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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동파 (1036-1101)
소동파(蘇東坡-蘇軾<소식>)
<백과사전 / BIE| 廉丁三 참조집필>
소동파 작품
적벽부(赤璧賦)
소동파의 전적벽부 / 대만 고궁박물관 소장
前赤壁賦(전적벽부)
壬戌之秋七月旣望(임술지추칠월기망) : 임술년 가을 칠월 열엿새
蘇子與客(소자여객) : 나는 객과 함께
泛舟遊於赤壁之下(범주유어적벽지하) : 적벽 아래에서 배를 띄우고 노나니
淸風徐來(청풍서래) : 맑은 바람이 서서히 불어오고
水波不興(수파불흥) : 물결은 잠잠하네
擧酒屬客(거주속객) : 술잔을 객에게 권하며
誦明月之詩(송명월지시) : 명월의 시를 읊고
歌窈窕之章(가요조지장) : 요조시도 노래하네
少焉(소언) : 조금 있으니
月出於東山之上(월출어동산지상) : 달이 동산위로 떠올라
徘徊於斗牛之間(배회어두우지간) : 북두성과 견우성 사이를 오락가락하는구나
白露橫江(백로횡강) : 흰 이슬이 강물 위에 비껴 내리고
水光接天(수광접천) : 물빛은 하늘에 닿아 있구나
縱一葦之所如(종일위지소여) : 한 조각 작은 배 가는대로
凌萬頃之茫然(릉만경지망연) : 만경창파 건너가니
浩浩乎如憑虛御風(호호호여빙허어풍) : 넓고도 넓어서 마치 허공을 타고 바람을 몰듯이
而不知其所止(이불지기소지) : 이 거침없임이여
飄飄乎如遺世獨立(표표호여유세독립) : 펄럭펄럭 나부끼어서 홀로 속세를 떠나
羽化而登仙(우화이등선) : 신선이 되어 하늘을 오르는 듯 하구나
於是(어시) : 이에
飮酒樂甚(음주락심) : 술 마시고 매우 즐거워서
扣舷而歌之(구현이가지) :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니
歌曰桂棹兮蘭槳(가왈게도혜난장) : “계수나무로 만든 노와 목란으로 만든 삿대로
擊空明兮泝流光(격공명혜소류광) : 물에 비친 달그림자 치며 달빛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노라
渺渺兮余懷(묘묘혜여회) : 넓고도 아득한 내 마음이여
望美人兮天一方(망미인혜천일방) : 바라보니 고운 우리 님은 저 하늘가에 있구나
客有吹洞簫者(객유취동소자) : 객(客) 중에 퉁소 부는 자가 있어
倚歌而和之(의가이화지) : 노래에 맞춰서 반주하니
其聲鳴鳴然(기성명명연) : 목이 메이는 듯 하며
如怨如慕(여원여모) : 원망하는 듯, 사모하는 듯 하고
如泣如訴(여읍여소) : 흐느끼는 듯, 호소하는 듯 하며
餘音嫋嫋(여음뇨뇨) : 여음이 가냘프고 길게 이어져
不絶如縷(불절여루) : 실처럼 끊어지지 않네
舞幽壑之潛蛟(무유학지잠교) : 깊은 골짜기 물에 잠긴 용을 깨워 춤추게 하고
泣孤舟之嫠婦(읍고주지리부) : 외로운 배의 과부를 울릴 듯하네
蘇子愁然正襟(소자수연정금) : 나는 서글퍼 옷깃을 여미고
危坐而問客曰何爲其然也(포좌이문객왈하위기연야) : 똑바로 앉아서 객에게 묻기를, “그 소리 어찌 이리 슬프오”하니
客曰月明星稀(객왈월명성희) : 객이 말하기를, “달이 밝으니 별이 드물고
烏鵲南飛(오작남비) : 까막까치 남쪽으로 날아간다”고 하네
此非曹孟德之詩乎(차비조맹덕지시호) : 이는 조맹덕(조조)의 시가 아닌가
西望夏口(서망하구) : 서쪽으로 하구를 바라보고
東望武昌(동망무창) : 동쪽으로 무창을 바라보니
山川相繆(산천상무) : 산천은 서로 엉켜
鬱乎蒼蒼(울호창창) : 푸르고 울창하구나
此非孟德之困於周郞者乎 : 이곳이 바로 조조가 주유에게 곤욕을 당한 곳이 아닌가
方其破荊州下江陵 : 그가 막 형주를 깨뜨리고 강릉으로 내려가서 함락시키고
