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1) 베트남 은 1887년부터 프랑스 식민지였다. 그런데 일본은 프랑스의 식민지 행정기구와 식민지 출신 관료를 제거하고, 1945년 3월 10일 바오 다이(Bao Dai) 황제의 이름으로 프랑스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했다. 이런 베트남의 독립은 일시적인 것이었지만 이는 해외 식민지에 대한 프랑스의 통제를 약화시켰다.
이 시기에 베트남 공산당의 첨병인 베트민(Viet Minh)은 호치민(Ho Chi Minh)을 일종의 임시정부와 같은 성격을 지닌 민족해방위원회(NLC)의 주석으로 선출하였다. 일본의 패전이후 베트민은 1945년 8월 26일 하노이를 점령하였고, 바오다이 황제는 퇴임하면서 민족해방위원회를 지지하며 새로운 정권에 정통성을 부여하였다. 이에 1945년 9월 2일 호치민은 베트남의 독립과 베트남 민주공화국의 수립을 발표했다.
일본의 항복 이후 중국 국민당 정권은 일본의 항복을 관리한다는 명분아래 북부베트남을 점령하였고, 영국과 프랑스는 남부 베트남을 점령하였다. 1946년 3월 6일, 호치민은 민족해방위원회와 베트남 정부 수립에 필요한 시간을 벌기 위해 프랑스 강화조약을 체결하였다.
이 조약에서 베트남은 "정부와 의회, 군대, 그리고 재정권을 가지고 있는 주권국가"로 승인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베트남 남부 지역에는 또 다른 국가인 코친차이나(Cochinchina) 공화국 수립이 선포되었고 중부지역은 베트민의 지배를 받지 않는 자치 구역으로 선언되었다.
이후 전쟁이 발발하였고 1954년 7월 21일 베트남은 북위 17도선 이북의 공산주의자들과 17도선 이남의 친 서구 정부로 분단 되었다. 베트남인들은 일본에 의한 프랑스로부터의 독립일인 1945년 3월 10일이나 베트남을 주권국가로 승인한 프랑스와의 강화조약을 체결한 1946년 3월 6일, 북위 17도선을 기준으로 남북으로 분단된 1954년 7월 21일을 기념하지 않고, 그들의 독립을 향한 오랜 투쟁을 성공적으로 출발한 날인 1945년 9월 2일을 베트남의 국경일로써 기념하고 있다.
위와 같이 일정 기간 진행된 사건에 대한 세계 각국의 태도 역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그 출발일(촉발일)을 기념일로 지정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그 완성일(종료일)을 기념일로 정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개천절이바로건국기원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