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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걷는 대간길 구간에서 대표산으로 불리는 눌의산(訥宜山 943 m)에 대한 유래가 정말 모호하다. 인터넷을 뒤져봐도 모두 천편일률적으로 충청도와 경상도간 의사소통이 어눌하여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이라는 설명 뿐인데, 설마 그런 뜻으로 산이름이 지어졌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본다. 발음하기도 쉽지 않은데다 자주 쓰이지도 않는 한자로 이름을 지었을 때는 뭔가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터인데 이를 단순히 충청도와 경상도간 의사소통 문제로 해석한다면 너무 안이한 것이 아닐까. 실제로 영동사람이 하는 말과 김천사람 하는 말을 들어보면 억양마저도 비슷하여 서로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안간다. 어쩌면 이것도 잃어버린 우리의 언어로 인해 고리가 끊어진 것을 억지로 한자화하다 보니 이런 애매한 한자이름이 탄생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눌의산 정상석 앞에는 딱지풀꽃이 많이 피어 있었던 듯 사람들의 발길에 떨어진 노란 꽃잎이 흐드러지게 흩어져 있다. 땅에 붙어서 자라 그 이름이 딱지풀이다. 잎이 여러갈래로 갈라진 모습이 지네와 같다 하여 지네풀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중국의 한약명인 오공초(蜈蚣草)라는 이름을 우리말로 번역한 것 같다. 밭이나 집뜰에 자라나면 잡초에 불과한 것들이 이처럼 산길에 피면 걷는데 지친 나그네의 동무가 되는 것이니 풀이나 짐승이나 그 처한 환경이 중요함을 새삼 느낀다.
마침내 솔나물꽃이 노랗게 피어 있다. 자라날 때는 그 잎모양으로 솔나물임을 알 수 있는데 꽃이 피면 그 화려함에 소나무를 연상하는 것을 잊게 된다. 허리까지 올라오는 키에 노란 꽃이 뭉쳐서 피어 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산길에서 지나가는 산객들 팔다리를 잡아당기는 천덕꾸러기 미역줄나무도 무성하게 꽃이 피었더니 어느새 열매를 맺었다. 열매는 마치 단풍들듯이 빨간색으로 변해가면 단풍든 잎과 함께 또 다른 풍경을 연출한다.
눌의산 헬리포트 아래 털중나리꽃이 활짝 피었다.
눌의산에서 추풍령으로 내려가는 길은 급격한 내리막이다. 안전장치로 로프를 매어 놓았으나 한 발 한 발 조심해서 내려가야 한다. 그리고 왼쪽 영동군쪽으로는 깍아지른 낭떨어지가 이어진 후 다시 평평한 솔밭길이 나온다.
오늘의 주인공 일월비비추는 눌의산을 내려가는 길목에까지 줄서서 우리를 배웅한다.
길가 무덤에는 풀이 무성하게 자라나 있고 그 풀속에 핑크빛 패랭이꽃과 노란 딱지풀이 꽃을 피운다. 이 무덤속에 잠자는 이는 한여름을 꽃밭에 누워있는 택이다. 요즘 산에서는 여간해서 보기 힘든 도라지도 한포기 자라나 꽃이 피었다. 그 흔하던 도라지는 누가 다 캐갔는지 앞으로 우리 후손들이 도라지나 잔대를 보려면 식물원에나 가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딱지풀꽃
도라지꽃
길가에 노란장대가 피기 시작했다. 세파에 찌든 듯한 모습이다. 아무래도 마을에 가까운 곳에서 인간에게 맞춰진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연을 갈구하는 것 같다.
산길을 걷는 동안 나무숲으로 둘러싸여 한차례도 조망을 허용하지 않던 대간길이 추풍령 마을에 가까워지면가 비로소 조망이 트인다. 마을건너 야트막한 산들이 조용히 앉아 긴 여름날 구름을 덮어 쓰고 쉬고 있다.
길가에 핀 엉겅퀴가 다 지고 겨드랑이에 한송이 남아 있다.