順流而東也(순류이동야) : 물결 따라 동쪽으로 나아갈 때에
舳艫千里(축로천리) : 배의 앞과 끝이 천리로 이어지고
旌旗蔽空(정기폐공) : 깃발은 하늘을 가리었는지라
釃酒臨江(시주임강) : 강 위에서 술 마시고
橫槊賦詩(횡삭부시) : 창을 비껴 세워 놓고 시를 지으니
固一世之雄也(고일세지웅야) : 참으로 일세의 영웅이더니
而今安在哉(이금안재재) : 지금은 어디에 있는가
況吾與子(황오여자) : 하물며 내가 그대와 더불어
漁樵於江渚之上(어초어강저지상) : 강가에서 고기 잡고 땔나무하며
侶魚鰕而友糜鹿((려어하이우미륵) : 물고기와 새우와 짝하고 고라니와 사슴들과 벗하며
駕一葉之扁舟(가일엽지편주) : 한 잎같은 작은 배를 타고서
擧匏樽以相屬(거포준이상속) : 표주박 술잔 들어 서로 권하며
奇蜉蝣於天地(기부유어천지) : 천지에 하루살이처럼 붙어사는 인생
渺滄海之一粟(묘창해지일속) : 넓고 넓은 바다에 한 알의 낟알 같구나
哀吾生之須臾(애오생지수유) : 우리 인생이 잠깐임을 슬퍼하고
羨長江之無窮(선장강지무궁) : 장강이 무궁한 것을 부러워 하노라
挾飛仙以遨遊(협비선이오유) : 하늘을 날으는 신선을 끼고서 마음껏 놀고
抱明月而長終(포명월이장종) : 밝은 달을 껴안고 오래도록 살다 마치리라 하나
知不可乎驟得(지불가호취득) : 언뜻 얻을 수 없음을 알았기에
託遺響於悲風(탁유향어비풍) : 여음을 쓸쓸한 바람에 맡기는 것이라오
蘇子曰客亦知夫水與月乎(소자왈객역지부수여월호) : 내가 이르기를, “그대는 또한 강물과 달을 아는가"
逝者如斯(서자여사) : 강물이 이같이 흘러가버린다 하여
而未嘗往也(이미상왕야) : 강이 영원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盈虛者如彼(영허자여피) : 달이 차고 이지러지는 것도 이와 같으니
而卒莫消長也(이졸막소장야) : 아주 사라지거나 아주 커지기만 하는 것은 아니라오
蓋將自其變者而觀之(개장자기변자이관지) : 만약에 만물이 변한다는 관념으로 본다면
則天地曾不能以一瞬(칙천지증불능이일순) : 천지간 일순간도 변하지 않을 것이 없고
自其不變者而觀之(자기불변자이관지) : 만물이 변하지 않는다는 관념으로 본다면
則物與我皆無盡也(칙물여아개무진야) : 만물과 내가 무궁하니
而又何羨乎(이우하선호) : 또 무엇을 부러워하겠는가
且夫天地之間(차부천지지간) : 또 게다가 천지간에
物各有主(물각유주) : 만물은 제각기 임자가 있는지라
苟非吾之所有(구비오지소유) : 진실로 나의 것이 아니면
雖一毫而莫取(수일호이막취) : 비록 하나의 털끝만한 것이라도 가질 수가 없으나
惟江上之淸風(유강상지청풍) : 오직 강가의 맑은 바람과
與山間之明月(여산간지명월) : 산 사이로 밝은 달은
耳得之而爲聲(이득지이위성) : 귀로 들으면 음악이 되고
目寓之而成色(목우지이성색) : 눈으로 보면 그림인데
取之無禁(취지무금) : 취하여도 금하는 이 없고
用之不竭(용지불갈) : 사용해도 다함이 없으니
是造物者之無盡藏也(시조물자지무진장야) : 이는 조물조의 무한한 보배라
而吾與子之所共樂(이오여자지소공락) : 나와 그대가 함께 누릴 것이니라"하니
客喜而笑(객희이소) : 객이 기뻐하며 웃고
洗盞更酌(세잔갱작) : 술잔을 씻어 다시 술을 따르니
肴核旣盡(효핵기진) : 고기와 안주는 이미 다하고
盃盤狼藉(배반랑자) : 술잔과 소반은 어지럽네
相與枕藉乎舟中(상여침자호주중) : 배 안에서 서로 함께 포개어 잠이 드니
不知東方之旣白(불지동방지기백) : 동녘 하늘이 밝아오는 줄도 몰랐네
후적벽부(後赤壁賦)
是歲十月之望(시세십월지망)에 : 그 해 시월 보름날
步自雪堂(보자설당)하여 : 설당에서 걸어나와
將歸於臨皐(장귀어임고)할새 : 임고정(臨皐亭)으로 돌아가려는데
