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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典 5:201) 진주천자(眞主天子) 도수(度數)를 준비하심
12월에 상제님께서 와룡리 문공신의 집과 운산리 신경수의 집을 왕래하시며 공사를 행하실 때, “이곳에 천자피금혈(天子被擒穴)이 있으니 이제 그 기운을 풀어 쓰리라.” 하시며 여러 가지 의식을 행하시니라.
이 일을 행하시기 한 달 전에 상제님께서 공신의 집에 이르시어 말씀하시기를 “쓸데가 있으니 돈 천 냥을 준비해 놓으라.” 하시매 공신이 돈을 준비하여 궤짝에 넣어 두니라...
20일에 형렬을 불러 이르시기를 “집에 돌아가서 의복을 지어 입고 자현과 함께 오라.” 하시는지라. 형렬이 명을 좇아 구릿골에 갔다가 23일에 자현과 함께 신경수의 집에 와서 상제님을 뵈니라.
道典 5:202) 12월 24일 공신의 집에 계실 때 성도들에게 물으시기를 “이후에 전쟁이 있겠느냐, 없겠느냐?” 하시니, 있으리라는 사람도 있고 없으리라는 사람도 있거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천지개벽 시대에 어찌 전쟁이 없으리오. 앞으로 천지전쟁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뒷날 대전쟁이 일어나면 각기 재주를 자랑하여 재주가 일등 되는 나라가 상등국이 되어 전쟁은 장차 끝을 막으리라.” 하시니라.
道典 5:204) 후천 음양 도수
25일 새벽이 되매 성도들을 정좌케 하시고 각기 종이 한 조각씩을 나누어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후천 음양 도수를 보려 하니 각자 마음에 있는 대로 점 하나에 아내 하나씩 표하여 점쳐 들이라.” 하시고, 점 찍은 표를 함에 넣게 하시어 상제님께서 손으로 휘저어 한 장씩 뽑으시니 경석은 열두 점이요, 응종은 두 점이요, 경수는 석 점이요, 내성은 여덟 점이요, 공신은 한 점이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홉 점은 없으니 일남구녀(一男九女)란 말을 알 수 없도다.” 하시고, 경석에게 물으시기를 “너는 웬 아내를 열둘이나 원하느냐?” 하시니 경석이 대답하기를 “십이제국에 한 명씩 두고 달마다 한 나라씩 순유하면 남아 행락(行樂)의 극치일까 하옵니다.” 하거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말이 그럴 듯하도다.” 하시니라. 경수와 응종에게 물으시기를 “칠십 노옹이 한 사람도 어렵겠거늘 아내 둘, 셋을 어떻게 감당하려느냐?” 하시니
응종이 대답하기를 “후천에는 노인이 다시 젊어진다 하오며 자고로 좌처우첩(左妻右妾)이란 말이 있사오니 둘을 원합니다.” 하고, 경수가 아뢰기를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로 셋을 원합니다.” 하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 말도 그럴 듯하도다.” 하시고 내성에게 말씀하시기를 “육관대사(六觀大師)의 제자 성진(性眞)이 팔선녀를 데리고 희롱한다 하였으니 네가 선관이 되려고 여덟 점을 쳤구나.” 하시니라.
오직 건곤뿐
이어 공신에게 물으시기를 “칠십 노옹도 둘, 셋을 원하거늘 너는 청년으로서 어찌 한 사람에 만족하느냐? 근력이 부족해서 하나밖에 못 하냐?” 하시거늘,
공신이 대답하기를 “하늘도 하나고 땅도 하나입니다.” 하매 상제님께서 무릎을 치며 말씀하시기를 “그려, 그렇지! 네 말이 옳도다. 오직 건곤뿐이니 이로써 공사를 마치노라.” 하시고,
무를 잘라 무엇을 새기신 뒤에 먹물을 묻혀 모든 종이 조각에 도장찍듯이 찍으시니라. 이어 말씀하시기를 “오늘 공사를 잘 보았으니 점심과 술안주를 특별히 성대하게 준비하여 손님 대접을 잘하여 돌려보내라.” 하시니라.
이 때 광찬과 공우는 정읍 차경석의 집으로 보내시고, 원일은 태인 신경원의 집으로 보내시니 이는 공우가 여러 번 관재로 곤욕을 당했음을 아시고 곧 닥칠 화액을 면케 하려 하심이요, 광찬과 원일은 그 성품이 너무 과격하여 불참케 하심이더라.
道典 5:205) 동학 역신 해원 공사
공신이 여러 성도들을 돌려보낸 뒤에 상제님께서 공신, 경수, 응종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경석이 성경신(誠敬信)이 지극하므로 달리 써 볼까 하였으나 제가 스스로 청하니 어찌할 수 없는 일이로다. 지난 갑오년에 동학 신도들이 여러 만 명 학살되어 모두 지극히 원통한 원귀(寃鬼)가 되어 우주간에 나붓거리는지라. 원래 동학은 보국안민(輔國安民)을 주창하였으나 때가 때인 만큼 안으로는 불량하고 겉으로만 꾸며대는 일이 되고 말았나니 다만 후천 일을 부르짖었음에 지나지 못함이라.
마음으로 각기 왕후장상(王侯將相)을 바라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릇 죽은 자가 수만 명이니, 그 신명들을 해원시켜 주지 않으면 후천에 역도(逆度)에 걸려 반역과 화란이 자주 일어나 정사(政事)를 못 하게 되리라. 그러므로 이제 그 신명들을 해원시키려고 원혼을 통솔할 자를 정하려는 중인데 경석이 십이제국을 말하니 이는 스스로 청함이라.
이제 경석에게 동학 역신 해원의 삼태육경(三台六卿) 도수를 붙이리라.” 하시고, “그 부친이 동학 접주로 그릇 죽었고 경석도 또한 동학 총대(總代)였으니 오늘부터는 동학 때 한 맺힌 신명들을 전부 경석에게 붙여 보내어 이 자리에서 왕후장상의 해원이 되게 하리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춘치자명(春雉自鳴)의 설화(說話)를 들어 보라.
배짱이 그만하면 능히 그 책임을 감당하리니 뒷날 두고 보라. 경석이 금전도 무수히 소비할 것이요, 사람을 모으는 것도 갑오년보다 훨씬 많게 될 것이니라. 경석에게 밥주걱을 맡겼나니 경석은 제왕(帝王)만큼 먹고 지내리라.
이렇게 풀어놓아야 후천에 아무 일도 없으리라.” 하시고, 두루마리에 글을 써서 대공사를 처결하시며 외인의 출입을 금하시니라.
삼태육경(三台六卿): 삼정승과 육조판서.
왜 상제님께서는 동학 신명을 차경석 성도에게 붙여 해원케 하셨는가? 시천주조화정(侍天主造化定)을 노래하며 후천개벽을 학수고대한 동학혁명의 종군자들이 바로 상제님의 무극대운을 부르짖은 일꾼들이기 때문이다. 이에 상제님께서 몸소 그들의 원한을 초기 증산도 도운 보천교 개척의 운로에 붙여 해소시키셨다.
道典 5:206) 내가 이 세상에 온 것은
이 공사를 시작하실 때 성도들에게 “각기 새 옷을 지어 입으라.” 하시더니 이 날 성도들로 하여금 모두 새 옷으로 갈아입게 하시고, 상제님께서는 좋은 통량갓에 새로 지은 일광단(日光緞) 두루마기와 무문모초(無紋毛綃) 바지저고리로 의관을 정제하시어 의식을 집행하시니 마치 천자가 묘당(廟堂)에 임어한 모습처럼 장엄하더라.