마을이 가까워지면서 임도가 양쪽으로 갈리는데 앞에 지나간 사람들이 밟고 간 풀들이 쓸려 있는 것을 보고 방향을 잡았다. 좁은 밭고랑을 풀섶을 헤치며 가다 보니 길가에 달맞이꽃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그리고 오랫동안 묵어 있는 듯한 밭에는 개망초와 달맞이꽃이 한데 뒤섞여 수려한 꽃밭을 만들었다. 날이 흐려서 그런지 밤에만 피는 달맞이 꽃이 조금 입을 벌리고 있는데 저 꽃밭을 밤에 보면 아주 장관일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옛날 어렸을 때 이 달맞이꽃을 도둑님배추라고 불렀다. 두 해살이 식물인 이 달맞이꽃은 가을이 되면 잎이 땅에 붙어서 자라고 뿌리도 굵게 뻗힌다. 이 잎이 붙어있는채로 눈속에 파묻혀 겨울을 나고 그 이듬해 겨울잎 사이에서 줄기가 올라와 7월경에 꽃을 피운다. 도둑님배추는 늦가을 땅속에 묻힌 뿌리가 마치 배추뿌리처럼 생긴데서 부르는 이름이다. 약간 매우면서 달착지근한 것이 먹을만 하다. 달맞이꽃을 말려서 꽃차로 발여 먹기도 하고 특히 씨에서 채취한 기름은 갖가지 건강식품에 꼭 들어갈 만큼 귀한 약재로 쓰인다.
남미 칠레가 원산지라고 하는데 어찌 그리스신화에 이 달맞이꽃이 등장하는지 모르겠다. 여러 요정(님프)들이 모여서 밤하늘을 보면서 각자 좋아하는 별이야기를 하는데 그중 한 님프가 자기는 달님을 좋아하기 때문에 별이 싫다고 말했다. 이에 다른 님프들이 태양의 신이자 신중의 왕격인 제우스신에게 가서 그 님프를 고자질했다. 얘는 다른 것은 다 싫어하고 달만 좋아 한다고 하자 제우스 자신은 세상에 모든 것들로부터 존경과 관심을 받고 있는줄 알았는데 자기보다 달을 더 좋아한다는 님프를 벌주기로 작정했다. 제우스는 이 님프를 납치하여 달이 보이지 않는 호숫가에 숨겨두었다. 뒤늦게 이런 사실을 알게 된 달의 신 아르테미스는 이 가련한 님프를 구하고자 제우스가 숨겨두었을 만한 곳을 찾아 온 세상을 돌아다닌다. 그 사이 이 님프는 어느곳에도 보이지 않는 달님을 마냥 그리워하다가 그만 죽고 말았다. 마침내 아르테미스가 그 님프가 있는 곳을 알아내고 찾아갔을 때는 이미 늦어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죽은 님프를 고이 땅에 묻어주는 일 뿐이었다. 그리고 이듬해 님프가 묻혀있는 무덤에서 달이 뜨는 밤에만 피었다가 달이 지는 아침이면 따라서 져버리는 노란 꽃이 자라났다. 사람들은 그것이 달님을 사모하던 님프의 혼이 피어난 것이라 하여 달맞이꽃이라 불렀다. 요즘은 꽃을 개량하여 낮에 피는 낮달맞이꽃을 많이 심는다. 꽃도 크고 색깔도 분홍색과 노란색으로 다양하지만 어찌 그 아름다움이 밤이슬을 머금고 피어나는 달맞이꽃에 비할까.
