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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파랑길 강진 84코스
도암농협-항촌마을-신기마을-도암방조제-신전해안-사내방조제 입구
20220727
1.다산의 실학정신과 영랑의 예술혼
어제 남파랑길 86코스를 먼저 탐방한 데 이어 오늘은 남파랑길 84코스와 85코스 두 개 코스를 탐방한다. 완도항 베니스모텔에서 새벽 5시에 출발, 5시 35분 도암농협에 도착하였다. 7월 12일 힘겹게 83코스를 이곳에서 끝내고 2주만에 다시 왔다. 햇빛이 온누리를 밝히는 때가 아니어서 날씨는 흐릿한 가운데 새벽의 안개가 옅게 흐르고 있다.
남파랑길 84코스는 강진만 해안관광로까지 나가는 길은 들녘길이고 그 이후는 해안관광로를 따라가는 해안길이다. 도암중앙로를 따라 걷는다. 면소재지인 도암면 항촌리 도암중앙로 좌우로 늘어선 여러 관공서들, 도암우체국, 도암면사무소, 도암보건지소, 도암복지회관를 보면서 걸었다. 일행들은 벌써 시야에서 사라져 바삐 달아났다. 도암중학교 입구 남도명품길 이정목에 명발당 850m라고 적혀 있는데, 명발당은 항촌마을에 있으니, 항촌마을까지의 거리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그리고 남파랑길 82코스에서 도암중학교 앞을 거쳐왔다. 도암중학교는 이곳에서 가는 것보다는 도암농협 뒷길로 가는 게 나을 듯싶다.
강진경찰서 도암파출소와 그 맞은편의 도암문화회관을 거쳐 조금 더 가면 과일촌 가게가 나오는데, 그 앞에서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며 머뭇거렸다. 가게 안주인님이 일행들이 저 길로 나갔다고 알려주신다. 남파랑길은 도암중앙로 과일촌 앞에서 그 맞은편 항촌길로 들어가 항촌마을로 향한다. 항촌마을 가는 길은 들녘의 빛이 푸르게 싱싱하고 아침의 대기가 신선하다. 뒤돌아보면 덕룡산이 운무에 덮여 신비스럽다. 항촌마을에서 나오는 한 주머니와 인사를 나누며 항촌마을로 들어간다. 항촌마을 입구 오른쪽에는 해남윤씨 세장비(世莊碑), 왼쪽에는 항촌마을 표석, 고영정 정각, 팽나무, 다산 옛길 여정 안내글, 항촌자랑가비, 정약용의 남도유배길 안내판 등이 세워져 있다. 사장나무가 무슨 나무일까? 사장나무는 수종(樹種)이 아니라, '스승이 되는 어른'을 뜻하는 단어 '사장(師丈)'을 붙여 사장(師丈)나무라고 일컫는 것 같다. 사장나무는 어르신나무를 뜻한다고 생각한다. 오랜 연륜의 어르신나무인 사장나무가 항촌마을 입구 정자각 고영정(古影亭)에 오래된 그림자를 비춘다. 사장나무의 수종은 팽나무였다.
남파랑길은 항촌마을로 들어가지 않고 항촌마을을 바라보며 항촌안길을 따라 월곶로로 나간다. 왜 이렇게 코스를 정했을까? 명발당과 항촌마을을 통과하여 항촌길을 따라나오면 항촌안길에서 남파랑길과 만나 월곶로로 나가게 되는데 명발당의 위치와 이곳 지리를 잘 모르는 탐방객은 남파랑길 코스를 따라가기에 급급하여 명발당을 그냥 지나치게 된다. 지금도 명발당을 그냥 지나쳐 온 것이 몹시 아쉽다.
