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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3 편
로마에서 돌아오는 여행
133:0.1 로마를 떠날 준비를 할 때, 예수는 그의 친구들 중 누구에게도 작별인사를 하지 않았다. 다마스커스 서기관은 예고 없이 로마에 나타나서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 그를 알고 사랑했던 사람들이 그를 다시 볼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하기까지 만 1년이 지났다. 2년이 끝날 무렵 그를 알았던 소수의 사람들이 그의 가르침에 대한 공통된 관심과 그와 함께한 좋은 시간들에 대한 상호 기억으로 인해 서로 모이게 되었다. 금욕주의파, 견유학파, 신비 종파로 이루어진 이 작은 집단은 로마에 처음 기독교의 첫 전도자들이 나타날 때까지 이러한 불규칙하고 비공식적인 모임을 계속 이어갔다.
133:0.2 고노드와 가니드는 알렉산드리아와 로마에서 물건을 무척 많이 샀기 때문에 모든 짐을 타렌툼으로 가는 짐수레에 실어 보냈고, 한편 세 나그네는 이름난 아피아 길을 따라 이탈리아를 한가히 걸었다. 이 여행에서 그들은 온갖 종류의 인간들과 마주쳤다. 고귀한 로마 시민과 그리스 거류민이 이 길을 따라서 살고 있었지만, 이미 많은 하층 노예들의 자식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133:0.3 어느 날, 타랜툼 여정 중 점심을 먹으며 쉬고 있던 중, 가니드는 예수에게 인도의 카스트 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직접 물었다.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여러 면에서 다르지만, 하나님과 영적인 세계에서는 모든 사람이 동등한 위치에 서 있다. 하나님의 눈에는 오직 두 그룹만이 존재한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다. 우주가 거주하는 세계를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로 두 가지 큰 분류가 있다: 하나님을 아는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는 어느 주어진 영역의 동물로 간주된다. 인류는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직업적, 도덕적으로 볼 수 있듯이 다양한 자격에 따라 적절하게 여러 계층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한 부류의 인간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나타날 때 그들은 동등한 위치에 서 있다; 하나님은 진정으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지적, 사회적, 도덕적 문제에서 인간의 능력과 자질에 대한 차별적 인식을 피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 앞에서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인 인간의 영적 형제 사랑 안에서는 그러한 차별을 두어서는 안 된다.”
1. 자비와 공정
133:1.1 어느 날 오후 타렌툼에 가까이 갔을 때 길가에서 매우 흥미로운 사건이 일어났다. 거칠고 약자를 괴롭히는 한 청소년이 어린 소년을 잔인하게 때리는 것을 보았다. 예수는 서둘러 폭행당하는 소년을 구출한 후, 어린 소년이 달아날 때까지 가해자를 붙잡고 있었다. 예수가 가해자를 풀어주자마자 가니드는 소년에게 달려들어 마구 때리기 시작했고, 즉시 예수가 제지하자 가니드는 깜짝 놀랐다. 예수가 가니드를 제지하고 이어 놀란 소년이 달아나자, 가니드는 숨을 돌리자마자 흥분해서 소리쳤다: “선생님, 저는 당신을 이해할 수 없어요, 자비가 작은 소년을 구하라고 한다면, 공정은 덩치가 큰 저 폭행하는 청소년을 처벌해야 하지 않나요?” 예수는 대답하여 말했다:
133:1.2 “가니드, 네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자비의 사역은 항상 개인의 일이지만, 공정한 처벌은 사회, 정부, 혹은 우주 관리 집단의 기능이다. 나는 개인으로서 자비를 보여야 한다; 모든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가해자를 제지할 수 있는 충분한 힘을 사용해야 한다. 바로 내가 그렇게 하였다. 나는 피해를 입은 소년을 구해냈다; 그것이 바로 자비의 사역이 끝난 순간이다. 그 후 나는 공격자를 충분히 오랫동안 붙잡아 두어 싸움에서 약한 쪽이 도망칠 수 있도록 했으며, 그 후 나는 그 일에서 물러났다. 나는 공격자에 대해 심판을 내리지 않았고, 따라서 그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그가 동료를 공격한 이유―에 대해 판결을 내리고, 그런 그의 잘못에 대한 공정한 보응으로 내 마음이 지시하는 처벌을 집행하려 하지 않았다. 가니드, 자비는 아낌없이 베풀 수 있지만, 공정은 정확하다. 두 사람이 공정한 요구를 만족시킬 처벌에 대해 의견이 일치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분별할 수 없겠니? 한 사람은 마흔 대의 채찍질을 하자고 하고, 또 다른 사람은 스무 대를 원하며, 또 다른 사람은 고립된 감옥에 갇히는 것이 공정한 처벌이라고 말할 것이다. 이 세상에서 그런 책임은 집단에 맡기거나 집단의 선택된 대표자들에 의해 관리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알 수 있겠니? 우주에서는 잘못된 행위의 모든 배경과 동기를 완전히 아는 이들이 심판을 맡는다. 문명 사회와 조직된 우주에서 공정의 집행은 공정한 판단에 따른 정의로운 판결을 전제로 하며, 그런 특권은 세계들의 법적 집단과 모든 창조의 더 높은 우주 관리자들에게 맡겨진다.”
