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 (영상물 내지 해설 중 발췌)
바흐는 흔한 재료를 어머니의 요리 솜씨처럼 자신의 음악 속에 집어넣어 얼마든지 뛰어난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 같이 매우 지적인 작품을 작곡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바흐의 전기를 처음으로 저술한 요한 포르켈의 기록에 따르면, 대가족이었던 바흐 가족은 식구들이 모두 모여 가족 파티를 열 때마다 언제나 예의를 갖추고 찬송가 합창부터 시작했다. 사실, 바흐의 가족 중에는 교회에 소속된 전문 음악인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점잖게 시작된 파티는 잠시 뒤 유쾌한 농담과 장난기 넘치는 분위기로 바뀌고, 남자들이 흥에 취해 여러 가지 선율을 섞어 익살스럽고 세속적인 노래들을 부르기 시작한다. 이른바 '쿼들리벳(quodlibet)'이라고 하는 유머러스한 혼성곡인데 즉흥적으로 화성을 만들어 부르는 노래이다. 쿼들리벳이라는 이름은 라틴어로 '좋을대로(whatever)'라는 뜻에서 비롯되었다.
쿼들리벳은 원래 두 개 이상의 두루 알려진 곡조를 대위법적으로 교묘하게 짜 맞추어 만든 가벼운 느낌의 작품을 가리킨다.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에서 마지막 30번 변주는 바로 이 기법으로 작곡되었다. 한 시간이 넘는 정중한 식사 끝에 바흐는 쿼들리벳을 양배추와 무청 요리처럼 살짝 꺼내 놓는다. 1741년 뉘른베르크에서 바흐의 친구 발타자르 쉬미트가 출판한 초고에는 이 곡의 내용과 작곡 목적을 알게 해주는 자세한 설명이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 '2단 쳄밤로를 위한 여러 개의 변주를 가진 아리아로 구성된 키보드 연습, 폴란드 궁정과 작센의 선제후 궁정 악장이며,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 성가대의 지휘자이자 악장인 요한 세바스찬 바흐가 음악 애호가들의 원기 회복을 위해 작곡하다.'
포르켈에 따르면, 이 곡이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까닭은 불면증으로 고생하고 있던 바흐의 후원자 카이저링크 백작의 요청에 의해 이 곡을 작곡했고, 백작의 전속 쳄발로 연주자이자 바흐의 제자였던 '골드베르크'에게 연주하도록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당시 골드베르크의 나이가 14세에 불과했기 때문에 이 이야기는 신빙성이 떨어진다. 그뿐만 아니라, 대비감이 뛰어난 기념비적인 이 작품은 유머와 재치가 넘치고, 때로는 환희에 찬 춤곡처럼 신나는 곡이기 때문에 한밤에 수면을 위해서라기보다는 한낮에 활력을 얻기 위한 음악으로 알맞다.
거대한 구성과 긴 연주시간으로 볼 때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18세기에 그 어떤 작품과도 비교 불가였지만, ...(이하 베토벤 <디아벨리 변주곡>의 설명이 이어진다)
--------------------------------------------------------------------------------------
<출처 : 2010년 1월 13일자 발행 네이버캐스트, 글 노태헌>
[명곡 명연주]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J.S. Bach, Goldberg Variations BWV 988
특성 : 아리아 - 30개의 변주 - 주제(아리아)라는 3개의 틀로 구성
정보 : 1741년 처음 출판되었고 클라비어 연습곡 시리즈의 4번째 작품
아마도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건반악기를 위해 작곡된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긴 길이를 갖는 작품일 것이다. 반복하지 않고 전곡연주에 걸리는 시간은 약 50분 정도가 걸리며 건반악기를 위해 작곡된 단일 작품으로는 유례없는 긴 연주시간과 큰 형식을 가지고 있다. 바흐가 창작한 마지막 건반악기를 위한 작품답게 바흐는 자신의 모든 작곡 기교를 이 곡에 쏟아 부었다. 물론 [평균율 클라비어 모음곡]이라는 거대한 작품이 또 있기는 하지만 [평균율 클라비어 모음곡]이 개별 모음곡 형식을 띠고 있는데 비해, 30개의 변주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어떠한 변주도 따로 떼어놓고 볼 수 없고, 하나의 작품으로 논리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바흐의 모든 건반악기 작품들 중에서도 길이에 있어서만큼은 가장 거대하다고 말할 수 있다.
