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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을 짊어진 삶 (장편 소설)
백화 문상희
(5부)
대를 이은 단명
"아니, 이 사람아!
왜 이제야 오는 거야?
하룻밤만 자고 온다고 해놓고 도대체 며칠 만에
온 거냐고!"
조성태는 아내에게 대뜸 역정을 냈다.
"아니, 여보!
애들 사는 것을 보니 기가 막혀서 이것저것
보살펴 주고 살림살이도 좀 사주고 애기
키우는 방법도 가르쳐 주다 보니 좀 늦었어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집에 있는 나도 좀 생각을 해야지
장터까지 가서 국밥으로 끼니를 때우고
저녁에는 순두부 사다가 막걸리만 먹었다고!"
"아이고 여보!
똘방똘방한 손주까지 태어났는데
당신은 애들이 불쌍하지도 않으세요?"
"어험 어험,
지들이 성인이 되어 그렇게 됐다면
내가 멍석말이를 시킬 일도 없었잖아!"
"아이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요!
당신 그 급한 성질머리도 문제가 있어요!
그나저나 음력 팔월 스무엿새 무술생이니까
이름이나 잘 지어서 애들에게 보내주세요!"
"어흠, 팔월 스무엿새여?
알았어, 알았다고 당장 이름을 지어야겠구먼!
나 저기 역학사 문주사에게 다녀옴세!"
조성태도 손주가 태어났다는 말에 속으로는
내심 기분이 좋아서 대답을 하고 밖으로 나갔다.
"에이구 영감탱이 좋으면 좋다고 할 것이지!
쯔쯔쯔"
조성태의 성화도 손주 때문에 누그러졌다.
시계방 일을 배우기 시작한 성재는 시계
분해 조립을 마스터하고 싸구려 시계는 어느 정도
고치는 단계까지 올랐다.
똘방이도 칠 개월이 넘어가자 엉금엉금
기어 다녔고 어설프게 엄마를 부르며 기어서
따라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민지는 알루미늄으로 된 분유통을
따다가 손을 심하게 베었다.
오른손에는 피가 철철 흘렀고 민지는 어찌할 바를
몰라 아래층 시계방 성재를 부르며 뛰어갔다.
시계방 사장과 성재는 화들짝 놀라 응급처치로
손수건으로 상처를 동여 메었다.
그래도 민지의 손에 피는 멈추지 않았다.
"아무래도 안 되겠네 마군!
빨리 병원에 가서 상처를 꿰매어야 할 것 같아!"
"예, 사장님!
외과병원이 어디쯤 있나요?"
"음, 내가 애기엄마를 데리고 병원으로 먼저
갈 테니 자네는 시계방 문을 닫고 터미널쪽에
마산 병원으로 오게나!"
"예, 알겠습니다. 사장님!
민지야 똘방이는 자고 있는 거야?"
"아참, 잠든 것보고 나왔으니 빨리 올라가 봐!"
"응, 알았어!"
성재는 시계방 미닫이문을 닫고 부리나케
2층으로 향했다.
그때 계단 쪽에서 똘방이가 죽는다고 우는 소리가
들렸다.
똘방이는 잠에서 깨어나 엄마를 부르며
밖으로 기어 나온 것이다.
똘방이는 엄마가 보이 지를 않아 엄마와 함께
오르내리던 계단 쪽으로 기어가다가 굴러서
아래층으로 떨어졌다.
성재는 기겁을 하고 똘방이를 끌어안았다.
똘방이는 얼굴이 시퍼렇게 멍든 채로 딸꾹질을
하면서 계속 울었다.
"똘방아, 똘방아!
어디가 아픈 거야, 어디를 다쳤어!"
성재는 울부짖으며 똘방이를 않고 절뚝거리며
마산병원으로 내달렸다.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모자에게 난리가 난 것이다.
성재가 똘방이를 않고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민지는 막 상처를 꿰매고 붕대를 감고 있었다.
"민지야 큰일 났어!
똘방이가 잠에서 깨어나 우리를 찾다가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많이 다쳤어!
의사 선생님 빨리 좀 봐주세요!"
"알았어요 보호자분!
빨리 여기 침대에 눕혀봐요!"
"예, 알겠습니다. 의사 선생님!"
"음~, 계단에서 굴렀으면 분명히 골절상을
입었을 텐데...
어린아이라서 말도 못 하고 쉽게 치료를 할 수가
없어요!
그래도 어디 한번 살펴봅시다."
의사는 똘방이의 몸을 여기저기 살폈다.