133:1.3 그들은 며칠 동안 자비를 베풀고 공정을 집행하는 이 문제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가니드는 예수가 왜 개인적인 싸움에 참여하지 않았는지 어느 정도는 이해했다. 그러나 가니드는 마지막으로 한 마디 물었고 결코 충분히 만족스러운 대답을 얻지 못했다. 그 질문은 이러했다: “그러나 선생님, 더 힘세고 성질 나쁜 사람이 당신을 공격하고 죽이려고 위협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겠습니까?” 예수가 그 소년의 질문에 완전히 만족스러운 답을 줄 수 없었던 것은, 그가 지구에서 파라다이스 아버지의 사랑을 우주가 지켜보는 가운데 본보기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그에게 밝히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133:1.4 “가니드, 네가 이 문제들이 어떻게 너를 당혹스럽게 만드는지 잘 이해할 수 있다. 너의 질문에 답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먼저, 내게 가해지는 모든 공격에 대해서, 나는 공격자가 하나님의 아들―육체를 입은 내 형제―인지를 판단하고, 그러한 사람이 도덕적 판단과 영적 분별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 공격한 자에게 무슨 결과가 생기든지, 주저하지 않고 저항하는 능력이 다할 때까지 내 자신을 방어할 것이다. 그러나 자기 방어의 경우에도, 나는 아들 지위를 가진 동료 인간에게 그렇게 폭력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나에게 폭력을 썼다고 해서 재판도 받기 전에 미리 그를 처벌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가능한 책략으로 그런 공격을 미리 막고, 공격하지 않도록 설득하며, 그만두게 하지 못할 경우에는 완화시킬 것이다. 가니드, 나는 내 하늘 아버지가 넘치게 돌보심을 절대로 확신한다. 나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일에 헌신하고 있다. 나는 진정한 해악이 나에게 닥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적들이 나에게 무슨 해를 끼치고 싶어 하더라도 그 때문에 일생의 일이 정말로 위태롭게 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그리고 분명히 친구들의 폭력을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 나는 우주 전체가 나에게 친절하다는 것을 절대로 확신한다―이 모든 강력한 진실은 겉모습이 모두 반대로 보인다 하더라도 전심으로 신뢰하며 믿어야 한다고 나는 주장한다.”
133:1.5 그러나 가니드는 완전히 만족해하지 않았다. 여러 번 이 일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예수는 어린 시절의 체험을 얼마큼, 또한 석공의 아들 야곱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어떻게 야곱이 예수를 방어하는 일을 스스로 맡았는지를 듣고 나서 가니드는 말했다: “아하, 이제야 알겠습니다! 애초에 어떤 평범한 사람도 당신처럼 그렇게 친절한 사람을 공격하고 싶어 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고, 생각이 아주 모자라서 누가 그런 일을 하더라도, 곤경에 빠진 사람을 보면 당신이 언제나 구조하러 가는 것 같이 당신을 도우려고 급히 달려올 어떤 다른 사람이 가까이 있을 것이 아주 확실합니다. 선생님, 진심으로 당신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아직도, 내가 야곱이었다면, 단지 당신이 자신을 방어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에 당신을 주제넘게 공격하는 버릇없는 친구들을 즐겁게 벌주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당신은 대부분의 시간을 다른 사람들을 돕고 곤경에 처한 동료들을 섬기는 데 보내므로 인생의 여정에서 상당히 안전하다고 생각하는데, 아마도 당신을 지켜줄 누군가가 항상 곁에 있을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는 대답했다: “가니드, 그 시험은 아직 오지 않았고, 그 시험이 오면 우리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자기방어와 무저항이라는 어려운 주제에 대해 선생님이 할 수 있는 말의 전부였다. 또 다른 경우에 그는 조직화된 사회는 공정한 명령을 집행하는 데 무력을 사용할 모든 권리가 있다는 의견을 예수에게서 이끌어냈다.
2. 타렌툼에서 배를 타다
133:2.1 배가 상륙하여 짐 내리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여행자들은 자기 아내를 학대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예수는 항상 그렇듯이 공격받는 사람을 돕기 위해 개입했다. 그는 화가 난 남편 뒤로 다가가서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친구여, 잠깐 개인적으로 얘기 좀 할 수 있는가?” 화가 난 남자는 그런 접근에 당황하며 잠시 망설인 후, 말문을 열었다: "어-왜-네, 왜 그러십니까?" 예수가 그를 한쪽으로 이끌며 말했다: "친구여, 나는 당신에게 무언가 끔찍한 일이 일어났음을 느낀다; 당신 같은 그렇게 강한 남자가 자신의 아내이자, 자식들의 어머니를 이렇게 공격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듣고 싶다. 나는 당신이 이렇게 때리는 마땅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여인이 남편으로부터 그런 대접을 받을 만한 일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당신들을 바라보며 생각하건대, 당신 얼굴에 자비를 베풀 소망은 아니라도 공정을 사랑하는 빛이 있음을 보았다. 감히 말하지만, 만약 당신이 길가에서 강도들의 공격을 받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면, 당신은 주저하지 않고 나를 구하러 올 것이다. 감히 말하건대 당신은 일생 동안 그런 용감한 일을 많이 했다. 이제, 친구여, 무슨 일인지 내게 말해보라. 여인이 무슨 잘못을 하였는가? 아니면 어리석게 감정을 잃고 생각 없이 아내를 때렸는가?” 이때 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말씀이 아니라 예수가 말을 마쳤을 때 그를 내려다 본 친절한 모습과 인자한 미소였다. 그 사람은 말했다: “나는 당신이 견유학파의 사제라 짐작합니다. 나를 제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아내는 아무런 큰 잘못이 없고. 착한 여자입니다. 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나를 비난하는 태도 때문에 거슬렸고, 화가 나서 침착을 잃었습니다. 제 자신을 제어하지 못해 죄송하고, 여러 해 전에 좋은 길을 가르쳐 준 당신의 형제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다짐한 것에, 부끄럽지 않게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당신에게 약속합니다.”
