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모 일간지에 실린 "유전자조작 인간 20년 내 탄생가능"이라는 기사를 보면서 우리가 막연히 꿈꿔왔던 상상들이 현실로 이루어진다는 생각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던 적이 있다. 물론 동전의 양면처럼 생명공학의 발전이 각종 질병을 정복하고 인간의 수명을 연장하는 반면, 인간 존엄성을 위협할 수 있다는 반론이 제기되고는 있으나, 생명공학이 앞으로 우리 인류에 희망찬 청사진을 제시해줄 것이라는 견해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최근 인간유전자지도 완성을 계기로 각각의 유전자들이 갖고있는 기능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됨에 따라 인간유전자 관련 연구가 21세기 과학기술 연구의 핵심분야로 대두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염기서열에 대한 기초정보를 파악했을 뿐이며, 이제는 이 원재료를 입맛에 맞게 요리하는 작업이 남아있는 셈이다. 이 분야를 선점하는 나라가 바이오 강국으로 전 세계를 지배할 것이 다.
이처럼 인간 유전체 해독에 성공하면서 생명공학(BT)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는 바, 우리나라도 생명공학 육성을 위한 야심찬 계획을 마련 중에 있다. 과기부는 올해를 "생명공학의 해"로 선포하고 올해 생명공학 분야에 총 3238원을 투입, 집중 육성하기로 했으며 현재 세계 14위의 생명공학 기술수준을 2010년까지 7위권으로 높이는 "b-코리아"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한 올해 안에 인간과 동식물의 유전체 및 생물정보학 연구를 통합·관리할 "국가 유전체 연구센터"를 설립하고, 생명기술 연구의 도덕적 기준이 되는 생명윤리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국가적 차원에서 생명공학 육성에 나섰다는 소식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나 한낮 구두선에 그치지 않고 실효를 거두는 일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
미국이나 영국과 같은 선진국들은 일찍 이 생명공학의 중요성을 깨닫고 80년대에 불어닥친 생명공학의 붐을 꾸준히 이어왔다. 미국의 경우 제넨텍, 암젠과 같은 세계적인 바이오 기업들이 원천 기술을 이용한 각종 상품화에서 이미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미국은 NIH에서 향후 2년내 20만개의 SNP(단일염기다형성)발굴을 목표로 진행중이고, 일본의 경우 향후 2년간 10만개 내지 15만개의 SNP 발굴을 목표로 약 600억원을 투입하고 있으나 우리나라의 경우 인간 유전체 연구에 대한 투입예산이 160억원으로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인 데다가 2006년이나 되어야 SNP의 특허권을 겨우 100종 정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되어 지난 지놈 프로젝트와 같이 선진국의 뒤를 간신히 따라가는 형편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바이오 코리아"로 우뚝 서기위해 지금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첫째, 정부 지원을 과감히 늘릴 필요가 있겠다. 각 정부의 생명공학 투자비 규모를 비교해보면 99년도 미국의 생명공학 투자비가 20조원, 일본 3조원인 반면, 우리나라는 올 한해 3천2백억원으로서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함을 한눈에 알 수 있다. 투자 없는 결실을 기대할 수는 없다.
두 번째로 유능한 고급인력의 확보다. 최근 핵심 연구인력의 해외유출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어 기술공백은 물론, 첨단기술 유출의 우려마저 낳고 있다. 최근 외교통상부의 자료를 보면 능력 있는 고급두뇌들이 대거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으며 게다가 국비유학생의 5%이상이 유학기간이 끝난 뒤에도 귀국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생명공학 분야만 해도 현재 미국에만 박사학위 소지자 2000명 이상이 체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해외유학을 통한 두뇌유출도 상당히 심각하다. 이들이 고국을 떠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열악한 연구환경과 노력에 비해 턱없이 낮은 대우, 비전의 상실 등으로 꼽고 있다. 기술 선진국들이 두뇌유출 방지기금을 신설하고 해외유학 고급두뇌를 끌어들이기 위해 주택과 자녀교육비를 지원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최근 과기부가 해외 고급두뇌를 국내에 유치하기 위해 우수 외국 연구자 의 체류기간을 현재 2년에서 4년으로 늘리겠다고 했으나 이보다 중요한 것은, 해외로 유출된 우수인력을 다시 끌어들이고 현재 이 땅에 남아있는 과학자들이 더 이상 고국을 떠나지 않도록 과학기술의 장기적인 비전과 제도적인 지원을 마련하는데 있다.
마지막으로 선택과 집중의 전략이 필요하다. 선진국이 지금까지 해온 것을 뒤따라하는 불가피한 과정 이후에는 우리가 강점을 가지고 있는 분야를 선택하여 집중 연구·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 첫째 DNA 칩이나 질환동물 모델과 같은 기반기술의 개발과 두 번째, 기술 우위분야의 선정 및 틈새시장 발굴과 같은 전략적 목표 설정, 마지막으로 R&D를 위한 재원조달과 법규정 정비, 인력양성과 같은 인프라 구축이 중요하다. 이 삼두마차가 균형을 이루어 제대로 돌아가야 이 땅에 "바이오 코리아”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이다.
생명공학 분야는 거액을 들여 첨단공장만 지어 놓는다고 해서 그 즉시 세계 정상의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우수한 결과물을 얻어내는 데는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의욕이 앞선 나머지 너무 조급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지금의 노력과 열정을 꾸준히 유지해나간다면 한국이 바이오 강국으로 세계에 우뚝설 그 날이 올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