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냄새
이 미화
지금 나는 묘한 환각에 빠져 있는 것과도 같다.
목에서 치밀어 올리는 알키한 흙냄새를 꺼내어 확인을 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고향이라는 애정 어린 낱말이 속살을 만지는 감각으로 흙냄새가 구름처럼 내 영혼을 부비는 희열로 맴돌고 있다.
축제준비를 하려고 새벽에 나서서 동네에 들어와 보니 그새 호영이 동생은 바지를 아무렇게나 벗어 던지고 사라졌다.
어찌 우리가 온 낌새를 알아차리고 동원이 오라범이 대문에 들어오며 교수님께 벙거지를 벗고 인사를 올리며 반가운 얘기를 전한다. “시방 새벽에 일어나 돼지를 한 마리 사가지고 왔는데 마을회관에서 잡아야 한다”고 진지하다. ‘에구 술만 안 먹으면 양방인데’ 술만 들어가면 말도 꼬이고 맘도 꼬여서 조절이 안 되니 딱한 일이다.
‘이집 주인은 새벽부터 어딜 가구 없느냐’고 물었더니 무대를 만들 자리에 풀을 깎으러 제초기 메고 나가는 것을 보았단다.
숲거리에 축대를 쌓는 일이 태풍이 거퍼서 오는 바람에 늦어져 길 위에 무대설치를 해야 했다. 부잣집 귀한 아들이라서 그런 일은 하지 않을 줄만 알았는데 도회지 속에 있는 것보다 여유로움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형 우리 동네 문화축제가 있어 접대 버섯 매상 한 돈 있잖여? 두둑히 넣고 와도 괜찮여 허허허 농담이고, 꼭 와” 어젯밤 늦게까지 오늘 있을 일을 단도리 하였을 것인데, 꼭두새벽부터 잠이 깬 모양이다.
숲거리의 질척질척한 질펀한 흙, 길옆으로 제 질로 다 커버려 비를 맞고 누운 풀들을 제초기로 방금 밀어내 척척한 습기를 먹은 근처를 맴돌며 작은 모기떼들이 날아 다닌다.
익지 않은 감이 벌레가 먹어 길거리에 떨어져 터졌다가 말라붙은 자욱에 감물이 배어 있다.
푸름이 지쳐가는 무거움으로 마을을 둘러싼 산은 짙은 녹음 냄새로 목으로 꾸역꾸역 넘어가는 것만 같다. 숲 아래 산에는 이맘때면 싸리버섯, 오이꽃버섯, 갓버섯을 따던 자리를 금방이라도 가보고 싶다. 야릿한 버섯냄새라도 맡아보고 싶어서....
응도네가 살다가 이사 간 자리에는 마을 가운데인데도 고추밭이 되었고, 골목길이 사라졌다
학습관인 사랑채 앞에서 짖어대던 개는 내가 치워달라고 보채는 바람에 조용한 두 마리만 남겨놓고 두 마리는 온데 간데가 없다. 질척하게 밟아놓은 발자욱은 보는 것만으로도 냄새가 코에 배어있다.
숲거리 축제를 주제 넘게도 이리왈 저리왈 선두에서 추단을 하면서도 내 꼬리에 붙은 도캐비 씨가 매달려 있는 것만 같아 집중하는 것을 방해를 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살고 있던 집에 불이 나서 한 켠에 임시로 마련해놓은 조립식 거처에서 어찌 어찌 하다 보니 사년을 지내고 있다가 근근히 집을 지어 이십리는 떨어졌을 근동으로 이사를 한 언니가 생각나서 어지럽혀진 집을 들여다 보았더니 공연한 짓을 했나보다. 텃밭에는 언니가 모종해놓은 열무 잎이 야실하게 올라오고 있다. 손으로 이랑에 흙을 쥐었다 놓았다. 언니가 만지고 간 자욱을 흙냄새로 맡아보는 것이다.
갑자기 꼭대기 절집에서 염불하는 목탁 소리가 심란하다. 아마도 얼마 전 머리를 깍은 방죽골 살았던 현분이가 남편과 이혼하고 절집에 들어와 지내다가 주지의 권유에 빠져 삭발을 하였다 하더니 그때 이후 염불하는 녹음기는 계속 돌아가고 있다고 숙덕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이런 잡다한 염려가 떼어낼 수가 없다.
안골 언덕이 현주네 집 지붕 처마 옆으로 보인다. 그곳에는 전시회의 작품, 민화의 연꽃 병풍이 마루에 가득 채워진 집 주인이었던 고종 오빠의 산소가 있다. 세월을 따라 텅비어가는 고가(故家)를 오늘 하루만이라도 이렇게 호화스럽게 예술 작품이 들어차 있는 것을 반가워하시며 고맙다고 손을 내미시는 것만 같다. 크게 손볼 것도 없이 공간을 채워서 작품들이 전시 되고 보니 근사한 도시의 커다란 전당 보다 자연스러움이 묻어난다.
뱅뱅뱅 동네를 뱅뱅이질을 하듯 돌고 돌아서 어렸을적에 숨박꼭질, 깡통차기 하는 것보다 몇 곱절을 밟고 다녔더니 발가락 사이에 콩만한 물집이 생겼다.
그래도 동네 입구에 꽃 화환이 두 개가 떡, 하니 버티고 있으니 동네가 훨씬 고급스러워 보인다.
내가 유년시절 이었을 때 장정이 되어 있었던 재경 향우회 회장님, 안산 날망의 저녁놀을 받으며 아득히 보이던 커다란 나뭇지게를 지고 무거운 걸음을 떼시던 영상이 흙냄새로 떠오르는데, 서울에서 성공하여 이렇듯 환한 꽃 화환을 보내 주셨다. 한 반에서 공부를 제일 잘하던 금동이 는 책보를 둘러메고 필통을 떨그럭 거리며 원남계 까지 이십리를 걸어 언제든지 제일 일찍 학교에 오는 부지런쟁이였는데 부여 부군수가 되어 친구를 잊지 않고 향기 가득한 화환을 보내주었으니 아마도 그 친구는 장자골의 흙냄새를 지금쯤 흠흠거리며 그리워 하고 있을 것이다.
축제의 하루를 보내기 위해 몇 날을 장자골에서 보내고 내 몸에는 흙냄새가 배었다.
숲거리에 촛불을 밝히며 축제를 보내고 난 이후 눈에 아른 아른 흙 냄새 소리를 듣는다.....
첫댓글 선생님의 열정적인 고향 사랑이 많은 사람들을 하나로 만들었습니다.
그 열정과 사랑이 있는한 장자골에는 무지개빛으로 가득할 것 입니다.
선생님 건강하시고 힘내세요.
고향을 사랑하시는 선생님의 열정 대단하십니다.
장자마을에 고향분들은 선생님이 계서서 든든하시겠습니다.
정말 수고가 많았어요, 글도 많이 고와지고...버드나무 축제는 새로운 삶을 만드는 게기가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