133:2.2 예수는 그에게 작별을 고하면서 말했다: “형제여, 여자가 기꺼이 자발적으로 그런 권한을 주지 않는 한, 남자는 여자에 대한 정당한 권위가 없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라. 당신의 아내는 함께 일생을 살아가고, 당신이 투쟁하도록 도우며, 자녀를 낳고 양육하는 짐을 당신보다 훨씬 무겁게 지고 있다; 이렇게 특별히 봉사한 대가로, 아이들을 낳고 기르고 양육해야 하는 파트너로서, 남자가 여자에게 줄 수 있는 특별한 보호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한 남자가 그의 아내와 자녀들에게 기꺼이 베푸는 애정 어린 보살핌과 배려는 그 남자가 더 높은 수준의 창조적, 영적 자의식에 도달한 것을 재는 척도이다. 남녀가 자라서 협동하여 불멸하는 혼의 잠재력을 소유하는 존재들을 창조한다는 점에서 하나님과 동반자라는 사실을 모르겠는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우주에 있는 자녀들의 영 어머니를 자신과 동등한 존재로 대하신다. 당신의 자녀들의 삶 속에서 당신 자신을 재생산하는 신성한 체험을, 어머니 동반자와 동등한 조건으로 그렇게 충분히 모든 것을 공유하는 삶은 하나님과 같다.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듯, 당신이 아이들을 사랑할 수만 있다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광대한 우주의 모든 영적 자녀들의 어머니인 무한한 영에게 영예를 돌리고 그를 높이는 것처럼, 당신도 아내를 아끼고 사랑할 것이다.”
133:2.3 배에 올랐을 때 그들은 눈물을 글썽이는 부부가 말없이 부둥켜안고 서 있는 광경을 뒤돌아 보았다. 고노드는 예수가 그 사람에게 준 말씀의 후반부를 귀담아들었기 때문에, 하루종일 그에 대한 명상에 잠겼고, 인도로 돌아갔을 때 가정을 개혁하기로 결심하였다.
133:2.4 니코폴리스로 가는 여행은 즐거웠지만, 바람이 유리하게 불지 않아서 느렸다. 세 사람은 로마에서 체험한 것을 여러 시간 동안 낱낱이 이야기하고, 예루살렘에서 처음 만난 뒤로 일어난 모든 일에 관하여 회상하였다. 가니드는 영의 개인적 봉사에 몰입하게 되었다. 그는 배에서 도와주는 일을 시작하였지만, 둘째 날에 종교적으로 깊은 문제에 빠졌을 때는 요수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133:2.5 그들은 니코폴리스에서 며칠을 보냈다. 니코폴리스는 약 50년 전 아우구스투스가 악티움 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승리의 도시"로, 그가 전투 전에 군대와 함께 캠프를 치던 땅이었다. 그들은 배에서 만난 한 유대교로 개종한 그리스인 예라미의 집에 머물렀다. 사도 바울은 그의 세 번째 전도 여행 중 예라미의 아들과 같은 집에서 겨울을 보냈다. 니코폴리스에서 그들은 같은 배를 타고 로마의 아카이아 지방 수도인 고린도를 향해 돛을 달았다.
3. 고린도에서
133:3.1 그들이 고린도에 도착했을, 가니드는 유대 종교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어느 날 회당 앞을 지나다가 사람들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 예수에게 예배에 데려가 달라고 부탁한 것은 이상하지 않았다. 그날 그들은 “이스라엘의 운명”에 대한 학식 있는 랍비의 설교를 들었고, 예배 후에 이 회당장 그리스보를 만났다. 그들은 회당 예배에 여러 번 다시 갔지만, 주로 그리스보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가니드는 그리스보와 그 아내, 그리고 아이들이 다섯인 그 가족을 매우 좋아하게 되었다. 그는 유대인이 어떻게 가정생활을 하는지 관찰하는 것을 매우 즐겼다.
133:3.2 가니드가 가족생활을 연구하는 동안, 예수는 그리스보에게 더 낳은 종교적 삶의 방식을 가르치고 있었다. 예수는 미래 지향적인 유대인과 스무 번 이상 회담을 가졌다; 몇 년 후, 바울이 바로 이 회당에서 설교할 때, 유대인들은 그의 메시지를 거부하고 더 이상 회당에서 설교하지 못하게 투표하였다. 그리고 그가 이방인에게 갔을 때, 그리스보는 온가족과 함께 새로운 종교를 받아들였고, 바울이 나중에 고린도에서 조직한 기독교 교회에서 주요한 지지자 중에 하나가 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133:3.3 바울은 고린도에서 18개월 동안 전도하였고 나중에 실라와 디모데가 합류하면서, 그는 “인도 상인 아들의 유대인 가정교사”에게 가르침을 받은 많은 다른 사람들을 만났다.