산길은 여기서 끝나고 대간꾼들은 길잃은 멧돼지처럼 이제는 콘크리트 아스팔트길을 헤메야 한다. 고속도로밑으로 이어진 터널을 지나고 경부선 철도아래로 길게 이어진 터널을 또 지나야 한다. 이처럼 표지판도 없는 철도와 도로가 얼키고 설킨 추풍령구간을 이리 저리 찾아가야 한다. 나는 뜬금없이 만일 호랑이가 시베리아에서 북한땅 대간길을 따라서 힘들게 휴전선을 넘어 남으로 남으로 걸어내려오다가 이 추풍령구간에 이르게 되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북한의 대간길이 어떤지 그리고 이 추풍령까지 이어지는 남한의 대간길은 어떠한지 모르지만 내 마음속의 호랑이는 이곳에서 이리 저리 헤메다가 결국 기차나 자동차에 의해 로드킬 당하고 만다.
마을을 지나는데 어느집 담장너머로 모감주나무의 황금빛 꽃이 눈길을 끈다. 화려한 꽃모양에 기인하여 영어로도 황금비나무 ( Goldenrain Tree)라고 부른다는 이 모금주나무 이름은 그 열매에 기인한다. 10월에 깍지속에서 콩알만한 씨가 까맣게 익는데 그것으로 염주를 만들어 선물하였다고 한다.
단단함을 강조하여 금강자라고도 불리는데 조선시대에는 중국왕실에서 조선의 왕에게 선물로 주었다는 기록도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나무는 예전부터 귀한 대접을 받은 것 같다. 주로 서해안에 많이 자란다고 했으나 요즘은 전국 어디에서나 볼수 있다.
나는 2년전 홍성의 오서산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가에서 열매맺은 나무를 보았고 작년에는 월악산 보덕사 뒷편에서 꽃피기전의 모감주나무를 본적있다. 지금은 고속도로 주변에도 관상수로 많이 심는 것 같다. 멀리서도 그 화려한 색깔로 쉽게 눈에 띄는 모감주나무꽃은 한번 보면 그 강렬한 인상에 쉽게 잊지 못하게 된다.
모감주나무 열매 (금강자)
길가 집 뒷곁에 꾸지뽕나무가 자라고 있다. 요즘 당뇨에 좋다고 하여 집 주변에 많이 심는다.
꽃중의 꽃 무궁화꽃이 삼천만의 가슴에 피었다. 이 노래가 지어졌을 당시 우리나라 인구가 삼천만 밖에 안되었나 보다.
이렇게 마을과 포도밭과 콘크리트 터널을 빠져나와 마침내 대간길 11구간을 일단락 지었다. 그리고 백두대간 추풍령구간의 날머리이자 들머리지점에 조성해 놓은 공원에 모여 간단한 휴식을 취하고 남은 구간을 걷기 위해 금산 – 들기산쪽으로 향했다. 전에 이 구간을 다녀간 회원들은 이곳에 남아 막걸리 친구와 회포를 풀고 있기로 하고 이 구간을 처음 걷는 22기 회원들은 몸을 추스르고는 산길로 향했다.
공원에 홑왕원추리가 우릴 열열히 환영한다. 요즘 아파트나 공원에 개량종 원추리가 많이 심어져 있다. 하루만 피었다가 져버리는 꽃이기에 Daily Lili 라고 불리는 이 꽃은 봄에 새로 나는 잎을 나물로 먹을 수 있고 뿌리는 한약재로 쓰인다.
추풍령은 해발고도가 221 m 로 낮아서 우리나라 남쪽과 북쪽으로 통하는 관문 역할을 해왔다. 아울러 주요 고속도로와 철도가 지나는 교통의 요지다. 전범성 작사 백영호 작곡의 추풍령이라는 노래를 부른 남상규의 이름과 함께 노래 가사가 적힌 기념비가 오랜 세월동안 '수많은 사연' 되새김질하고 있는 듯하다.
길가 주택뜰에 오갈피나무가 심어져 있다.
김천시가 의욕적으로 장려하면서 브랜드화에 성공한 김천포도다. 옛날에는 노천에서 재배하다가 일조량을 늘리면서 당도를 높이기 위해 비가림포도가 나오더니 이제는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일찍 수확할 수 있는 하우스포도가 나온다. 다른 노천 포도에 비해 수확이 한달 가량 빠르고 당도도 높다고 한다.