"머리는 멍든 곳이 있으나 우는 걸 봐서
뇌진탕은 피한 것 같으나 발목과 엉덩이 쪽이
많이 부어있으니 우선 엑스레이를 찍어야겠어요!
어이, 간호사!
빨리 엑스레이 기계를 점검하세요!"
의사와 간호사는 바쁘게 움직였다.
민지는 다친 곳의 아픔도 잊은 채 안타까움에 발을 동동 굴렀다.
"아이고 내가 다치는 바람에 똘방이 생각을
못했네!
아이고 어쩌면 좋아요!"
성재는 대기실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다가
사장님을 먼저 보냈다.
"사장님!
제가 결과를 지켜볼 테니 사장님은 먼저 들어가세요!"
"아이고 모자가 한꺼번에 한날한시에 다치다니
이걸 어쩌나 글세!
그래 , 나는 가게로 가서 정리를 하고 다시 오겠네!"
"예, 고맙습니다. 사장님!"
그 뒤로도 똘방이의 울음소리는 문틈 사이로
계속 흘러나왔다.
한 시간쯤 지나서 의사가 보호자를 불렀다.
"나는 일본에서 의학 공부를 했어요!
해방이 되면서 마침 새로 개발한 엑스레이 기계를
사가지고 한국에 들어왔어요!
그래도 엑스레이 기계가 있기에 여기저기
촬영을 했는데 발목이 꺾이면서 부러졌고
골반뼈가 골절이 됐어요!
어린아이라서 지금은 손을 쓸 수가 없어요!
응급처치로 진통제와 소염제 주사를 놨는데
상태는 계속 지켜봐야 하니 입원을 시켜요!"
"예, 알겠습니다. 의사 선생님!"
"그나저나 애기 엄마도 다쳐서 애기 수유도
해야 되니 어쩔 수 없이 함께 입원을 하도록 합시다."
"예, 의사 선생님!
여하튼 우리 똘방이와 애엄마가 무탈하도록
치료를 부탁드립니다."
"예, 보호자분 알았어요!
그리고 나와 함께 의대 공부를 한 친구가 부산에서
정형외과 전문의로 있어요!
그러니까 내가 자문을 좀 얻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 고맙습니다. 의사 선생님!"
곧바로 민지와 똘방이는 같은 방에 입원을 했다.
조금 후 간호사가 보호자를 불렀다.
"보호자분!
입원을 하게 되면 입원 보증금을 주셔야 합니다."
"예~, 얼마나 드려야 되나요?"
"예~, 원장님 말씀에 따르면 애기는 한 달 이상
입원을 해서 치료를 해야 한다고 하니
입원 보증금을 십만환은 주셔야 한답니다."
"예~, 제가 애엄마와 의논을 좀 하고 오겠습니다."
"예, 그렇게 하세요!"
성재는 입원실로 돌아왔다.
"민지야!
똘방이 상태와 네가 다친 데는 어때?"
"똘방이는 지금 주사 맞고 잠시 잠들었어!
나야 뭐 상처가 좀 쓰라리지만 똘방이가 더
걱정이잖아!"
"그래 그건 그렇고 민지야!
입원 보증금 십만환을 줘야 한다는데 네가
가진 돈이 얼마나 되냐?"
"응, 아버지가 준 돈은 이미 다 써버렸고
집세 받은 돈 이만환은 있어!"
"아이고 그 돈으로는 어림도 없는데 어떠하면
좋을까?"
한참을 생각하던 민지가 결심을 한 듯 말을 했다.
"성재야!
어쩔 수 없이 성재 네가 밀양 아버지에게 좀
다녀와야겠다.
지금 상황으로는 아버지에게 부탁하는 수밖에
없잖아!"
"알았어 민지야!
상황이 이렇게 급박하니까 어쩔수 없이 내가
갔다 오는 수밖에 없지 뭐!"
"그래, 아버지가 화를 내시더라도 참아야 하고
무조건 죄송하다고 말씀을 드려!
그리고 자초지종을 알려드리고 도움을 요청해야 돼
성재야 알았지?"
"그래, 내일 첫차로 갈 테니 너는 똘방이를
잘 돌보고 있어!
그리고 네 상처도 잘 치료하고 알았지?"
"그래, 내 걱정하지 말고 잘 다녀와!
그리고 집에 미역국이 남았으니 대충 저녁을
먹어 성재야!"
성재가 밖으로 나왔을 때는 이미 어두운 밤이었다.
성재는 집으로 돌아와 집안 정리를 하고
새벽에 밀양으로 갈 준비를 했다.
"성재야!
아니 아니 똘방이 아범아!
