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극신(
尹克新, 1527 ~ 1587)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1576년(선조 9) 별시문과(
別試文科)에 급제한 후
춘추관, 이조좌랑, 임천군수, 홍문관교리 등을 역임하였으며 사후에
좌찬성(
左贊成)에 추증되었다.
묘는 배위(
配位)
정경부인 고성남씨(
貞敬夫人 固城南氏)와의 쌍분이다. 봉분 가운데 비신(
碑身)이 없는 묘표(
墓表)의 비좌(
碑座)와
혼유석(
魂遊石), 상석(
床石), 향로석(
香爐石)이 있으며 계체석(
階砌
石)과 상석 좌우로는
망주석(
望柱石), 문인석(
文人石) 1쌍을 갖추고 있다. 문인석은 금관조복형(
金冠朝服形)으로 홀(
笏)을 쥔 두 손이 왜소하며 짦은 옷소매에 관복은 발목까지 내려와 있다. 봉분 왼쪽에는 백색 화강암제의 비좌ㆍ비신ㆍ옥개석을 갖춘 묘표가 있다. 비신의 앞ㆍ뒤 양면에 비문이 있는데 8대손 윤행임(
尹行恁)이 짓고 썼으며 총높이는 171cm이다.
첫댓글 두산백과 사전에는 배위가 고성이씨로 되었있는 것을 족보대로 고성남씨로 정정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