이제 다 끝난 줄 알고 긴장을 풀었다가 다시 산을 오르는 기분은 아는 사람만 안다. 높은 산을 오르내리다가 계곡도 보이고 마을도 보여 이제 끝났다고 생각하는데 높지는 않더라도 마지막 산봉우리가 길앞에 나타나면 참 난감해진다. 이 금산 – 들기산 산행이 꼭 그런 상황과 비슷하다. 추풍령공원에서 간식도 먹고 물도 마시고 쉬었지만 다시 산에 오르니 흥이 나지 않는다. 왜 이 산을 올라야 하는지 곰곰히 생각하면서 한 발 한 발 잡아당기는 중력과 씨름을 하며 올라간다.
금산(錦山 385m)은 비단을 둘러놓은 듯이 아름답다는 뜻으로 지어 준 이름일진데 우리가 바라보는 이 금산은 깊은 상처로 신음하고 있는 중증환자와 같다. 돌로 된 이 금산의 반쪽을 깊은 바닦까지 깍아내어 산정상에는 접근을 하지 못하도록 철조망으로 막아 놓았다. 보지말라고 하면 더 궁금해서 꼭 보고야 마는 습성을 가진 인간의 본성을 발휘하여 발은 땅에 굳건히 받쳐두고 고개를 쭉 내밀어 바라본 금산의 상처는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태였다. 뼛속까지 깊게 파인 상처에는 덕지 덕지 반창고를 붙여 놓고 환자가 숨을 거두기만 기다리는 상황과 흡사하다. 아마도 이런 모습으로 남아 있어서 대부분의 대간꾼들이 이 짧은 구간을 건너뛰고 다음구간으로 넘어가는지도 모르겠다.
들기산으로 향하는 길가에 철쭉나무가 간간이 보이는데 그 잎이 진한 녹색으로 철쭉민떡병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대간산행 초반 철쭉나무 잎이 노란 반점으로 뒤덮여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병충해가 없이 깨끗하다. 이것이 이 추풍령구간에만 그런건지 아니면 그 벌레알들이 다 부화하고 나서 잎을 원상복구 시키고 나간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이렇게 원래의 모습을 찾은 것을 보니 어쨌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산길이 어찌 그렇게 만만하겠나. 평지 오솔길은 짧고 이어지는 오르막길은 길게 마련이다. 이제 백두대간의 면모를 보여주려는 모양이다.
그리고 마침내 이번 여정의 마지막 산봉우리인 들기산 ( 501m )에 도착했다. 어찌 보면 그저 나즈막한 산봉우리에 불과한 야산이다. 이것이 백두대간에 걸쳐 있어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을 뿐이지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이 들기산을 어찌 알겠나. 그러니까 이 산과 우리는 인연이 있는 거다. 멋진 산이름인 것 같은데 다음, 네이버, 구글을 뒤져봐도 그 산이름의 유래에 관한 글은 안보인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또 한편으로는 이까짓 낮은 야산에 무슨 유래가 있겠나 싶어 그냥 덮어두려고 하다가 다시 한 번 생각해보니 어쩌면 바로 들기산이라는 뜻이 그냥 야산(野山)이라는 뜻이 아니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즉, ‘들의산’은 경상도 말도 들긔산이 되고 이것을 발음나는 대로 하면 ‘들기산’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대구의 앞산이라는 보통명사가 고유명사로 바뀌었듯이 그냥 나지막한 야산이라는 보통명사가 백두대간의 중간지점에 있는 들기산이라는 고유명사가 된 것이다. 이것은 그저 나의 추측에 불과하지만 공식적인 산이름에 관한 유래가 나오기전까지는 유효한 것으로 알고 있어도 무방할 것 같다.