기별도 없이 갑자기 어떻게 온 건가?
혹시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는가?
민우 아버지가 똘방이 이름 지어서 편지를 보냈는데
못 받았는가?"
민지 엄마는 반가움 반 걱정 반으로 두서없이 물었다.
"예, 어머님!
경황이 없어 우체통 확인을 못했습니다."
"민우 아버지~,
성재, 아니 똘방이 아범이 왔네요?
똘방이 이름이 한자로 뭐라고 그랬지요?"
"허허 참, 그렇게 얘기를 해줬는데 그걸 또 물어?
길할 길자에 목숨 수, 마길수라고!
무탈하게 오래 살라는 뜻이여!"
조성태는 성재가 왔다지만 멍석말이를 시킨
미인함과 또다시는 안 보겠다고 큰소리를 쳤기에
나오기가 민망해 방에서 대답을 했다.
"저~, 아버님 안녕하십니까 성태 왔습니다."
"어흠 어흠,
그래 무슨 일로 왔는가?"
"예~, 저 사실은 ᆢ
민지와 똘방이가 많이 다쳐서 도움을 청하려고
왔답니다."
"응? 뭐라고?
무슨 일인지 얼른 차초지종을 얘기해 보게 이 사람아!"
민지 엄마는 놀라서 마루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고
조성태도 그 말을 듣고서야 밖으로 나왔다.
"아니, 느닷없이 찾아와서 뜬금없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민지 엄마와 조성태는 마루에 앉아서 성재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궁금증에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서야 성재도 마루에 걸터앉아 심각한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어머님 아버님 너무 상심하지 마시고 제 말을
천천히 들어주세요!
사실은 똘방이 엄마가 분유통을 따다가 날카로운
알루미늄 캔에 손을 많이 다쳤답니다.
손수건으로 압박을 해도 피가 멈추지를 않아
마산병원으로 가서 꿰매는 수술을 받았답니다.
민지 때문에 경황이 없어 잠들어있던 똘방이
생각을 못하고 있다가 급하게 2층으로 갔습니다.
똘방이는 엄마를 찾다가 엄마가 안보이자
열린 문틈으로 기어 나와 계단에서 굴렀습니다.
저는 똘방이를 않고 부랴부랴 마산병원으로 갔습니다.
의사 선생님 말씀은 발목뼈와 골반뼈 골절상을
입었고 뇌진탕은 피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래그래 이 사람아!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고!"
"아니, 임자는 아직 얘기도 끝나지 않았는데
자꾸만 말을 끊고 왜 그래 응?
날 보고 성질머리 급하다면서 당신도 똑같구먼 그래!"
민지 엄마의 궁금증 때문에 부부간의 큰소리가
오갔다.
성재는 말을 하다 말고 두 사람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그래, 똘방이 아범아!
어떻게 된 것인지 천천히 다시 말해보게나!"
"예~, 알겠습니다 아버님!
민지의 상처는 열 다섯 바늘을 꿰매는 수술을
받고 2주 정도면 낫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더 큰 걱정은 똘방이입니다.
진통제와 소염제 주사를 놨지만 골절된 곳을
치료하며 지켜봐야 한답니다.
똘방이가 아직 칠 개월밖에 안된 애기라서
어른처럼 치료를 할 수가 없답니다.
그래서 부산에 있는 정형외과 의사 친구를 불러
자문을 얻어서 치료를 해야 한답니다.
"그래서 어떡하기로 했는가?"
이번에도 민지 엄마가 긴장 탓에 바짝 마른 입술에
침을 묻혀가면서 말했다.
"예~,
원무과 간호사 말로는 우선 입원 보증금 십만환을
줘야 한답니다.
그리고 모녀가 한 달간 입원치료를 하게 되면
돈이 약 백만환은 들 거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민지가 저를 여기로 보낸 겁니다."
"아이고 어쩌다가 그래 일이 이렇게 되었는가!
쯔쯔쯔."
"그래,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내일 같이 가도록
해보세!"
"그래요 여보!
내일 새벽밥 먹고 첫차로 가도록 합시다."
"아, 일이 이지경에 이르렀는데 느려터진 버스를
어떻게 타고 가?
내가 당장 자전거를 타고 우체국에 가서 통장에 있는
돈부터 찾고
내일아침 일찍 택시를 우리 집까지 부르도록 하겠네!"
"예~, 그래요 여보!"
"고맙습니다. 아버님!"
"오랜만에 성재가 아니, 똘방이 아범이 왔으니
당신은 닭이라도 잡아 빨리 백숙이나 끓여요!"
"예~, 알았어요 여보!"