二客從予(이객종여)라 : 두 손님이 나를 따라 왔네
過黃泥之坂(과황니지판)하니 : 황니 고개를 지나는데
霜露旣降(상로기강)하고 : 이미 서리와 이슬이 내려
木葉盡脫(목엽진탈)이라 : 나뭇잎은 시들어 떨어지고
人影在地(인영재지)어늘 : 사람의 그림자가 땅에 비치고 있기에
仰見明月(앙견명월)이라 : 고개를 들어 보니 밝은 달이라
顧而樂之(고이락지)하여 : 주위를 돌아보며 즐거워하며
行歌相答(행가상답)이라 : 노래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걸었네
已而歎曰有客無酒(이이탄왈유객무주)요 : 조금 지나 내가 탄식하기를, “객은 있는데 술이 없고
有酒無肴(유주무효)니 : 술이 있는데 안주가 없으니
月白風淸(월백풍청)을 : 달 밝고 바람 맑아도
如此良夜何(여차량야하)오 : 이같은 좋은 밤을 어찌 보내야 하나”하니
客曰今者薄暮(객왈금자박모)에 : 객이 말하기를, “오늘 해 질 부렵에
擧網得魚(거망득어)하니 : 그물로 고기를 잡았는데
巨口細鱗(거구세린)이 : 입이 크고 비늘이 가는 것이
狀似松江之鱸(상사송강지로)라 : 꼭 송강의 농어같이 생겼소
顧安所得酒乎(고안소득주호)오 : 그만하면 안주는 되었는데 술은 어디서 얻을수 있으리요”하니
歸而謀諸婦(귀이모제부)하니 : 집에 돌아가 아내와 상의했더니
婦曰我有斗酒(부왈아유두주)하여 : 아내가 말하기를, “제게 술 한 말이 있는데
藏之久矣(장지구의)요 : 저장해 둔 지 오래 된 것이오
以待子不時之須(이대자불시지수)로다 : 당신이 불시에 술을 찾을 것을 대비하여 둔 것이오”하였네
於是(어시)에 : 이에
攜酒與魚(휴주여어)하고 : 술과 고기를 가지고
復游於赤壁之下(복유어적벽지하)하니 : 다시 적벽 아래에 가서 놀았으니
江流有聲(강유유성)이오 : 강물은 소리내어 흐르고
斷岸千尺(단안천척)이라 : 깍아지른 언덕은 천척이나 되는구나
山高月小(산고월소)하고 : 산이 높아 달은 작은데
水落石出(수락석출)리로다 : 강물이 줄어서 돌들이 드러나 있었네
曾日月之幾何(증일월지기하)오 : 저번에 여기서 뱃놀이 한지 얼마나 지났기에
而江山不可復識矣(이강산불가복식의)라 : 같은 강산인데 다시 알아 볼 수 없단 말인가
予乃攝衣而上(여내섭의이상)하여 : 나는 옷을 걷고 산을 올라가서
履巉巖披蒙茸(리참암피몽용)하고 : 깍아지를 듯 높이 솟은 바위를 밟으며 무성히 자란 풀숲을 헤치고
踞虎豹登虯龍(거호표등규룡)하여 : 호표 모양의 바위에 걸터 앉기도 하고 규룡같이 구부러진 나무에도 올라
攀栖鶻之危巢(반서골지위소)하고 : 매가 깃든 둥지까지 기어 올라가서
俯馮夷之幽宮(부풍이지유궁)하니 : 빙이의 수궁이 있는 깊은 물속도 내려다 보았네
蓋二客不能從焉(개이객불능종언)이라 : 그러나 두 객은 나를 따르지 못하였네
劃然長嘯(획연장소)하니 : 문득 길게 휘파람소리 나더니
草木震動(초목진동)하고 : 초목이 진동하고
山鳴谷應(산명곡응)이오 : 산이 울고 골짜기가 메아리치며
風起水涌(풍기수용)이라 : 바람이 일고 강물은 출렁거렸네
予亦悄然而悲(여역초연이비)하고 : 나도 또한 쓸쓸하여 슬퍼지고
肅然而恐(숙연이공)하여 : 숙연하여 두려워지며
凜乎其不可留也(름호기불가유야)라 : 몸이 오싹하여 더 머무를 수 없었네
反而登舟(반이등주)하고 : 돌아와 배에 올라
放乎中流(방호중류)하여 : 강 가운데로 나아가 물결에 맡기고
聽其所止而休焉(청기소지이휴언)이라 : 배가 흐르다 멈추는 곳에 나도 쉬었네
時夜將半(시야장반)이라 : 때는 거의 한밤이 되었는지라
四顧寂寥(사고적요)러니 : 사방을 보니 적막한데
適有孤鶴(적유고학)이 : 마침 외로운 학 한 마리가
橫江東來(횡강동래)하여 : 강을 가로질러 동쪽에서 날아오는구나
