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경기도 테마박물관으로 문연 등잔박물관은 우리나라에 전기가 들어오기 전까지 옛 선조들의 생활을 밝혀온 등잔 400여 점이 주제별로 전시되어 있고, 600여 평의 야외전시장은 작은 연못을 중심으로 꾸며진 소공원으로 손색이 없다. 김동휘 관장의 열정과 혼으로 세워진 이곳은 산수유 만발한 4월의 봄나들이나 단풍 물드는 10월의 가을여행을 뜻깊은 시간으로 채워주는 공간으로, 포은 정몽주 묘소와 에버랜드, 한국민속촌이 가까워 다채로운 여행 스케줄을 잡기에도 좋다 글:채희숙 편집장(chaehs@carlife.net) 사진:조영권 기자(ykcho@carlife.net)
등잔에서 역사와 추억과 시를 찾는 김동휘 관장과 그의 분신과도 같은 등잔들
수원 화성의 건축양식을 본따 지은 박물관과 조화를 이루는 몬데오
1층은 ‘생활 속의 등잔‘을 주제로 꾸몄다. 그 시대 민속품들 속에 등잔이 어우러져 있다
사랑방을 밝히던 등잔은 안방에 놓인 등잔보다 단순하고 튼튼해 보인다
관람객들이 잠시 앉아 쉴 수 있는 2층 입구의 대청마루
우리나라에 전기가 들어오기 전까지 옛 선조들의 생활을 밝혀주며 삶의 애환을 담아온 등잔 400여 점이 1, 2층에 나뉘어 주제별로 전시되어 있다
부엌의 등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무쇠솥에서 새어나오는 구수한 밥 냄새가 느껴진다
몬데오는 튀지 않는 스타일이 어느 자리에 세워도 주변 풍경과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마가미술관 실내전시장에는 송번수 교수의 타피스트리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잔디로 조성된 야외전시장 뒤로 작품처럼 아름답게 서 있는 마가미술관
드라이브 메모
600여 평의 야외전시장은 연못과 민속품으로 꾸며진 소공원이다. 봄이 되면 꽃향기로 가득 찬다
꽃놀이 인파로 술렁이는 4월. 잡상인과 뒤섞여 주차장으로 변해버린 꽃길에서 피로와 먼지 속에 귀중한 휴일을 묻어버리기보다는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작은 공간에서 조상들의 멋과 향기를 음미하는 실속있는 봄 여행을 떠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어른들은 아련한 옛 향수에 젖고, 어린이들은 낯선 전통을 체험하는 한편 꽃과 나무가 어우러진 아담한 연못이 있는 정원에서 정담을 나눌 수도 있는 곳이라면 교육과 휴식을 겸한 여행지로 적격일 것이다.
경기도 용인시 모현면 능원리에 자리잡은 한국등잔박물관(☎031-334-0797, 홈페이지 http://www.deungjan.or.kr)이 바로 그런 곳이다. 1997년 9월 경기도 테마박물관으로 문연 이곳은 우리나라에 전기가 들어오기 전까지 옛 선조들의 생활을 밝혀주며 삶의 애환을 담아온 등잔 400여 점이 주제별로 전시되어 있고, 600여 평의 야외전시장은 물고기가 노니는 작은 연못을 중심으로 석등과 물확, 연자매 등 민속품으로 장식된 초원에 철마다 다른 꽃이 피는 나무들이 심어져 편안히 쉬어가는 소공원으로 손색이 없다.
50년간 모은 등잔 400여 점 전시된 테마박물관 수원 화성을 본딴 건물에 야외전시장은 소공원 등잔박물관은 산부인과 의사인 김동휘 관장(85)의 열정과 혼으로 세워진 곳이다. ‘순수 한국인의 조명기구를 모아보자‘는 단순한 생각으로 시작한 수집 취미가 도를 넘어 전문가의 경지에 이르렀고, 사명감으로 박물관을 세우기까지 걸린 기간은 50여 년. 1천여 점 수집품 중 미처 선보이지 못한 등잔들은 차츰 시간을 두고 전시할 생각인데, 그에게는 모두가 손수 기른 딸들처럼 소중한 존재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컬렉션 벽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는 그는 공기돌로 쓰기 좋을 만한 예쁜 돌멩이나 나뭇가지 등으로 초등학교 때 이미 수집의 길에 들어섰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잡동사니에 불과한 그것들에 아름다움을 느끼며 소중하게 간직하다가 한국전쟁이 끝나고 경제가 펼 무렵 본격적인 수집을 시작했고, 의학 세미나 등으로 외국여행이 잦아지기 시작한 60년대에는 다방면으로 진행되던 수집을 ‘민속자료‘라는 주제로 압축했다.