명발당(明發堂)은 강진 해남윤씨(海南尹氏) 항촌파 종가이다. 해남 윤씨 20세 윤홍좌(1686~1738)가 만년에 건물을 지어 소대정(小坮亭)이라 하였는데, 손자 22세 윤광택(尹光宅, 1732~1804)이, '효성스런 마음이 드러나는 집'이라는 뜻의 '명발당(明發堂)'으로 바꾸었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의 친구인 해남윤씨 23세 윤서우(尹書有, 1764~1821)는 아들 윤영희(尹榮喜, 1795~1856)를 다산의 딸과 결혼시켜 두 집안은 사돈 집안이 되었으며 윤서우 손자이며 다산의 외손자인 윤정기(1814~1879)가 명발당에서 태어난다. 명발당과 관련한 해남 윤씨 집안의 실학과 다산과의 관계가 흥미롭다. 그 명발당을 가까이 두고서 지나쳐온 것이 아쉽지만 지나간 일, 어느 때인가 찾아갈 기회가 있을 것이다.
짙붉은 배롱꽃이 빛나는 농로를 따라 신기마을로 향한다. 폐가 앞을 지나치는데 마음에 쏴하며 썰물이 빠져 나간다. 집은 규모가 있으며 대문도 멋진데 집주인은 어디로 이주하였을까? 농가를 이을 후손이 없어서 이제 도시로 떠났을까? 폐가를 보며 바닷물 빠진 삭막한 마음이 되었는데 이 마음을 적시는 것은 용흥저수지에 피어난 하얀 연꽃들, 동쪽 하늘에 솟아오른 태양에 반사되어 연꽃들이 아득하게 가물거린다. 들녘길을 가로질러 나간다. 벌써 벼 이삭이 패어 여물어간다. 추석 무렵에 수확이 가능할까? 벼 잎에는 이슬방울들이 백옥처럼 맺혀 있고, 농로의 풀길에서 이슬은 바짓가랑이를 적신다. 드넓은 간척농지의 푸른 들녘길을 따라가며 뒤돌아보면 덕룡산과 만덕산이 고개를 내밀며 존재를 드러낸다. 아침부터 농부들은 일손에 바쁘다. 한 부부가 농약을 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요즘은 드론을 이용하여 농약을 치는데 이곳은 농부들이 직접 농약을 치는 모양이다.
신기마을 버스정류소 앞에서 아주머니들과 만났다. 어느 지역에서 어떻게 왔는지, 어디서 출발하여 어디까지 가는지, 그런데 앞선 일행들이 한참 전에 갔는데 왜 이리 늦는지 등 여러 가지를 질문하신다. 어제 서울에서 관광버스로 해남 남창리에 와서 완도항까지 걷고서 완도항에서 숙박한 뒤, 오늘 도암농협에 와서 해남 남창리까지 가야 하며, 걸음이 빠르지 못하여 늘 꼴찌로 걷게 된다고 말씀드렸다. 더운 날 왜 그런 일을 하는지 의문하신다. 신기마을 버스정류소 옆에 우물이 있다. 우물물을 지금도 마시느냐고 질문했더니 예전에는 모두 이 우물물을 마셨는데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 세상은 이렇게 유전(流轉)한다.
해안길로 나왔다. 이제부터는 해안관광로, 강진만 해안도로라고도 불리는 해안길을 따라 사내방조제 북쪽 입구까지 가는 길이다. 강진만은 이곳에서 북쪽 강진읍으로 깊숙하게 올라가고 강진만 남쪽으로는 드넓게 부채처럼 펼쳐져 있다. 남파랑길 81, 82, 83, 84코스는 강진만 동북서쪽 삼면을 돌아걷는 길, 현재 84코스를 걸으며 지금까지 걸은 강진만의 모든 길이 생생하게 되살아온다. 그리고 86코스를 어제 걸었기에 완도 본섬과 그 부속섬들의 위치도 가늠하며 해안길을 걷는다.