조성태는 자전거를 타고 부리나케 읍내로 내달렸다.
"똘방이 아범아!
버스 타고 집까지 걸어오느라 점심도 못 먹었겠네!
우선 이 고구마 삶은 거라도 먹고 있게나!
내가 얼른 닭백숙 끓여서 저녁을 할 테니 알겠는가?"
"예 ~, 어머님 고맙습니다.
그나저나 민우형은 안 보이네요?"
"그래, 민우는 3월 초에 입대를 했다네!
이 엄동설한에 잘 지내고 있는지 그것도 걱정이야!"
"예~, 민우 형이 군대를 갔군요!
저는 오랜만에 마구간 하고 뒷마당까지 한 바퀴
돌아보겠습니다."
"그래, 알았네!"
민지 엄마는 부지런히 저녁 준비를 했고
조성태는 해 질 무렵에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상이 차려지고 세 사람은 마주 앉았다.
"택시는 내일 9시까지 우리 집에 오기로 했고
우체국 통장에 있는 돈 이백만환을 전부 다
찾았네!
그러니까 내일 새벽밥을 먹고 가도록 하세!
그리고 민우도 군대 가고 식모도 철이 들어
나갔으니 전부다 빈방이라네!
그러니 아무 방에나 군불 지피고 자도록 하게!"
"예~, 아버님 알겠습니다."
세 사람은 새벽밥을 먹고 마산으로 갈 채비를
하였고
그때 택시가 조성태의 집 마당으로 들어왔다.
택시는 버스와 달리 서는 곳도 없어 조성태가
아내를 자전거에 태우고 읍내로 나가는 시간에
벌써 마산병원에 도착했다.
조성태는 쌀 한가미니 값을 비싼 택시비로 치르고
부랴부랴 병원으로 들어갔다.
조성태와 아내, 그리고 성재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마침 부산의 정형외과 의사도 와있었다.
마산병원 원장은 보호자 일행을 원장실로 불렀다.
"보호자분,
우선 여기 자리에 앉으세요!
어이, 간호사!
여기 커피 다섯 잔 만 타 가지고 오세요!"
"네~, 원장님 알겠습니다."
세 사람은 자리에 앉아서 무슨 말이 나올지 원장의
입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에~, 이분은 일본에서 함께 의학공부를 한
정형외과 전문의이며 저의 친구입니다.
아이가 어려서 어떻게 치료를 해야 할지
의논을 했답니다.
우선 지켜봐야 하겠지만 다행히 뇌진탕은 없으나
골반뼈와 발목 골절이 큰 문제입니다.
친구인 정형외과 의사의 자문을 받아 충격이
없도록 반 기푸스를 했습니다.
다행히 아기가 크면서 성장판이 정상적으로
복원된다면 약간 다리를 저는 것으로 치유가 되겠지만
만약 성장판이 복원되지 않으면 골절된 다리가
더 이상 자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아이고 원장님!
저는 저 똘방이 할애비 되는 사람입니다.
돈은 얼마가 들어도 제가 감당할 테니 어쨌거나
똘방이가 정상적으로 자랄 수 있도록 만 해주세요!
제가 그래도 밀양땅에선 땅부자입니다."
"예~,알겠습니다.
저는 의사로서 최선을 다 하도록 하겠습니다."
세 사람은 원장과 상담을 마치고 민지와 똘방이가
있는 입원실로 돌아왔다.
"아이고 이것아!
그래 어쩌다가 이모양이 되었어 글쎄!"
민지 엄마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자리에 앉았다.
"엄마 아버지 죄송합니다.
이런 일로 오시게 해서 면목이 없습니다."
"그래, 민지야!
어차피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후회보다는
치료에 집중하거라!
그나저나 내가 문주사에게 가서 똘방이 이름을
길할 길자에 목숨 수로 지었는데
이름대로라면 아무 일 없을 텐데 말이다."
"그러게요 아버지!
저야 시간이 지나면 낫는다지만 똘방이가
걱정입니다."
"그래, 그러니까 지금부터라도 똘방이 대신
길수라고 부르도록 하거라!"
마침 그때 그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길수가 잠에서 깨어나 또 울기 시작했다.
민지 엄마는 길수를 않고 토닥거렸고
성재는 간호사를 부르며 밖으로 나갔다.
병실로 들어온 간호사는 가루약을 우유에
타서 먹이도록 복약지도를 해주고 나갔다.
길수는 우유 꼭지를 입에 물고서야 울음을 그쳤다.
"그래, 민지야!
병원에 밥은 먹을만하더냐?"
"예, 아버지!
