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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찾는사람들
이창학 2003/03/27
생각해 보면 참 오래 전의 일이다. 이젠 20년이 다 되어가는. 우리 노래가 음반으로 나온다는 기대감에 젖어 잔뜩 흥분해서 매달리던 아현동 고개 시장 어귀의 애오개 소극장에서의 즐겁기만 했던 연습시간들. 신문로 뒷편 고려병원 골목에 자리 잡고 있던 서라벌 레코드사의 지하 스튜디오. 김민기 선배와의 첫 조우. 난생 처음 보던 커다란 녹음 시스템에 겁을 잔뜩 집어먹었던 우리. 그리고 처음 보았던 전문 세션 키보드 주자 김광민의 현란한 음악성에 내질르는 감탄사. 그리고 문승현 선배의 열정, 김민기 선배의 은근한 카리스마. 이런 단상들이 18년전 '노래를 찾는 사람들' 1집 작업의 기억 속에서 꾸물꾸물 살아 온다.
당시 대학 4학년에 재학 중이던 난 졸업한 서울대 메아리 선배 문승현의 호출을 받는다. 서울대 메아리, 이화여대 한소리, 고려대 노래얼, 성균관대 소리사랑 선배들로 이루어져 있던 노래모임 '새벽'이 공연을 준비한다면서 기타 반주를 부탁 받았다. 2주일동안 연습하고 공연만 하면 끝난다고 알고 합류한 '또다시 들을 빼앗겨' 공연이었다. 선배들의 엄명이라 거절한다는 기색도 못 비치고 시키는 대로 열심히 했다.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선배들이 공연과 함께 준비하고 있었던 음반 작업에서 합창을 하는데 목소리를 보태주는 엄청난(?) 역할을 부여 받아 참여하게 된 작업이 바로 '노래를 찾는 사람들 1' 음반이다.
김민기 선배의 동요 뮤지컬 '개똥벌레 이야기'를 음반으로 제작하려던 기획이 단지 김민기의 작품이라는 이유로 심의에 탈락하게 되어 녹음까지 마친 채 사장된다. 공포의 5공 시대의 이야기다. 이를 만회하기 위한 작업으로 김민기 선배가 노래모임 '새벽'에 음반 기획을 제안한 것이 이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시장에서 판매될 음반을 위해선 심의 통과가 문제였다. 공연윤리 위원회의 검열의 칼날이 퍼렇던 시절이었고, 김민기 선배의 뼈 아픈 경험이 바로 전에 있어서 더욱 그랬다. 일차적으로 가사 심사를 통과해야 했다. '새벽' 선배들이 창작한 노래 중에서 심의에 문제가 안 될 만한 곡은 모두 뽑아 보았다. 3배수 정도 올린 곡 중에서 가사 심사를 통과한 곡이 음반에 실린 9곡이다. 후일 안치환이 노스탤지어 음반에 실었던 '하얀비행기', 김광석이 불렀던 '나의 노래' 모두 가사 심의에서 제외되었던 노래들이다. 그나마 '그루터기'는 '우리의 피가'라는 가사를 '우리의 땀이'로 바꾸는 편법을 쓰기도 했고.
애오개 소극장 한쪽 구석에서 연습하던 얼굴 면면히 떠오른다. 표신중, 문승현, 조경옥, 김제섭, 정재영, 김보성, 노승종, 박미선, 설문원, 김광석, 김정현, 김삼연.. 잊어버린 사람이 있었던가? 장난끼 어린 김민기 선배의 핀잔. 연습이 끝나고 함께 하던 술자리들..
'그루터기' 멜로디 트랙을 녹음할 때였다. 마이크 앞에선 김광석, 김삼연, 나 이렇게 셋은 트랙 녹음이란 어마어마한 기술(?) 앞에서 잔뜩 주눅이 들었었다. 제일 막내였던 우릴 못마땅한 듯 쳐다보는 선배들의 눈초리도 부담이었고. 마이크에 들어가는 자기 목소리를 찾지 못해서 음은 계속 떨어지고. 시간만 가고. 반주가 나오는 해드폰을 끼였다가 빼었다가 온갖 가능한 방법을 다 동원해도 노래는 엉망이었다. 비상 수단이 필요했다. 바깥에서 지휘를 하고 있던 문승현 선배가 들어와서 해드폰을 끼고 뒤에 서서 멜로디음을 가이드 해 주었다. 승현이 형이 불러주는 음만 듣고 우린 허공에다 노래를 불렀다. 그렇게 녹음을 겨우 끝냈다.
'일요일이 다가는 소리'의 발랄한 비트를 위해 바깥에서 열심히 재롱 만점의 막춤을 추며 웃음을 자아냈던 김제섭 선배의 끼가 그립다. '내 눈길 닿는 곳 어디나'에서의 마지막 남자 코러스는 녹음이 다 끝난 상태에서 메아리 동기 였던 권재중을 수배해서 불러와선 마지막 작업으로 다시 넣었다. 권재중의 미성이 꼭 필요하다는 문승현 선배의 고집 때문에. 온갖 곡절이 있은 후에 녹음은 끝났지만, 난 이 음반이 어떤 자켓과 어떤 이름으로 나올 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후에 구멍이 중간 중간에 뚫려 있는 초등학교 졸업사진의 자켓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LP 음반 '노래를 찾는 사람들'.. 타이틀은 김민기 선배의 아이디어 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개인적으로는 음악 활동 참여해서 처음 개런티를 받았던 작업이다. 아직도 기억난다. 연우무대 사무실에 들려서 승현이 형으로부터 15,000원의 개런티를 받았었다. 물론 술값으로 바로 날리고 말았지만. 그 음반이 다시 세상에 모습을 보이려고 한다. 기억을 더듬다 보니 정말 오래 전의 일이었음을 깨닫는다. 우리 모두가 활기차고 꿈에 젖어 살던, 가끔은 돌아가고픈 고향 같았던 시절. 갑자기 지금은 고인이 되어버린 광석이가 무척 보고 싶어진다.
글쓴이 : 이창학 20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