도암방조제는 도암천을 가로막아 도암면 신기리와 신전면 벌정리를 잇는다. 그래서 도암방조제와 배수갑문을 신전면 벌정리 논정마을 이름을 따서 논정방조제라고도 이르는 것 같다. 해안길에서 마주 걸어오는 한 여인에게 신전리 경계를 물었더니 배수갑문 중간에서부터 '우리' 신전이라는 말을 쓴다. 도암보다 신전이 더 넓다고 이야기하며 이 방조제를 쌓는데 신전면 지역민들이 더 애를 썼다는 듯 신전면 지역민의 지역 사랑이 넘친다. 아니면 도암면과의 경쟁심이 많은 것일까? 그리고 방조제를 쌓은 돌을 가리키며 이 산돌은 저기 섬 비래도 뒤쪽의 성머리산에서 채석한 돌이라고 한다. 그리고 완도항 방조제도 성머리산 산돌로 쌓은 것이라고 하며 완도는 강진이 없으면 어림도 없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신빙성이 있는지 확증할 수는 없지만 들려주는 얘기에 호기심이 일었다. 그리고 비래도를 가리키며 저 섬이 비래도, ㄹ자 하나 더 붙이면 빌래도, 빌라도 총독 아시지요? 저 비래도 섬에 1년에 한 번씩 다녀온다고 한다. 아주머니의 활기차고 호기 넘치는 이야기를 들으며 길손의 강진만 사랑도 더 깊어지는 것을 느꼈다.
해안에서 뒤돌아보면 가우도와 해상보도교 다산다리가 강진만 바다에 떠있고 강진만 서북쪽에 만덕산이 늠름하다. 강진만 건너편 강진만 서쪽의 여계산, 대계산, 관찰봉이 분명히 확인되고 여계산 해안으로 고바우전망대와 분홍나루 노을전시관 공사 현장도 가늠된다. 그리고 그 아래쪽 백사마을과 성머리산 왼쪽의 남호마을이 들어온다. 도암유수지라고 해야 할까, 도암호라고 해야 할까? 도암호를 전망하기 위해 배수문 농로로 나가 보았다. 만덕산-노적봉-석문산-덕룡산 산줄기가 길게 이어져 강진만 바다와 평행을 이루고 있다. 신전면 벌정리를 돌아나가는 해안에서는 강진만에서 바다로 뻗쳐 나오는 성머리산 앞의 외호도가 가늠되는데 그 쌍둥이 동생 내호도는 보이지 않는다. 내호도는 사업자에 의해 피 투성이가 되어 깎여 있다. 외호도 오른쪽 뒤에 마량리 서중마을과 그 뒤에 고금도가 갈게 아어지는 것도 분명히 조망된다.
신전면 사초리 사초항이 보인다. 호래비섬과 방파제가 이어진 사초항 방향으로 가는 해안에서 복섬과 사후도, 고마도, 완도 시가지가 들어온다. 어제 완도 북동쪽 해안을 걸을 때 완도의 부속섬을 알려주던 아주머니가 눈 앞에 나타난다. 저 섬은 우리 섬이고 저쪽은 해남이제. 이 지역민들은 자기 고장에 대한 자존감이 아주 높은 것 같다. 바다 바로 건너 해남 그 사이에 있는 토도와 장구도는 해남 쪽에 가깝지만 완도의 보속섬이다. 그래서 우리 완도 것이 되나 보다.
해안에서 북서쪽을 바라보니 주작산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바다는 잠들어 있는 듯 호수처럼 고요하다. 강진만 앞 바다는 사초리로 넘어오면 드넓은 호수 꼭 바이칼 호수와 같은 모습이다. 그 호수에 섬들이 올망졸망, 산들이 우뚝우뚝, 섬인지 육지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섬들이 펼쳐지고 육지의 해안선 만(灣)은 굽이지며 돌아나간다. 갯벌에서 홀로 쉬고 있던 백로 한 마리가 길손이 사진을 찍으려 하자 날개를 펼쳐 강진만 북쪽으로 날아간다. 걸어온 강진만이 머리와 가슴 속에 요동친다. 강진읍 목리교의 탐진강이 남해로 흘러가며 부채를 펼치는 모양의 양안(兩岸) 모습이 지리적 위치와 감동적 풍경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그 속에 다산의 실학정신과 영랑의 예술혼이 살아 숨쉬고 있을 것이다.
2.탐방 과정
강진군 도암면 항촌리 도암중앙로 도암농협 건물 왼쪽에 남파랑길 84코스 안내도와 시작점 표지가 있다.
석문공원은 83코스에, 가우도는 82코스에 있다. 명발당은 84코스에서 벗어나 있어 그냥 지나치기가 십상이다.
