손두부 호박 파 풋고추 호박잎들을 숭숭 썰어넣고 끓인 된장찌개의 삼삼하고 개운한 맛은 이 집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고유한 맛이다. 콩으로 만든 음식은 손두부 순두부 콩장 콩죽 콩탕 콩비지 콩물 등이다.
또 다른 별미로 메밀묵이 있다. 철저하게 100% 순수 국산 메밀만을 고집하며 미련스럽도록 전통방식으로 메밀묵을 만든다. 보리밥, 순두부, 콩비지(각 7,000원)가 주된 음식인데 어느 음식에나 10가지나 되는 금방 수확한 채소가 올라온다. 감자전 메밀묵 각 5,000원, 손두부 6,000원. 가마솥두부정식 15,000원, 쌈밥정식 12,000원. 밑반찬으로는 새우젓 콩자반 김치 장류 장아찌 등이 올라온다.
고동산 남쪽 자락인 이 식당은 워커힐이나 강남 미사리쪽에서 팔당대교와 터널 5개를 지나고 양수리의 양수교를 거쳐 양서면을 거쳐 서종면으로 들어가면 된다. 청평을 경유하는 길보다는 훨씬 가깝고 편리하다. 가는 길가에 있는 연꽃 군락지는 꼭 들러볼 일이다.
경춘국도 산꾼들의 집합장소 어우돈
경춘국도를 타고 가는 산은 참 많다. 그렇지만 가는 길 오는 길은 언제나 곤혹스럽다. 어느 곳이나 기찻길이 닿는다면 그 이상 좋을 수가 없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짜증을 각오하고 차를 몰고 간다. 그 짜증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는 업소가 마석을 지나고 청평 방향 1.5km 지점에 있는 ‘어우돈’(031-511-7722)이다. 월간山에 두 차례 소개된 집으로, 이 집에서 만나고 각자가 몰고온 차를 맡긴다. 예컨대 산행길에는 3대 중 1대만 운행하면 된다. 주차료는 물론 무료고 주차장은 넉넉하다. 차 한 잔 마실 수 있고 집 나설 때 빠뜨리고 온 일용품도 구입할 수 있다.
아침밥을 거르고 왔다면 이 집에서 요기를 하면 된다. 비싸지도 않는 좋은 음식들이 나온다. 사누끼우동 3,000원, 김초밥 ,5000원, 덴무스정식 6,000원. 덴무스정식은 쟁반 하나에 생선가스 돈가스 주먹밥이 얹혀 있고 우동이 따라 나온다. 활‘어’회와 ‘우’동과 ‘돈’까스의 만남이라는 옥호가 말해 주듯 이 집에서는 우리 고유의 음식에 일식과 양식을 융합시킨 퓨젼 메뉴와 저렴한 가격이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이다. 돌아오는 길 해단주 한 잔 하기에도 적합하다.
음식값이 싼 것은 재료를 유통과정 없이 철저하게 산지에서 직송해 오기 때문이다. ‘음식은 곧 생명이요, 삶이며, 모든 문화의 원천’이라는 철학으로 업소를 운영하는 업주 김경선(金景善.43)씨는 동국대 출신의 산꾼이자 환경운동가로 푸른남양주실천협의회 대표로 활약하고 있다. 이 집에서 마실 수 있는 청세주(淸世酒)는 업주의 고향 청자골(전남 강진)에서 구기자와 7가지의 한약재를 넣어서 빚은 13%짜리 약주다.
박재곤 산촌미락회 고문·60대산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