翅如車輪(시여거륜)하고 : 날개는 수레바퀴처럼 크고
玄裳縞衣(현상호의)로 : 검은 치마 흰저고리 두른 듯한 모습으로
戛然長鳴(알연장명)하여 : 끼룩끼룩 길게 소리내어 울며
掠予舟而西也(약여주이서야)러라 : 우리 배를 스쳐서 서쪽으로 날아갔다네
須臾客去(수유객거)하고 : 잠시 후에 객은 돌아가고
予亦就睡(여역취수)러니 : 나도 또한 집에 돌아와 잠이 들었네
夢一道士(몽일도사)가 : 꿈에 한 도사가
羽衣翩僊(우의편선)하여 : 새의 깃털 옷을 펄럭이며
過臨皐之下(과임고지하)라가 : 날아서 임고정 아래를 지나와
揖予而言曰赤壁之遊樂乎(읍여이언왈적벽지유락호)아 : 내게 손을 모은 채 묻기를, “적벽의 노래가 즐거웠소?”하였네
問其姓名(문기성명)하니 : 내가 그의 성명을 물으니
俛而不答(면이불답)이라 : 고개를 숙이고는 대답하지 않았네
嗚呼噫嘻(오호희희)라 : 아,
我知之矣(아지지의)라 : 나는 알겠도다
疇昔之夜(주석지야)에 : 지난 밤에
飛鳴而過我者(비명이과아자)가 : 울면서 나를 스쳐 날아간 학이
非子也耶(비자야야)아 : 바로 그대가 아니오
道士顧笑(도사고소)하고 : 도사는 돌아보며 웃었네
予亦驚悟(여역경오)하여 : 나도 또한 놀라 잠에서 깨어나
開戶視之(개호시지)하니 : 창을 열고 내다 보았으나
不見其處(불견기처)라 : 어디로 갔는지 그가 간 곳을 알 수가 없었네
이해와 감상
동파 적벽(赤壁)
호북성 황강현(黃岡縣)에 있는 양자강 강언덕 붉은 암벽. 북송 때 필화(筆禍) 사건으로 죄를 얻은 소동파가 1082년(원풍 5)의 가을(7월)과 겨울(10월)에 이곳에서 친우인 양세창(楊世昌)과 함께 선유회(仙遊會)를 한 후 지은 천하명문《적벽부》의 현장이다. 7월에 지은 것을《전(前)적벽부》, 10월에 지은 것을《후적벽부》라 한다. 동파 47세 때이다. ‘부’란 운문(韻文)의 하나인 문체의 명칭인데, 사물의 서술을 중심으로 한 한대(漢代)의 장려한 작품에서부터 육조(六朝) · 당(唐)시대의 형식적인 소형 작품으로 쇠퇴한 ‘부’의 장르를 생동하는 묘사로, 서정과 사상을 겸비한 문장으로 부활, 완성시킨 작품이 이《적벽부》이다. 삼국시대의 옛 싸움터 적벽의 아름다운 경치와 역사의 대비, 자연과 일체화하려는 소동파의 제물(齊物)의 철학이 결부되어, 유려(流麗)한 표현과 함께 문학으로서 높은 경지를 이루었다.
현재 20여채의 건물과 동파 유물 100여 점이 정리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소동파 '적벽부'에 대하여
- 유중하(연세대 중문과 교수)
소식(蘇軾·1037~1101)은 북송의 문인으로 지금은 쓰촨성(四川省)에 속하는 미주(眉州) 미산(眉山)출생이다.호는 동파거사(東坡居士).황주(黃州)에 유배되었을 때 그 인근의 동파라는 곳에 설당(雪堂)을 짓고는 동파거사로 호를 지었다.아버지 소순(蘇洵),아우 소철(蘇轍)과 더불어 「삼소(三蘇)'라 일컬어지며,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에 이들 삼부자가 함께 이름을 올릴 정도로 문장에 뛰어난 집안 출신이다.아울러 서예와 회화에도 탁월한 성취를 이뤄 가위 전통 문인의 완전한 상을 구현한 인물로 일컬어진다.1069년 처음으로 벼슬에 들었으나 당시 신종(神宗)은 왕안석(王安石)이 주동이 된 변법(變法)을 채택했는데,소식은 거기에 반대하여 구법(舊法)을 주장했다.중국 각지를 떠돌면서 유배생활을 하거나 지방관리를 지내면서 도처에 그의 족적을 남긴 바 있는데,특히 항주(杭州)에서 재직하던 시절 그곳 절경의 하나인 서호(西湖)에 쌓은 제방을 소동파의 이름을 따 소파(蘇坡)라 이름지은 것은 유명한 일화에 속한다.