이 때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천자피금(天子被擒) 도수에 걸렸으니 만약 나의 권능으로 이를 물리치면 만세토록 억조창생에게 헤아릴 수 없는 영향을 미치리라. 내가 세상에 온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요, 천하의 백성들을 위함이니 내가 이제 스스로 그 운수를 받으리라.” 하시니라.
내가 천자피금(天子被擒) 도수에 걸렸으니 ; 천자피금 도수. 증산 상제님의 천하사 성사成事 도수로 후천선경 건설의 지도자와 일꾼 내시는 공사를 집행하신 것이다.
道典 5:207) 정음정양 도수와 문왕 도수
상제님께서 공신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너에게 정음정양 도수를 붙이나니 네가 온전히 잘 이기어 받겠느냐. 정심으로 잘 수련하라. 또 문왕(文王) 도수가 있으니 그 도수를 맡으려면 극히 어려우리라. 미물곤충이라도 원망이 붙으면 천지공사가 아니니라.” 하시니라.
道典 5:208) 천하사 일꾼의 심법
이어 천지대신문을 여시고 사람 수효를 삼십삼천 수(三十三天數)로 채우신 뒤에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제 만일 일을 당하여 순검이나 병정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겁을 내어 도망할 마음이 있는 자는 다 돌아가라. 열 사람이 있다가 한 사람만 도망하여도 아홉 사람은 그 해를 입어 죽게 되리니 도망할 마음을 두는 자는 미리 돌아가고, 마음을 지켜 도망하지 않을 자는 굳은 다짐을 해 두라.
천하사(天下事)를 하는 자는 위태로움에 들어서서 편안함을 얻고, 죽음에 들어서서 삶을 얻는 것이니 일을 하는 자는 화지진(火地晉)도 해야 하느니라.” 하시니라. 이에 성도들이 “삼가 마음을 굳게 지켜 변함이 없겠나이다.” 하고 다짐하니 남은 사람은 모두 스물한 명이더라. 이 때 성도들은 상제님의 조화권능을 익히 알고 있으므로 혹은 ‘선생님이 계신데 무엇이 무서우리오.’ 생각하고 혹은 ‘무슨 화란이 있으리오. 이는 필시 우리들을 시험하는 말씀일 것이라.’고 생각하니라.
삼십삼천 수(三十三天數)로 삼십삼천 수. 이 공사에는 33천으로 벌어져 있는 우주촌을 통일한다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道典 5:209) 천자가 여기 계신데
상제님께서 성도들에게 “경칩절(驚蟄節)이 언제냐?” 하고 물으시니 성도들이 “2월 초나흗날입니다.” 하고 아뢰거늘 “경칩절에 일을 알게 되리라.” 하시니라. 이 때 상제님께서 미처 말씀을 마치지 아니하셨는데 면장 양 모(梁某)와 이장이 세금을 받으러 오거늘,
상제님께서 그들을 향하여 큰 소리로 꾸짖으시기를 “천자(天子)가 여기 계신데 누가 감히 세금을 받으러 오느냐!” 하시고, “내가 천지공사를 행하여 천하를 바로잡으려 하나니 너는 어찌 그런 음모에 참여하느냐.” 하시니 두 사람이 깜짝 놀라 돌아가서 ‘와룡리에 십수 명이 모여 대사(大事)를 경영한다.’고 고부경찰서에 고발하매
순사 네 명이 나와서 비밀리에 조사하니라. 이에 상제님께서 김형렬, 김자현, 문공신, 박장근, 이화춘 등 스물한 명을 모아 놓으시고 형렬에게 이르시기를 “너는 자현과 함께 공신의 집에 있으라. 나는 신경수의 집에 가 있을 것이니라.” 하시고, 구르멧산(雲山) 너머 운산리 경수의 집으로 옮기시며
다시 형렬에게 말씀하시기를 “순검들이 와서 나의 거처를 묻거든 숨기지 말고 사실대로 바르게 고하라.” 하시니 모두 이상하게 생각하니라. 이날 밤 상제님께서 경수의 집에 가시어 멀리 칠보 쪽을 쳐다보시며 “건너올 텐데 안 온다. 올 텐데 안 온다.” 하시고 한참 동안 누군가를 기다리시는 듯하더라.
12월 26일 고부경찰서 기록에 의하면 ‘25일 회룡리에 폭도로 간주되는 자 십수 명이 집합하여 대사를 경영한다고 성언(聲言)하고 있는 것을 탐문하였다.’고 되어 있다.
道典 5:210) 새벽에 무장 순검들이 들이닥침
이 날 저녁에 신경수의 집에서는 상제님의 명(命)에 따라 공신과 여러 사람들이 초저녁부터 윗방에서 불을 끄고 자고, 상제님께서는 아랫방에서 주무시니라. 26일 새벽이 되자 백낙두(白樂斗)를 비롯하여 무장한 순검 수십 명이 공신의 집을 에워싸고 형렬과 자현 등 여러 사람을 결박한 뒤에 상제님의 처소를 묻거늘,
성도들이 비로소 상제님의 말씀을 깨닫고 신경수의 집에 계심을 바른대로 고하니라. 이에 순검들이 상제님 계신 곳으로 들이닥치더니 총대로 문을 푹 쑤시며 “이놈들 나오라!” 하고 소리치거늘 상제님께서 들어온 총대를 마주잡으시고 “총 놓으라.” 하시니 순검이 순간 기세에 눌려 “그대가 놓으시오.” 하는지라.
상제님께서 큰 소리로 말씀하시기를 “이놈이 말귀도 못 알아듣는다. 어서 총을 놓으라!” 하시니라. 이렇게 한참 실랑이를 하는데 한 순검이 공신을 찾거늘 공신이 대답하고 나서니 곧 포박하고, 이어서 상제님과 여러 사람들을 의병 혐의로 모두 포박하니라. 이 때 순검들이 윗목에 놓여 있는 돈을 보고 도둑질을 했다 하여 무명 몇 필과 함께 압수하니라.
날이 밝자 순검들이 상제님 일행을 고부경찰서로 끌고 가거늘 상제님께서 자현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소식이 집에 들어가면 금번 서울서 과거 급제했다는 소식만큼이나 즐거워할까. 가족들은 하여튼지 자네는 그 소식으로 알고 있으라.” 하시니라.
순검들이 윗목에 놓여 있는 돈을 보고 도둑질을 했다 하여 무명 몇 필과 함께 압수하니라. 당시 압수당한 물건의 목록은 다액의 한전(韓錢), 일본제 여행 가죽 가방, 다량의 서류, 목면(木棉), 금건(金巾, 옥양목) 등이다.<「폭도에 관한 편책」, 전라남북도 경무국 편>
道典 5:211) 꼭 바른말만 하라
이 날 상제님과 성도들이 체포되니 그 소문이 원근에 자자하여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거늘, 여러 성도의 가족들이 통곡하며 ‘이번 화액으로 반드시 죽으리라.’는 패설(悖說)을 뱉기도 하고 화액에 걸린 성도들도 상제님을 원망하니라. 이 때 상제님께서 여러 사람에게 이르시기를 “이 시대는 거짓말하는 자를 없이하는 시대니 꼭 바른말만 하라.” 하시고 순검들에게 이르시기를 “그대들은 상관의 명령을 받고 왔으니 거짓말 말고 본 대로 말하라.” 하시니라.