민속자료가 더욱 집약된 결과가 등잔이지만, 획기적이거나 드라마틱한 계기가 있어 수집 대상을 정한 것은 아니다. 도자기나 회화처럼 근사한 것들은 돈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과 같았기에 자신의 경제력으로 모을 수 있는 것들에서 친근감과 의미를 찾았을 뿐이다. 처음부터 목표를 정하고 달린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과정에서 끊을 수 없는 열정이 쌓인 것이다. 고가품이 되어버린 요즘과 달리 골동품상에 들어가면 등잔과 함께 그것을 사가는 사람까지 천대받던 시절, 그는 전국을 돌며 주머니를 털어 등잔을 사 모았다.
그렇게 모은 등잔으로 71년 첫 전시회를 열었고, 이색적인 그의 수집품으로 특종을 노린 방송국들은 취재경쟁 속에 그를 납치하는 해프닝마저 벌였다. 그후 국립박물관 등잔과 합작해 3~4회 더 전시회를 열었더니 ‘의사 김동휘는 등잔 전문가‘로 소문이 났고, 81년 병원을 그만둔 뒤 90년대 초 10개월간의 전시회를 끝으로 박물관 준비에 들어갔다.
설립 4년 5개월이 된 지금 등잔박물관의 재정자립도는 50%에 이른다. 규모가 작은 개인박물관으로 이 정도 높은 자립력을 갖춘 이유 역시 김관장의 부지런과 정성 덕분이다. 가족자본을 모아 비영리 공익문화재단으로 등록하고, 사진전과 영상물 상영 등의 부대행사를 꾸준히 열어 경기문화재단의 지원도 일부 받는다. ‘기업이 망해도 기업주는 살아남는다‘는 그릇된 전통을 뒤집는 것이 그가 등잔박물관을 통해 이 사회에 남겨주고 싶은 유산이다.
“사랑하는 여자를 놓고 그 여자 뭐가 그리 좋으냐고 물어보면 할 말이 없듯이 내겐 등잔도 그래. 그 안에는 역사, 추억, 사람들, 시(詩) 모든 것이 들어 있어. 차가운 겨울밤을 밝혀주던 등잔불처럼 마음에 등을 켜면 가슴이 환해져. 요즘 세상에 등잔 밝힐 곳은 딱 하나, 사람들의 차가운 가슴이지.`
김관장은 사람들이 이 작은 공간에 와서 옛 사람들과 대화하고 상상하며 많은 것을 생각해보길 바란다. 그래서 전시된 등잔에는 어떤 설명도 붙여놓지 않았다. 자기만의 추억, 자기만의 감상, 자기만의 시간을 가져보라는 뜻이다. 하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는 진리에 충실하고 싶다면, 홈페이지를 방문해 등잔에 관한 여러 정보를 챙겨 가는 것이 좋다.
연건평 280평인 회백색 박물관 건물은 김관장의 고향인 수원 화성의 건축양식을 본따 지었다. 흙으로 구운 벽돌을 직접 주문해 성을 쌓아 올리듯 지었다는데, 수원의 문화운동을 주도해온 전력에 어울리는 ‘수원사랑‘을 상징한다.
1층으로 들어서면 `생활 속의 등잔`이란 테마로 우리 조상들의 삶 속에서 등잔이 어떻게 쓰여졌는가를 그 시대 민속품들과 함께 전시해 보여준다. 부엌, 찬방, 사랑방, 안방 등 4개의 공간에 놓여진 등잔들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무쇠솥에서 새어나오는 구수한 밥 냄새, 남자 어른들마다 하나씩 차지하던 작은 밥상을 부지런히 채우는 여자들의 바쁜 손길, 늦은 밤까지 책을 읽는 아버지, 침침한 눈을 비비며 바느질하는 어머니의 모습 등을 관람객의 머리 속에 그려내는 영사기와도 같다.
시대별, 재료별 등잔에서 조상의 자취 찾고 정몽주 묘소와 마가미술관도 들러볼 만해 `역사 속의 등잔`과 `아름다움 속의 등잔`으로 나누어진 2층에서는 본격적인 등잔 전시가 펼쳐진다. 등잔을 얹어 사용하는 등경(燈擎)과 등가(燈架), 초를 꽂는 촛대, 들고 다니는 제등, 걸어놓는 괘등, 바닥에 놓는 좌등 등 선조들의 지혜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다양한 등기(燈器)들이 줄을 잇고, 기름을 담는 등잔은 토기 도기 자기 옥석 등 재료도 여럿이다. 종지나 탕기로 된 모양이 있는가 하면, 심지도 솜 노끈 한지 등으로 다양하고, 등잔걸이 역시 나무 놋쇠 철 청동 유리 등 여러 가지다.
