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가 왜 여기서 나와( 마르코 5,1-27)
마귀들과 돼지 떼라는 마르코 5,1-20의 본문은 언뜻 알아듣기 난해하다. 더러운 영, 군대, 마귀 떼의 출몰과 몰살 등이다. 여러 성서 전문가의 다양한 해석이 있는데, 사회정치적인 부분으로 해석도 있다. 이것은 예수님의 입장 일수도 또는 마르코 저자가 해석학적 입장이기도 할 것이다.
돼지가 왜 여기서 나와>
구약성경은 돼지를 부정한 짐승으로 이해하고 규정했다. “돼지는 굽이 갈라지고 틈이 벌어져 있지만, 새김질하지 않으므로 부정한 것이다. 이런 짐승은 먹으면 안 되고, 그 주검에 몸이 닿아도 안 된다. 그것들은 너희에게 부정한 것이다(레위 11,7-8).” 유대교와 이슬람교가 돼지고기를 멀리하게 되는 이유다. 그리스 제국 시대 황제는 유대인을 박해로 돼지고기를 강제로 먹이는 고문과 박해를 시도하기도 했다(2마카베 6,18).
돼지로선 억울한 일이다. 어찌하여 이렇듯 부정한 짐승으로 추락했을까? 생활 환경에서 연유한 것을 종교문화로 규정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가나안 지방에는 원래 돼지가 없었다. 이방인이 들여온 짐승이다. 게다가 유목민이 키우기에 적합한 짐승도 아니었다. 유목민은 풀과 물을 찾아 수시로 떠돌며 살아야 한다. 이런 생활 환경에서 돼지사육은 적합하지 않다. 소와 양은 풀을 먹지만 돼지는 곡식을 먹는다. 소처럼 경작에 이용되는 것도 아니고 염소나 양처럼 젖을 주는 것도 아니다. 돼지는 땀샘이 거의 없기에 체온조절이 안 된다. 더운 날씨엔 배설물 더미에 뒹굴어서라도 열을 식혀야 한다. 더러운 짐승으로 낙인찍힌 이유다. 돼지는 뜨거운 날씨 탓에 고기는 쉽게 상했다. 이방인 지역에서 들여온 동물이기에 괄시를 받은 셈이다. 개와 함께 이방인을 상징하는 경멸적 용어로 사용했다. 이런 복합적인 이유로 부정한 짐승으로 판단되고 식용과 접촉이 금지된 것으로 보고 있다.
두 가지 영靈>
세상 사람들은 크게 부유로 악령에 따라 살거나 성령에 따라 살아간다. 이것은 고금동서 모든 인간에게 해당된다. 다만 예수님은 참 하느님이며 사람으로 예외 된다. 예수님은 성령과 삼위일체 관계로 존재하고 활동하시는 분이시다. 성모님은 예수님과의 관계 때문에 죄악에서 제외되고 보호되었다고 한다. 악령은 유다인 공동체에도 존재한다. 따라서 예수님은 당신 복음 선포와 활동 초입, 먼저, 동족 유다인 회당에서 악령을 제압하고 악령에 시달리는 유대인을 고쳐주셨다(마르 1,31-30).
보편 메시아*보편 구원>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와 활동 범위는 유다인 공동체 지역에서 이방인 지역으로 확대된다. ‘게라사’라는 지명이 이를 암시한다. 게라사( 현 쿠루쉬)로 마태오는 ‘가다라’라고 한다. 게라사는 데카폴리스 가운데 하나로 갈릴래아 호수 남동쪽 10KM 지점에 있었다. 데카폴리스는기원전 332년에 그리스 제국의 알렉산더에 의해 처음 건설되었고 다음으로 로마제국이 거점 도시화 하였다.
본문에는 악령들린 주체가 둘이다. 개별자와 집단이 나온다. 무덤에서 나온 개별자는(5,9) 악령 집단 전체(5,9) 종속되기도 하고 일탈하기도 한다.(5,17-20) 전자는 구원되고 후자는 몰살로 근절된다. 후자인 집단의 이름이 군대(5,9)이다. ‘군대Region’란 통칭은 많은 수의 군인으로 이루어진 집단을 말한다. 그런데 유다인들은 비록 로마제국에 지배를 받고 있지만, 역으로 그들을 경멸하고 조롱하며 “군대Region=돼지”와 비유하며 지칭하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일본을 ‘왜놈, 쪽바리’ 중국인을 ‘때국놈’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악령 집단은 활동 영역인 ‘게라사 밖’으로 쫓아내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청하였으나 결국 돼지떼 2,000마리는 갈릴래아 호수에 몰살되고 말았다. 예수의 신적 권능과 보편 구원이 가다라에서도 드러난 것이다. 악령을 퇴치받은 사람은 제자단에 합류되기를 원했으나, 예수님은 그를 가다라 지역을 포함한 데카 폴리스 전역에 복음 선포의 사명을 맡겼다.
입력:최 마리 에스텔 수녀/2024년 1월 31일 PM 14:15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