133:3.4 고린도에서 그들은 세 대륙에서 온 모든 종족의 사람들을 만났다. 알렉산드리아와 로마에 이어 고린도는 지중해 제국에서 가장 국제적인 도시였다. 이 도시는 많은 것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가니드는 바다에 있는 거의 600m 높이 요새를 방문하는 것을 지치지 않았다. 또한 여가 중 상당히 많은 시간을 회당 근처, 그리스보의 집에서 보냈다. 그는 처음에 유대인 가정에서 여자가 누리는 지위에 대하여 충격을 받았고 나중에는 매료되었다; 그것은 이 젊은 인도인에게 큰 계시였디.
133:3.5 예수와 가니드는 회당 옆에 살던 경건한 상인, 유스도의 집에 종종 손님으로 머물렀다. 후일에 사도 바울이 이 집에 머물렀을 때, 인도 청년과 그의 유대인 가정교사와의 방문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고, 바울과 유스도는 지혜롭고 뛰어난 히브리인 선생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했다.
133:3.6 로마에 있을 때, 가니드는 예수가 그들과 함께 공중 목욕탕에 가지 않으려는 모습을 관찰했다. 이후 여러 번 젊은이는 예수에게 남녀 간의 관계에 대해 더 많은 의견을 말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예수는 질문에 답하면서도 이 주제에 대해 깊이 논의하려 하지 않았다. 어느 저녁, 그들이 고린도의 성벽 근처를 거닐고 있는데 두 명의 매춘부가 말을 건넸다. 가니드는 예수가 높은 이상을 가진 사람이요, 더러운 티가 나거나 악한 느낌이 나는 것을 모두 싫어한다는 생각에 젖어 있었고 그는 또한 옳았다. 그 여성들을 거칠게 대하며 쫓아내려 했다. 이를 본 예수는 가니드에게 말했다. "너는 선한 마음으로 이야기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할 권리는 없다. 비록 그들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을지라도. 우리가 누군데 이 여성들을 판단하겠느냐? 그들이 어떻게 그런 생계를 선택하게 되었는지 모든 상황을 너는 아느냐? 여기 나와 함께 앉아 이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하자." 그의 말에 매춘부들은 가니드 보다 더 놀랐다.
133:3.7 그들이 달빛 아래 서 있을 때, 예수는 계속해서 말했다: "모든 인간의 mind에는 하늘 아버지의 선물인 신성한 영이 살고 있다. 이 선한 영은 언제나 우리를 하나님께 인도하고, 하나님을 찾고 알도록 돕기 위해 애쓴다. 그러나 인간 안에는 개인과 인류의 복지를 위해 창조자가 심어 놓은 많은 자연적인 육체적인 성향도 있다. 종종 남성과 여성은 자신을 이해하고, 이기심과 죄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생계를 꾸리기 위한 여러 어려움과 씨름하면서 혼란을 겪는다. 가니드, 나는 이 여성들이 고의로 악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그들의 얼굴에서 많은 슬픔을 겪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잔인한 운명의 손에 많은 고통을 겪었다; 이 삶을 의도적으로 선택하지 않았으며, 절망에 가까운 낙담 가운데,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굴복했고, 이 혐오스러운 생계수단을 받아들였다. 가니드, 어떤 사람들은 정말로 마음속으로 악하다; 그들은 고의로 비열한 행동을 선택하지만, 이제 이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바라보며, 너는 악하거나 나쁜 것이 보이느냐?" 예수가 대답을 기다리며 잠시 멈추자, 가니드는 목이 메어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아니요, 선생님,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무례했던 것을 사과합니다―그들의 용서를 구합니다." 그러자 예수는 말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가 그들을 용서했음을 내가 아버지를 대신하여 말하는 것 같이, 그들이 너를 용서한 것을 그들을 대신하여 말한다. 이제 모두 나와 함께 친구의 집으로 가서 편안히 쉬고, 새로운 더 나은 삶을 계획하자." 그동안 놀란 여성들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서로를 바라보며, 남자들이 길을 이끄는 대로 조용히 따라갔다.
133:3.8 이 늦은 시간에 예수가 가니드와 낯선 두 사람을 데리고 나타났을 때 유스도의 아내가 얼마나 놀랐을까 상상해 보라. 예수가 말했다: “이 시간에 우리가 온 것을 당신이 용서하겠지만, 가니드와 나는 조금 먹고 싶고, 새로 발견한 이 친구들과 더불어 나누어 먹고자 하니, 이들도 또한 영양분이 필요합니다. 게다가, 이 여성들이 인생에서 새 출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최선의 방법에 대해 함께 의논하고 싶다는 생각에 찾아왔습니다. 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겠지만, 많은 고난을 겪었을 것으로 짐작되며, 그들이 지금 당신의 집에 있다는 것은, 그들이 얼마나 좋은 사람들을 알고 싶어하는지, 얼마나 용감하고 고귀한 여성으로 변화할 수 있는지 세상과 하늘의 천사들에게 보여줄 기회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싶어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133:3.9 유스도의 아내, 마르다가 음식을 식탁에 차렸을 때, 예수는 예상치 못하게 그들을 떠나며 말했다: “때가 늦었고, 청년의 아버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 우리가 최고자(Most High)의 사랑하는 분들-세 여인을 남겨두고 떠나는 것에 양해를 구합니다. 당신들이 땅에서 더 나은 새로운 삶과 영생의 계획을 세우는 동안, 나는 당신들의 영적 인도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133:3.10 이렇게 예수와 가니드는 여인들을 떠났다. 이제까지 두 매춘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가니드도 말이 없었다. 마르다도 잠시 동안은 그랬지만, 즉시 자리에서 예수가 바랬던 대로 이 낯선 이들을 위해 모든 것을 해 주었다. 둘 중에 나이 든 여인은 얼마후 영원한 생존에 대한 밝은 희망을 품고 죽었고, 젊은 여인은 유스도의 사업 장소에서 일하다가, 후일에 고린도의 첫 기독교 교회에서 평생 회원이 되었다.
