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 전서 1장 9절
우선 율법에 관하여는 디모데 전서 1장 8절을 분명히 보셔야 합니다. 율법은 적법하게 쓰면 모
든 사람에게 유익하며, 그것은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을 포함합니다. 율법을 적법하게 쓴다는 말이 율법주의로 돌아간다는 말이 아닙니다. 율법을 적법하게 쓰는 사람들을 율법주의자로 비난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대한 그리스도인들이라 할 수 있는 요한 웨슬레, 스펄젼, 무디는 율법의 유용성과 유효성을 강조하였습니다. 개혁주의자들로서 문제가 많았던 루터, 칼빈 역시 그점에서 동일하였습니다. 그들이 도덕법을 별도 분리한 점 또한 주목할 일입니다. 또한 성공회, 웨스트민스터, 침례교 신앙고백들이 성도들에게 여전한 도덕법의 유효성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제 디모데 전서 1장 9절을 살펴봅니다. 한글의 대부분의 번역은 율법 혐오증을 유발시키도록 번역되었거나, 반율법주의 성향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글로 번역된 킹제임스 성경은 그런 반율법주의 보다도, 콩글리쉬 문제가 있습니다. 9절에서 쓰인 made 는 만들다는 뜻으로 킹제임스 원문이 번역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Make 는 만들다도 되지만, 되다는 뜻도 있고 삼다는 뜻도 있습니다. 거기다가 킹제임스 성경에서 취한 make 라는 뜻은 400년 동안 상당한 어의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그것은 원래 수동태로 쓰일 때 처해있다, 놓여있다는 뜻으로 쓰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주로 만들다로 쓰입니다. 이제 원어와 다른 영문 번역들을 비교해보면 그것이 무슨 뜻인지가 드러납니다. 다음은 영문 번역들중 가장 신뢰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어지는 번역들입니다. HCSB는 소수사본을 바탕으로 다수사본을 반영하여 번역하기는 하였지만 어휘 변환이 정확한 번역이라 생각되므로 가져옵니다.
KJV
9Knowing this, that the law is not made for a righteous man, but for the lawless and disobedient, for the ungodly and for sinners, for unholy and profane, for murderers of fathers and murderers of mothers, for manslayers,
YLT
9having known this, that for a righteous man law is not set, but for lawless and insubordinate persons, ungodly and sinners, impious and profane, parricides and matricides, men-slayers,
HCSB
9 We know that the law is not meant for a righteous person, but for the lawless and rebellious, for the ungodly and sinful, for the unholy and irreverent, for those who kill their fathers and mothers, for murderers,
Darby
9knowing this, that law has not its application to a righteous person, but to [the] lawless and insubordinate, to [the] impious and sinful, to [the] unholy and profane, to smiters of fathers and smiters of mothers; to murderers,
텍스투스 리셉투스 디모데 전서 1장 8-9절
8 Οιδαμεν δε οτι καλος ο νομος, εαν τις αυτω νομιμως χρηται, 9 ειδως τουτο, οτι δικαιω νομος ου κειται, ανομοις δε και ανυποτακτοις, ασεβεσι και αμαρρτωλοις, ανοσιοις και βεβηλοις, πατραλωαις και μητραλωασις, ανδροφονοις,
문제가 되는 단어는 케이타이로, 원형은 케이마이입니다. 그것의 뜻과 사용된 예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κειται (=Κειμαι) : to lie, to be laid, to recline, to be lying, to have been laid down (Mt 28:6, LK 2:12) to have been set : Mt 3:10, LK 3:9, Jn 2:6 to be situated as a city, Mt 5:14 Rev 21:16, to be in store LK 12:19 to lie under influence 1 Jn 5:19, destined 1 Thess 3:3, Phil 1:17, LK 2:34 to be situated as a law 1 Tim 1:9
according to Mounce Lexicon
다시 말하면 케이타이는 놓여있다, 누워있다, 놓여져 있다, 도시로서 놓여있다, 정립해있다, 처해있다, 저장되어있다, 영향가운데 있다, 운명에 처해있다, 되어 있다의 뜻입니다
마 28장 6절에 이 동사가 쓰였습니다. 천사가 예수님의 시신이 누워 계시지 않고 부활하셨다고 말할 때 쓰였습니다. 주께서 만들어져 있던 곳을 보라, 그가 부활하셨느니라, 라고 번역해야 하겠습니까?