우리는 들기산에서 가방에 든 것들을 꺼내 최후의 간식을 나눠먹었다. 박영묵 대원님이 끝까지 배낭에 담아두고 다니던 소주를 꺼냈고 이현구 별동대장님이 남아 있는 오미자 액기스를 꺼냈다. 이제 해주 오씨 산소 전에서 좌측으로 틀어서 작점마을로 내려가면 오늘 산행이 끝난다. 그러니 산행이 힘들까봐 자제했던 알코올을 남겨갈 필요가 없다. 주거니 받거니 하더니 페트병에 들었던 알코올이 바닥을 드러내고 우리는 모든 것을 비운 마음으로 홀가분하게 들기산과 작별했다.
길가에 생강나무 열매가 익어간다.
작동마을로 내려가는 약 1 km 정도 내리막 코스는 정상적인 산길이 아니고 잡목이 우거진 산비탈이다. 여기에서 별동대의 진면목이 돋보인다. 배낭에 평소 톱을 넣고 다니는 별동대원이 잔 가지는 손으로 꺽고 굵은 것은 톱으로 쓱쓱 잘라내니 마치 군부대가 이동하듯이 금방 산길이 만들어진다. 평소에 이런 작업에 손이 익은 듯 두어명의 별동대원의 손발이 척척 맞는다. 뒤에 따르는 별동대 후미조는 아무런 어려움 없이 장애물을 극복하며 임도를 만날 때까지 얼마 남지 않은 짧은 여정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앞서 간 회원들이 마을을 지나가는 듯 사방에서 개짓는 소리가 요란하다. 얘네들은 평소 겁이 많아서 그런지 아니면 무리를 지어 생활하던 늑대의 습성이 남아 있어서 그런건지 한 마리가 짓기 시작하면 모두 따라서 짓는다. 뒤따라가는 행렬이 계속 이어지는지 복날을 며칠 앞둔 개들은 목이 터져라 짖어댄다. 처절하게 울어댄다.
임도 옆에는 산수국이 마침내 꽃을 피웠다. 지난번 삼도봉 구간을 걸을 때에도 곧 꽃이 필듯이 봉오리를 맺고 있었는데 이제나 저제나 기다려도 때가 아니라며 뜸을 들이더니 드디어 산수국의 시대가 열렸슴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이라도 하는 듯 수많은 산수국 꽃들이 여기 저기 앉고 서고 난리도 아니다. 이 아이들도 백당나무처럼 헛꽃이 둘러서고 그 안쪽으로 진성화가 모여서 핀다. 어두운 밤바다에 반짝이는 등대처럼 숲속에서 밝게 빛나는 헛꽃을 보고 찾아드는 벌레들이 널찍한 꽃판을 넘나들면서 자기들이 필요한 꿀과 양분을 가져가고 꽃이 필요한 수정을 시켜준다. 얘네들은 일찍부터 서로 협업하며 사는 윈윈전략을 실천해오고 있는 것이다.
산수국은 서식하고 있는 토양의 성질에 따라서 꽃 색깔이 변하는 지표식물이라고 한다. 즉, 산성토양에서는 꽃이 파란색이 되고 알칼리토양에선 붉은색 그리고 중성토양에서는 희색의 산수국이 핀다고 한다. 이 작동마을의 토양은 산성에 가까운 듯 주로 푸른색의 산수국이 피고 있다.
마을로 들어서는 길목 풀섶에는 사위질빵이 바야흐로 꽃을 피우려 하고 있다. 큰꽃으아리를 벌써 5월에 보았고 으아리꽃은 올 해 한번도 보지 못한 채 벌써 지나가고 말아 할미밀망과 사위질빵을 잊고 지냈는데 아직 이 꽃을 볼 수 있다니 반갑다. 할미밀망이나 사위질빵은 모두 으이라과의 덩굴성 식물이면서 장모의 사위사랑을 엿볼 수 있는 참 재미난 이름을 갖고 있는 꽃이다.
