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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화=망부석의 유래◈
절개 굳은 아내가 외지에 나간 남편을 고개나 산마루에서
기다리다가 만나지 못하고 죽어 돌이 되었다는 설화.
망부석의 유래설화로,
아내가 죽어서 돌이 된 것이 아니라 자연석인 돌에서 기다려 그 돌에 망부석이라는
이름이 붙은 경우의 설화도 이에 해당된다.
대표적인 설화는 신라시대 박제상(朴堤上, 또는 金堤上)의 아내가
치술령에서 죽어 망부석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눌지왕 때 고구려에 볼모로 잡혀간 왕제(王弟)를 구해 온 박제상은 집에도 들르지 않고
바로 일본에 건너가 또 다른 왕제를 구해 보낸 뒤 일본에서 신라의 신하임을 고집하다 죽는다.
그의 아내는 일본에 간 남편을 기다리다 죽어서 망부석이 되고,
그 곳 주민은 부인을 칭송한다.
박제상의 부인은 죽어서 치(審)라는 새가 되고 같이 기다리다 죽은
세 딸은 술(述)이라는 새가 되었다는 전설도 있고,
이들 모녀가 치술령신모(審述嶺神母)가 되었고 이에 주민들이
사당을 지어 모셨다는 기록도 있다.
엄밀히 말해서 사람이 돌로 변한다는 화석(化石) 모티프는 현실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돌’이라는 단어에는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찬양받을 만한 기념물이라는 뜻이 있다.
이러한 돌로 후에 인공으로 기념비를 세우거나 죽은 장소에 있던 자연석을
기념하는 대상물로 삼게 되면,
그 곳 주민은 망부석(기념비나 자연석)을 대할 때 훌륭한 부인을 대할 때와 같은
경건한 존경심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줄이면 바로 사람이 죽어 망부석이 되었다는 화석(化石)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부인이 죽어 새가 되었다는 〈치술령망부석전설〉에서의
새의 의미는 일본에 건너간 뒤 소식이 없는 남편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새가 되어 훨훨 날아 바다를 건너가고 싶은, 살아서의 공간을 극복하려는 의지이다.
부부의 만남이 산 몸으로는 불가능하므로 죽은 뒤에 새가 되어 소원을 푸는 것이니,
‘이 몸이 새가 된다면’ 하는 살았을 적의 소원이 죽어서 실현이 되었다는,
죽음을 초월한 부부의 사랑을 뜻한다.
마찬가지로 새가 되어서라도 아버지를 만나고 싶은 소원 때문에 딸도 새가 된 것이다.
경상북도 월성군 외동면의 치술령 아래에 이들 새가 살았다는 은을암(隱乙庵)과
위패를 모신 당(堂)이 있다.
오랜 기념정신은 망부석으로, 죽어서라도 만나겠다는 의지는 새로,
주민의 부인에 대한 존경심과 신앙심은 산신으로 나타난 것이다.
전라북도 정읍시 정읍사공원에 있는 망부석은 아내가 장사를 나간 남편을
기다리던 곳을 기념한 돌이며 여기에 〈정읍사 井邑詞〉
노래와 이 노래를 이야기로 꾸민 전설이 있는데, 이것도 오랜 기념정신을 뜻하는 것이다.
경상북도 영일군의 〈망부산(望夫山)솔개재전설〉은 신라 말 경애왕 때
소정승(蘇政丞)이 일본에 사신으로 가 돌아오지 않자
부인이 산에 올라가 기다리다 지쳐 죽어 산 이름이 망부산이 되었으며,
부인을 기념하는 뜻에서 사당인 망부사(望夫祠)를 짓고 같이 기다리던 개와 말의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는 내용으로, 〈치술령망부석전설〉의 변형이라 하겠다.
다만 망부석이 망부산으로 규모가 커진 것이 다르다.
고기를 잡으러 갔거나 혹은 중국에 사신으로 간 남편을 기다리다가 아내가 떨어져
죽었다는 서해안의 〈낙화암전설 落花巖傳說〉도
이 망부석설화의 변형으로 보인다.
역사적인 사건을 한 여인이 정절을 통해 고통 속에 소화하고
후세 주민은 이를 기리는 내용인 망부석설화는 한국인의 의식을 단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참고문헌≫ 三國史記, 三國遺事, 嶺南의 傳說(柳增善, 螢雪出版社, 1971)
>> 자유인산악회/한문희총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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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전문 전설의팀: 자유인산악회
첫댓글 ㅋ오랜만에 근무하시네요
중국여행은 잘 다녀오셨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