등잔을 받쳐주는 받침대가 매듭 줄구슬 새김 등의 무늬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눈길을 끄는가 하면, 신라시대의 토기 등잔, 고려시대의 청동 촛대, 나비나 부채 모양의 광배가 달려 바람을 막고 은은하게 빛을 조절하던 조선시대의 촛대 등 저마다 소홀히 할 수 없는 의미와 가치를 품고 있다.
서민들은 등경을 저마다 만들어 썼다는데, 나무로 대충 깎아 뭉툭하게 만들거나 나름의 공을 들여 섬세하게 만든 각각의 등경을 보며 이마에 구슬땀을 매단 남정네들의 소박한 생김새를 그려보는 재미도 솔솔하다. 반면 장인을 들여 금속재로 정교하게 멋을 부린 귀족들의 그것에서는 뿌리깊은 특권층들의 사치가 엿보여, 등잔에 담긴 신분제도의 역사를 정리해볼 수도 있다. 2층 한편에는 한 가지 주제를 정해 그와 관련된 다양한 자료를 보여주는 `특별기획실`이 마련되어 있다. 지금은 김관장의 개인 소장품들을 전시중이다.
3층에는 30여 명이 함께 쉬면서 담소할 수 있는 휴게실이 마련되어 있고, 김관장의 호를 따서 이름붙인 지하공간 ‘상우당(尙友堂)‘은 무대공연과 미술전시, 심포지엄 등을 열 수 있는 다목적 문화공간으로 활용된다. 150석 규모의 상우당에서는 김관장이 인도와 네팔에서 찍은 다큐멘터리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등잔박물관은 5월의 어린이날 행사, 월드컵 기간 중 외국인 및 동행 한국인 무료입장, 가을의 5회 개관기념 행사 등을 계획해 놓고 있다. 앞마당에 산수유 만발한 4월부터 단풍 물드는 10월까지 어느 때 찾아가도 등잔불처럼 포근하고 정겨운 시간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박물관 개관일은 매주 목~일요일과 공휴일 오전 10시~오후 5시고, 월~수요일은 휴관이다. 관람요금은 어른 3천 원, 어린이 1천 원.
한국등잔박물관은 포은 정몽주 선생 묘소 입구에 있고, 에버랜드와 한국민속촌이 가까워 다채로운 여행 스케줄을 잡기에 좋다. 또 개인 작업실을 겸하고 있어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중견화가 송번수 교수가 마련한 마가미술관도 모현면에 있어 특별전이 열리는 기간이라면 들러볼 만하다.
정몽주 묘역은 원시림처럼 자욱한 수림으로 감싸인 데다가 약수샘도 있어 잠시 숲그늘에 들어앉아 쉬기에 좋다. 고려 공민왕 9년(1360년)에 과거에 급제해 벼슬에 오른 포은은 동방이학의 시조이며 성리학의 기초를 세운 학자였다. 이성계의 신흥세력에 규합되지 않고 신하의 도를 지키다가 개성 선죽교에서 피살된 뒤 고향인 경북 영천으로 가던 포은의 상여행렬이 용인군 수지읍 경계를 지날 때에 영정이 바람에 날려 지금의 묘자리에 멈춘 인연으로 이곳에 묘를 쓰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모현‘이라는 지명에도 ‘성현을 흠모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지난 98년 문연 마가미술관(☎031-334-0365)은 실내전시장과 잔디로 조성된 야외전시장을 갖추어 평면작업은 물론 입체작품 및 설치작업 전시를 모두 소화해낸다. 실내전시장은 자연광이 직접 조명되는 채광창을 갖추었고, 야외전시장은 문수산의 수려한 풍광과 어울려 전시장 자체가 하나의 작품처럼 아름답다. 실내전시장 옆에는 호젓한 카페테리아가 마련되어 차를 즐기며 비디오 자료 등을 감상할 수도 있다.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장을 지낸 송번수 교수는 70년대 말 근대적인 섬유직조 기법인 타피스트리를 국내에 도입, 모티브에 대한 자연친화적 접근과 반작용적 시도를 추구해온 이 분야 일인자로, 마가미술관에는 그의 타피스트리 작품이 상설전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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