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원제는 『Bewilderment』, 즉 우리 말로 하면 ‘당혹’이다. 첵 제목 그대로다. 정말이지 내게는 한치의 어긋남이 없는 당혹 그 자체다. 리처드 파워스라는 작가가 대단하게 보인다. 책을 다 읽은 지금도 그저 머릿속이 윙윙 거릴 뿐 이야기를 정제하지 못하고 있다.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부자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로빈은 정신적으로 나약한 아이다. 학교에서는 자폐아로 진단하고 약물 치료를 권장하고 있지만 아빠인 시오는 약으로 치유하고 싶지 않았다. 로빈은 이제 겨우 아홉 살이다. 약물에 의존하기에는 너무 어리지 않은가.
대신에 아빠 시오는 아들과 함께 하면서 자연적인 치유를 위해 애쓴다. 로빈의 엄마 얼리사는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죽었다. 그러므로 아빠 시오의 로빈을 위한 삶은 그야말로 고군분투다. 로빈은 늘 제멋대로였고 격렬해서 통제하기도 힘들었다.
아주 오래전 특수학교에 견학을 간 일이 있었다. 수업에 참관을 하고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잠깐의 휴식을 취하는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다. 어떤 아이들은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했다. 작은 일에 흥분하고 의외의 장면에서 서로를 보듬었다.
나는 그런 전혀 익숙하지 않은 장면에 어리둥절했고 당혹스러웠다. 처음에는 나도 한 시간 정도의 수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나름의 기대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런 아이들을 보는 순간 아이들 앞의 교사가 존경스러워 보이기까지 했었다.
시오는 우주생물학을 전공하는 대학 교수이다. 그 탓에 소설은 중간 중간 우주를 대상으로 하는 가상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이를 위한 아빠의 달콤한 이야기일 테지만, 그 이야기가 독서를 힘들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 반면에 작가의 상상력에 놀라기도 한다.
로빈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엄마의 이야기를 묻고 또 물었다. 집에서는 수시로 엄마의 동영상을 보았다. 로빈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엄마가 살고 있는 듯했다. 아마도 로빈은 엄마가 생각날 때마다 아빠에게 행성의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을 것이다.
시오의 우주 관점이 흥미롭다. 그는 자기가 생각하는 세계가 지구 같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 세계에서 태어난 생명은 우리의 생명존재의 의식을 넘어서서 심지어 탄소를 핵심 요소로 하지 않을 수도 있으므로 어린아이처럼 편견에서 벗어나 아무 것도 추정하지 않으려 했다.
나도 늘 그것이 궁금했다. 외계에서 물을 찾고 생명체를 찾는 지구인들. 그런데 지구인들이 찾는 생명체는 물을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여겼다. 그래서 물의 흔적으로 추정되는 곳이 발견되었다는 것은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을 가늠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물이 전혀 필요치 않도록 태어나고 진화한 생명체로 있을 수 있지 않을까. 물을 중심으로 하는 사고는 지구적 사고가 아닐까 싶다. 외계에 생명체가 있다면 그 생명체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존재일 수도 분명 있을 것이다.
어떻든 시오의 로빈에 대한 사랑만큼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로빈의 생활은 즉흥적이었고 충동적일 때가 많았다. 그러던 중 그의 아니 얼리사와 활동을 함께 했던 심리학자로부터 로빈의 두뇌 훈련 제안을 받게 된다. 그들에게 얼리사의 두뇌 활동 자료가 남아있다고 하면서.
로빈에게 적용하려는 기술은 디코디드 뉴로피드백이라는 신기술이다. AI를 이용해 다른 사람의 감정을 지문을 그대로 경험하도록 훈련하는 기술이다. 이 기술을 활용하여 로빈은 엄마 얼리사의 두뇌 속을 경험하게 된다.
“로빈은 fMRI 관 속으로 들어가 뇌를 스캔했다. 치료가 시작된 것이다. 기본적으로 마음 챙김을 연습하는 셈입니다. 명상과 비슷하지만 원하는 감정 상태로 인도하는 즉각적이고 강력한 신호가 있는 겁니다. 그 상태에 진입하기가 쉬워집니다. 충분히 여러 번 그 상태에 들어가게 되면 훈련용 바퀴는 떼어낼 수 있고, 스스로 방법을 갖게 됩니다.”