왼쪽에 도암복지회관이 보인다.
명발당 850m, 명발당은 항촌마을에 있다.
도암문화회관이 도암파출소 앞에 있다.
남파랑길은 대성식육점 오른쪽 항촌길로 좌회전한다.
앞쪽 산 아래 항촌마을과 명발당이 있다.
도암중앙로 과일촌 앞에서 항촌길로 들어왔다. 뒤쪽에 덕룡산이 운무 속에 숨어 있다.
항촌마을이 뒤에 자리하고 있다.
항촌마을 입구에 사장나무라고 하는 팽나무가 멋지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계절 고운 풀꽃이 피는 담장길 돌아서면 확 트인 들판의 풍경을 마주한다. 길은 본래 주인이 없고 그 길을 아는 사람이 주인이다. 항촌 입구에는 마을의 사랑방 사장나무가 있다. 어디서건 길 떠난 이가 구름 창 아래 선잠 자는 꿩 우는 소리에 깨기도 하였을까. 나그네여, 붉은 산 앵두 같은 이야기 뚝뚝 이곳에서 풀어 놓으라. 날아가는 새들이 알아듣고 똑같이 아름다운을 길을 열어 주리니 그대 신비로운 다산길의 흙과 돌을 밟을 때마다 프시케(puskhe) 생명의 가장 여린 숨결로 바람의 무늬가 돋아난다. 이곳에서 배낭과 함께 근심 걱정 내려놓고 다산 옛길의 여정을 살펴보자.
항촌자랑가碑 전서체로 쓰인 머리글씨는 來鄕崇俗瑞隣恊(내향숭속서린협락)인 듯. '고향에 오면 풍속을 숭상하고 이웃과 잘 지내며 협동하고 즐세요'라는 뜻 같다.
앞으로는 광야와 산천이 있고 뒤로는 동산이 솟아 있구나. 남으로는 바다에 배가 다니고 북으로는 석문산과 학교가 있구나.
중앙으로 모당모당 우리항촌 인간살이 좋은 곳은 이곳 아닌가. 사랑스럽고 생기돋는 우리항촌 어느 누가 이별하고 어데 가리오.
왕래하는 사람은 경치 좋다고 각지에 소문 났드라 우리 항촌.
남도의 끝자락 강진은 탐진강 푸른 물과 월출산 깊은 골짜기마다 다산의 실학정신과 영랑의 시혼이 빛나는 고장이다. 자랑스러운 문화와 순결한 예술혼이 넘치는 다산 유배길은 우리들의 오래된 미래를 읽는 아름다운 길이다. 갯내음 솔향기에 시인이 되어 보는 산길, 둥근 가락지 같은 논밭길, 소살소살 옛이야기 따라 목장길 지나면 맥반석 자갈밭이 눈부신 과수원길, 꽃그림자 드리운 개울 물길, 이웃들의 푸근한 정이 넘치는 시장길, 나지막한 돌담길, 다산의 풍경이 보이는 남도 유배길은 알록달록 이야기가 살아나는 고향길이다.
정자각 이름은 고영정, 옛 그림자 비치는 정자. 기둥에는 주련이 붙어 있다.
정자각은 1986년 착공하여 1987년 준공되었다. 벽에는 향약(향촌규약)이 적혀 있다. 환난상휼(患難相恤),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 돕는다.
항촌회관이 맨 왼쪽에 있고, 그 왼쪽 뒤에 명발당(明發堂)이 살짝 보인다.