133:3.11 그리스보의 집에서 예수와 가니드는 어느 가이우스라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는 나중에 바울의 충실한 지지자가 되었다. 그들은 고린도에서 이 두 달 동안에 몇십 명의 유익한 사람들과 친밀한 대화를 가졌다. 이런 우연한 접촉의 결과로 영향을 받은 사람들 중 절반 이상이 나중에 기독교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다.
133:3.12 바울은 처음 고린도에 갔을 때, 오래 머무를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유대인 가정교사가 자신의 수고를 위해 얼마나 길을 잘 준비했는지 알지 못했다. 게다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이미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아굴라는 예수가 로마에 있을 때 접촉했던 견유학파의 한 사람이었다. 이 부부는 로마에서 온 유대인 피난민이었고 바울의 가르침을 금방 받아들였다. 바울은 그들과 함께 살면서 일했는데, 그들도 천막 만드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형편 때문에 바울은 고린도에서 더 오래 머물 수 있었다.
4. 고린도에서 개인적으로 한 일
133:4.1 예수와 가니드는 고린도에서 더 많은 흥미로운 체험을 했다. 큰 무리의 사람들과 친밀한 대화를 가졌고, 이들은 예수에게 배운 교훈으로 큰 이득을 얻었다.
133:4.2 그는 방앗간 주인에게 진리의 알갱이를 살아있는 체험의 방앗간에서 갈아, 신성한 삶의 어려운 진리들을 약하고 힘없는 이들조차 쉽게 받아들이게 하라고 가르쳤다. 예수는 말했다: “영적으로 미숙한 자들에게 진리의 젖을 주어라. 너희의 살아있는 사랑의 사역을 통해 영적 음식을 매력적인 형태로 제공하되, 각자의 수용 능력에 맞춰 제공하라.”
133:4.3 로마의 백부장에게 말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리라. 신(Deity)이 홀로 주장할 수 있는 존경을 가이사가 주제넘게 가로채지 않는 한, 하나님께 성실히 봉사하는 것과 가이사를 충실히 섬기는 것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만약 네가 하나님을 알게 된다면, 하나님에 대한 충성은 황제에 대한 충성으로 너를 더욱 더 충실하고 헌신적으로 이끌 것이다.”
133:4.4 미트라 종파의 성실한 지도자에게 말했다: “영원한 구원의 종교를 찾는 것은 잘하는 일이지만, 그런 영광스러운 진리를 인간이 만든 신비와 철학 속에서 찾으려 하는 것은 잘못이다. 영원한 구원의 신비는 바로 당신의 혼 안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가? 하늘의 하나님은 그의 영을 당신 안에 살라고 보내셨고, 이 영은 진리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인간들을 이 삶에서 이끌어 죽음의 문을 지나 하나님의 자녀들을 맞이할 영원한 빛의 나라까지 인도할 것을 알지 못하는가? 결코 잊지 말라: 하나님을 아는 당신이 그처럼 되기를 참으로 갈망하면, 하나님의 아들이다.”
133:4.5 쾌락주의파의 선생에게 말했다: “당신이 최선을 택하고 선을 존중하는 것은 잘하는 것이지만, 인간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인식에서 영적 영역 속에 내재된 더 위대한 것들을 분별하지 못한다면, 과연 그것이 지혜로운 것인가? 인간의 모든 체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 안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을 알고, 그 영이 우리 공동의 아버지, 모든 창조의 하나님, 우주들의 主가 되시는 존재에 이르는 길고도 거의 끝없는 여정으로, 당신을 인도하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133:4.6 그리스의 도급업자이며, 건축가에게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친구여, 사람들이 물질적 구조물을 세우는 것처럼, 당신의 혼 속에 있는 신성한 영을 본받아 영적 성품을 쌓아가라. 세상에서 건축자로서의 성취가 하늘 나라의 영적 아들로서의 성취를 능가하지 않도록 하라. 다른 사람을 위해 이 시대의 저택을 짓는 동안, 영원한 저택에서 살 권리를 얻는 일을 소홀히 하지 말라. 언제나 기억하라, 의와 진리에 기초를 둔 하나님이 건축하고 지은 도시가 있다.”
133:4.7 로마의 판사에게 예수는 말했다: “당신이 사람들을 심판할 때, 언젠가 당신도 우주 통치자들 앞에서 심판 받게 될 것임을 기억하라. 공정하게, 심지어 자비롭게 심판하라, 언젠가 당신이 최상위 중재자의 손에서 자비로운 배려를 요청할 때 그렇게 될 것이다. 문자에 의한 것 뿐만 아니라 법의 정신에서도 인도받게 될 것은, 유사한 상황에서 너 자신이 심판받는 것처럼 심판하라. 당신 앞에 끌려 온 사람들의 필요에 비추어 당신이 공평이 지배하는 공정을 베푼다면, 언젠가 당신이 온 땅의 심판자 앞에 설 때, 자비로 완화된 공정을 기대할 권리가 있을 것이다.”