동아시아의 문인들이 가장 즐겨 다룬 소재는 무엇이었던가.통계를 잡기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아마 술과 달일 것이다.서양문학의 두 뿌리를 아폴론과 디오니소스라 잡았을 때 아폴론이 바로 태양을 의미하는 것과 날카로운 대비를 이룬다고 보면 그리 틀린 진단은 아니겠다.해와 달의 대조는 서양과 동양을 가르는 문명적 상징에 다름아닌 것이다.지금부터 약9백여년 전인 1082년의 어느 하루,동아시아라는 달나라의 한 문인이 읊은 달밤의 정취가 세월의 단절을 넘어 아직도 우리에게 울림을 준다는 사실은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는데,물론 그것은 소동파의 `적벽부(赤壁賦)'라는 천하의 명문을 통해서다.
오뉴월 더위가 물러나고 추(秋) 칠월도 보름을 넘긴 이튿날,기망(旣望)이다.황주에서 귀양살이를 하던 동파는 그 달을 즐기는 일을 잊을 리 없었다.마침 부근 강가에 적토(赤土)와 암벽이 수려한 곳이 있어 뱃놀이를 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술을 마련하고 손을 불러 강에 배를 띄웠다.청풍이 소슬하게 불고 달은 휘영청 밝았겠다.술잔을 들어 권커니 잣거니 몇 순배가 돌자 주흥이 도도해지면서 절로 노랫가락이 좌중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어찌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마침 좌중에 피리를 잘 부는 손이 있어 피리소리가 흥을 돋우면서 은은히 울려퍼지는데 소동파가 듣자하니 곡조가 흥에 겨운 것만은 아니었다.원한을 품은 듯 그리움을 펴듯,우는 듯 호소하는 듯 하면서 외로운 뱃전에 울려퍼지는 것이었다.술자리를 마련한 동파는 옷깃을 여미고는 피리 부는 손에게 그 까닭을 물을 수밖에.그러자 피리를 불던 손이 답하기를 『`달빛이 밝고 별은 성긴데 까막까치가 남쪽으로 난다'(月明星稀 嗚鵲南飛)는 구절은 조조(曹操)의 시구가 아니옵니까” 손은 바야흐로 예전의 `적벽대전'을 회고하고 있는 것이다.옛적 오나라 손권(孫權)의 장수인 주유(周瑜)가 위나라의 조조를 쳐부수던 적벽의 옛일을 회고한 것도 지당한 일이라.강가 저 건너편으로 그 적벽과 흡사한 광경이 펼쳐져 있거늘.싸움에 임하여 강에 당도한 바,절경을 앞에 놓고 창을 내려놓은 다음 시를 지어 경관을 읊은 것이 어찌 영웅다운 행동이 아닐손가.하지만 지금 그들 두 영웅은 간 곳이 없고,강건너 적벽만이 남아 그들을 떠올리게 할 따름이니 어찌 인생무상이 아닌가 하고 묻는 것이었다.피리 불던 손은 인생이란 본시 창해일속(滄海一粟)이라,장강의 무궁함이 부럽기만 했던 것이다.하지만 소동파가 누군가.송대 문인의 정점에 소동파가 자리하고 있다 함은 그가 단순히 글재주를 농간하던 인물이 아니라 그의 세계를 보는 눈높이야말로 가위 천고의 일품이기 때문이 아닌가.