강진 해남윤씨(海南尹氏) 항촌파 종가 명발당(明發堂)은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에 있다. 2009년 2월 2일 강진군의 향토문화유산 제32호로 지정되었다. 명발당은 해남윤씨 22세 윤광택(尹光宅 1732.2.25-1804.12.13)의 옛 생가다. 도암 항촌에서 태어나 자수성가하였으며 마을의 중흥조이기도 하다. 조부인 윤홍좌(1686-1738)가 만년에 건물을 지어 소대정(小坮亭)이라 하고 광택은 명발당(明發堂)이라 하였다. 윤광택의 아들 윤서유(書有 1764.11.28-1821.7.1)가 태어났고 다산 정약용의 사위이기도 한 손자 윤영희(榮喜, 1795.4.25-1856.8.23)도 이곳 명발당에서 태어났으며 다산선생의 딸과 윤영희가 이곳에서 혼례를 올리기도 했다. 명발당은 학생들이 글공부를 했던 무학중사라는 별관 등으로 만들어진 전통가옥으로 해남윤씨 문중에서 구입해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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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파랑길은 항촌마을 입구에서 항촌안길을 따라오는데, 항촌마을로 들어가 명발당을 거쳐 오른쪽으로 돌아나오면 어떨까?
항촌마을과 명발당을 거쳐 나오면 이 길에서 남파랑길과 만난다. 남파랑길은 항촌마을 입구에서 항촌마을과 명발당으로 들어가지 않고 항촌안길을 이어오다가 앞에 보이는 월곶로로 나가 좌회전한다.
오른쪽 항촌안길에서 월곶로로 나왔다. 월곶로 왼쪽에 도암천의 항촌2교가 있고, 뒤에는 덕룡산이 구름 속에 숨어 있다.
남파랑길은 오른쪽 호수농원 방향의로 우회전한다. 월곶로를 따라가면 가우도와 이어지는 망호선착장에 이른다.
신기마을까지 4.5km, 남파랑길은 신기마을을 거쳐 해안관광로로 나간다.
한우축사 장금농장 앞을 거쳐왔다.
남파랑길은 오른쪽 길로 언덕을 넘는다.
남파랑길은 왼쪽 용흥저수지를 지나 들녘을 왼쪽으로 가로질러 왼쪽 뒤로 나아간다.
도암면 용흥리 용흥저수지에 연꽃들이 하얗게 피어나고 있다. 태양은 동쪽에 떠올라 눈부시다.
도암방조제에 의해 드넓은 간척농지가 형성되었다. 남파랑길은 왼쪽 구릉 앞으로 나가 중앙의 도암방조제로 이어진다.
용흥리 기전길에서 뒤돌아보니 바로 앞에는 용흥저수지, 오른쪽 맨 뒤에 만덕산, 왼쪽 맨 뒤에 석문산이 보인다.
중앙 뒤에 석문산 그리고 왼쪽으로 덕룡산 산줄기가 이어져 있다.
기전로 지선에서 기전로 간선으로 나가 왼쪽 신기마을 방향으로 이어간다.
남파랑길은 용흥저수지에서 농로를 오른쪽으로 따라와서 오른쪽으로 꺾어 오른쪽 길을 따라왔다. 오른쪽 끝에 석문산, 그 왼쪽 움푹 들어간 곳이 소석문, 그 왼쪽으로 덕룡산 산줄기가 길게 이어져 있다.
아침 일찍부터 부부가 논에 농약을 치기 위해 준비 중이다.
도암면 신기리 신기마을이 왼쪽에 보인다. 기전로 간선은 월곶로로 이어진다.
남파랑길은 기전로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신기두리길로 이어간다.
이제 식수로는 사용하지 않는다.
신기마을 버스정류소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신기두리길을 따라왔다. 신기두리길 오른쪽에 신기경로당이 보인다.
중앙에 도암방조제, 드넓은 간척농지 신기들판이 펼쳐져 있다.
해안관광로라고도 불리는 듯하다. 해안관광로는 맨 끝 곶(串)을 왼쪽으로 돌아나간다.
도암면 신기리 가우도의 청자타워가 역광으로 들어온다. 그 앞의 곶은 망호선착장이다.
왼쪽에 가우도의 청자타워, 건너편은 강진만 동쪽의 대구면 저두리 해안이다.
도암방조제는 도암천을 가로막아 도암면 신기리와 신전면 벌정리를 이어준다. 그래서 논정배수갑문이라고도 이르는 듯.
도암유수지 뒤쪽의 마을이 신전면 벌정리 논정마을인 것 같다.
