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의 사자성어(86)>
위도일손(爲道日損)
할 위(爲), 길 도(道), ‘위도’라 함은 ‘도를 닦는 것’을 말하며, 날 일(日), 덜어버릴 손(損), ‘일손’이라함은 ‘날마다 덜어낸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위도일손’ 이라함은 “도를 닦는 것은 날마다 비우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노자는 도덕경 제 48장에서 「배움과 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즉, 배움은 날마다 채우는 것이고 (爲學日益:위학일익), 도를 닦는 것은 날마다 비우는 것이다 (爲道日損:위도일손).
배움의 목표는 날마다 새로운 것을 채우는 것이다. 날마다 새로운 지식으로 새롭게 되는 것, 이것을 대학(大學)이라는 책에서는 일신일신 우일신(日新日新 又日新)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도의 목표는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버리는 것이다.
채우는 것 보다 버리는 것이 더 어렵다. 누구나 노력하면 어느 정도의 지식을 쌓을 수 있다. 누구나 땀 흘려 일하면 어느 정도의 재산을 모을 수는 있다. 그러나 자기가 가지고 있는 부와 지식과 지위, 편견과 아집을 버리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날마다 버리는 것이 진정 도를 행하는 것이 된다.
노자가 살던 춘추전국시대의 사람들이 추구했던 것은 창고를 채우고 땅을 넓히고 지위를 높히고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채움의 경쟁시대였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처럼 부국강병을 추구하던 당시에 노자의 버림의 미학은 기존의 채움의 질서에 대한 새로운 가치의 혁신이었다.
노자는 비움의 결과를 이렇게 말했다
“버리고 또 버리다 보면 끝내는 무위의 지경에 이르개 될 것이다” 무위(無爲)의 푸른바다! 이것이야말로 노자가 항해하며 꿈꾸던 위대한 푸른 바다. 블루 오션이었다.
당시 모든 제후들이 강제적으로 명령하고 통제해서 조직을 이끄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리더십이라고 생각할 때 노자는 지도자의 무위의 리더십을 주장했던 것이다.
내가 가진 고집과 편견을 버리고, 내가 이룬 부와 명예를 나누고, 내가 쌓은 성공에서 한 발짝 물러나는 것이 채우고 쌓는 일 보다 위대할 수 있다.
비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채운 사람만이 버릴 자격도 있다. 배우지 않고서는 버릴 수 있는 지식도 없다. 열심히 산 자만이 날마다 비울 수 있는 자격이 있다.
웰빙(well being)보다 중요한 것이 웰다잉(well dying)이라고 한다. 젊은 시절 땀흘려 인생을 가꾸며 큰 부(富)를 이루고 성공하였다면, 나이 들어서는 그 부를 사회를 위하여 잘 쓰고 가는 것이 위대한 인생인 것이다. 자식에게 그 재산을 불법적으로 세습시켜 사회적 비난을 받는 것은 애써 이룬 성공이 반감되는 것이다. 남을 위해, 사회를 위해 아낌없이 쓸 수 있는 그런 인생이 고귀한 인생이다. 돈을 잘 번 사람도 아름답지만, 평생 번 돈을 사회에 남기고 가는 사람들이 더욱 아릅답다. 이런 아름다운 사람 중에 유일한(柳一韓)씨가 꼽힌다. 유한양행을 일궈낸 유일한 씨는 1971년 노환으로 사망하면서 이런 유언을 남겼다.
“내 재산은 손녀의 학비 1만달러를 제외하고는 모두 한국사회 및 교육에 신탁기금으로 기증하고 , 묘소 주위의 5천평은 학생들이 놀도록 유한동산으로 가꾸며, 아들은 자립하도록하라” 생전에 유한공고와 유한대학교를 설립했고, 연세의료원에 주식 12,000주를 기부했다.이렇게 아낌없이 자신의 전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유한공고에 안장되었다. 이러한 분이 있었기에 오늘날에도 ‘버들표 유한양행’하면 믿음이 가는 제약회사의 표상이 된 것이다. 버리면 이기는 원리를 알 수 있다.
경기도 여주땅 신륵사(神勒寺)에
고려시대 고승 나옹선사의 시비(詩碑)가 세워져 있다.
“청산은 나를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사랑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라 하네.“
무위자연(無爲自然)을 노래한 노자와 나옹선사의 시가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위도일손(爲道日損), 사람다운 사람에 이르는 도의 길은 버림에 있다.(2023.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