133:4.8 그리스 여인숙의 안주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최고자의 자녀들을 대접하는 자로서 친절을 베풀라. 너의 일상적인 고된 노동을 고귀한 예술의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려라. 그 방법은 하나님께서 그의 영으로 거하시는 사람들 속에서 하나님을 섬긴다는 점을 점차 깨닫는 것이다. 그 영은 사람들 마음 속에 살려고 내려왔고,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며, 그들의 혼을 이 신성한 영의 선물을 주신 파라다이스 아버지에 대한 지식으로 이끈다.”
133:4.9 예수는 중국 상인과 여러 번 이야기를 나누었다. 작별 인사를 하면서, 예수는 이렇게 권면하였다: “오직 하나님을 예배하라, 그는 너의 참된 영 조상이다. 아버지의 영이 당신 안에 늘 살고, 항상 당신의 혼의 방향을 하늘로 이끈다. 이 불멸의 영의 무의식적 인도를 따르기만 한다면, 당신은 반드시 하나님을 찾는 고귀한 길을 계속 따라갈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이를 때, 그것은 당신이 그분을 찾으며 점점 더 그분과 닮아갔기 때문이다. 자, 장씨여, 작별입니다. 하지만 오직 잠시 동안이니, 혼의 아버지가 파라다이스를 향하는 자들을 위해 마련하신 많은 즐거운 휴식처가 있는 빛의 세계들에서, 우리가 다시 만날 것입니다.”
133:4.10 영국에서 온 여행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형제여, 나는 당신이 진리를 찾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모든 진리의 아버지 영이 당신 안에 살고 있음을 제안한다. 당신은 자신의 혼의 영과 진지하게 대화하려고 노력한 적이 있는가? 그런 일은 정말 어렵고 성공을 의식하기는 드물다; 비록 그러한 위대한 인간 체험의 대부분은 하나님을 아는 인간들의 혼에 초의식적인 기록으로 오래 남을지라도, 물질적인 mind가 그 안에 사는 영과 소통하려는 모든 진지한 시도는 확실한 성공을 거둔다.
133:4.11 집을 뛰쳐나온 소년에게 예수는 일렀다: “하나님과 바로 너―이 둘로부터 네가 달아날 수 없는 것을 기억하라. 어디로 가든지, 너는 네 몸, 그리고 네 마음속에서 사는 하늘 아버지의 영, 이 둘을 가지고 간다. 아이야, 더 이상 자신을 속이려 하지 말라; 삶의 사실을 직시하는 용기 있는 실천에 자리를 잡고, 내가 너에게 가르친 대로, 하나님과의 아들 관계 확신과 영생의 확신을 굳게 붙잡아라. 오늘부터는 진정한 사람, 용감하고 지혜롭게, 삶에 맞서기로 결심한 사람이 되어라.”
133:4.12 사형수에게 그는 마지막 시간에 이렇게 말했다: “형제여, 너는 악한 시대에 떨어졌다. 너는 길을 잃었고 범죄의 그물 속에 걸려들었다. 너와 함께 대화해 보니, 너는 이 현세의 생명을 잃게 될 일을 계획하지 않았음을 잘 안다. 그러나 너는 이 악을 행했고, 동료들은 너를 유죄로 판결하였다; 그들은 너를 죽이기로 결정했다. 너나 나는 국가의 자기 방어 권리를 부인할 수 없다. 인간적으로는 너의 잘못에 대한 처벌을 피할 방법이 없는 것 같다. 네 동료들은 네가 한 일로 너를 심판할 것이다. 그러나 너는 용서를 구할 수 있는 재판관이 계시며, 그분은 네 진정한 동기와 더 나은 의도를 기준으로 너를 심판하실 것이다. 너의 뉘우침이 진심이라면, 네 믿음이 진실하다면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네 잘못이 인간에 의해 사형에 처해졌다고 해서, 너의 혼이 공정을 얻고 하늘 법정 앞에서 자비를 누릴 기회를 막지는 않는다.”
133:4.13 예수는 많은 굶주린 혼들과 친밀한 대화를 나누었으며. 그 수가 너무 많아서 이 기록에 모두 담을 수 없다. 세 여행자들은 고린도에서의 체류를 즐겼다. 교육 중심지로 더 유명한 아테네를 제외하면, 고린도는 이 로마 시대에 그리스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였다. 고린도에서 두 달간의 체류는 세 사람 모두에게 많은 귀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 도시에서의 체류는 로마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들이 멈추었던 가장 흥미로운 곳 중의 하나였다.
133:4.14 고노드는 고린도에서 많은 사업이 있었지만, 마침내 사업을 마쳤고 아테네로 항해할 준비를 했다. 그들은 고린도의 한 항구에서 16Km 떨어진 다른 항구로, 육로를 따라 운반할 수 있는 작은 배를 타고 갔다.
5. 아테네에서―과학에 대한 담화
133:5.1 그들은 그리스의 과학과 학문의 옛 중심지에 도착했고, 가니드는 자신의 나라인 인도까지 국경을 확장했던 옛 알렉산드리아 제국의 문화 중심지인 그리스에 있다는 생각에 전율을 느꼈다. 고노드는 거래할 일이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예수와 가니드와 함께 보냈고, 흥미 있는 여러 장소를 찾아보고 젊은이와 다재다능한 선생의 흥미 있는 토론을 들었다.