동파는 넌지시 `논어(論語)' 자한편(子罕篇)의 한 구절을 끌어들여 공자의 가르침을 떠올린다.『흐르는 물이 저와 같아서 주야를 가리지 않는도다』(逝者如斯夫 不含晝夜).그리고는 흐르는 장강 물을 바라보며 손에게 이렇게 한 수 가르친다.물은 줄었다 늘었다 하는 모양새가 변화하기를 무상키도 하건만 불변하는 만물의 본체(本體) 입장에서 보자면 물(物)과 아(我),곧 객관 사물과 주체가 무한한 생명에 뿌리박고 있지 않은가.그리 본다면 장강의 무궁함이 무엇이 부러울 게 있는가.하늘과 땅 사이에 터잡고 있는 일체가 제각기 주인이 있어 실로 나 개인의 소유일 수 없나니.터럭 한 자락도 취할 것이 없지 않은가 말이다.강 위를 부는 맑은 바람과 산중의 밝은 달이 있어 귀로 들으면 소리가 되고,눈으로 마주치면 빛을 발하는 법이라.아무리 취해도 막을 자 없으며,아무리 쓴다 해도 다함이 없거늘.이를 두고 조물주의 무진장한 창고라 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물과 아의 경계가 사라지면서 청풍과 명월이 바로 내것이 아니면서도 온전히 내것일 수 있는 까닭은 내가 바로 청풍이고 명월인 탓이 아닌가.사심을 떠난 경지에 이르면서 지공무사(至公無私)의 경지에 이르면 자연과 하나가 되면서 주객의 이분법 장벽을 훌쩍 뛰어넘게 되는 것이다.소동파가 손에게 들려준 대답이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던지는 묘리란 자명하다.탐욕을 버리고 개아(個我)를 넘어서는 것이 그것이다.나아가 `무소유'를 통한 `충만'함이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서구의 근대적 합리주의란 실은 이른바 타자를 제 이익에 맞게 취하고 재단하여 억지로 동일하게 만드는 탐욕에 기인한 것임은 이미 탈현대의 여러 사조들이 누누이 지적하고 있는 바가 아닌가.
이제 곧 한가위다.이런 멋진 달밤을 맞아 독자들이여.소동파의 `적벽부'를 한번 읊조리는 것도 멋지지 않겠는가.한가위 달이 두둥실 떠오르면 가족과 단란(團欒)의 정을 나누는 것도 예부터 내려오는 우리네 고유의 정분을 나누는 방식이 아닐까마는,이번 보름달에는 새로운 염원을 달에 빌어보는 것도 의미가 없지는 않겠다.그런 점에서 북송 때 소동파라는 한 문인이 내세운 바 있는 `쓰임새를 절검함으로써 취함에 분수를 기하라'(節用以廉取)는 견해나 `널리 이익만을 탐하는 무리'(廣求利之門)를 흰눈으로 흘겨보는 소동파의 눈길이 케케묵은 낡은 소리일 수만은 없음도 물론이다. <신지식>
廬山(여산)
橫看成嶺側成峰(횡간성령측성봉) 가로 보면 고개요 모로 보면 봉우리
遠近高低客不同(원근고저객부동) 멀고 가깝고 높고 낮음이 제각기 다르니
不識廬山眞面目(불식여산진면목) 여산의 참 모습을 진정 알 수 없는 것은
只緣自在此山中(지연자재차산중) 이 몸이 저 산중에 갇혀 있는 탓일세
耿耿靑天夜夜星(경경청천야야성) 밤마다 뜨고 지는 저 하늘의 별을
瞿曇一見長無明(구담일견장무명) 부처가 괜히 보고 망상을 더했네
下山路是上山路(하산로시상산로) 저 산을 오르내릴 길 하나 뿐인데
欲度衆生無衆生(욕도중생무중생) 중생을 건진다니 부질없는 군소리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소동파가 유배지로 가던 도중 여산에 들러 읊은 것으로 내용은 아주 쉽지만, 음미할수록 오묘한 진리가 들어있다. 일종의 철리시(哲理詩)라고 할 수 있는데, '철리시'란 개인적인 단순한 경험을 통하여 하나의 보편적 진리를 추출해내는 철학적인 시를 말한다.
산속에 들어가 있으면 부분적인 산의 모습은 볼 수 있지만 산 전체의 모습을 보기 어렵다. 그러므로 산을 제대로 보려면 일정 거리 떨어져서 바라보아야 참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즉, 사물을 바라보는 거리가 필요하다, 또한 삶의 진실을 깨닫기 위해서는 마음의 여유 또한 필요하다. 우리는 어쩌면 너무 바쁜 삶 속에 파묻혀 있기 때문에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사는지도 모른다.
여산(廬山)의 참모습. 여산(루산)은 보는 방향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데다 늘 구름에 가려져 있어 좀처럼 본모습을 볼 수 없다고 해서 사물의 진상을 알기 어려움에 비유한 시다.
중국 강서성(江西省) 북부에 있는 여산은 높이 1600m로 3면이 양자강(楊子江)과 포양호에 연해 있는데 경치가 뛰어난 명산이다.
주(周)나라 무왕(武王)때 광속(匡俗)이라는 도사가 이 산 깊숙이 조그마한 오두막집을 지어 은거하면서 선도(仙道)를 닦고 있었다. 무왕이 소문을 듣고 사람을 보내어 그를 찾아 벼슬을 시키려고 했으나 그거 거처하던 오두막집만 찾아냈을 뿐 광속의 행방은 묘연했다. 사람들은 광속이 살던 오두막집이란 뜻으로 산이름을 광려산(匡廬山)이라고 불렀으나 뒤에 여산이 되었다.