왼쪽에 대구면 저두리 고바우전망대, 그 오른쪽에 사당리 분홍나루 노을전시관을 건립공사하고 있다. 그 뒤 여계산 오른쪽 아래에 대구면 사당리 고려청자박물관, 중앙에 백사마을과 백사어촌체험마을이 있을 것이다. 오른쪽 작은 섬은 비래도이다.
작은 섬 비래도 뒤 오른쪽 뒤로 길게 뻗친 곶(串)에 대구면 구수리 남호마을이 있으며 石城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저 산을 성머리산이라 이르는 듯한데 도암방조제를 쌓은 돌은 성머리산에서 채석한 산돌이라고 한다. 오른쪽 끝에 고금도가 보인다.
오른쪽 맨 끝에 석문산, 그 왼쪽에 움푹 파인 소석문, 그 왼쪽으로 덕룡산이 빛나고 있다.
왼쪽에 만덕산이 보인다. 오른쪽에 가우도의 청자타워와 가우도와 망호선착장을 잇는 해상보도교 다산다리가 보인다.
중앙 앞 여계산 앞쪽에 고바우전망대와 건립 공사 중인 분홍나루 노을전시관이 있다. 뒤쪽 중앙의 움푹 파인 왼쪽은 만경대(대계산), 그 오른쪽은 관찰봉이라 가늠한다.
중앙에 만덕산이 우뚝하고, 왼쪽에 석문산과 그 왼쪽에 움푹파인 소석문, 그 왼쪽으로 덕룡산이 이어진다.
중앙 오른쪽에 움푹 파인 소석문과 그 오른쪽의 석문산, 덕령산이 중앙에서 왼쪽으로 길게 이어져 있다.
덕룡산 왼쪽 끝에서 주작산이 뒤쪽으로 이어진다.
왼쪽에 만덕산, 중앙 오른쪽에 가우도의 청자타워, 가우도와 망호선착장을 잇는 해상보도교 다산다리가 분명히 보인다.
오른쪽 길로 들어가면 신전면 벌정리 논정마을에 이르는 듯. 남파랑길은 해안관광로를 계속 따라간다.
왼쪽에 논정마을 입구, 길게 이어지는 도암방조제, 뒤쪽에는 덕룡산과 석문산이 강진만을 내려보고 있다.
도암방조제가 길게 이어져 있다. 오른쪽 뒤에 만덕산, 중앙 왼쪽에 석문산 그 왼쪽에 움푹 파인 소석문, 그 왼쪽에 덕룡산 능선이 길게 이어져 있다.
중앙 오른쪽에 가우도를 중심으로 그 왼쪽은 강진만 서쪽, 그 오른쪽은 강진만 동쪽, 왼쪽 뒤에 만덕산이 우뚝하다.
작은 섬 비래도 뒤 왼쪽은 만경대(대계산), 그 오른쪽은 관찰봉, 왼쪽 앞은 여계산, 중앙에 백사마을이 보인다.
길게 바다로 뻗친 곶(串) 끝에 대구면 구수리 성머리산과 그 왼쪽에 남호마을(성머리마을)이 있다. 오른쪽 뒤에 고금도가 있다.
왼쪽에 성머리산, 그 뒤에 고금도가 오른쪽으로 길게 이어지고, 그 오른쪽에 사후도, 고금도와 사후도 사이로 완도시가지가 보인다. 오른쪽은 호래비섬, 그 왼쪽의 작은 섬은 복섬인 듯.
왼쪽 맨 뒤 호래비섬이 있는 사초항이 남파랑길 84코스 종점이다. 두 개의 활 모양의 해안을 빙 돌아 걷는다.
오른쪽 뒤에 호래비섬이 있는 사초항, 그 왼쪽에 복섬, 그 뒤가 사후도, 그 왼쪽 뒤에 완도시가지, 왼쪽에 고금도가 있다.
강진만 서쪽 해안을 돌아가고 있다. 비래도 뒤 왼쪽 앞산은 강진만 동쪽의 여계산이다.
대구면 구수리 성머리산 앞에 외호도, 그 뒤쪽이 마량, 오른쪽은 고금도이다.