133:5.2 아테네에는 여전히 훌륭한 대학이 번성하였고, 세 사람은 그 학문의 전당을 자주 방문했다. 예수와 가니드는 알렉산드리아 박물관에서 강의를 들을 때 플라톤의 가르침에 대해 철저히 토론했었다. 그들은 모두 그리스의 예술을 즐겼으며, 그 예술의 표본들은 여전히 도시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133:5.3 아버지와 아들은 어느 날 저녁에 여인숙에서 예수가 그리스 철학자와 나눈 과학에 관한 토론을 즐겁게 들었다. 이 학자가 거의 세 시간 동안 말을 했고, 그의 강론을 끝냈을 때, 예수는 현대적 사상 관점에서 이렇게 말했다:
133:5.4 과학자는 언젠가 중력, 빛, 전기의 에너지나 힘의 현상들을 측정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과학자들은 이 우주 현상들이 무엇인지(과학적으로) 결코 말할 수 없다. 과학은 물리-에너지 활동을 다룬다; 종교는 영원한 가치를 다룬다. 참된 철학은 이러한 양적, 질적 가치를 연관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지혜에서 나온다. 순전한 물리학자는 영적으로 눈이 먼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수학적 자만과 통계적 자아도취에 빠질 위험이 항상 존재한다.
133:5.5 논리는 물질 세계에서 효력있고, 수학은 물리적 사물에 적용될 때 신뢰할 수 있지만, 삶의 문제에 적용될 때는 전적으로 의존할 수 있거나 틀림없다고 볼 수 없다. 삶은 전적으로 물질적인 현상만을 포함하지 않는다. 산술은 만약 한 사람이 10분 안에 양을 깎을 수 있다면, 열 명은 1분 안에 양을 깎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정확한 수학이지만 사실이 아니다. 열 명은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서로 방해가 되어 작업이 크게 지연될 것이다.
133:5.6 수학은 만약 한 사람이 어떤 지적이고 도덕적인 가치를 대표한다면, 열 명은 그 가치의 열 배를 대표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인간 personality를 다룰 때, 이러한 personality의 결합은 단순한 산술적 합이 아니라, 그 관계에 포함된 personality의 수의 제곱에 해당한다고 말하는 것이 더 가까운 진실일 것이다. 조율된 조화로운 사회 집단은 그 구성 요소들의 단순한 합보다 훨씬 더 큰 힘을 대표한다.
133:5.7 양(量)은 사실로 식별될 수 있어 과학적 일관성을 가지게 된다. 질(質)은 mind의 해석에 관한 문제로, 가치의 평가를 나타내며, 따라서 개인의 체험으로 남아야 한다. 과학과 종교가 더 이상 독단적이지 않고 비판에 더 관용해질 때, 철학은 우주에 대한 지적인 이해에서 통합을 이루기 시작할 것이다.
133:5.8 당신이 실제로 우주의 작용을 이해할 수만 있다면, 그 안에는 통합이 있다. 실재 우주는 영원한 하나님의 모든 자녀에게 친절하다. 진짜 문제는 다음이다: 인간의 유한한 mind가 어떻게 논리, 진리와 일치하는 사고의 통합을 이루느냐 것이다. 이 우주를 아는 mind의 상태는 양적 사실과 질적 가치의 공통된 원인이 파라다이스 아버지에게 있다는 것을 이해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 실체에 대한 이러한 개념은 우주 현상의 목적 있는 통합에 대한 더 넓은 통찰을 낳는다; 그것은 점진적인 personality 성취의 영적 목표를 드러낸다. 그리고 이것은 계속 변화하는 impersonal 관계와 발전하는 personal 관계 속에서 살아 있는 우주의 변하지 않는 배경을 감지할 수 있는 통일성 개념이다.
133:5.9 물질과 영과 그 사이에 개입하는 상태, 실제 우주가 참으로 통합되는 세 가지는, 서로 관계되고 서로 얽혀 있다. 사실과 가치의 우주 현상이 아무리 다르게 보일지라도, 이것들은 결국 Supreme 안에서 하나가 된다.
133:5.10 물질 존재의 실체는 눈에 보이는 물질뿐 아니라 인식되지 않는 에너지에도 연관되어 있다. 우주의 에너지가 필요한 움직임의 정도까지 늦춰질 때, 그때 적당한 조건 밑에서 바로 이 에너지는 질량이 된다. 그리고 기억하라, 겉보기에 실제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mind 그 자체도 실재한다. 이 에너지-질량, mind, 영의 우주 근본 원인은 영원하다―이것은 우주의 아버지와 그의 절대 동등한 자들의 본질과 반응 안에서 구성되고 존재한다.
133:5.11 그들은 모두 예수의 말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그리스인이 그들을 떠나면서 말했다: "마침내 내 눈에 인종적 우월감 외에도 생각하며, 종교 외의 것에 대해 말하는 유대인을 보았소." 그리고 그들은 잠을 자려고 물러갔다.
133:5.12 아테네에서의 체류는 즐겁고 유익했지만, 사람들과의 접촉에서는 특별한 성과가 없었다. 그 시절에 허다한 아테네 사람들은 과거의 명성에 관하여 지적 자부심을 느끼거나, 그리스에서 영광과 지혜가 넘쳤던 옛 시절의 열등한 노예들의 후손으로 정신적으로 둔감하고 무지했다. 그때에 아테네 시민 사이에는 여전히 예리한 mind를 지닌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6. 에베소에서―혼에 대한 담화
133:6.1 아테네를 떠난 여행자들은 트로아스를 거쳐 아시아 로마 지방의 수도인 에베소로 갔다. 그들은 도시에서 약 3.2Km 떨어진 에베소 사람들의 유명한 신전으로 여러 번 갔다. 아르테미스는 소아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여신이었고, 고대 아나톨리아 시대의 초기 어머니 여신이 지속되 내려온 것이다. 그 여신의 숭배를 위한 거대한 신전에는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전해지는 거친 형태의 우상이 전시되어 있었다. 가니드는 일찍부터 우상을 신성의 상징으로 존중하는 훈련을 받았고, 모두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는 소아시아의 다산 여신을 기리기 위해 작은 은으로 만든 신전을 구입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날 밤 그들은 인간의 손으로 만든 물건을 숭배하는 것에 관하여 길게 이야기했다.