道典 5:212) 천지가 다 내 것이다
운산리를 떠난 일행이 칠성(七星)바위를 지나 수금(水金)을 거쳐 다내(月乃)에 이르니 상제님께서 순검 대장을 불러 “그대들도 배고프고 우리도 배가 고프니 여기서 요기나 하고 가지 않으려느냐? 우리는 이왕 잡혀가는 몸, 그 돈은 다 내 돈이니 내가 그대보고 사란 말 않고 내가 사겠노라.” 하시거늘,
순검들도 저녁내 잠을 못 자고 아침 또한 못 먹었는지라 대장이 이를 허락하고 포승줄을 풀어 주니라. 이에 주막 주인을 불러 큰 통돼지 두 마리와 술 몇 동이를 준비시켜 모두 배불리 먹이시고 다시 길을 떠나실 때 상제님께서 갑자기 벌떡 일어서시더니 하늘을 향해 양손을 크게 벌리시며 “천지가 다 내 것이다!” 하고 큰 소리로 외치시니라.
일행이 황토현(黃土峴)을 지나 두승산 하늘재(天峙)를 넘어 고부 장터에 이르니 옷을 번듯하게 입고 끌려가는 상제님의 행렬을 보고 장꾼들이 서로 말하기를 “고부는 장차 쏘가 되리라. 저런 큰 인물들이 잡혀갔으니 어찌 무사하기를 바라리오.” 하며 불안히 여기거늘 대저 이 때는 각처에서 의병이 일어나므로 인심이 소동하여 실로 공포 시대를 이루었더라.
수금(水金)을 거쳐 수금. 전북 정읍시 정우면 수금리.
다내(月乃)에 이르니 다내. 정읍시 덕천면 달천리 다내 마을. 용두, 구정, 신우 마을을 합쳐 다내라 불렀다. 용두 마을은 용의 머리 형국을 하고 있으며 용뿔을 상징하는 두 개의 바위가 있다.
쏘. ‘쑥대밭’이나 ‘늪’을 뜻하는 전라도 방언.
道典 5:213) 천하사에 뜻하는 자 어찌 별로히 있으리오
경찰서에 이르니 수사관이 성도들에게 “병기를 가졌느냐?” 하고 묻거늘 모두 없다고 대답하니 즉시 여러 사람을 구류간(拘留間)에 가두고 공신은 모든 것을 볼 수 있도록 임시 막간 문턱에 앉혀 놓으니라. 이어 순검들이 상제님의 상투를 풀어 대들보에 매달고 옷을 다 벗긴 뒤에 십여 명이 사방에 늘어서서 죽검으로 사정없이 옥체를 후려치며 묻기를 “네가 대장이냐? 관리는 몇 명이나 죽였으며,
일본 사람은 몇 명이나 죽였느냐?” 하매,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우리를 의병으로 알고 묻는 말이냐?” 하시니 순검이 “그러하다.” 하니라. 이에 말씀하시기를 “의병을 일으키려면 깊숙한 산중에 모일 것이거늘 어찌 태인 읍내에서 오 리 안에 들 하나 떨어져 사람들이 날마다 왕래하는 번잡한 곳에서 의병을 일으키리오.” 하시고,
물으시기를 “그대들이 묻는 의병이란 것은 무엇을 이름이냐?” 하시니 순검이 말하기를 “이씨 왕가를 위하여 일본에 저항하는 것을 이름이라.” 하는지라. 말씀하시기를 “그러면 그대들이 그릇 알았도다. 우리는 그런 일을 아니하노라.” 하시니라. 순검이 다시 묻기를 “그러면 무슨 일로 모였느냐?” 하거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혼란복멸(覆滅)에 처한 천지를 뜯어고쳐 새 세상을 열고 대비겁(大否劫)에 싸인 사람과 신명을 널리 건져 각기 안락을 누리게 하려는 모임이로다.” 하시니라. 이에 통역순검 문형로(文亨魯)가 놀라 말하기를 “어찌 감히 그런 대담한 말을 하느냐!” 하거늘, 말씀하시기를 “사람마다 지혜가 부족하고 도략(韜略)이 없으므로 천하사를 도모치 못하나니 천하사에 뜻하는 자 어찌 별로히 있으리오. 그대가 만일 도략과 자비가 있다면 어찌 가만히 앉아서 볼 때리오.” 하시니라.
나는 천하를 갖고 흔든다
이에 순검들이 계속하여 심문하며 “네가 누군데 감히 그런 말을 하느냐?” 하니 상제님께서 큰 소리로 “나는 강 천자(姜天子)다!” 하시매 “어찌 강 천자냐?” 하니 “너희가 나를 강 천자라 하니 강 천자이니라. 나는 천하를 갖고 흔든다.” 하시거늘, 형렬과 자현은 이 말씀을 듣고 혼비백산하여 “이제 우리는 다 죽었다.” 하고 성도들 가운데 누군가는 “저, 죽일 놈 보게.” 하며 욕을 하니라.
당시 고부경찰서는 지금의 고부 초등학교 우측 언덕에 있었던 고부 관아의 건물을 사용하였다.
道典 5:214) 천지역군에게 닥칠 큰 화액을 대속하심
이 때 순검들이 상제님의 옥체를 죽검으로 사정없이 후려치며 갖은 욕을 보이는데, 공신이 보니 상제님의 가슴이 갑자기 20세 처녀의 젖가슴처럼 부풀거늘 순검들도 놀라 매질을 멈추니라. 잠시 후 다시 혹독한 매질이 계속되매 상제님께서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고 안구가 튀어나온 채 혀를 물고 혼절하시거늘,
순검들이 비로소 상제님을 대들보에서 내려 구류간으로 옮기니라. 이어서 순검이 “집주인이 누구냐?” 하매 공신이 “내가 주인이다.” 하고 나서자 박 권임(權任)이 공신에게 다가와 “이놈도 같은 놈이다.” 하며 구둣발로 앞가슴을 걷어차거늘, 공신이 마음 속으로 ‘나도 저렇게 맞으면 죽으리라.’ 생각하고 일부러 난간으로 떨어져 짐짓 기절한 체하니
문 총순(總巡)이 박 권임을 꾸짖으며 말하기를 “죄의 유무를 결정하지도 못하였는데 어찌 그다지 혹독히 다루느냐.” 하고 공신에게 고채를 채워서 구류간에 넣어 여러 사람과 함께 가두니라. 이어 다른 사람도 낱낱이 신문하거늘 대답이 한결같지 못하여 혹은 ‘도를 배우기 위하여 따랐다.’ 하고 혹은 ‘속임을 당하여 따랐다.’ 하니 신문을 마친 뒤에 모두 옥에 가두니라.
일본 공주를 해원시키려 함이라
이 때 상제님의 옥체는 피가 낭자하게 흐르고 만신창이가 되시어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지경이라. 상제님께서 옷도 입지 못하시고 겨우 몸만 가리신 채 밤을 새우시거늘 이튿날 성도들이 상제님의 옥체를 살피니 거짓말처럼 상처가 깨끗이 나아 있고, 용안은 화기(和氣)가 충만하여 평소와 같으시더라.
이 뒤에 상제님께서 공신에게 이르시기를 “이는 일본 공주를 해원시키려 함이니라.” 하시고, “지난 임진난리에 사명당이 일본에 가서 인피 삼백 장을 받아 오려 하였나니 그 때 일본 공주가 ‘나 먼저 벗기라.’ 하고 자결하였느니라. 그 죽은 혼령이 원귀가 되어 내가 죽은 뒤에 너희를 죽이려고 헌병을 이끌고 왔나니 내가 해원시켜 그 도수를 때웠노라.” 하시니라.
