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님은 죽음을 없애시고, 복음으로 생명을 환히 보여 주셨네.”(2티모 1,10)
교회는 오늘 서방 교회의 4대 교부로 꼽히는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를 기억하고 기념합니다. 우리에게는 성경을 번역한 학자로 잘 알려진 예로니모 성인은 340년 무렵 크로아티아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정부 관리로 일할 정도로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는 유능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하느님만을 찾고 하느님께 모든 것을 봉헌하는 수도 생활에 대한 관심을 갖고 오랜 시간 사막에서 은수생활을 하며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의 본래 언어인 히브리어에 대한 연구에 몰두하게 됩니다. 사제가 된 후에는 다마소 1세 교황의 개인 비서로 일하게 된 성인은 교황으로부터 히브리어로 된 성경을 대중들이 읽을 수 있도록 대중 라틴어로 번역하라는 명을 받게 됨으로서 성경을 번역하는 일에 몰두하게 됩니다. 교황이 선종한 후 예수님이 탄생하신 이스라엘 베들레헴의 작은 지하 동굴에서 죽는 순간까지 성경을 번역하며 수많은 신학 저술을 남기고 420년 선종합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말씀인 거룩한 성경을 모든 이들이 읽을 수 있도록 대중의 말로 번역하는 일에 평생을 헌신하고 교회의 학자로 기억되는 성 예로니모를 기억하는 오늘 미사를 시작하며 봉헌하는 입당송의 시편의 말씀은 그 같은 성인의 삶을 잘 기리는 말씀입니다. 입당송의 시편은 이렇게 말합니다.
“행복하여라! 주님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 그는 제 때에 열매를 맺으리라.”(시편 1,2-3)
주님의 가르침이 담겨 있는 성경을 평생 밤낮으로 되새기며 그 말씀을 모든 이들이 읽을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하는 데에 온 삶을 바친 성 예로니모 성인이야말로 제 때에 열매를 맺으며 하느님 안에서 진정 참 행복을 누린 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같은 성인의 기억하는 오늘 복음 말씀은 예수님이 하시는 모든 일에 놀라워하는 이들에게 전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악령에 사로잡혀 고통 받고 있는 아이를 한 마디 말로 꾸짖어 악령을 쫓아내고 아이를 낫게 하는 기적을 베푸는 예수님을 보고 많은 이들은 놀라워하는 순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들어라.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루카 9,44)
많은 이들이 예수님이 행하시는 놀라운 기적을 보고 경탄하고 있을 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 기적들이 보여주는 외적인 면이 아닌 그 내면에 담긴 참된 뜻, 곧 예수님이 메시아로서 이 세상에서 이루실 일에 주목하고 그것에 집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이루신 일이란 다름 아닌 사람의 아들인 예수님이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 위에서 죽게 될 것이라는 끔찍한 일을 말합니다. 이에 제자들은 예수님이 뜬금없이, 마치 자다가 봉창 두들기듯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우러러보며 그 분이 하신 일에 놀라워하고 있는 그 순간에 느닷없이 하는 이 말에 그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고 심지어 그 말씀의 뜻도 물을 용기도 갖지 못합니다. 사실 제자들이 알아듣지 못한 그 말씀의 참 뜻은 바로 오늘 복음환호송의 말씀 안에 잘 담겨져 있습니다. 티모테오 2서의 말씀을 인용한 복음환호송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님은 죽음을 없애시고, 복음으로 생명을 환히 보여주셨네.”(2티모 1,10)
예수님께서 당신이 전하는 하느님의 기쁜 소식인 복음을 통해 세상을 환히 밝혀 주시는 그 진리는 바로 우리 곁에서 언제나 우리를 위협하고 두렵게 만드는 죽음을 없애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방법이란 다름 아닌 예수님 스스로 희생제물이 되어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는 것, 사랑하는 이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어놓는 사랑의 극한의 표현이 바로 그 방법입니다. 이 사랑을 실현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이 말씀과 행적으로 그 사랑을 미리 예고하고 알리고 있을 때, 많은 이들은 그 일에 담긴 예수님의 참된 뜻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오직 그 외면적 사건의 놀라움에만 사로잡혀 있습니다. 이처럼 오늘 복음말씀은 하느님이 하시는 일을 알아듣지 못하고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이들의 완고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오늘 복음이 전하는 이 같은 상황을 대할 때마다 예수님이 느끼셨을 답답함이 얼마나 컸을지 미루어 짐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이 같은 면에서 오늘 독서의 즈카리야 예언서의 말씀은 지금은 우리의 머리로 이해되지 않고 지금은 우리의 마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우리의 모든 원의와 바람을 채우고도 남을 정도의 크고도 넑고 깊은 하느님의 사랑을 다음과 같이 선포합니다. 예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딸 시온아, 기뻐하며 즐거워하여라. 정녕 내가 이제 가서 네 한가운데 머무르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그날에 많은 민족이 주님과 결합하여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 한 가운데에 머무르리라.”(즈카 2,14-15)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삶, 그 삶이 바로 우리 삶의 참된 기쁨의 원천이며 참 행복의 근거입니다. 왜냐하면 그 분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스스로 목숨을 바쳐 우리 삶에서 죽음 없애시고 복음으로 생명을 환히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생명의 말씀이 바로 성경, 하느님의 말씀인 거룩한 성경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예로니모 성인을 기념하는 오늘, 여러분 모두가 언제나 성경을 가까이 하며 성경의 하느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그 말씀 안에 담긴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그리고 그 사랑의 체험이 바로 여러분 삶의 참 기쁨의 원천이 되시기를 언제나 기도하겠습니다.
“우리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님은 죽음을 없애시고, 복음으로 생명을 환히 보여 주셨네.”(2티모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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