음식은 잘 나오니까 걱정 마세요!
그나저나 엄마 아버지 점심을 드셔야지요!
저는 조금 후 식사시간이니까 걱정 마시고
셋이서 점심을 드시고 오도록 하세요!"
"그래, 알았다 민지야!
"여보, 나가서 어디 가락국수라도 먹으러 갑시다."
"아버지!
보호자 점심은 주문을 안 해서 안 나오니까
성재도 데리고 가세요!"
"애는 너의 신랑이고 길수의 아버지인데 성재가
뭐냐 성재가!
앞으로는 길수 아버지라고 부르거라 알겠냐?"
"예, 엄마 알았어요!"
세 사람은 밖으로 나와서 길거리를 두리번거렸다.
"아버님은 뭐 드실 겁니까?
아직 점심대접 해드릴 돈은 있답니다."
"됐다.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민지와 길수 뒷바라지나
잘하도록 해라!"
세 사람은 조성태의 뜻대로 가락국수로 점심을
때우고 병원으로 돌아왔다.
"민지야!
애비가 여기 있어봐야 도와줄 것이 아무것도 없구나!
내가 통장에 있는 돈 전부 찾아왔단다.
내가 길수 아범을 데리고 가서 이백만환을 마성재
이름으로 넣어줄 테니 우선 이 돈으로 입원비와
생활에 보태 쓰도록 해라!
집으로 돌아가 땅을 좀 더 팔아서 돈이 만들어지면
다시 오도록하마!"
"예, 아버지!
속 썩여 드려서 정말로 죄송합니다."
"그래, 어차피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길수와 너의
치료나 잘하도록 하거라!"
"그래, 이것아!
너 아버지가 성질은 급해도 너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잖아 알겠냐 민지야?"
"예, 알고 있습니다.
엄마 아버지 제가 잘못했으니 용서해 주세요!"
"그래, 엄마 아버지 간다.
여하튼 치료에 전념하거라!"
"예, 알겠습니다.
저는 똘방이 때문에 못 나가요!
성재야 엄마 아버지 터미널까지 모셔다드려!"
"에구, 쯔쯔쯔
길수라고 부르고 길수 아버지라고 부르거라 알겠냐!"
조성태는 안타까움에 뒤돌아보지도 않고 밖으로
나갔고 민지 엄마는 민지를 다독거리고 따라나섰다.
"길수 아범아!
갈 때는 시간이 넉넉하니 버스 타고 가도 된단다.
그러니까 우체국이나 먼저 가보자!"
조성태는 가지고 온 돈을 마성재 이름으로 통장을
만들어 입금을 시켜주고 다시 터미널쪽으로 나갔다.
"예, 아버님!
터미널까지 모셔다 드릴게요!"
"아니다.
저기 버스터미널이 보이니까 걱정 말고 가보거라!
아까도 얘기를 했듯이 돈이 마련되면 그때 다시
병원으로 오마!"
"예~, 어머님 아버님 고맙습니다.
그럼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그래, 마서방!
민지와 길 수를 잘 돌봐주게나!"
"예, 걱정 마세요 어머님!"
조성태와 아내는 손을 흔들며 터미널로 향했다.
병원으로 돌아온 성재는 민지와 길 수의 상태를
살펴보고 원무과로 가서 입원보증금 십만환을
납부했다.
"엄마가 오늘부터 길수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했어!
그러니까 길수 아버지라고 할게!"
"응, 뭐 그게 어때서 아무렇게나 불러도 상관없어!"
"그래, 저녁부터는 보호자 식사도 주문했으니
저녁 먹고 불편하지만 간이침대에서 자고
아침을 먹은 후 시계방에 나가도록 해!"
"알았어 민지야!"
"아이참,
엄마가 길수 엄마라 부르라고 했잖아!"
"그래그래 알았어 길수 엄마!"
성재는 계면쩍어하면서 길수 엄마라고 불렀다.
성재는 이튿날 아침을 병원에서 먹고 시계방으로
향했다.
"어이, 마군 나왔는가!
그래 애기와 애엄마는 좀 어떤가?"
"예~, 사장님!
장인 장모님이 오셔서 입원비도 주시고 가셨습니다.
저는 2층에 잠깐 들렀다가 내려올게요!"
"그래, 그렇게 하게나!"
길수는 저녁엔 병원으로 가서 저녁을 먹고
민지와 길수를 돌보고 이튿날 아침밥을 먹고
시계방으로 드나드는 일과를 이어갔다.