마 3:10 ;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만들어졌으니, 로 번역해야 하겠습니까?
자유인님 덕택에 콩글리쉬 번역의 문제점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하토브
첫댓글 하토브님의 믿음의 근원이 어디에서 시작된 것인지를 잘 알았습니다.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민족에게 십계명과 율법이 주어진 것은 기원전1446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범죄한 아담부부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만들어 입혀주신 가죽옷의 기록된 말씀은 그의 둘째 아들 아벨에 의하여 양이었음이 증거 되었고 양의 대속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는 다는 것이 진리입니다.
모세를 통해서 율법이 주어지기 전까지의 인류는 이 전하여진 말씀을 통해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토브님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진리를 믿는 오직 믿음으로만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말씀을 부정하시고 계십니다.
어디에서 그런 요상한 괴리를 발견하셨는지요?
자유인님은 제가 쓴글에서 이미 수없이 아담하와에게 동물 가죽을 입혀줌으로써 죄와 상관없는 동물이 피흘린 것과 아벨이 양의 첫새끼로 속죄희생을 드린 것을 열납하신 사실을 지적하신 것을 저에게서 배우시지는 않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하토브님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진리를 믿는 오직 믿음으로만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말씀을 부정하시고 계십니다. >
자유인님은 디모데 전서 1장 9절 의 <율법의 용도>에 대해서 물어놓고 결론은 <구원>으로 결론을 내리며 하토브님이
율법을 지켜서 구원받는 즉 율법을 <구원>의 수단으로 삼는 사람이라고 매도를 하고있네요?
구원에 관한 내용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다 하는 내용의 글은 보신적이 없으신지요??
<우선 율법에 관하여는 디모데 전서 1장 8절을 분명히 보셔야 합니다. 율법은 적법하게 쓰면 모든 사람에게 유익하며, 그것은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을 포함합니다. 율법을 적법하게 쓴다는 말이 율법주의로 돌아간다는 말이 아닙니다>
위의 이말이 안보시는 지요??
<율법주의로 돌아간다는 말이 아닙니다>
즉 구원에 관해서는 율법을 지켜서 구원얻는 것이 아니다 하는 말로 들리지 않는지요??
율법주의
1..예수안믿어도 율법을 지켜서 구원받는 다는 주의
2..<예수만>믿어서 구원얻는 것은 부족하다 율법까지도 지켜야 완전한 구원이 된다
<<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민족에게 십계명과 율법이 주어진 것은 기원전1446년이었습니다 >>
모세가 출애급 한 시기에 관하여 자유인님은 어디서 그렇게 정확한 년도를 찾았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기원전 1585-1625년 경으로 보고 있습니다. 요세푸스가 그 정도 시기로 기술한 것으로 압니다. 상세는 여기에 출애급 루트에 관한 글에서 다루었습니다.
한가지 끊임없이 나타나는 현상은 요한 웨슬레나 스펄젼 자신이 잘못되었다고 정확히 지적하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만일 율법이 살인자와 아비 어미를 죽이는 자, 음행하는 자들을 위하여 제정되었다면, 하나님이 맨처음 이스라엘을 위하여 율법을 공포하실 때에, 다른 민족들에게는 주지 않으시면서 이스라엘에 살인자, 아비 어미를 죽이는 자 도적질 하는 자들, 음행하는 자들, 이 워낙 많아서, 이스라엘 민족이 다른 민족보다 워낙 패역하여서 율법을 주셨다는 뜻이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거룩하게 보전하시고자, 그분의 특별한 소유로 삼으시고자 율법을 제정하시고 주셨던 것입니다!