문 총순(總巡)이 박 권임, 총순과 권임. 조선 후기의 경찰 직명.
공신에게 고채를 채워서 구류간에 넣어, 고채. 차꼬. 긴 나무토막으로 두 발목을 고정시켜 중죄인을 가둘 때 쓰는 형구.
그 때 일본 공주가 자결하였느니라. 사명당이 1604년에 일본에 사신으로 건너가서 왜왕과 담판하여, 전란 때 잡혀간 3천여 명의 동포를 데리고 귀국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와 관련하여 왜왕의 항복을 받고 매년 인피(人皮) 300장과 불알 서 말씩을 조공하도록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 온다.
道典 5:215) 너희가 혈심을 갖지 못해 장상신이 응하지 않노라
일전에 상제님께서 이번 화액에 쓰기 위하여 약간의 돈을 준비하신 뒤에 갑칠에게 명하시어 ‘경석에게 전하라.’ 하시더니 갑칠의 심부름 맡은 사람이 화란을 틈타 그 돈을 훔쳐 도망하는 것을 갑칠이 쫓아가서 되찾아 경석에게 전하매 경석이 그 돈으로 옷과 침구와 음식 등을 준비하여 옥중으로 들여보내니라.
그믐날 저녁에 우레와 번개가 크게 일어나거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는 서양에서 천자신(天子神)이 넘어옴이니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이제 천자신은 넘어왔으나 너희들이 혈심을 가지지 못하였으므로 장상신(將相神)이 응하지 아니하노라.” 하시니라.
道典 5:216) 대공사를 처결함이니라
무신(戊申 : 道紀 38, 1908)년 설날 모질게 추운 날씨에 눈비가 많이 내리며 우레와 번개가 크게 일어나거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는 대공사(大公事)를 처결함이니라.” 하시니라.
道典 5:218) 그래야 네가 사느니라
이 때 구류간에 바람을 통하게 하는 작은 구멍이 있어 그 구멍에 종가리 한 개를 두고 오줌을 받아내는데 마침 그 종가리에 오줌과 오줌 찌꺼기가 반쯤 괴어 있는지라. 상제님께서 종가리를 손에 들고 인곽 안에 누워 있는 공신을 일으켜 세우시고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으시며 친히 종가리에 있는 오줌 찌꺼기를 손으로 훑어 세 모금을 드시더니 그 나머지를 공신에게 주시며 명하시기를 “공신아, 이것을 마시라.” 하시니라.
공신이 순간 크게 감동하여 생각하기를 ‘선생님은 나를 살리기 위해 이 더러운 것을 얼굴빛 하나 변치 않고 잡수셨는데 내가 어찌 마시지 못하리오.’ 하고 받아 마시매 오장이 뒤집히는 듯하거늘, 억지로 참으니 말씀하시기를 “참지 말고 올라오는 대로 다 토하라. 그래야 네가 사느니라.” 하시는지라. 공신이 비로소 깨닫고 토하니 그 뒤로 땀이 많이 나며 열이 내리고 결리던 곳이 나으니라.
道典 5:219) 점점 더 원망하는 종도들
여러 날이 지날수록 인심이 동요하며 상제님을 원망하는 사람이 늘어나거늘 상제님께서 일러 말씀하시기를 “대저 인생이 일사(一死)면 도무사(都無事)라 하나니 죽어도 원망은 말라.” 하시고,
또 공신에게 이르시기를 “일을 하려다가 이루지 못하고 죽을지라도 원통히 여기지는 말라. 죽을지라도 곱게 죽는 것이 좋으니라.
너는 자식이라도 있으니 한이 없으리라.” 하시니라. 이에 상제님께서 천지를 개벽하여 선경을 열어 각기 영화를 누리게 해 주실 것으로 믿었던 성도들은 더욱 두려워하여 그 중 몇 사람은 “저런 말을 하는 것은 이런 화액에 능히 대처할 권능이 없음을 스스로 드러냄이라. 우리가 믿었던 그의 권능은 한낱 무용의 믿음이요, 다만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삿된 일로 우리를 사지(死地)에 몰아넣은 것에 지나지 못함이라.” 하고 크게 원망을 하니라.
道典 5:220) 비록 십만 대중이 이러한 화액에 걸려도
운곡(雲谷)에 사는 노씨(盧氏)는 평소에 형렬과 자현을 잘 아는 사이로 고부경찰서 총순(總巡)과 이종간이라. 이 때 노씨가 편지를 써서 김태옥(金太玉)을 고부로 보내니 태옥이 고부에 가서 죽마고우인 옥사장 김검암(金劒岩)에게 그 편지를 보여 주며 말하기를
“형렬과 자현은 나의 친족이니 면회도 시켜 주고 이왕이면 두 사람을 좋은 방으로 옮겨 주오.” 하고 청하거늘, 검암이 두 사람의 방을 옮겨 주려 하매 형렬이 그 간수에게 청하여 상제님도 옮겨 드리게 하니라. 상제님께서 형렬과 자현을 보시고 “속언에 세 사람이 모이면 관장(官長)의 공사를 처결한다 하니
우리 세 사람이 모였으니 천하사를 도모하자.” 하시매 두 사람이 아무런 대답을 못 하거늘, 상제님께서 “왜 복이 무거워서 대답을 못 하느냐?” 하시고 “금일 천지공사를 세 사람이 결정한다.” 하시니라. 또 자현에게 조용히 이르시기를 “비록 십만 대중이 이러한 화액에 걸려도 털끝 하나 상함이 없이 다 끌러 내리니 안심하라.” 하시니라.
道典 5:221) 성도들의 석방
이 뒤로 경관이 아무리 조사하여도 의병의 증거가 나오지 않고, 또한 사람들이 ‘선생님은 신의(神醫)로서, 부모나 처자의 병을 낫게 해 주신 은혜를 잊지 못하여 설날을 맞아 세찬(歲饌)을 드리러 왔다.’ 하며 혹은 ‘공신의 친척으로서 인사차 왔을 따름이라.’ 하므로 마침내 정월 10일에 사람들을 석방하며 이르기를 “지금은 비상시라 단체로 모일 때가 아니니 이 뒤로는 특히 주의하라.” 하니라.
道典 5:222) 공신에게 어천 후 성체를 부탁하심
이 때 다른 사람은 모두 석방하고 상제님과 공신만 남겨 두니 공신은 구둣발에 채인 곳이 덜 나은 까닭이라. 상제님과 공신이 함께 고채에 채워져 있는데 하루는 상제님께서 문득 눈물을 흘리시며 “공신아, 너는 자식이라도 있지 않으냐. 나는 죽어서 뼈가 일본으로 갈지, 만주로 갈지…. 나는 자식이 없으니 누가 찾을 것이냐.
내 몸이 조선을 떠나면 안 되느니라. 내가 죽은 뒤에 백골이라도 전라도에 묻혀야 할 것 아니냐.” 하시니라. 이에 공신이 “아들 없는 게 무슨 걱정입니까. 제가 있지 않습니까?” 하니 상제님께서 “그럴런가나.” 하시고 더 말씀치 않으시니라.
내 몸이 조선을 떠나면. 후에 일어날 조철제의 성골 도굴 사건을 미리 내다보시고 그 때의 일을 조처하도록 당부하신 말씀이다.