성재가 병원으로 오가는 길목 가로수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성재는 민지와 길수가 함께 나들이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민지와 길수가 입원한 지 한 달이 지나서 원장은
다시 엑스레이를 찍고 성재를 원장실로 불렀다.
"에~, 엑스레이 상으로 봐서는 뼈가 많이 붙었어요!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뼈 성장이 빨라서 뼈는
더 잘 붙어요!
그러나 걱정은 오른쪽 골전된 뼈가 더 이상 잘
자라지를 못해요!
좀 더 지켜본 후에 퇴원 조치를 하도록 합시다."
"네~, 원장님!
여하튼 계속 길수 치료를 잘 부탁드립니다."
성재는 계속해서 병원과 시계방을 오가며
다시 한 달이 지났다.
원장은 이번에도 엑스레이를 찍고 다시 성재를
원장실로 불렀다.
"보호자분!
이제 골전된 뼈는 완전히 붙었어요!
그러나 오른쪽 다리의 뼈가 왼쪽보다 성장이 느려
편차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이것은 하늘에 운명을 맞기는 수밖에 없어요!
부산에 있는 정형외과 친구와도 의논을 했지만
현제 의술로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답니다.
그러니까 너무 상심하지 마시고 퇴원을 해서
일주일에 한 번씩 통원치료를 오도록 하세요!"
"예, 알겠습니다.
그동안 치료를 잘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아, 그리고 아기는 침대를 쓰면 안 됩니다.
혹시 낙상할 위험도 있으니 두꺼운 요대기를
깔고 재우도록 하세요!"
"예, 원장님 알겠습니다."
성재는 우체국에서 돈을 찾아 두 달간 입원 치료비
칠십만환을 납부하고 퇴원 준비를 했다.
"자~, 길수야!
엄마 등에 어부바하고 집으로 가자!"
길수는 집에 가는 게 좋은지 생글생글 웃었다."
"그래,
우리 길수도 고생 많았고 길수 엄마도 고생했어요!"
성재는 그동안 입원하며 쌓인 커다란 보따리를
둘러메고 셋이서 나란히 집으로 향했다.
사월 초에 입원을 해서 유월초에 퇴원을 했으니
어느새 한여름이 되었다.
"자, 길수야 집이다. 우리 집이다.
아이고 두 달 만에 집에 오니까 기분이 이상하네!
어, 2층에도 대문을 달았네?"
"응, 2층 계단에 대문이 없어서 길수가 떨어졌잖아!
그래서 내가 샷시집 사람을 불러서 대문을 달았어!"
"아이고 정말로 잘했네! 호호호"
"오랜만에 민지 네가, 아니 길수 엄마가 웃는 것을
보니까 나도 기분이 좋아지네!"
"그래, 그러면 됐어!
그나저나 원장님이 길수 다리가 잘 자라고
안 자라고는 하늘에 뜻이라고 했거든?
우리 시계방 사장님 다니는 성당에 나갈까?"
"응?
뜬금없이 성당은 웬 성당?"
"아니, 민지야!
원장님 말씀대로 우리가 성당에 가서 간절히
기도드리면 길수가 잘 자랄 것 같아서!"
"그래, 그건 나에게도 소원이니까
그러면 이번주 일요일부터 가도록 하자!"
민지와 성재는 길수의 치유를 위해서 성당에
나가기로 합의를 했다.
그러나 그것은 두 사람의 바렘이었지 길수가
돌이 될 즈음 벽을 붙들고 일어설 때 오른쪽
다리가 더 짧은 것이 확연히 눈에 띄었다.
한편 조성태의 논에는 모 심기가 끝나고 벼가
시퍼렇게 자라기 시작했다.
어느 날 읍내 복덕방 사장이 양복 입은 신사와
선글라스를 쓴 아주머니를 모시고 조성태의 집으로 왔다.
"어이,
조사장 집에 있는가!"
"응, 읍내 복덕방 양사장 왔구먼!
그래 무슨 일로 왔는가?"
"자네가 논 다섯 마지기 팔아달라고 했잖은가?"
"그래, 그랬지!"
"여기 부산에서 정년퇴직한 선생님 부부가
오셨다네!
두 분이 이동네로 이사 와서 살고 싶어 하신다네!
"아~, 그래서 들렸구먼!"
"자~, 서로 인사를 하시지요!"
"예, 어서 오세요!
저는 조성태라고 합니다."
"예~, 반갑습니다.
저는 교직에서 퇴임 후 농사나 지으면서 살까 해서
내려온 이학재이고 여기는 제 안사람 됩니다."
"예~, 반갑습니다.
그나저나 농사가 쉬운 게 아닌데요!