이 산 곳곳에는 명승과 고적들이 감추어져 있는데 특히 불교에 관련한 유적이 많은 걸로 유명하다. 한여름에도 서늘하여 중국에서 손꼽히는 피서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안타까운 대목은 이 산이 늘 구름에 싸여있어 좀처럼 그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곳 사람 중에는 여산의 참모습을 본 사람은 얼마되지 않는다고 한다. 송(宋)나라의 대문호 소동파(蘇東坡)도 여산을 찾았다가 안타까운 마음을 칠언절구시 한 수에 남겼다.
廬山煙雨 (여산연우)
廬山煙雨浙江潮 (여산연우절강조) 여산의 안개비와 절강의 물결이여
未到千般恨不消 (미도천반한불소) 가보지 못했을 땐 천만가지 한이었네
到得還來無別事 (도득환래무별사) 도착해 보니 도리어 별다른 것은 없고
廬山煙雨浙江潮 (여산연우절강조) 여산의 안개비와 절강의 물결이었네.
綠 筠 軒 (녹균헌)
可使食無肉 (가사식무육) 밥상위에 고기가 없는건 괜찬지만
不可居無竹 (불가거무죽) 사는데 대나무가 없어서는 안되네
無肉令人瘦 (무육영인수) 고기가 없으면 사람이 야위게 되지만
無竹令人俗 (무죽영인속) 대나무가 없다면 사람이 속되게 되네
人瘦尙可肥 (인수상가비) 사람이 야왼것은 다시 살찌게 할수 있다지만
俗士不可醫 (속사불가의) 선비가 속된 것은 고칠 의원이 없네
傍人笑此言 (방인소차언) 사람들이 내말에 비웃으며 말하길
似高還似癡 (사고환사치) 고상한듯 하면서도 어리석은 것 같다고
若對此君仍大嚼 (약대차군잉대작) 답하길 대나무를 즐기면서 고기까지 맘껏 먹을 수 있다면
世間那有揚州鶴 (세간나유양주학) 어찌 세상사에 양주학이란 말이 있으리
이해와 감상
[揚州鶴] 고대 중국의 九州의 하나로 양주라는 고을이 있었는데 어느날 客들이 모여 서로 생각하는바를 말했다.
한 사람이 자기는 양주의 자사가 되기를 원했고, 어떤이는 재화를 많이 같기를 원하고, 또 어떤이는 학을 타고 하늘로 오르기를 원했다.
이때 남은 한 사람이 "나는 허리에 십만관의 돈을차고 양주로 부터 하늘로 올라가고 싶다" 라고 말하며 앞의 세 사람의 욕망을 겸한 것이라고 했다.
양주학이란 부귀영화와 함께 신선이 되는 즐거움까지 누리겠다는 것으로 실현 불가능한 것을 욕심내는 것을 가리킨다.
즉, 대나무를 바라보는 생활과 고기를 배불리 먹는 생활을 겸하겠다는것, 말하자면 속세의 일과 고상한 취향은 같이 어울릴 수가 없다는 것, 바로 양주학을 바라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수조가두(水調歌頭)
明月幾時有 (명월기시유)
밝은 달 화려했던 그 시절 언제였던가
把酒問靑天 (파주문청천)
술잔 들어 푸른 저 하늘에 물어보네
不知天上宮闕 (부지천상궁궐)
황궁에서 쫓겨나 정사불문 오래되어 세월가는 줄도 잊었네
今夕是何年 (금석시하년)
오늘은 또 그 언제란 말인가
我欲乘風歸去 (아욕승풍귀거)
마음이야 당장에라도 바람타고 휘이 돌아가고 싶건만
又恐瓊樓玉宇 (우공경루옥우)
화려한 궁궐 눈부시게 아름다워도 두렵기만 하다네
高處不勝寒 (고처불승한)
그 자리 하 높으니 시샘의 찬바람을 견딜 수나 있을런가
起舞弄淸影 (기무롱청영)
이 내몸도 한때는 옷자락 휘날리며 기세등등했다네
何似在人間 (하사재인가)
그때 그 시절을 속세 어느 곳에 비할까
轉朱閣低綺戶 (전주각저기호)
만나는 이 고관대작이요 누운자리 비단창문 아래였다네
照無眠 (조무면)
허나 그 때에도 쉬이 잠들지는 못했다네
不應有恨 (불응유한)
신하된 도리로 군왕에게 한을 품어서야 쓰겠냐마는
何事長向別時圓 (하사장향별시원)
무슨 미련이 남았다고 저 보름달만 보면 옛생각에 젖어드는가
人有悲歡離合 (인유비환이합)