道典 5:223) 천자를 도모하는 자는 다 죽으리라
며칠 후에 공신은 석방하였으나 상제님의 말씀은 한낱 ‘광인의 미친 소리’라 하여 상제님을 구류간에 홀로 감금해 두더니 38일 만인 무신년 2월 4일 만물이 싹트는 경칩절(驚蟄節)에 석방하니라. 이 때 차경석과 안내성이 돈 120냥을 가지고 와서 새 옷을 지어 드리려 하거늘
그만두게 하시고는 압수당한 돈과 무명을 찾아 순검과 빈궁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시고 술을 사 주시기도 하니라. 고부에서 사흘을 머무르신 뒤에 와룡리 황응종의 집으로 가시니 차경석이 따르거늘 이 때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천자를 도모하는 자는 다 죽으리라.” 하시고, “꿈만 꾸는 자도 죽으리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곳에서 죽으면 땅에서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이후 경석을 데리고 손바래기 본댁으로 가셨다가 김성연의 주막에서 술을 잡수시고 대흥리로 가시니라.
道典 5:224) 화액에 참여한 사람들
이 화액에 참여한 사람은 김형렬, 김자현, 문공신, 공신의 형 학철(學哲), 당질 수암(首岩), 매부 허성희(許聖喜)와 김광수(金光洙), 김공빈(金工彬), 김 참봉(金參奉), 이화춘(李化春), 박장근(朴壯根) 등이요, 그 외 열 명은 성명이 밝혀지지 않으니라. 그 가운데 허성희는 수금되었을 때 불평하는 사람들을 잘 효유하여 진정시키기에 많은 노력을 하였다 하거늘, 이 화액을 겪은 뒤로 형렬과 자현 등은 여전히 상제님을 받들고, 나머지 사람은 모두 흩어져 “선경(仙境)세계를 열어 평생 영화와 복락을 누리게 해 준다고 하더니 그 말에 속아 자칫 죽을 뻔했다.” 하며 상제님을 심히 원망하더라.
이화춘, 박장근의 배신과 최후
경찰서에 수금되었을 때 박장근, 이화춘 등은 상제님을 심히 원망하며 불경한 말을 하더니 2월 초에 상제님께서 대흥리 차경석의 집에 계실 때 이화춘이 오거늘, 상제님께서 이르시기를 “사람이 비록 불길 속으로 들어갈지라도 더욱 마음을 굳게 하여 본심을 지키고 의리를 존중하여야 하거늘 너는 어찌 그렇듯 무례하게 불의를 감행하느냐.
이 뒤로는 깊이 참회하여 모든 일에 의리를 지켜 나의 가르치는 바를 잘 따르라. 그렇지 않으면 신명을 그르치리라.” 하시니라. 또 일러 말씀하시기를 “네가 지금 돌아가거든 방문을 굳게 닫고 출입을 폐하되 문구멍을 뚫어 밥을 들여 먹고 대소변도 받아내며 보름을 지낼지어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큰 화를 당하리니 부디 명심하여 잊지 말라.” 하며 여러 번 이르시거늘 화춘이 명을 받고 물러가는데 내성에게 명하시어 화춘을 다시 불러 이르시기를 “네가 만일 나의 말을 믿지 아니하여 비록 죽는 일을 당할지라도 나를 원망치 말라.” 하시니 화춘이 대답하고 물러가니라.
당시의 경찰서 자료에도 상제님을 제외한 21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道典 5:225) 귀신으로나 좋은 곳에 가게 하리라
다음 날 상제님께서 세수하시다가 문득 말씀하시기를 “시체 썩는 냄새가 코를 찌른다.” 하시더니 이윽고 화춘의 집 사람이 급히 와서 화춘이 밖에 나갔다가 의병에게 총살당함을 아뢰거늘 한숨을 쉬시며 “귀신으로나 좋은 곳에 가게 하리라.” 하시고 글을 써서 불사르신 뒤 심부름꾼에게 이르시기를 “시체는 단단히 묶지 말고 널에 넣되 널덮개도 단단히 잠그지 말고 양지쪽에 외빈하여 비바람이나 가리게 하라.” 하시니라.
귀한 것이 인망이니라
이어 탄식하며 말씀하시기를 “박장근도 또한 죽으리라. 그 성질을 고치기 어려우니 어찌할 수 없노라.” 하시거늘, 경석과 내성이 함께 여쭈기를 “그 위인이 성질은 몹시 사납고 포악하나 여러 달 동안 닦아 온 정성을 살피시어 그 죽음을 면케 하여 주옵소서.” 하니라. 이에 말씀하시기를 “귀한 것이 인망(人望)이니라. 인망이 그러하니 다른 도리를 생각하여 보리라.” 하시고 다시 “생명은 보전케 하리라.” 하시니라. 그 뒤에 장근이 의병에게 맞아서 다리가 부러지니라.
족보에 보면 이화춘의 기일이 2월 7일이다. 이로 보면 상제님께서 출감하시어 사흘 동안 고부에 계시다가 와룡리 황응종 성도의 집에 들러 대흥리 차경석 성도의 집에 가셨으며 이 때 이화춘 성도가 상제님을 뵙고 바로 다음 날 사망했음을 알 수 있다. 상제님께 불경한 인간에게 신神도가 얼마나 속히 감응하는지를 잘 알게 해 주는 내용이다.
道典 5:226) 새천지의 참주인 진주노름의 독조사 도수
공신이 출옥한 뒤에 하루는 고부 주막 주인이 공신의 집에 와서 느닷없이 공신 앞으로 달아 둔 밥값을 내놓으라며 살림살이를 차압해 가거늘 상제님께서 출옥하시면 압수당한 돈과 무명을 찾아 외상을 갚아 주실 줄 믿었던 공신은 큰 돈을 내고도 다시 수저 하나 남김없이 살림살이를 차압당하매 크게 불평을 품고 있더니
얼마 후 상제님께서 집에 찾아오시매 지난 일을 낱낱이 헤어 아뢰며 불쾌한 어조로 폭담을 하니라. 이 때 상제님께서 고개를 숙인 채 듣고 계시다가 공신에게 “이제 말 다했느냐?” 하시니 공신이 분이 풀리지 않은 얼굴로 “다 했지요.” 하거늘, 말씀하시기를 “네 말을 들으니 그렇겠도다.
내가 순창 농바우에서 사흘 동안 머물며 너를 처음 만난 뒤로 네가 여러 가지 큰 공사에 참관하여 너에게 이윤(伊尹) 도수를 붙인 바 있고 고부 도수를 보려 하나 가히 감당해 낼 만한 사람이 없으므로 네게 주인을 정하여 독조사 도수를 붙였노라.
진주(眞主)노름에 독조사라는 것이 있어 남의 돈은 따 보지 못하고 제 돈만 잃어 바닥이 난 뒤에 개평을 뜯어 새벽녘에 회복하는 수가 있으니 같은 끗수에 말수가 먹느니라.
네가 고부에서도 밥값을 말한 일이 있었으나 그 돈을 쓰면 독조사가 아니니라. 만일 네가 꼭 돈이 있어야 되겠으면 내가 주마. 그러나 그리하면 그 도수는 다른 사람에게 옮겨야 하느니라.” 하시니 공신이 ‘어차피 돈은 쓴 것인데 도수까지 남한테 뺏긴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라 생각하여 여쭈기를 “일이 그와 같을진대 그만두시옵소서.” 하니라.
독조사 도수의 주인인 문공신 성도는 400석지기의 재산과 살던 집까지 다 바치고 10년 동안 두 번에 걸쳐 옥살이를 하는 등 지난한 신앙 과정을 거쳤다. 또 말년에는 초가 오두막에서 자리를 짜며 살다가 76세로 생을 마쳤다. 이처럼 험난한 문공신 성도의 인생 역정은 제3변 도운(道運)의 상제님 대행자에게 그대로 투영된다.