그 율법을 적법하게 쓰면 선하고 유익한 것입니다. 그러나 불법자들, 살인자들, 부모를 죽이는 자들에게는
강력한 집행력과 효력을 발휘합니다. 그들은 율법을 전혀 모르고 있었을지라도 그 율법에 따라 영원한 형벌을 받을 것입니다. 그 형벌을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믿는 것입니다. 그것을 안믿는 자들은 안믿는 죄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속죄를 안믿고 거부했기 때문에, 그들은 여전히 형벌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그들에게는 율법이 여전히 놓여있습니다. 히틀러와 스탈린의 죄마저도 예수님은 담당하시고 피흘리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속죄의 은혜를 부정하고 거부하였으며, 그런 까닭에 예수님의속죄가 그들의 것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율법의 형벌은 그들앞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딤전 1장 9절에서 율법이 불법자들 앞에 놓여 있다는 뜻입니다. 율법이 불법자들, 살인자들을 위하여 제정되었고, 이스라엘이 율법을 받을 때에 이스라엘민족이 불법자요, 살인자들이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번역 오류는 엄청난 새로운 교리들을 탄생시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하나님 앞에 갔을때에도 과연 진리라고 믿고 그분앞에 고백할 수 있는 것인가? 를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율법이 행악자들을 위해서 제정되었다고요? 이스라엘민족이 이방민족보다 더욱 행악하는 자들이어서 그들을 위해 제정되었다고요? 속지 마십시오! 율법 혐오증을 유발시키기 위한 성경 반역(反譯) 들에 속지 마십시오!
디모데전서 1장 7절 :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자기가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
디모데전서 1장 11절 :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 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름이니라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율법의 유익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이 아닌 복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합니다. !!!
디모데전서 1장 9절만 보지마시고, 전체 말씀을 보셨으면 합니다. 차라리, 디모데전서 1장 전체를 묵상하기 원합니다.
<< 하토브님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진리를 믿는 오직 믿음으로만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말씀을 부정하시고 계십니다. >>
저를 헐뜯으려는 사람들의 이런 중상발언들은 그들 스스로의 독해력 부족과 자신들을 내세우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음을 드러낼 뿐입니다. 왜냐하면 이 카페에 올려진 수많은 글들이 저의 믿음의 어떠함을 이미 충분히 증거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번역자는 성경의 원문과 사전을 사용하여 정확한 뜻을 전달하는데 주력해야 합니다. 자신의교리를 반영하려고 발버둥쳐서는 안될 것입니다. 케이마이가 놓여있다, 의 뜻을 가졌으면 그뜻대로 전해야 합니다. KJV 자체가 틀렸든지 KJV 번역자들이 틀렸든지 둘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KJV 를 헬라어 원어 사본들보다 더 신뢰한다면 어쩔수 없는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자유인님이 탈퇴를 하셨네요..자유인님은 남의 질문에 답을 하지 않는 기이한 특징이 있습니다.
이분이 여기서 줄곧 전파한 것은, 성도는 죄가 없으니 죄를 자백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이 교리는 기소선(박옥수)의 교리로 파악됩니다..이른바 이단 가르침입니다.
