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보 초상화
■이규보(李奎報)
출생 : 1169년 1월 15일(음력 1168년 12월 16일).
양광도(楊廣道) 원주(原州) 황려현(黃驪縣)
사망 : 1241년 10월 8일(음력 9월 2일 / 향년 74세).
강도(江都) / 강화군(江華郡) 사택(私宅)
○시호 : 문순공(文順公)
○본관 : 황려 이씨(여주이씨)
○이름 : 초명> 인저(仁氐)→규보(奎報)
○자(字) : 춘경(春卿)
○호(號) : 지헌(止軒), 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 백운거사(白雲居士)
○품계 :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 종2품
○관직 :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郎平章事)-수문전 대학사(修文殿 大學士)-한림원사(翰林院事)-수국사(修國史)-판예부사(判禮部事)
고려 중기의 문관으로 어려서부터 시와 문장에 뛰어나 영웅서사시 동명왕편 등을 썼으며 벼슬에 임명될 때마다 즉흥시를 쓰기로 유명했다.
최씨 무신정권에 지나치게 아부를 한 부역자라는 평가도 있으나 벼슬살이를 하는 입장에서 현실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이해해주는 입장도 있다.
한국 문학사에 빼놓을 수 없는 걸출한 문인인 동시에, 몽골과의 외교에서도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는 74세까지 즉 사망하기 하루 전까지 외교문서를 다룰 정도로 출중한 능력을 발휘하였고 또 무신정권의 책임자인 최우의 절대적 신뢰를 받고 있었다.
그는 황제에게 보내는 공식적인 표문보다는 서한식 외교문서를 통해 거침없는 대몽외교를 펼쳤고 외교적 성과를 이룬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오늘날의 경기도 여주시 출생으로 본관은 여주 이씨(驪州李氏)로 증조부는 이은백(李殷伯), 조부는 이화(李和), 아버지는 이윤수(李允綏)이고, 어머니는 금란군군(金蘭郡君) 김씨다.
본래의 이름은 인저(仁氐)로 부친은 호부낭중을 역임한 중앙 관료였다. 초년기에는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인데 어렸을 적부터 시문에 뛰어나 수재 소리를 듣고 자랐지만 실전에서는 약했는지 과거시험에 3번이나 떨어진 경력이 있다. 본인도 공부 게을리 했다는 걸 인정했는지 이 때는 술 때문에 망했다고 고백했다. 이렇게 적으면 N수생 이미지일 듯한데 15세, 18세, 20세 때 과거를 치렀다.
22세 때 4번째로 과거를 보게 되었는데 시험 전날 꿈에서 문장을 관장하는 별인 규성(奎星)의 화신이 나타나서 "합격이요."라고 알려주었다고 한다. 결국 과거에서 규성의 말대로 장원으로 합격했는데 이후 '규성이 결과를 알려준 은혜를 보답한다.'는 의미에서 이름을 '규보(奎報)'로 바꾸었다고 한다.
진사 시험에 합격하기는 했는데 합격자들 사이의 석차가 꼴찌였다. 어지간히 자존심이 상했는지 합격을 취소하려고 했다가 아버지에게 혼나기도 했고 전례도 없었기 때문에 취소되지는 않았다. 어쨌든 합격을 해서 당시 축하 파티를 벌였는데 이규보가 자리에서 "내가 지금은 꼴찌지만 나중에 혹시 문생들 양성할 사람이 될지 어찌 알아요?"라고 주사를 부려 손님들이 비웃었다는 일화가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