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 한국역사학, 특히 고대사학을 대표하는 고인은 1924년 10월 21일 평북 정주에서 후일 풀무농원을 설립한 농민운동가 이찬갑(1904-74)의 아들로 태어났다. 국어학계 원로인 이기문(74) 서울대 명예교수가 고인의 동생이다.
고인은 1941년 오산중학교를 졸업했다. 오산중학교는 3.1 만세운동 33인 대표 의 한 사람인 남강 이승훈(1864-1930)이 설립한 학교로, 고인은 남강과 같은 집안이기도 하다.
식민지시대 말기 일본 와세다(早稻田)대 사학과에 재학중 일본군에 징집돼 만주 관동군에서 복무했다. 해방을 맞았으나 소련군에 포로가 됐다가 나중에 귀국했다.
1946년 서울대 문리대 사학과에 입학해 1년만에 졸업했으며 58-63년 이화여대 교수를 거쳐 63-85년 서강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동양사의 전해종, 서양사의 길현모.차하순 등과 함께 '서강사학'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회갑을 넘긴 85년에 한림대 교수로 옮겨 95년 퇴직, 한림과학원 객원교수와 이화여대 사학과 석좌교수를 역임하기도 했다. 학사 출신인 고인은 1985년 서강대에서 명예 문학박사를 받았다.
한국실증사학을 대표하는 고인은 1962년 「국사신론」에 이어 이의 전면개정판인 「한국사신론」을 1967년 일조각에서 출판하면서 한국사학계에서 확고한 위치를 확보했다. 이 책은 영어와 러시아어를 비롯한 여러 외국어판으로 번역돼 한국사를 국제사회에 소개하는 대표적인 책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밖에도 「민족과 역사」「신라정치사회사 연구」「고려병제사」「한국사학의 방향」「신라사상사 연구」「한국사상의 재구성」「고려귀족사회의 형성」「한국고대정치사회사 연구」「한국고대사론」「한국사를 보는 눈」「한국전통문화론」과 같은 역사전문 논문집 외에 「연사수록」(硏史隨錄)이라는 수상집이 있다.
이런 공로로 고인은 학술원 저작상, 인촌상, 국민훈장 모란장, 위암 장지연상, 용재학술상 등을 수상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최연순씨와 장남 인성(서울대 불문과 교수), 인철(역사학자)씨 두 아들을 두었다.
첫댓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학계의 어른이 한 분 두 분 세상을 떠나시는군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