훈련을 통해서 로빈에게 주어진 것은 감정을 제대로 느끼는 능력, 공감 능력, 그리고 흔들림 없이 자신을 다스리는 능력이다. 훈련이 거듭될수록 효과는 상당했다. 로빈은 점차 엄마를 그대로 따라했다. 그것은 경이었고 곧 학회에도 보고되었다.
로빈은 고통에서 해방되어갔고 그에 비례해서 행복해졌다. 온갖 종류의 새들과 교감하고 동물들의 끔찍한 장면에서 분개하며 다른 생명체들에 대한 공감의 폭을 넓혀갔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한없이 따뜻해지는 만큼 환경을 파괴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참지 못했다.
로빈은 주정부청사 앞에서 일인시위를 벌이기도 하고 뉴욕의 국회의사당 앞에서도 시위를 벌이다가 아빠가 경찰에 끌려가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아빠는 아들을 위해 그 모든 과정을 묵묵히 감수한다. 그런 아빠에 대해 아들이 따뜻한 위로를 한다.
그러던 중 로빈의 훈련이 연구비 지원이 중단되고 말았다. 훈련을 하지 않자 로빈은 차츰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듯했다. 아빠 나름의 훈련을 위해 부자는 대학 봄방학 기간을 이용해 처음에 갔던 숲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곳은 아빠와 엄마가 신혼여행을 즐기던 곳이기도 하다.
둘은 숲을 걷기도 하고 강을 따라 내리다가 그곳에 텐트를 쳤다. 그리고 그 강에 누군가가 돌로 담을 쌓아놓은 것을 보았다. 물고기를 잡기 위한 것이다. 두 사람은 차가운 물에 들어가 그 돌들을 치웠다. 돌담은 강바닥 사방에 널려 있었다.
저녁이 오고 밤하늘에 별이 초롱할 때 두 사람은 텐트에서 잠을 잤고 아침에 눈을 뜨자 로빈이 옆에 없었다. 아빠는 서둘러 아들을 찾아 나섰다. 아들은 아침 차가운 강물 한가운데서 돌담을 허물다 지쳐 흐느적이고 있었다.
아빠가 강물 속을 미끄러지며 들어갔고, 힘이 없는 아들을 안았다. 아들은 조금씩 체온을 잃어가고 있었다. 아빠가 절규했지만 물은 너무 차가웠고 외부와는 단절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아들은 아빠의 곁을 떠나 엄마의 곁으로 갔다.
소설이 시종일관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었다. 너무 정교하여 소설이라기보다는 누군가의 자서전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건 아마도 이야기에 대한 울림이 컸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면서 요즈음 아이들을 생각하게 된다.
<자료 : 인터넷>
요즈음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피시 같은 기기들 때문에 세상의 모든 영유아들이 조용해졌다고 한다. 그런 반면에 초등학교에도 들어가기 전에 여러 가지 장애에 시달린다는 이야기도 자주 듣는다. 틱 장애도 그 중 하나다. 분명 그 둘의 연관성이 클 것이다.
아이들은 스마트폰에 빠져있다 보니 감정을 제어하는 법을 익히지 못했다. 참을성은 말할 것도 없고 괴성을 지르거나 차분히 있기를 거부한다. 스마트폰을 들려주었던 부모는 이번에는 그런 아이들에게 약봉지를 안긴다. 어떤 부모도 로빈의 아빠처럼 아이를 챙기지 못한다.
아이가 왜 그랬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저 예전 그 부모가 자랄 때의 기억을 더듬으며 아이를 다그치거나 야단치거나 방치한다. 아이들은 모두 그렇게 자라는 것이라고 짐짓 아는 체를 한다. 주변에 로빈은 흔하게 발견되지만 시오는 좀체 없기 때문이다.
그 동안 아이들은 동심에서 멀어지고 주변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마침내 혼자만의 성을 쌓는다. 그 아이들에게도 AI가 위력을 발휘하게 되는 때가 올 것이 분명해 보인다. 아마도 그때쯤이면 가족이 해체되는 지경에 이르지나 않을까 염려가 되기도 한다. 당혹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