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명기 28:58-68
찬송가 369장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오늘 말씀은 신명기 28장 마지막 부분으로 하나님의 저주를 요약합니다. 말씀, 특히 오늘 말씀은 사실 우리 내면에 갈등을 일으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주 편안하게만 들린다면 완전히 말씀대로 살고 있거나, 아니면 완전히 말씀을 무시하거나 두 가지 중 하나일 것입니다. 사실 많은 경우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불편함과 긴장감을 일으킵니다. 허영의 시장과 같은 이 세상을 살아가며 거기에 익숙해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숨 막히는 듯한 압박감을 받고 때로는 절대 그럴 수 없다고 외치기도 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그리 마옵소서 외쳤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합니다. 그 과정은 절대로 아픔 없이, 저항 없이 이뤄질 수 없습니다. 말씀은 우리의 죄악 된 본질을 가감 없이 열어 헤쳐 우리의 실상이 어떠한지, 하나님 없는 우리의 결말이 어떠할지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특히 신명기 28장은 처음 14절을 제외하면 우리에게 그러한 압박감과 부담감을 끊임없이 지웁니다. 마치 신명기 28장 초반의 하나님과 중후반의 하나님은 전혀 다른 분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오늘 말씀을 살펴보며 이 갈등이 어떻게 해소될 수 있는지 살펴보고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모든 질병과 재앙(58-62)
(58-59) 네가 만일 이 책에 기록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라 하는 영화롭고 두려운 이름을 경외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네 재앙과 네 자손의 재앙을 극렬하게 하시리니 그 재앙이 크고 오래고 그 질병이 중하고 오랠 것이라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고 영화롭고 두려운 이름을 경외하지 않는 자에게 임할 저주의 결론부입니다. 15절 이하에 드러나는 하나님은 마치 우리를 저주하시고 벌주시기 위해 상시 대비를 마치신 분처럼 보입니다. 어디 한 번 내 말만 듣지 말아봐라. 그러면 언제라도 즉시 너에게 온갖 저주를 내리겠다고 벼르고 벼르시는 분 같습니다. 하지만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이 말씀이 고대의 언약 조문과 유사하다는 사실입니다. 창세기 15장에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께서는 확장된 방식으로 아브라함의 후손들과 언약을 맺으십니다. 그리고 이 언약에는 양편이 언약을 지켰을 때의 혜택과 더불어 언약을 어겼을 때의 처벌조항이 함께 기록되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불이익이 없는 언약은 사실 언약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언약을 맺은 당사자는 당연히 언약을 지킬 생각을 해야지 어떻게 하면 언약을 어겨도 괜찮을지, 또는 언약을 어겼을 때 왜 이렇게 가혹한 벌이 있는지 고민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또한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이 결국은 하나님 사랑이라는 사실도 살펴야 합니다. 모세도 신명기에서 계속해서 이 사실을 말했으며, 예수님께서도 확증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말씀이 어색하지 않게 다가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고, 이 세상의 권세 잡은 자인 사탄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세상을 두려워하고, 마귀를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사랑을 떠난 사람의 상태는 본질적으로 저주 아래 있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오셔서 그러한 처지에 있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구원해 주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우리에게는 불평할 거리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자에게는 재앙을 극렬하게 하시고, 크게 하시고, 오래 하시고, 그것도 자손에게까지 임한다고 하십니다. 그 질병도 중하고 오랠 것입니다.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구약의 하나님은 신약의 하나님과 같을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한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미워하는 일도 이렇게 잘하실 수 있느냐는 의문입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하지만 율법은 하나님 없이 사는 삶이 얼마나 비극적인지를 보여주고, 하나님 없이 스스로 의를 지켜 하나님 되려는 시도가 불가능함을 보여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또는 인류의 믿음이 얼마나 성숙했는지에 따라 하나님께서 대응하셨다고 생각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아이가 어릴 때는 보통 아빠 엄마가 오히려 재롱을 부립니다. 그리고 잘못한 행위에 대해서 아주 직관적으로 말하고 수정합니다. 구약의 하나님은 언약 관계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초보 수준부터 알기 바라셨습니다. 그리고 그 관계가 깨질 때 나타날 수 있는 여러 병리현상을 자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언약에 근거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시내에서 언약을 주셨고, 모세는 그에 따른 복과 저주를 다음 세대에게 자세히 설명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사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 하나님을 기뻐하는 방법, 그렇게 해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기초 수업입니다.