이분은 하토브님과 저를 구원받지 못한 자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이분께 여러 가지 질문을 했지만 속시원하게 대답을 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자유인님, 혹 이 댓글을 보시면 자신의 구원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볼 때 그런 믿음으로는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박옥수파(구원파,기쁜소식선교회)는 정말 문제가 많습니다. 그들도 회개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자유인님의 복음에 관한 글은 별다른 이견이 없어보였습니다
다만 구원받은자가 죄를 범했을때 분명히 자백이 필요하고 자백하라 하였는데도
이것을부정하는것은 무언가 오해가 있는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구원받은자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기에 죄를 지어서는 안되는데
아직은 죄를 지을수 밖에 없는 육신을 입고 있기에
죄를 지었을때 심판자가 아닌 아버지께 자백함으로 용서를 구해야 되는데
이것 자체를 부인한다는것은 조금 이해가 안되었습니다
비슷한 것 같은데 결국은 아닌 것이 있습니다..이런 부분을 잘 살필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죄에서 믿음으로 나아가기는 쉽습니다..본인에게 죄가 그대로 있음에도 죄가 제거 되었다고 착각하고 있으니 믿음으로 나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의 영으로는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을 알 수 없는 것이지요.
무엇을 떠나서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선한열매가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말씀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박옥수 구원파의 열매가 선한 열매인지는 의문이 가게 됩니다. 왜냐하면 박옥수 자기 자신이 자신을 높이고 있고 돈에 대한 욕심이 지나치다고 들었습니다...이단은 아주 약간만 달라도 이단입니다. 그런 이단이 더 무서운 이단입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말씀이 있기에 박옥수 구원파에도 구원 받은 사람이 있음은 부인할수는 없습니다. 박옥수 구원파 사람들은 육신의 성품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해서 자백에 대한 오류가 있다고 전 알고 있습니다.
기존 교파가 잘못되었다고 해서 구원파를 옹호한다는 것도 전 이해를 할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일부 옳은 부분이 있다고 해서 교리적으로 틀린 부분도 덮어두고 옹호할려 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그렇습니다. 다만 구원파에도 구원 받은 사람이 있음은 인정합니다.
누구를 옹호하거나 그러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복음의 어느 측면을 강조하느냐에 따라서
자유인님의 주장같은 의견도 나올수 있는것입니다
아직 육신을 입고 있는 우리의 상태에는
죄들이 나타나고 있고 앞으로도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육신을 입고있는 동안은 도무지 죄를 짓지않을수 없다는 것이지요
우리몸이 완전하게 구속되는 날까지 이 죄와의 싸움은 끝나지 않을것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우리의 신분은 결코 죄가 없는것입니다
우리의 신분이 주님안에 감추어져 있기에 죄를 찾을수가 없는것이지요
우리가 얻은 신분에도 죄가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주님의 속죄의 능력을 믿지 않고 있다는 뜻입니다
다 갚았다 다 이루었다 이 속죄 사역을 믿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지요
우리에게 죄가 있다고 말할때 그 죄는 내 신분에 있는것이 아니라
상태에 있는것이지요
그렇기에 이제 죄인의 신분으로서 죄를 처리하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족의 신분으로 하나님 자녀로서 그 죄를 자백하고 처리해야 하는것입니다
자유인님은 열매가 없는 분입니다..답글(Re:)로 본인이 이런 글을 올려 놓았으면 질문에 답하고 정 교제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으면 정리 멘트라도 하나 남기고 나갔으면 좋을 뻔했습니다.
하토브님과 제가 수백개의 게시글과 수천 개의 댓글을 올려 놓았지만 자유인님은 이 글들에 공감하기는 커녕, 하토브님과 저를 구원받지 못한 사람으로 취급했습니다.
지적인 동의로는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구원받지 못해도 복음에 대해 아는 사람은 많습니다.
복음을 단순히 아는 것과, 복음이 자기 것이 되어 영생을 얻는 것과는 천양지차입니다.
자유인님과 교제가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그분의 블로그에서 계속 교제하시면 되겠습니다.