너에게 이윤(伊尹) 도수를 붙인 바 있고: 이윤(伊尹, ?~?). 이윤은 재주와 지혜가 뛰어났으며 탕을 도와 하나라를 무너뜨리고 상나라를 세운 개국공신이다.
이름은 지(摯). 관직명 아형(阿衡). 모친이 이수(伊水)에서 살았으므로 이윤이라 했다. 윤(尹)은 바로잡는다는 뜻이니, 탕임금이 그로 하여금 천하를 바로잡게 했다는 뜻이다.<『사기(史記)』「은본기(殷本紀)」>
이윤 도수. 천하사 일꾼의 자기개혁과 지도자 보필 도수이다. 상제님께서 공신에게 이윤의 도수를 붙이신 공사 시간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공신이 상제님께 따지던 이 때 처음 밝혀 주셨다고 한다. <문공신 교단에서 평생을 일심 신앙한 김성섭(1910∼ ) 증언>
진주노름에 독조사. 진주는 상제님의 참일꾼 추수자(대두목)로서, 증산 상제님의 광구창생의 대업을 실현하는 ‘참 주인’이다. ‘독조사’란 오직 제 것으로 사람을 살리고 상제님의 도판을 개척해서 인재를 기르는 지도자의 길을 말씀하신 것이다. 반드시 자자손손 자신의 청춘, 재산, 정성을 전부 다 바쳐서 무에서 유를 개척하여 창업을 실현하는 것이 진주의 사명이요 독조사의 사명이다.
새벽녘에 회복하는 수. 이는 증산 상제님 어천 이후 크게 세 차례에 걸친 증산도 도운 대부흥의 도수 과정에서, 제2변을 직접 개척한 지도자가 모든 것을 정리하고 다시 제3변 부흥시대를 열어 도세(道勢)를 만회함으로써 대개벽기 광구천하의 의통성업을 완수하는 것을 말한다.
道典 5:227) 화둔(火遁) 공사를 준비하심
그 후 대흥리로부터 태인 신경원(辛京元)의 집에 이르시어 한 달 동안 머무르실 때 신경원, 최창조, 김경학, 최내경이 상제님을 모시니라. 상제님께서 백암리 김경학의 집과 최창조의 집 양가를 왕래하시며 광찬의 양모(養母) 성복제(成服祭)를 창조의 집에서 거행케 하시니라.
하루는 상제님께서 신경원의 집에 계실 때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천지에 변산처럼 커다란 불덩이가 있으니 그 불덩이가 나타나 구르면 너희들이 어떻게 살겠느냐.” 하시며, 誰識南方埋火家라 글을 쓰신 뒤에 창조에게 명하시기를 “돼지 한 마리를 잡아 계란으로 저냐를 부쳐서 대그릇에 담아 깨끗한 곳에 두라.” 하시고 이어 “내 옷 한 벌을 지어 두라. 장차 쓸 곳이 있노라.” 하시니 창조가 대답하고 돌아가서 명하신 대로 행하니라. 그 뒤에 상제님께서 구릿골로 가시니라.
道典 5:228) 죽어서야 쓰겠느냐
얼마 후 공신이 발에 채인 곳이 재발하여 마당 출입도 못하게 되거늘 응종을 구릿골로 보내어 상제님께 아뢰니 “그리 내비둬라, 죽게 냅둬.” 하시는지라. 돌아와 그대로 전하매 공신이 다시 심사가 나서 아무 약도 쓰지 않고 있더니 병세가 점점 위중해져서 몸을 전혀 움직이지 못하게 되니라. 응종이 민망히 여겨 다시 상제님을 찾아가 뵈니
“공신의 병세가 어떠하더냐?” 하시거늘 응종이 대답하기를 “드러누워 움직이지 못하옵니다.” 하니라. 이에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죽어서야 쓰겠느냐. 찹쌀밥 아홉 때를 지어 먹으라 하라.” 하시니 응종이 돌아가 명하신 대로 전하매 그대로 하여 곧 완쾌하니라.
道典 5:229) 천지의 화액 불 기운을 묻는 화둔(火遁) 공사
무신년 3월에 구릿골에 머무르실 때 창조가 사람을 보내어 아뢰기를 “돼지고기로 전을 부쳐 둔 것이 다 썩었사오니 어찌합니까?” 하거늘 상제님께서 “좀 기다리라.” 하시더니 그 후에 형렬에게 명하시기를 “태인에 가서 신경원과 최내경을 데리고 새울 창조의 집에 가서 이르되
‘일찍이 준비하여 둔 옷 한 벌을 세 사람이 한 가지씩 나누어 입고 돼지 한 마리를 잡아서 삶은 다음 오늘 저녁에 인적이 그치기를 기다려 한 사람은 그 집 정문 밖에 사람 하나 엎드릴 만한 작은 구덩이를 파고 그 앞에 청수 한 그릇과 화로를 놓은 다음 깨끗한 그릇에 호주(胡酒)와 문어와 삶은 돼지고기를 담고
그 위를 두부로 덮어서 구덩이 속에 넣은 뒤에 또 한 사람은 돼지고기 전을 한 점씩 들어 청수와 화로 위로 계속하여 넘기되 남은 한 사람이 그것을 받아서 구덩이 속에 다 넣은 다음 흙으로 덮으라.’고 자세히 일러 주고 빨리 돌아오라.” 하시니라. 이에 형렬이 명을 받들어 태인에 가서 일일이 지휘한 뒤에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니
맑은 밤하늘에 갑자기 검은 구름이 몰려와 지척을 분간할 수 없이 캄캄해지며 큰비가 쏟아지고 천둥과 번개가 크게 일어나니라. 상제님께서 형렬에게 물으시기를 “이 때쯤 일을 행하겠느냐?” 하시니 대답하기를 “행할 때가 꼭 되었습니다.” 하거늘 말씀하시기를 “만일 변산 같은 불덩이를 그냥 두면 전 세계가 재가 될 것이니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그 불을 묻었노라.” 하시니라.
화둔(火遁) 화둔: 선천 우주가 이러한 화둔공사의 궁극의 전환점(turning point)을 거쳐 새천지 우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천지에서 불기운을 거두기 때문에 새천지로 갱생할 때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만일 변산 같은 불덩이를 그냥 두면 전 세계가 재가 될 것이니라: 지구촌 핵전쟁 방지
道典 2:73) 천지대도에 머물러야 산다
때가 다하여 대세가 처넘어갈 때는 뇌성벽력이 대작하여 정신차리기 어려울 것이요, 동서남북이 눈 깜짝할 사이에 바뀔 때는 며칠 동안 세상이 캄캄하리니 그 때는 불기운을 거둬 버려 성냥을 켜려 해도 켜지지 않을 것이요, 자동차나 기차도 움직이지 못하리라. 천지이치로 때가 되어 닥치는 개벽의 운수는 어찌할 도리가 없나니 천동지동(天動地動) 일어날 때 누구를 믿고 살 것이냐! 울부짖는 소리가 천지에 사무치리라. 천지대도에 머물지 않고서는 살 운수를 받기 어려우니라.
道典 5:230) 부처와 보살 음양 공사
하루는 장성 백양사(白羊寺)에 가시어 밤새도록 공사를 행하시니라. 그 절의 중들이 상제님의 명을 받들어 법당 문을 모두 열어 놓으니 상제님께서 담뱃대로 부처의 머리를 세 번 치시고 여러 보살들에게도 똑같이 하신 뒤에 말씀하시기를 “사람들 사는 세상에서 아내 얻어 자식 낳고 즐겁게 살지어다.” 하시니라.