어린아이에게는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알려줘야 합니다. 물이 왜 위험한지, 불이 왜 위험한지, 밥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 정말 시시콜콜한 지점까지 하나하나 다 말해 줘야 합니다. 아이들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이유로 위험에 처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블라인드 줄에 목이 졸리기도 하고, 비닐 봉투에 질식하기도 하고, 서랍장에 깔려 다치기도 하고, 높은 곳에서 떨어져 아찔한 상황에 처하기도 합니다. 어찌 보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잔소리를 들어야만 아이는 비로소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밥을 자기 숟가락으로 먹을 수 있을 때, 대변을 가릴 수 있게 될 때, 외투를 입을 때 팔 부분이 딸려오지 않도록 상의 소매 부분을 손으로 잡을 때, 신발 왼쪽 오른쪽을 바르게 신을 때 부모는 칭찬하고 환호합니다. 인간으로 살아가기에 최소한의 조건이기에 일일이 따라다니면서 가르치고 또 가르칩니다. 이렇든 율법은 초등교사, 예전 성경으로는 몽학선생의 역할을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떠한지를 알려주는 역할입니다. 부모의 희생과 부모의 생명력을 받아야만 사람으로 살 수 있듯이, 하나님의 희생과 하나님의 생명력으로만 사람이 살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오셔서 새언약을 주심으로써, 인류는 하나님과 더 깊은 관계로 들어서게 됩니다.
(60-61) 여호와께서 네가 두려워하던 애굽의 모든 질병을 네게로 가져다가 네 몸에 들어붙게 하실 것이며 또 이 율법책에 기록하지 아니한 모든 질병과 모든 재앙을 네가 멸망하기까지 여호와께서 네게 내리실 것이니
이스라엘 자손은 애굽의 오랜 종살이에서 벗어났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애굽의 종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됨을 선포합니다. 네게로 가져다가 네 몸에 들어 붙게 하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율법책에 기록하지 아니한 모든 질병과 모든 재앙을 멸망하기까지 내리신다고 하십니다. 이러한 철저한 혐오와 분노의 감정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어린 자녀가 치명적인 병에 걸렸다고 합시다. 그러하면 어떠하겠습니까? 병에 걸린 자녀를 바라보며 혐오스럽다고 버리시겠습니까? 병에 걸린 자녀는 필요 없다고 하겠습니까? 오히려 그 자녀를 더 사랑하는 마음에 그 병을 유발하는 요인이 바이러스든, 종양이든 어떻게든 없애려고 할 것입니다. 그것이 수술 또는 엄청난 통증을 유발하는 과정이라도 말입니다. 우리를 잠식하는 죄악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이 그러하십니다. 그래서 그 죄악을 없애고 정결하게 하시려고 질병과 재앙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허영의 시장과 같은 곳에서 헛된 쾌락에 빠져 살고 있는 자를 깨우는 방법이 바로 이러한 고통과 충격입니다. 그래서 C.S.루이스는 고통은 귀먼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확성기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62) 너희가 하늘의 별 같이 많을지라도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지 아니하므로 남는 자가 얼마 되지 못할 것이라
하늘의 별 같이 많을지라도 라는 말씀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상기시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기억해서 그의 자손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시고, 새로운 땅으로 인도해 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아니하면 남는 자가 얼마 되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번성하고 강대한 것 같아도 아무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뤄진 것 같아도 이뤄지지 않은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은 허영의 시장과 같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기능과 능력을 한도 없이 증대하는 것이 유일한 목표처럼 보입니다. 인간의 눈을 확대한 대상이 망원경, 현미경이라고 한다면 인간의 귀를 확대한 대상은 전화기 등이 될 것입니다. 인간의 손을 확대한 대상은 우리가 사용하는 온갖 도구이며, 인간의 발을 확대한 대상이 자동차 비행기 우주선 등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예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알파고가 등장해 우리의 뇌도 끝없이 확장될 수 있다는 깨달음을 모든 이에게 줬고, 최근에는 챗지피티(ChatGPT)라는 새로운 인공지능 챗보트가 나와서 많은 사람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신명기 28장에 대한 설교를 써달라고 요청하면 그럴듯한 설교를 즉시 완성합니다. 아마 그렇게 작성한 설교 그대로 읽어도 제가 직접 쓴 것인지 아닌지 분별이 어려우실 것입니다. 그리고 활용 방안이 무궁무진하다고 합니다.
