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 12. 9. 20:23
▲멀리 보이는 정자가 압구정(押鷗亭)
겸재 정선(謙齋 鄭敾:1676~1759)의 화첩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에 실려 있는 그림 ‘압구정(狎鷗亭)’. 한명회는 속세에 뜻이 없음을 표하기 위해 한강변에 압구정을 지었으나 훗날 많은 문인들의 조롱을 받았다.
■ 압구정동의 유래
오늘날 압구정동의 동명유래는 조선세조 때, 권신(權臣) 한명회(韓明澮,1415~1487)가 지은 압구정(狎鷗亭)이라는 정자가 있었기 때문에 부쳐진 이름이다.
원래 압구(狎鷗)는 한명회의 호로서 "세상일 다 버리고 강가에서 살며 갈매기와 아주 친근하게 지낸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그 뒤 압구정은 철종의 딸인 영혜공주와 결혼한 박영호에게 하사되었으나, 갑신정변 때, 역적으로 몰려 한 때 몰수되었다가 고종 말년에 다시 찾았으나 언제 철거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당시 압구정에 올라 시를 읊은 분들이 많이 계셨는데, 오문의 익재공 후 청호공의 첫째 아들인 문안공 문형께서도 압구정에 대한 빛나는 시(詩) 한편을 읊으셨는데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 압구정기(狎鷗亭記)
이문형(李文炯)/경주이씨 22世
“빛나는 정자 높이 한강 물가에 임하니,
성남(城南) 지척 사이에 홍진(紅塵)이 막혔구나.
목란주(木蘭舟)를 달밤에 띄우니 연기는 개울에 비끼고,
버드나무 술집에서 물고기를 잡는데 비는 나루터에 어둡네.
들 밖의 산 빛은 창[戟]을 벌여 놓은 듯,
난간 앞 물결 그림자는 사람을 흔드네.
나라를 편안하게 하는 대업을 역사에 전해 두고,
창주(滄洲)에 돌아와 흰 갈매기와 친하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