영적인 교제가 안된다면...그것은 문제가 있는것은 아닐까요? 자유인님은 그길님과 또 저, 고헌님, 하토브님과 대화를 통해서 영적인 교제가 안되지 않습니까? 구원 받은 사람은 서로 교제하고 교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자유인님과 우리는 막혀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모든 사람을 주안에서 사랑해야죠..하지만 틀린것은 틀렸다고 단호하게 내려찍지 않고 자유인님의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변호하면 안됩니다.. 자유인님께서 가지고 있는 박옥수 구원파 교리를 계속 굽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카페 회원님들은 자유인님의 신앙실체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제가 운영자이기 때문에 나선 것입니다..저는 그분을 다른 카페에서 만난 적도 일면식도 없고 쪽지 한번 주고 받은 적 없습니다.
1611 KJV 를 번역한다는 세째하늘(김성엽)님은 자백과 회개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었으며 이런저런 이유로 이분은 우리와 교제가 안 된다며 나간 분입니다.
김성엽님과 가장 죽이 맞는 사람이 자유인님입니다.
자유인님은 하토브님의 번역(take away)을 '가증'한 행위라며 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 들어와서는 무엇을 가르치려고 하고 있습니다..일상에서 죄를 짓더라도 '자백(confess)'을 하지 말라는 것이지요.
성도는 죄가 없기 때문에 일상에서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입니다..죄를 짓지 않았으니 자백(고백)할 죄마저 없다는 것이지요..이것은 잘못된 믿음입니다.
이른바 <반쪽구원>의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헛다리를 붙들면 본인만 손해입니다. 따라서 인간들 각자는 과연 그러한가? 하는 진지한 의문으로 모든 사안들을 편벽됨이 없이 분별하고 판단하여야 합니다.
딤전 1장 9절의 의미는 결국,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와 같다고 생각됩니다 (마 3:10) 율법은 적법하게 쓰면 선하고 거룩하다는 것을 말씀한 다음, 9절에서 그 선한 율법이 행악자들을 향하여 놓여 있다는 뜻입니다. 그 율법이 심판과 정죄의 기능을 발휘하여 행악자들을 심판 형벌하기 위해 준비되어 있다는 뜻으로 행악자들을 위하여 놓여 있다고 말한 것으로 이해됩니다.
원래 율법이 제정, 공포된 것은 이스라엘을 위하여 공포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특별히 행악자들로 구성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선을 행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었으나 이스라엘의 패역을 바로잡기에는 그들의 완악함으로 말미암아
<<율법이 심판과 정죄의 기능을 발휘하여 행악자들을 심판 형벌하기 위해 준비되어 있다는 뜻으로 행악자들을 위하여 놓여 있다고 말한 것으로 이해됩니다>> 아멘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는 그 분 앞에 의롭게 될 육체가 없나니,
이는 율법을 통해서는 죄의 깨달음이 있음이니라.
그러나 이제는 율법없이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서들을 통해 증거된 것이니라.
곧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한 것으로
모든 자와 믿는 모든 자에게 미치나니, 차별이 없느니라.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부족함이 되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예수께서 그 율법의 요구인 죄인에 대한 형벌, 곧 사망을 담당하시려고 십자가 지시고 율법의 형벌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것을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을 얻습니다.
