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란 말은 친근한 표현을 하는 것으로 반말(낮춤말)을 해도 되지만, 말하는 사람이 상대를 조금 높여서 조심하는 마음으로 예의를 차려 대접하는 표현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 즉, 선생이 학생에게, 동서 간에 윗동서가 아래동서에게, 형제 간에 형이 혼인한 아우에게 '자네, ~하게' 와 같이 쓰는 경우이다. 보통 장인·장모가 사위를, 윗사람이 손아랫사람을 예사낮춤으로 부를 때 자네를 사용한다. 40대 이상의 동년배들이 상대방을 부를 때도 자연스럽게 자네를 사용한다.
하지만 광주·전남 일대에서는 반대로 손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부를 때 사용하는 독특한 토박이 말이 ‘자네’다. 부부 사이에서도 많이 쓰는데, 남편이 아내에게 사용하는 경우가 많고, ‘형(오빠)이나 누나(언니), 고모, 이모, 삼촌’ 등에게 ‘허소체’와 함께 자네를 사용하는 점이 특징이다.
그러한 지역상의 차이 때문에 전남·광주 사람들이 서울에 가서 손윗사람에게 친근감을 표시하려고 ‘자네’라고 말했다가 뺨을 맞았다는 이야기는 우스갯소리만이 아니다. 말하는 쪽은 친근함의 표현인데, 듣는 쪽은 건방진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자네’라는 표현은 상당히 오래 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조선시대에는 영호남에서 두루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나주 임씨 가문의 문헌자료를 보면, 17세기 말 임영이라는 사람이 막내누나에게 보낸 편지 글에서 ‘자네’라는 표현을 썼다.
‘나더러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 함께 죽자 하시더니 어찌 나를 두고 자내 먼저 가시었소.’ 1998년 경북 안동의 묘에서 412년 만에 햇빛을 본 고성 이씨 집안 부인의 묘지에 묻은 편지 글에 나오는 구절인데. 발굴 당시 사별(死別) 남편을 그리는 절절한 표현 못지 않게 14번이나 나오는 ‘자내(자네)’란 호칭이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여기서 자네는 물론 남편이다. 최소한 임진왜란 이전에는 자네가 하대(下待)로 쓰이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런 용례가 지금도 광주·전남 지역에 흔적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여기서는 형·누나, 선배에게 자네라는 호칭을 예사로 쓴다. ‘자네 밥 먹었능가?’ 하는 식이다. 타지 사람들 눈에는 기이하지만 당사자들은 천연덕스럽다. 그러다 외지 생활하면서 한 번쯤 낭패를 겪고는 이 토박이 문법에서 멀어지게 된다. 이젠 40대 이상에서만 통용된다고 하는데 이 지역 특유의 눙치듯 정겨운 말씨 하나가 사라져가는 것이다.
사실 한국어에서 인칭 대명사, 그 중 2인칭만큼 까다로운 것도 드물다. ‘유(You)’ 하나밖에 없는 영어와 달리 너, 당신, 자네, 임자, 그대, 댁, 귀하… 등으로 다양한 건 좋다. 한데 막상 실생활에선 쓰기가 여의치 않다. ‘당신’만 해도 자네보다는 높임말이지만, 모르는 사람끼리 “누굴 보고 당신이라는 거야?”라고 한다면 비하의 의미다. 사무실에서의 ‘당신’에는 권위주의가 배어 있다. 낮춰 부르는 ‘자네’도 이젠 공적 공간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어느 국어학자는 이를 두고 ‘2인칭의 공백’이라 했다. 그러나 핵심은 공백이 아닌 여백이다. 우리말은 나이, 친밀도, 정황 등에 따라 다양한 무늬의 호칭이 있었고, 이는 인간관계의 여백을 채워가는 원천이었다,
결론적으로, ‘자네’라는 호칭은 우리나라 ‘표준’으로 인정하는 국립국어연구원의 해석대로 대세는 ‘친구나 아랫사람에게’ 하는 호칭이고, 역사적인 근거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전남.광주 지방에서 독특하게 쓰이고 있는 ‘선배나 윗사람에게’하는 호칭으로서의 용례는 점차 사라져가고 있는 표현으로 조심해서 사용해야 되는 표현인 것이다.
첫댓글 다 늦게 공부하게 만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