이렇듯 인간의 능력이 확대되면 확대될수록 우리는 점점 하나님이 없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빠지게 됩니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사실 아담부터 시작하는 인간의 역사는 금기를 깨뜨리고 그 금기를 일상으로 만드는 것으로 봐도 무방합니다. 지금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국가가 얼마나 많습니까?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입니다. 재미있게도 아이들이 사랑하는 애니메이션인 겨울왕국의 주제곡 렛잇고(Let It Go)는 이러한 시대정신을 잘 반영합니다. 렛잇고를 냅둬라고 옮긴다면, 대략 다음과 같은 가사입니다. 냅둬, 냅둬,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알아볼 시간이야. 한계를 시험하고 돌파할 시간이야. 내게는 옳고 그름도 없어, 규칙도 없어. 난 자유야. 어떻습니까? 아담의 소리, 가인의 소리, 노아 시대 사람들의 소리, 바벨탑을 쌓던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의 소리, 마지막으로 우리의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까? 우리가 번성하고 우리의 능력이 확대되는 것 자체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 허영의 시장이 제공하는 물품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 없는 그런 허영은 곧 무너지고 맙니다.
멸하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63-68)
(63-64)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선을 행하시고 너희를 번성하게 하시기를 기뻐하시던 것 같이 이제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망하게 하시며 멸하시기를 기뻐하시리니 너희가 들어가 차지할 땅에서 뽑힐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를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만민 중에 흩으시리니 네가 그 곳에서 너와 네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목석 우상을 섬길 것이라
이 말씀은 특히 양가감정을 일으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선을 행하시고 번성하게 하시는 분으로서 이스라엘 민족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으로 삼으셨습니다. 게다가 너희가 잘나고, 수가 많거나, 특별히 예뻐서 그런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우리의 모습이 어떠하든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언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구원하시고 인도해 주신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면 갑자기 돌변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조건 없이 선택했다고 하셔 놓고는 무조건적으로 사랑할 수는 없고, 내 말을 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너희를 망하게 하시며 멸하시는 일을 즐기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기껏 들어오게 하신 땅에서 뽑아내 땅끝에서 저 끝까지 흩어버린다고 하십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한결같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신실한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까? 아니면 우리의 행동에 따라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극단을 오고 가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벌벌 떨어야 합니까?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모순적인 강요를 하는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언약을 지키지 못했을 때 부과되는 처벌조항을 결국에는 하나님이 받으셨다는 점입니다.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실 때 하나님은 홀로 그 쪼갠 고기 사이를 건너시며 아브라함은 건너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 뜻은 아브라함이 그 언약을 깨뜨려도 본인이 직접 그 저주와 형벌을 감당하신다는 표시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그 언약에 따른 저주를 직접 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언약에 따르는 조건을 본인이 성취하심으로써 우리를 무조건적으로 받아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부모님의 장기, 자녀의 장기를 받은 사람이 예전의 생활 습관을 유지할 수 없듯이, 예수님의 생명을 받은 자는 죄악에 따라 살아갈 수 없습니다. 