따라서 율법이 행악자들을 위하여 제정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마치 선한 사람들은 율법과 상관이 없고 율법은 오직 악인들을 위해 필요하다, 하여 율법 자체를 외면하게 하며 율법의 정죄기능을 피하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의로 교육함과 책망과 바르게 함 ( 딤후 3:15-17) 이 날마다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거듭난 이후에도
필요합니다. 거듭난 이후에 죄를 안짓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요일 1:8-10)
구원받은후에도 율법이 죄를 자각하게 해줄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받기 전처럼
결코 그 죄를 통하여 죄 지은자를 정죄하고
그를 주장하여 사망이 왕노릇 할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롬8:34
율법은 의롭고 선한것입니다 선하게 사용하면
그리스도인에게도 유익한 것이 율법입니다
죄를 예방하게 하고 죄를 깨닫게 하고 죄를 범했을때
율법이 요구하는 죽음을 생각하며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에 감사하게 되기에
선하게 사용하면 좋은것이지만
주님이 그 삶에 주인이 되어 따르지 않고
율법을 그리스도인의 삶의 규례로 삼는다면
그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정죄하기에 바쁘고
또 율법의 잣대로 지체를 판단하기에 급급하여 새생명안에서는
실패하는 삶을 살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하토브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삶에서 구약의 율법을 지킴으로서 삶에서 무법주의로 나가지 않을수 있다고 하는데 신약의 말씀(즉 구약의 율법이 아닌 말씀)을 보더라도 그 말씀을 통해서 무법주의로 나가지 않을수 있습니다. 구약의 율법이라는 것은 성령의 법의 선한 면이 외형적 즉 표면적으로 나타내어진 것입니다. 성령의 법 즉 그리스도의 법을 지키면 율법은 자연스럽게 다 성취되게 되어있습니다. 주님이 주인되시고 주님이 주신 말씀을 통해서 순종하면 자연스럽게 율법에 있는 모든것들은 성취되게 되어 있습니다. 중요한것은 주님이 주신 성령의 법을 그리스도인이 순종하느냐 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율법에서 해방된것이구요.
물론 율법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의 짓는 육신적인 죄를 알게하는 기능이 있으므로 나쁘지는 않지만 중요한것은 주 예수님께서 율법을 완성했기에 그 보다 중요한 성령의 법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의 법을 통해서도 죄를 알게 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신약의 말씀을 봐도 그 말씀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이 죄를 지었구나 알수가 있습니다. 중요한것은 삶에서 주님이 주인되시느냐가 중요한것입니다. 그것이 된다면 주님이 싫어하는것 점차적으로 하지 않게 되어지고 성령충만해져 갑니다. 그 과정에서 주님을 더욱더 알게되어지는 것이구요.
지금까지 많은 토론에서 다룬 것은 성령의 법이 율법과 본질상 다르지 않다는 점입니다. 예를들면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은 성령의법에서도 살인하지 말라입니다. 간음하지말라도 성령의 법에서는 간음하지 말라, 두개의 저울추를 갖지 말라도 성령의법에서 마찬가지 이고 뇌물받지 말라, 동물과 수간을 하지 말라도 마찬가지 이며, 허망한 풍설을 퍼뜨리지 말라도 성령의 법에서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랜 신앙생활의 관찰에서 확인된 바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율법을 미리 알고 공부하여 인도하심을 예측하는 것은 많은 시행착오를 단축하여 줄 것입니다.
딤전 1장 9절에 행악자들을 위하여 율법이 놓여져 있다고 해서 행악자들이 율법을 봅니까? 그들은 안봅니다. 실제로 유익을 얻는 사람들은 구원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시편 1장의 말씀은 지금도 여전히 훌륭한 영의 양식입니다. 예수님도 시편을 자주 인용하셨고요. 여러분들이 율법을 혐오하기로 결심한다면 여러분의 길이 될 것입니다. 저에게나 다른 분들에게 강요하실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람들 중에 자신이 허물고 남들에게 가르치는 신자들이 있을 것을 예상하시고, 그런 신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로 불리울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자기가 하는 행동이 얼마나 뻔뻔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고집을 부리고 있는지는 하나님 앞에 서는 날 드러날 것입니다. 저는 이 일에 평안과 확신이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웨슬레나 스펄젼이나 캠벨모간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토브님~ 기회가 되시면, '웨슬레신학의 요점'이라는 책과 함께 켐벨 몰간의 [주님이 가르치신 기독교의 기본진리]라는 책을 읽어보세요~ ^^
저는 웨슬레의 진술 그 자체를 읽기를 중요시 합니다. 누가 그의 주장이라고 한글로 편집하면서 누룩을 가미한 것을 읽고 웨슬레의 말이라고 착각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웨슬레의 글들이 여기에 올려져 있습니다. 그의 글에는 꽥 소리 못하는 사람들이 비틀어서 책을 써놓은 것에 속아서는 안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