농사를 지어보셨나요?"
"아닙니다.
여기 복덕방 양사장이 중학교 동창이라서
부탁을 했답니다.
마침 양사장이 기름진 땅에 좋은 논이 있다고 해서
같이 왔답니다."
"예~,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는 좋은 논입니다.
제가 급하지만 않으면 절대로 안 팔 겁니다."
"예~, 급한 사정이 있었군요!"
"어이, 조사장!
자네 저기 윗동네에 집도 있잖은가?"
"그래, 애들 혼인하면 독립시키려고 사뒀지!
지금은 세를 줬는데 올해 시월이 만기라서
재계약을 해야 한다네!
아참, 그것도 자네 양사장이 소개를 했잖은가!"
"그래, 잘됐네 잘됐어!
아예 이 기회에 논 다섯 마지기 하고 텃밭이 딸린
집도 그만 이학재 선생에게 팔게나!"
"그래, 그것도 좋지만 값을 후하게 쳐줘야지!
난 돈이 좀 필요하지만 싸게 팔 생각은 없다네!"
"알았네 알았어!
일단 구경부터 시켜주고 읍내 복덕방으로 가세나!"
네 사람은 벼가 실하게 자라는 논에 들려 윗동네
세를 준 조성태의 농가주택으로 갔다.
"에~, 내가 소개를 해준 집이지만 양지바른
남향집에 50평짜리 텃밭이 있으니 살기에는
금상첨화일세!"
"아, 이 사람아!
논에 시퍼렇게 자란 벼도 자랑을 해줘야지! 하하하"
"뭐, 그렇게 자랑을 안 해도 내 눈으로 다 확인을
했답니다. 하하하 하하하"
네 사람은 읍내 복덕방으로 가서 잠깐의 밀당을
한 끝에 논과 텃밭이 딸린 집을 사고팔았다.
조성태는 돈이 마련되자 마산 민지에게
갈 준비를 했다.
"여보!
길수 첫돌이 이달이라고 그랬지?"
"예, 음력 팔월 스무엿새니까 사흘 후가 길수
돌이네요 돌!"
"그러면 하루전날 장터 가서 돌반지와 이것저것
선물을 사가지고 갑시다.
논 일 밭 일 다 해놨으니 이번에는 하룻밤 자고 오도록 합시다
"아이고 집 떠나서 하룻밤도 못 자는 양반이
어쩐 일이데요?"
"어흠 어흠,
그래도 첫 손자 돌이니까 하루쯤 놀다 와야지
안 그렇소 임자!"
"아이고 당신도 이제 나이 들어가니까 조금씩
변해가는구려!
여하튼 놀다가 자고 온다니 나는 좋아요! 호호호"
한편 길수는 돌이 되어가면서 엄마 아버지 발음을
떠듬떠듬 따라서 했고 도리도리 짝짜꿍 등
민지와 성재가 하는 말을 다 따라서 했다.
그러나 길수는 첫돌이 되어서도 걷지를 못했다.
그것은 양쪽 다리의 편차 때문에 중심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민지와 성재는 돌 전날 아이 돌 때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의논을 하고 있었다.
그때 대문 초인종 소리가 들여왔다.
"민지야!
길수 아범 나왔네 문 좀 열어주게나!"
"어, 엄마 목소리가 들리네!
자기야 빨리 나가봐!"
"응, 알았어!"
성재는 밖으로 뛰어나갔고 민지도 길수를 업고
밖으로 나갔다."
"아이고 어머님 아버님 오셨군요!
더운데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래, 그동안 잘 있었는가?
길수는 잘 크고 있는가?"
"예, 얼른 안으로 들어오세요!"
"아이고 엄마 아버지 어서 오세요!
갑자기 어쩐 일이시데요?"
"아이고 이것아!
내일이 길수 첫돌이 아니더냐?
너 아버지가 날짜를 알고 있더구나! 호호호"
"네~, 그러셨군요!
안 그래도 마서방과 무슨 선물을 사야 되나 하고
의논을 하고 있었답니다."
"걱정하지 마라!
이 에미가 다 사가지고 왔단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장인 장모님!"
민지 엄마와 아버지가 오시면서 2층에 웃음꽃이
피었다.
"그래, 어디 보자!
우리 길수 다쳐서 고생이 많았지?"
조성태 부부는 길수를 않고 기뻐했지만 길수의
길이가 다른 짝다리를 보고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밖으로 내색은 할 수가 없었다.
"그래, 어멈아!
아직 둘째 소식은 없느냐?"
민우, 민지 너처럼 두 살 터울이 아이들을 위해서도
좋단다."