백양사. 전남 장성군 북하면 백암산(白巖山)에 있는 사찰.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안치되어 있는 9층탑이 있다.
道典 5:232) 문공신의 불의를 경계하심
여름에 문공신이 구릿골에 와서 상제님을 뵙거늘 꾸짖어 경계하시기를 “네가 만일 허물을 뉘우쳐 전습(前習)을 고치지 아니하면 장차 어떠한 난경을 당할지 모르리라. 내가 만세의 억조창생을 위하여 그 운수를 순리로 받았으나 천지간의 모든 신명들은 혹 내 몸이 다칠까 걱정하고 혹 내가 마음 상할까 두려워하여
그림자처럼 나를 따르며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나니 너는 어찌 감히 나의 덕(德)을 해하느냐. 내가 너를 버리면 너는 성명(性命)을 보전키 어려우리라. 공신아! 천지에 사죄하고 나에게 돌아와서 영화를 구하라. 나는 너를 버려 내 덕을 상하려 하지 않노라.” 하시고, 자현을 불러 말씀하시기를
“네가 공신의 집에 가서 여러 날 숙식하였으니 공신을 네 집에 데려다가 잘 대접하라.” 하시니라. 이후 자현이 그 분부를 잊어버리고 지냈더니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잘못했도다. 이 뒤로는 대접하려 해도 만날 기회가 없으리라.” 하시거늘 과연 그 뒤로는 서로 만나지 못하니라.
道典 5:233) 손병희의 기운을 거두심
하루는 상제님께서 원평을 지나 구성(九星)바위가 있는 성계리(星溪里) 신암(新岩) 주막에 이르시어 말씀하시기를 “내 들으니 손병희(孫秉熙)가 전주에 왔는데 서울에 교당 짓는 것을 빙자하여 그 부하들의 어린아이 옷고름에 채운 돈까지 떼어다가 큰집과 작은집을 거느리고 행락하며 온 부하들을 망친다 하니 그 무능함을 가히 알 만하도다.
만일 재능이 있다면 천하의 집이 모두 저의 집이 될 터인데 집은 지어 무엇하리오. 이제 호남 각지를 돌고 나면 그 부하들은 다 망하게 될 것이라. 누구든지 몽둥이를 들어 그 머리를 치며 ‘네 재능이 무엇이건대 사설(邪說)로써 민중을 속이며 부하들을 그다지 망치느냐!’고 꾸짖으면 대답하지 못하고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인내천(人乃天)이 아니니라
이에 한 성도가 “손병희가 어떤 사설을 퍼뜨려 행세한다는 말씀이옵니까?” 하고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천(天)은 천이요 인(人)은 인이니 인내천(人乃天)이 아니니라. 또 손병희가 ‘아이를 때리는 것(打兒)’을 ‘하늘을 때리는 것(打天)’이라고 이르나 아이를 때리는 것은 아이를 때리는 것이요, 감히 하늘을 때린다고 할 수 없느니라. 하물며 사람의 생사와 화복이 하늘에 달려 있거늘 어찌 하늘을 때린다 하리오.
하늘은 억조창생의 임금(君)이요 억조창생의 아버지(父) 되나니 옛 성현들이 하늘을 모시는 도가 지극히 엄숙하고 지극히 공경스러워 통통속속(洞洞屬屬)하고 수운의 하늘을 모시는 가르침이 지극히 밝고 정성스러웠느니라. 큰 근본(大本)이 어지러워지면 만덕(萬德)이 모두 그르게 되느니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저희들은 다 구암(久庵)이요, 이곳은 신암(新庵)이니 곧 도안(都安)의 집이니라.” 하시니라.
진실로 쾌남자로다
공우에게 말씀하시기를 “공우야, 손병희의 피폐가 극도에 이르렀으니 너는 내일 전주에 가서 손병희를 쫓아 보내고 오라.” 하시니 옆에서 듣고 있던 응종이 몽둥이를 들며 여쭈기를 “제가 쫓아가서 그리하겠나이다.” 하거늘 말씀하시기를 “네가 진실로 쾌남자로다.” 하시니라. 공우가 명을 받고 이튿날 출발하려다가 다시 말씀치 아니하시매 이상히 여겨 그만두었더니 이 때 손병희가 호남 지방을 순회하려다가 갑자기 일정을 바꾸어 서울로 돌아가니라.
손병희(孫秉熙, 1861∼1922). 본관 밀양. 호 의암(義菴). 동학 2세 교주 최시형의 수제자. 동학혁명 때 북접의 동학군을 이끌고 남접의 전봉준 장군과 합세하여 관군과 싸웠다. 1905년에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하였다.
천(天)은 천이요 인(人)은 인이니 인내천(人乃天)이 아니니라.: 동학의 본래 가르침인 시천주(侍天主)는 최시형을 거치면서 천주의 인격성이 떨어져 나간 ‘사인여천(事人如天)’으로 변질되고, 손병희에 이르러서는 ‘인내천’으로 왜곡된다. 하지만 모든 인간의 근원인 하늘을 두고 ‘인간이 하늘이다.’라고 할 수는 없다. 이는 체(體)와 용(用)의 관계를 모르고 하는 무지막지한 말이다. 서학의 삼위일체 신관과 마찬가지로 근본을 왜곡하고 있다.
황응종(黃應鐘, 1841∼1927). 키가 크고 풍채가 좋았다. 성품이 괄괄하고 힘이 세어 사람들이 호랑이 양반이라고 불렀다 한다.
손병희는 남도 설교차 무신 4월 10일 군산을 통해 전주에 와서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전주에서 한 차례 대중 설교를 마친 뒤 17일에 갑작스레 일정을 바꾸어 상경하였다.
道典 5:234) 천하사를 하는 자는 화지진도 해야
무신년 여름에 구릿골에 계실 때 여러 날 동안 양지에 글을 쓰시어 크게 두루마리를 만드신 뒤에 하루는 형렬, 갑칠, 경학, 광찬, 윤근, 원일 등에게 명하시기를 “방 안에서 문을 닫고 이 두루마리를 화로에 불사르되 연기가 방 안에 가득 차게 하고 다 사른 뒤에 문을 열라. 일을 하려면 화지진(火地晉)도 해야 하느니라.” 하시니라. 여러 사람이 명하신 대로 하매 연기가 방 안에 가득 차서 숨을 쉬기가 어렵거늘 윤근과 원일은 밖으로 나가고 남은 사람은 다 타기를 기다려 문을 여니라.
일을 하려면 화지진(火地晉)도 해야 화지진. 천하사를 하는 일꾼은 비록 불길이 앞을 가로막을지라도 목숨을 초개같이 여기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道典 8:44) 동방 한민족의 인류사 개벽의 심법 전수
을사(乙巳 : 道紀 35, 1905)년 8월에 하루는 성도들을 줄지어 앉히시고 어렸을 때 지은 글이라 하시며 “정심(正心)으로 삼가라.” 하시고 글을 외워 주시니 이러하니라.
