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님, 수지맘, 알코리, 영, 홍콩배우님이 함께 했습니다. 낮부터 저녁까지 비가 많이 내린 덕분인지 카페에 모처럼 손님이 꽉 차서 조금 시끄럽기도 했고, 우리가 늘 앉던 창가 자리를 못 잡아 조금은 마음의 평온?을 잃기도 했네요~
앞수다에서 달님, 알코리, 홍콩배우님이 최근 본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동경가족>, 한병철의 책 <시간의 향기> 이야기도 좀 나누었고, 수지맘, 영님 합류해서 미국에서 5년만에 다니러 오신 언니 이야기에서 비롯된 날씨와 피부미용과의 관계, 6세 아이의 못말리는 배우기 열풍의 근원, 밀양 송전탑 건으로 기소당한 고등학생한테 검사가 벌금 500만원을 때렸다는 이야기 등을 나누었습니다.
한병철은 <피로사회> 마지막 부분 "우울사회" 에서 앞선 논의를 종합하고, 우울증의 특성에 대해 분석했습니다.
-히스테리가 규율사회의 전형적 정신질환이라면, 우울증은 성과사회에서 나타나는 질환이다. 히스테리 환자는 뚜렷하게 특징짓는 신체적 증상으로 표출되는데 반해서 우울증 환자는 무형적이다. 그는 성격 없는 인간이다. 우울증, 소진증후군,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와 같은 오늘날의 정신질환은 심적 억압이나 부인의 과정과는 무관하다. 그것은 오히려 긍정성의 과잉,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무능함, 해서는 안 됨이 아니라 전부 할 수 있음에서 비롯한다.
-우울증의 부상은 20세기 전반에 주체가 겪어내야 했던 변형의 두 차원을 관통한다. 심리적 해방과 정체성의 불안정, 또는 개인의 주도권과 행동할 수 없는 무능력이다.
-과도한 선택의 자유를 누리는 후기근대의 성과주체는 강력한 유대의 능력을 잃어버린다. 슬픔은 대상과의 강력한 리비도적 유대관계에서 나오며 무엇보다 그 점에서 우울증과 구별된다. 우울증은 대상이 없고 따라서 지향점도 없다. 우울증은 멜랑콜리와도 중요한 차이가 있다. 멜랑콜리는 어떤 상실의 체험 뒤에 온다. 따라서 멜랑콜리는 그나마 어떤 관계 속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부재하는 자와의 부정적 관계가 멜랑콜리의 조건인 것이다. 하지만 우울증은 모든 관계와 유대에서 잘려나간 상태이다. 우울증에는 아무런 중력이 없다.
-우울증 환자는 자신의 자주성에 지쳐버린 사람, 즉 자기 자신의 주체가 될 힘을 상실한 사람이다. 그는 주도적이어야 한다는 요구의 끝없는 반복에 지쳐있는 것이다.
-성과주의 후기산업사회는 생산의 증대를 위해 유연한 개인을 필요로 한다. 사람들이 정체성을 자주 바꾸면 바꿀수록 생산은 더 큰 활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개성을 확장하고 변형하고 새로 발명해야 한다는 멍령이 그 이면에서 우울증을 초래한다.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초자아는 긍정화를 통해 이상 자아가 된다. 초자아의 부정성은 자아의 자유를 제한하지만, 이상 자아를 향한 기투는 자유의 행위로 해석된다. 자아는 일단 도달 불가능한 이상 자아의 덫에 걸려들면 이상 자아로 인해 완전히 녹초가 되고 만다. 이때 현실의 자아와 이상 자아의 간극은 자학으로 이어진다. 이상 자아에 비하면 현실의 자아는 온통 자책할 거리밖에 없는 낙오자로 나타난다.
-21세기의 대표 질병인 소진증후군이나 우울증 같은 심리 질환들은 모두 자학적 특징을 나타낸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폭력을 가하고 자기를 착취한다. 그러한 폭력은 희생자가 스스로 자유롭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더 치명적일 수 있다.
-자유를 가장한 이러한 자기 강요는 파국으로 끝날 뿐이다.
<다음 모임 안내>
- 2014. 8. 14(목) 오후 7시~
- 책 :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치누아 아체베)
- 장소 : 할리스커피 범어네거리점
* 처음 모임에 참석하실 분은 미리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010-6514-4006)
첫댓글 몇 주간의 정리 멋집니다.
고맙습니다^^
여의님 방가^^
피로사회 이후 한병철에 빠져 있어요. 어제는 시간의 향기, 오늘은 투명사회
읽었어도 잘 정리되지 않았던 내용들인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머무르지 못하여 정처없는 우리들은 사색적인 삶 대신 끝없는 활동으로 공허를 채우려고 하지만 채워지지 않고, 표면만 스쳐가는 매끄러운 관계는 서로에게 가닿지 못하여 내가 타자와 만나 다른 나로 변화되어 가는 경험을 못하게 한다.
타자와 만나 내가 변화된다는 것은 기존의 나를 해체하는 고통의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