카이저 링크 백작의 불면증 치료를 위해 작곡된 음악
널리 알려져 있듯이 이 곡의 창작과정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독일 드레스덴 주재의 러시아 대사였던 헤르만 카를 폰 카이저링크 백작은 바흐가 작센 공작의 궁정 음악가가 되도록 많은 도움을 준 인물이었다. 1741년 경에 카이저링크 백작은 업무를 보기 위해 라이프치히에 머물고 있었다. 당시 백작은 심한 불면증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백작은 유명한 음악 애호가였고, 고트리프 골드베르크라는 클라비어 연주자를 고용하고 있었는데, 매일 밤 골드베르크에게 음악을 연주시켜 잠을 자보려고 해보았다. 그러나 불면증은 좀처럼 낫질 않았다. 카이저링크 백작은 불면증을 치료하기 위해 수면제 대용으로 쓰일 수 있는 곡을 바흐에게 의뢰했고, 바흐는 자신이 궁정 음악가가 자리를 얻을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준 백작에게 보답하는 마음으로 이 곡을 작곡해 보냈다. 실제로 카이저링크 백작은 이 작품에 대하여 깊은 애정을 보였고 “나의 변주곡”이라고 부르며 골드베르크에게 자주 연주를 주문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거금의 작곡료를 지불해 재정적 어려움에 처해있던 바흐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작품 제목의 유래는, 눈치챘을지도 모르지만, 골드베르크의 이름과 관련이 있다. 1742년 바흐가 이 작품을 최초로 출판했을 때에는 [클라비어 연습곡집]의 4부로 출판했으며, 이때 곡의 제목은 [2단의 손건반을 가진 쳄발로를 위한 아리아와 여러 변주]라고 붙어 있었다. 표지의 어디에도 골드베르크나 카이저링크 백작의 이름은 적혀있지 않았지만, 이후 카이저링크 백작이 기용했던 젊은 연주자 고트리프 골드베르크의 이름에서 제목을 가져오게 되었다.
수학적으로 치밀하게 계산된 작품의 건축적 구조
바흐는 이 작품의 구조를 주제(아리아)- 30개의 변주 - 주제(아리아) 라는 3개의 틀로 구성했다. 아리아를 뺀 30개의 변주는 단순히 아무런 이유없이 나열된 것이 아니라 놀라울 정도로 치밀한 수학적 논리를 통해 서로 단단하게 결합되어 있다. 우선 첫 곡이자 마지막곡인 아리아는 수미쌍관을 이루며 곡의 처음과 끝을 장식한다. 아리아는 사라방드(느리고 우아한 스페인 춤)풍으로 되어 있으며, 주제는 1725년 바흐가 작곡한 [안나 막달레나 바흐를 위한 클라비어 소곡집]의 2권에서 가져온 것이다. 베이스 라인을 이루는 파사칼리아(바로크시대의 대표적인 변주곡) 스타일의 주제가 이후 각각의 여러 변주에서 모습을 바꾸어 지속적으로 나타나며 작품을 종횡으로 꿰매고 있다. 곡의 첫 문을 여는 도입부이자 중심적 주제, 그리고 완결된 마무리를 짓는 가장 중요한 악구가 바로 이 아리아다.
아리아로 첫 문을 연 32개의 변주곡 전체는 16번 변주곡을 중심으로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뉜다. 16번 변주곡은 프랑스풍 서곡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서곡으로 명시되어 있는 만큼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크게 두 개의 부분으로 나누고 있는 역할을 한다. 전반부를 마무리하고 후반부의 문을 여는 역할인 것이다. 동시에 스스로도 2개의 형식으로 나뉘어진 특성을 보인다. 또한 30개의 변주들은 단순 나열이 아닌 3개의 곡이 한 조가 되어 10번 배열되며 (3x10 = 30), 3의 배수를 이루는 변주들(3,6,9...)은 카논 형식으로 되어 있어 변주의 흐름에 변화를 주고 있다. 이 카논은 3, 6, 9 변주곡으로 진행될 수록 음정이 1도씩 증가해 27번 변주에 이르면 9도까지 증가하게 된다. 그러나 바흐는 마지막 30번 변주인 ‘쿼드리베트(quodlubet)’ 즉 ‘자유롭게’라고 지시되어 있는 곡에서 30번 변주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지켜왔던 수학적 형식을 일순간에 무너뜨린다. ‘쿼드리베트’는 16~17세기에 유행한 음악형식으로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선율을 재미있게 결합해 하나의 작품을 만든 것을 뜻한다.
바흐의 인간적이고 해학적인 면모가 숨겨진 마지막 부분
3의 배수에 해당하는 변주곡에서 절묘하게 음정을 1도씩 쌓아 놓았던 바흐는 마지막 곡에서 엄격한 형식의 틀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처럼 규칙을 일순간에 무너뜨려 해방감을 안겨준다. 이것은 정교한 퍼즐쌓기와 허물기의 유희와 유사하며, 바흐의 인간적이고 해학적이 면모를 드러내는 음악적 장치이기도 하다. 또 30번 변주에서는 당시 유행했던 민요 [양배추와 무청], [긴 세월동안 만나지 못했네]와 같은 독일의 민속적 선율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 민요들은 바흐의 집에서 열렸던 파티 등의 모임에서 사람들이 즐겨 불렀던 노래라고 알려져 있다.
이렇게 유기적으로 구성된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그 구성의 복잡함으로 인해 카이저링크 백작의 자장가용으로 작곡되었을 것이 아니라는 주장도 제기되어 왔다(실제로 위의 작곡 일화는 여러 음악학자들에게 의심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이렇게 거대한 작품이 단순히 즉흥적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치밀한 구도 속에서 작곡된 바흐의 역작이라는 이유에서이다. 바흐는 이 완결된 변주곡을 통해 하나의 수학적 구조 속에 일관된 음악적 스토리를 담아내는데 성공했다. 이 완전무결한 구조의 변주곡은 완벽한 형식과 아름다운 선율미 모두를 지니고 있으며, 이런 이유로 서양 음악사의 그 어떤 변주곡과도 구별되는 경이로운 독창성과 개성을 가진 곡이 되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05.13 05: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