사위질빵의 덩굴은 할미밀망 덩굴보다 약해서 마디가 잘 끊어진다. 옛날 신랑이 장가들면 얼마간 처가에서 농사일을 도와줘야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 마을 청년들과 같이 일을 하면서 등짐을 지고 물건을 날라야 하는 때에 장모는 사위질빵 덩굴로 멜빵을 만들어 주면서 이게 잘 끊어지니 조금만 지고 가라고 당부하던데서 그 이름이 유래하였다. 대신 장모는 좀 힘에 부치면서도 조금 질긴 할미밀망으로 멜빵을 만들어 졌다. 하지만 실제로 할미밀망이나 사위질빵이나 단단하지는 않아 많은 짐을 지고 다닐 수는 없겠다. 이런 이름은 며느리를 학대하다시피 했던 고부간의 관계에 비해 사위와 장모간 얼마나 살가운 사이였나 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른 농촌마을과 마친가지로 이곳 작동마을도 빈 집이 늘어가고 있나 보다. 어느 농촌을 가더라도 거주하는 주민의 나이가 점점 많아져 머지 않은 장래에 농촌이 공동화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씩 도시생활에 지친 중년의 도시민이 전원생활을 꿈꾸며 귀농하는 것을 보지만 그 숫자는 극히 드물고 그렇게 농촌으로 들어간 사람들도 적응을 못하고 결국 농촌에 머무는 도시민으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지방정부나 중앙정부에서 어련히 잘 연구하고 실행에 옮기겠지만 앞으로 기업형 농업을 장려하는 정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작동마을 회관앞에서 기다리는 버스에 타면서 11회 대간산행이 공식적으로 끝이 났다. 버스를 타고 들기산구간을 오르지 않은 회원들이 기다리는 추풍령 공원으로 가는 버스 차창 너머로 추풍령 저수지 건너 금산의 절개면의 민낯이 나타난다. 사실 저 산이 다른 데 있었다면, 그래서 우리가 볼 수도 없고 그냥 아무런 주목도 받지 않는 곳이 있다면 우리가 안타까와 할 일도 아닌 그저 산업 발전을 위한 자원개발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는 일일텐데, 어쩌다 보니 저 금산이 백두대간 줄기에 속해 있었고 그 대간을 걷고 있는 우리 눈에 들어오게 됨으로써 뭔가 일이 크게 잘못 되었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백두대간길을 열번 걸으면서 우리도 모르는새 우리는 대간꾼이라는 동질감을 갖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대간꾼이고 우리의 대간길을 훼손한 것에 대한 반감이 나도 모르게 작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 마음 참 모를 일이다.
추풍령 공원 건너 주택에 피어 있는 삼잎국화가 화려하다. 봄에 어린씩을 나물로 먹으면 맛이 일품이라고 들었으나 아직 먹어본 적은 없다. 꽃을 볼 때마다 맛이 어떨까 생각하는 내가 참 우습다. 그래도 다음에 기회가 되면 삼잎국화 나물을 한 번 먹어보고 싶다.
구름이 해를 가린 그늘 숲속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걸었던 11번 구간은 그다지 높지 않은 산들로 이어져 있으나 유명한 추풍령을 지나갔으니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서울로 오는 버스 차창너머로 하루를 무탈하게 보낸 산꾼들의 영웅담이 흘러나가고 우리는 차츰 버스 의자를 뒤로 제끼고 괘방령에서 가성산을 넘어 장군봉을 거쳐 눌의산을 지나면서 보고 들은 풍경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그 명상 뒤로 따라붙는 잠꼬리를 잡고 씨름하면서 서울로 달렸다. 갈 때처럼 두번 휴게소를 들리면서 버스전용차선 시간이 끝나는 9시를 많이 넘기지 않고 양재역에 도착했다. 그렇게 우리의 하루가 끝났다.
첫댓글 스마트폰으로 이런 사진 연출을 할 수 있음에 감탄하며, 좋은내용과 함께 사진 잘 보았어요~!!
달맞이꽃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줘서
감사합니다
산행후 황제님이랑 올려주시는
산행기에 항상 감사하고 기다려 집니다
고맙습니다
자세한 설명과 멋진 사진 감사합니다,후미 별동대 작가님으로 앞으로도
멋있는 활동 기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