運來重石何山遠이오 粧得尺椎古木秋라
무거운 돌을 운반하여 옴에 어찌 산이 멀다 하리오. 잘 깎은 방망이로 세상을 다듬질하니 고목 된 가을이구나! “이는 선생문명(先生文明) 아닐런가.” 하시고 “이 글을 심고하고 받으라.” 명하시므로 모든 성도들이 심고하고 받으니라.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霜心玄圃淸寒菊이여 石骨靑山瘦落秋라
서리 내린 현포(玄圃)에 핀 맑은 국화여, 바위가 드러난 청산은 낙엽 진 가을이구나! “이는 선령문명(先靈文明) 아닐런가.” 하시고 “이 글을 심고하고 받으라.” 명하시므로 모든 성도들이 심고하고 받으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千里湖程孤棹遠이요 萬邦春氣一筐圓이라
천리나 되는 호수길 외로운 배질 아득하고, 온 천하의 봄기운 한 광주리에 가득하도다! “이는 선왕문명(先王文明) 아닐런가.” 하시고 “이 글을 심고하고 받으라.” 명하시므로 모든 성도들이 심고하고 받으니라. 다시 말씀하시기를
時節花明三月雨요 風流酒洗百年塵이라
철 꽃은 내 도덕의 삼월 비에 밝게 피고, 온 세상의 백년 티끌 내 무극대도의 풍류주로 씻노라. “이는 선생선령선왕(先生先靈先王) 합덕문명(合德文明) 아닐런가.” 하시고 “이 글을 심고하고 받으라.” 명하시므로 모든 성도들이 심고하고 받으니라. 다시 말씀하시기를
風霜閱歷誰知己오 湖海浮遊我得顔이라. 驅情萬里山河友요 供德千門日月妻라
만고풍상의 고난을 다 겪은 나를 누가 능히 알리오. 저 우주의 조화 바다에 떠서 노니 내 얼굴이 드러나는구나. 정을 만리에 모니 산하가 내 벗이 되고, 덕을 천지에 베푸니 일월이 내 짝이 되는구나. “이는 우리들의 득의지추(得意之秋)가 아닐런가.” 하시고 “이 글을 심고하고 받으라.” 하시므로 모든 성도들이 심고하고 받으니라.
한민족의 머나먼 고난의 여정과 역사 정신을 깨 주신 것이다.
風流酒洗百年塵풍류주세백년진. 풍류는 ‘신바람, 상제님의 조화신권’을 상징한 것. 백 년은 천지공사 보신 해로부터 백 년간의 해원의 여정을 말한다. 즉 지난 백 년의 시간 동안 상제님의 도(道)로 일체의 묵은 기운(묵은 제도와 난법, 잘못된 신앙의식 등)을 씻어 내어 선천 역사를 마무리 짓고, 새 우주를 개벽하는 실제 개벽의 시간대로 들어가는 것이다.
득의지추(得意之秋). 상제님의 대도에서 생명의 여의주를 얻는 득의지추(得意之秋)는 삶의 의미와 보람을 찾고 꿈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제 그것을 이루는 가을의 큰 때를 만났으니 고난을 섭리로 알고 과감히 광제창생 천하통일의 대업을 밀어붙이라는 말씀이다.
道典 5:362) 후천대개벽의 여명
하루는 김병선(金炳善)에게 글 한 장을 써 주시니 이러하니라.
日入酉配 亥子難分, 日出寅卯辰 事不知, 日正巳午未 開明 日中爲市交易退 帝出震
해는 유시에 들어가는데, 해시와 자시의 변별하기 어려움에 필적하고 해가 인시, 묘시, 진시에 나오는데 아직 세상일을 알지 못하며 해가 사시, 오시, 미시에 남중하는 때, 나의 도(道)와 세상일이 환히 드러나느니라.
해가 정중하여 문명의 장이 서고 교역이 끝나 장이 파하면 태조가 진방에서 나오시느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닭이 울면 새벽이요 개가 짖으면 사람이 다니게 되느니라. 금년 운수가 명년 4월까지 가느니라.” 하시고, “진사(辰巳)에 성인출(聖人出)하고 오미(午未)에 낙당당(樂堂堂)이라.” 하시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개명장 나는 날엔 일체 개심(開心)하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7:60) 천지대세 사오미 개명 도수
하루는 안내성(安乃成)이 “때는 언제 오나이까?” 하고 여쭈거늘 손가락을 하나씩 꼽았다가 새끼손가락을 펴 여섯을 세어 보이시며 “이것이 조화봉(造化棒)이다. 새끼손가락이 조화 낸다.” 하시고 시 한 수를 읽어 주시니 이러하니라.
나도 가네 나도 가네, 임을 따라서 나도 가네, 저 임을 따라서 나도 가네, 십리사장(十里沙場) 너른 들에 오색포장(五色布帳) 둘러치고 일이삼사오륙(一二三四五六) 중에 고장(鼓杖) 소리만 둥둥 난다.
인묘진(寅卯辰) 사부지(事不知) 사오미(巳午未) 개명(開明). 이에 내성이 “잘 모르겠습니다.” 하니 상제님께서 다시 노래를 부르시니 이러하니라. 난(難)이라 난이라 사난(四難)이로구나. 저 건너 갈미봉에 비 몰아온다. 우장을 허리에 두르고 논에 지심이나 매러 가자
어렵다 어렵다 네 가지가 어렵구나. 부자 걸뱅이 되는 것 똑똑한 놈 병신 되는 것. 유식한 놈 무식 되는 것 양반 상놈 되는 것.
道典 2:55) 나를 생각하는 사람이 내 사람
하루는 김갑칠(金甲七)이 여쭈기를 “저와 같이 용렬하고 천하기 그지없는 자도 다가오는 선경세계의 복을 누릴 수 있습니까?” 하니 상제님께서 문득 안색을 바꾸시어 큰 소리로 말씀하시기를 “갑칠아, 그게 무슨 말이냐. 이 때는 해원시대니라. 이제 해원시대를 맞아 도(道)를 전하는 것을 빈천한 사람으로부터 시작하느니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부귀한 자는 자만자족하여 그 명리(名利)를 증대하기에 몰두하여 딴 생각이 나지 않으리니 어느 겨를에 나에게 생각이 미치리오. 오직 빈궁한 자라야 제 신세를 제가 생각하여 도성덕립(道成德立)을 하루바삐 기다리며 운수 조일 때마다 나를 생각하리니 그들이 곧 내 사람이니라.” 하시니라.
김갑칠(金甲七, 1881∼1942). 본관 안동. 갑칠은 도명, 호는 우사장(雨師丈). 부 기윤과 모 황씨 사이의 차남. 김형렬 성도의 종제(4촌)이며 김준상 성도의 동생이다. 키는 그리 크지 않고 수염도 얼마 나지 않은 용모였다.
道典 6:5) 온 세상이 나를 찾을 때가 있다
하루는 형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는 한 점 잠이나 자지 나는 세상 이치를 맞추고 뜻을 맞추려면 제대로 잠도 한숨 못 자느니라.” 하시니 형렬이 “무엇 때문에 잠을 못 주무십니까?” 하고 여쭈거늘 말씀하시기를 “세상을 들어갔다 나왔다, 문 열고 다니기도 힘든 법이니라. 너는 문을 한 번 열고 나와서 다시 들어가면 그만이지만
나는 천 가지 만 가지 조화를 부리고 앉아 있으려니 힘이 드는구나.” 하시니라. 또 이르시기를 “너는 내 생전에 나를 수종 든 제자라 해서 잊지 않을 것이니 걱정 말고 기다리면 세상에서 내 말을 할 것이니라. 온 세상이 나를 찾을 때가 있으리라.” 하시니 형렬이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지금은 사람들이 제 말을 듣는 시늉도 하지 않습니다.” 하거늘, 말씀하시기를 “지금은 그렇게 시늉을 안 해도, 흘러가는 물도 막힐 때가 있나니 그렇게 알라.” 하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