죄를 미워하게 됩니다. 그렇게 사랑이 율법을 완성합니다. 예수님 사랑이 크기에 율법이 저절로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록 그 율법을 어긴다할지라도 더 이상 두려움에 떨지 않고, 오히려 감사함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65-68) 그 여러 민족 중에서 네가 평안함을 얻지 못하며 네 발바닥이 쉴 곳도 얻지 못하고 여호와께서 거기에서 네 마음을 떨게 하고 눈을 쇠하게 하고 정신을 산란하게 하시리니 네 생명이 위험에 처하고 주야로 두려워하며 네 생명을 확신할 수 없을 것이라 네 마음의 두려움과 눈이 보는 것으로 말미암아 아침에는 이르기를 아하 저녁이 되었으면 좋겠다 할 것이요 저녁에는 이르기를 아하 아침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리라 여호와께서 너를 배에 싣고 전에 네게 말씀하여 이르시기를 네가 다시는 그 길을 보지 아니하리라 하시던 그길로 너를 애굽으로 끌어 가실 것이라 거기서 너희가 너희 몸을 적군에게 남녀 종으로 팔려 하나 너희를 살 자가 없으리라
흩으신 민족 중에서도 평안하지 못하고, 정착하지도 못한다고 하십니다. 마음으로 떨고, 눈이 쇠하고 정신이 산란한 지경이 되어 생명을 확신할 수 없으리라고 하십니다. 너무나 생생한 표현인데, 두려움 때문에 아침에는 빨리 모든 것을 피할 수 있는 밤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지만 또 밤이 되면 잠을 이루지 못해 아침이 되기를 바라는 그 병약한 상태를 말합니다.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이 세상의 것들로 삶을 채워 넣는 자들의 결국이 이러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결국 애굽으로 다시 끌려갈 것이라고 합니다. 출애굽 전에는 종으로나마 연명하고 싶어도 그리될 수조차 없는 비극적인 결말을 암시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떠나 다시 죄에 탐닉한 자가 될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복 주시기를 기뻐하셨듯이, 이제는 너희에게 저주하고 멸하시기를 기뻐하신다니 참 두렵습니다. 하지만 이제 새 언약 아래 있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두려움은 해결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꼭 우리나라를 향하는 것만 같아서 섬뜩합니다. 우리를 애굽과 같은 일제 강점기에서 구원해 주시고, 우리에게 큰 복을 주셨던 하나님께서 이제는 우리를 멸하시기를 기뻐하시는 것만 같습니다. 자녀들은 점점 줄어들어, 번성했던 때가 언제인가 싶습니다. 저만 해도 그렇습니다. 우리 나라의 생명이 위험에 처하고 주야로 두려워하며 생명을 확신하지 못하고, 그저 지금 이 순간만 어떻게든 지나가라고 염원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소망을 품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우리 교회를, 이 나라를, 이 세상을 구원하시리라 믿습니다. 이 믿음으로 오늘도 진리와 사랑을 사고, 또 그것을 기꺼이 나누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가 말씀에 순종할 때 복 주시는 하나님, 우리가 불순종할 때 저주하시는 하나님 사이에서 성경의 역사가 진행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결국 예수 그리스도로 그 갈등을 해결하시고 모순적으로 보이는 세상에서 말씀의 능력으로 살아가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언약에 따르는 저주의 조항도 결국은 하나님께서 담당하셨음을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하시옵소서. 허영의 시장판과 같은 이 세대의 정신에 굴복하지 않고 꿋꿋이 하나님 자녀로 살아가도록 사랑과 진리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율법의 역할이 무엇인지 묵상해 보십시오.
2. 나는 복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과 저주 내리시는 정의의 하나님 사이에서 어느 편에 더 기울어 있는지 묵상해 보십시오.
3.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어떻게 모순되게 보이는 하나님을 종합하는지 묵상해 보십시오.
4. 이 시대의 정신이 어떠한지 살펴보고, 영향을 받은 점은 없는지 묵상해 보십시오.
5.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나와 우리나라의 모습은 무엇이 있습니까? 어떻게 회개하시겠습니까?
(작성: 이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