사노라면 희노애락 만남과 이별이 있듯이
月有陰晴圓缺 (월유음청원결)
저 달도 차고 기울고 맑고 흐림이 있도다
此事古難全 (차사고난전)
세상만사 예로부터 뜻대로 온전히 되는 것은 없었으니
但願人長久 (단원인장구)
다만 황상께서천세만세 누리시어
千里共嬋娟 (천리공선연)
그 은혜 천리만리 온누리 비추이고 태평성세 이루기만을 바라노라
이해와 감상
송나라때 소동파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유배를 가서 유배지에서 황제를 생각하는 마음과 권세를 누릴 때의 화려함을 다시 생각하면서 쓴 시이다.(님을 향한 마음, 인생무상을 노래함)
가사번역: 이레네님 /김중국[중국음악, 중국유학]
汲江煎茶(급강전다) : 강물을 길어 차를 달이며
活水還須活火烹 (활수환수활화팽)-修는 須로
自臨釣石取深淸 (자림조석취심청)-造는 釣로
大瓢貯月歸春饔 (대표저월귀춘옹)-歸의 음은 귀
小杓分江入夜甁 (소작분강입야병)-均(균)은 杓(구기 작)으로
雪乳己飜煎提脚 (설유기번전제각)-提의 음은 '끓을 제'
松風忽作寫詩聲 (송풍홀작사시성)
枯腸未易禁三椀 (고장미이금삼완)-易은 바꿀 역이 아니라 '쉬울 이'로
坐聽荒城長短更 (좌청황성장단경)- 荒은 거칠 황, 어두울 황, 빌 강
생수 길어 모름지기 숯불에 달여야 하리
낚시터에 본인이 가서 깊고 맑은 물 구하리
큰 표주박에 달을 떠서 봄이면 독에 가두고
작은 구기로 강물을 퍼 밤이면 병에 담으리
눈과 젖같은 김이 나고 찻물 끓어 넘치니
솔바람 일어나며 시를 읊는 소리인 듯
마른 창자에 차 석잔은 참기가 쉽지 않구나
깊은 밤 길고 짧게 울리는 소리 혼자 앉아 듣노라
이해와 감상
가난한 절간의 스님들이 저녁공양을 굶으니 주지스님이 표주박을 나누어 주며 달이 잠긴 강물을 한 바가지씩 떠 오라 했답니다. 스님들이 바가지로 물을 뜨니 각자의 물바가지에도 달이 담겼는지라 달 하나를 모든 스님이 다 하나씩 마셨다는 법문을 소동파가 이 글에 끌어들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琴詩(금시)
若言琴上有琴聲 약언금상유금성
거문고 소리가 있다 하면은
放在匣中何不鳴 방재갑중하불명
갑 속에 두었을 젠 왜 안 울리나
若言聲在指頭上 약언성재지두상
그 소리 손가락 끝에 있다 하면은
何不於君指上聽 하불어군지상청
그대 손끝에선 왜 안 들리나.
거문고 소리는 어디서 나는가
고문고에 손가락이 닿아 소리로 울리는
이 미묘한 이치를 아는가?
소리는 그렇다면 어디에 숨어 있었더란 말인가?
깨달음은 어디에 있는가?
薄命佳人(박명가인)
雙頰凝蘇髮抹漆 쌍협응수발말칠
두 볼은 엉긴 우유빛, 머리는 옻칠한 듯 검고
眼光入廉珠的礫(樂) 안광입렴주적락
눈빛이 발에 비추어 구슬처럼 반짝인다
故將白練作仙衣 고장백련작선의
원래 흰 비단으로 선녀의 옷을 지어 입고
不許紅膏汚天質 불허홍고오천질
타고난 바탕을 더럽힐까 입술연지 바르지 않았네
吳音嬌軟帶兒痴 오음교연대아치
오나라 사투리의 예쁜 목소리 앳되기만 한데
無限間愁總未知 무한간수총미지
한없는 근심은 전혀 알 수 없네
自古佳人多薄命 자고가인다박명
예로부터 아름다운 여인의 운명 기박하다 하니
閉門春盡楊花落 폐문춘진양화락
규방문 닫히고 봄이 다하면 버들꽃도 지고 말겠구나
소동파기념관 (항주 소재)
소동파 기념관
기념관 내부
소동파 석상
정자사 맞은 편에 있는 소동파 석상이다.
기념관 1층에는 소동파 일생의 행적, 항주에서의 정치적 업적, 일사가 전시되어 있다.
2층엔 소동파가 항주에 있는 동안의 문학, 예술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사진: 로즈마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