목적지인 호래비섬이 있는 사초항이 중앙 뒤에 있고, 그 왼쪽 복섬과 그 뒤에 사후도, 왼쪽 뒤에 완도시가지가 보인다. 바닷가 방파제 낚시터에서 낚시를 즐기는 낚시꾼들이 맣다.
둥글게 이어지는 강진군 신전면 벌정리 해안을 돌아간다. 왼쪽 뒤에 주작산 능선이 보인다.
강진만 남쪽의 서쪽 해안은 신전면 벌정리에서 사초리로 둥글게 이어진다. 호래비섬이 있는 사초항 사내방조제 입구가 남파랑길 84코스 종점이다. 왼쪽 뒤에 완도가 길게 누워 있다.
신전면 벌정리 들녘 일대. 왼쪽은 대벌마을, 오른쪽은 약천마을 인듯. 왼쪽 뒤에 주작산이 구름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벌정리 바닷가 방파제 낚시터가 보이며, 맨 뒤 강진만 동쪽 해안의 대계산이 중앙에 보인다.
왼쪽 강진만 동쪽 해안의 성머리산과 그 앞의 외호도, 그 뒤쪽은 마량, 오른쪽은 강진만 서쪽 신전면 사초리 해안으로 오른쪽 끝에 호래비섬과 방파제가 보인다. 오른쪽 뒤는 고금도이다.
신전면 벌정리에서 사초리로 넘어왔다. 왼쪽 해안을 돌아나가면 사초항이 나온다.
뒤쪽에 덕룡산 암봉들이 멋지게 보인다.
비래도 섬이 오른쪽에 떠있고, 강진만 동쪽 해안의 산줄기가 펼쳐진다. 고바우전망대와 분홍나루 노을전시관 위치가 분명히 가늠된다. 그 뒤의 앞산인 여계산 오른쪽에 고려청자박물관이 있을 것이다, 바다로 툭 튀어나온 강진만 서쪽 해안을 돌아서 이곳으로 왔다. 왼쪽 뒤에 만덕산이 분명히 확인된다.
걸어온 신전면 벌정리 해안이 활 모양으로 둥글다. 왼쪽 뒤에는 덕룡산, 중앙 뒤에는 만덕산이 이마를 내보이고 있다.
신전면 벌정리 해안이 둥글게 호를 그리고 중앙 오른쪽 뒤에 덕룡산, 중앙 왼쪽 뒤에 주작산이 살짝 머리를 보여준다.
왼쪽에 호래비섬과 방파제가 길게 이어져 있다. 호래비섬 왼쪽 뒤에 사후도, 오른쪽 뒤에 고마도가 분명히 보인다.
오른쪽 호래비섬에서 방파제가 이어지고 등대가 있다. 방파제 왼쪽 뒤에 대구면 구수리 성머리산, 그 오른쪽 뒤에 외호도가 가늠된다. 중앙 맨 뒤는 마량리 서중마을이며 그 오른쪽 뒤는 고금도이다.
방파제 왼쪽 끝 뒤에 성머리산, 그 오른쪽 뒤에 외호도, 그 오른쪽 뒤에 마량리 서중마을, 그 뒤 오른쪽은 고금도이다. 호래비섬 오른쪽 뒤는 고마도이다.
해안관광로는 사내방조제 북쪽 출입구에서 끝나고 장고봉로가 시작된다. 장고봉로 앞을 가로지르는 길은 운주로이다.
왼쪽 방조제 출입구 기둥에 남파랑길 85코스 시작점이 붙어 있고, 오른쪽 길 건너편에 남파랑길 85코스 안내도와 사초마을 표석이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해안관광로는 끝나며 남파랑길은 직진하여 장고봉로를 따라간다. 왼쪽 호래비섬과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길은 운주로이다.
남파랑길 85코소 시작점 표지와 길 건너편에 85코스 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남파랑길은 방조제를 따라 길게 이어간다.
직진은 장고봉로, 오른쪽은 운주로, 남파랑길 85코스는 장고봉로를 따라 이어간다.
좌우의 길은 운주로, 건너편 해안관광로를 걸어와 장고봉로로 건너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