"예, 아버지!
소식도 없지만 아직은 길수 때문에도 계획이
없답니다."
민지와 성재도 조성태 부부도 길수의 다리 때문에
걱정이 됐지만 아무도 내색할 수가 없었다.
이튿날 미역국에 길수 첫 생일 아침을 먹은 뒤
상위에 실타래, 연필, 공책, 장난감과 빳빳한 지폐를
올려놓고 길수에게 고르라고 외쳤다.
길수는 연필도 공책도 장난감도 아닌 돈을 집어서
입으로 가져갔다.
"아이고 우리 길수가 부자가 되고 싶은가 보다.
호호호 "
길수의 의외적인 행동에 모두가 한바탕 웃었다.
길수의 백일잔치에 걱정을 했던 민지와 성재는
부모님이 오시는 바람에 일거에 해결이 되었다.
조성태는 돌잔치가 끝나자 상위에 봉투를
올려놓았다.
"내가 죽어서 싸들고 갈 땅도 아니라서 저기
윗동네 집과 냇가 옆에 논을 팔았다.
내가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땅 판돈 삼백만환을
가지고 왔다.
더 이상은 나에게 바라지도 말고 이 돈으로
잘 살도록 해라!"
조성태는 이 말을 끝으로 아내와 함께 밀양으로
떠났다.
민지는 원장의 말대로 밀수품인 비싼 보행기를
사서 길수에게 주었다.
길수는 보행기를 잡고 걸었으나 아버지 성재처럼
절뚝거리며 걸었다.
민지와 성재는 매주 성당에 나가서 길수가
잘 걸을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그러던 연말 어느 날 차가운 동지섣달 칼바람이
엄청나게 불었다.
성재는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아침을 먹고
시계방으로 내려갔다.
성재는 시계방 앞에서 깜짝 놀랐다.
미닫이문 아래에 시계방 사장이 깔려있는 것이었다.
시계방 사장은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성재는 시계방 사장을 안으로 끌어당겨
이불을 덮어주고 절뚝거리며 마산병원으로 내달렸다.
마산병원에는 미군이 쓰던 소형버스를 엠블란스로
개조해서 쓰고 있었다.
성재는 자초지종을 말하고 엠블란스 기사와 함께
시계방으로 왔다.
시계방 김사장은 마산병원에서 응급처치를 했으나
의식이 흐릿한 채 말도 더듬었다."
"이이보오게 마군!
서엉당에 신부니임을 모오시고 오오게나!"
시계방 김사장은 억지로 말을 이어갔다.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걱정 마시고 누워계세요!"
성재는 또 한 번 절뚝거리며 성당으로 내달려야 했다.
성재는 성당에 가서도 헐떡거리며 신부님에게
자초지종을 말했다.
키가 크고 깡마른 미국인 신부는 한 손에는 성경책을 들고
또 한손에는 성재의 손을 잡고 뛰어야 했다.
병원 응급실에는 원장도 와있었다.
"안녕하세요 신부님 오셨군요!
환자분이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찬바람을 맞아서
뇌졸중이 왔어요!
쓰러진 채로 체온이 급격하게 떨어져 동맥경화가
심하게 진행되어서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답니다."
"예~, 그러셨군요!"
"환자분이 유언을 하실 것 같으니 잘 들어보세요!"
"센토니, 센토니 신도님!
제말 들리시나요?"
시계방 김사장의 세례명이 센토니라서 신부는
그렇게 불렀다.
"예에 신부니임!
그도옹안 저를 보오살펴 주우셔서 고오맙스니다.
마아군, 가아게 그음고에 있는 토옹장과 도자앙을
시인부님께 드려라!
시인부니임, 그어 도온을 불울싸앙한 사람드을께
써어주세요!
그어리고 마아군!
내에가 마냑을 위이해 계에약서를 그음고에
써놨으니 가아게는 자네가 마앝아서 하게나!"
"예, 알겠습니다.
빨리 쾌차하셔야지요 사장님!"
"아이고 센토니 신도님!
정신 차리고 일어나셔야지요!"
시게방 김사장은 평생동안 모아둔 돈을 불우이웃을 위해 성당에 기부를 했고 시계방은 성재에게 물려주었다.
시계방 김사장은 힘없이 고개를 저었고 잠시 후
신부의 손을 잡은 채 임종을 했다.
전쟁통에 먼저 간 부인과 육이오 동란 때 입대해서
전사한 아들 곁으로 떠난 것이다.ㅁ
*마지막 6부로 이어집니다*
*아래는 국가기록원에 관리 등재된 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