133:6.2 에베소에 머무른 셋째 날, 그들은 강가를 따라 걸으며 항구 입구를 파내는 작업을 관찰했다. 정오에 그들은 고향을 그리워하고 많이 낙담한 한 젊은 페니키아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그가 가장 마음 아파했던 것은 자신보다 우선 승진한 어떤 젊은이에 대한 질투였다. 예수는 그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며 옛 히브리 속담을 인용했다.“사람의 재능은 그를 위한 자리를 만들어주고, 그를 위대한 사람 앞으로 데려간다.”
133:6.3 이 지중해 여행에서 방문한 모든 대도시 중에서 그들은 기독교 선교사들이 뒤잇는 일을 준비하는 일에 가장 가치가 적었다. 기독교가 에베소에서 뿌리를 내린 것은 대체로 바울의 노력 덕분이었다. 바울은 여기서 2년이 넘도록 거주했고, 생계를 위하여 텐트를 만들면서 매일 밤 티라누스의 학교 주요 강당에서 종교와 철학에 대하여 강의를 진행하였다.
133:6.4 이 지역의 철학 학교와 관련된 진보적인 사상가가 있었고, 예수는 그와 여러 차례 유익한 시간을 가졌다. 이 담화를 가지는 과정에서 예수는 반복하여 “혼”이라는 낱말을 썼다. 이 학식 있는 그리스인은 결국 “혼”이 무엇을 뜻하는지 물었고, 예수는 이렇게 대답했다:
133:6.5 “혼은 사람이 자아를 비추어 보고, 진리를 분별하며 영을 파악하는 부분으로, 이것은 언제까지나 인간을 동물 세계의 수준보다 높이 올려놓는다. 자의식 그 자체는 혼이 아니다. 도덕적 자의식은 인간의 참된 자아실현이며, 인간 혼의 기초를 이루며, 혼은 인간의 체험에서 잠재적인 생존 가치를 나타내는 부분이다. 도덕적 선택과 영적 성취, 하나님을 알고 그와 같이 되려는 충동은 혼의 특징이다. 사람의 혼은 도덕적 생각과 영적 활동과 동떨어져서 존재할 수 없다. 정체된 혼은 죽어가는 혼이다. 하지만 사람의 혼은 그 mind에 거하는 신성한 영과 뚜렷이 다르다. 신성한 영은 인간 mind의 첫 도덕적 활동과 동시에 도착하는데, 그때가 혼이 태어나는 순간이다.
133:6.6 “혼의 구원이나 실패는 도덕적 의식이 그와 관련된 불멸의 영 자질과 영원히 연합하여 생존 상태에 도달하는지, 아닌지에 있다. 구원은 도덕적 의식의 자아 실현이 영적 성화를 통해 이루어지는 과정이며, 이를 통해 생존 가치를 가지게 된다. 모든 형태의 혼의 갈등은 도덕적 또는 영적 자의식과 순전한 지적 자의식 간의 불화에서 비롯된다.
133:6.7 “성숙하고 고귀하며 영적으로 변화된 인간의 혼은 물질적 자아와 신성한 영 사이에 개입하는 존재로서 하늘의 지위에 가까워진다. 인간 혼의 발전 과정은 묘사하기 어렵고 증명하기 더 어려운데, 그 이유는 물질적 조사나 영적 증명 방법으로는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질 과학은 혼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고, 순수한 영적 실험 역시 마찬가지이다. 물질 과학과 영적 기준 모두 인간 혼의 존재를 발견하는 데 실패했지만, 도덕적으로 의식하는 모든 인간은 혼의 존재가 진짜이고 실제적인 개인적 체험으로서 알고 있다.”
7. 키프러스에서 머무름 ― Mind에 대한 담화
133:7.1 여행자들은 곧 배를 타고 키프러스로 향했고, 로드에서 멈추었다. 그들은 긴 항해를 즐기며, 몸을 푹 쉬고 맑은 정신으로 목적지인 섬에 도착했다.
133:7.2 지중해 여행 길의 끝이 가까워지고 있었으므로 이번 키프러스 방문에 정말로 쉬고 노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계획이었다. 그들은 바보스에 상륙해서 가까이 있는 산에서 몇 주 동안 머물려고 즉시 식량을 모으기 시작했다. 도착한 후 3일째에 짐을 단단히 실은 짐승들과 함께 산을 향하여 떠났다.
133:7.3 두 주 동안 세 사람은 무척 즐겁게 보냈는데, 갑자기 가니드가 심각하게 아팠다. 두 주 동안 끓어오르는 열병에 시달리며, 종종 헛소리를 했다; 예수와 고노드는 아픈 소년을 돌보느라 바빴다. 예수는 능숙하고 부드럽게 소년을 돌보았고, 아버지는 그아픈 청년을 돌보는 모든 과정에서 나타난 예수의 부드러움과 솜씨에 놀랐다. 그들은 사람이 사는 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고, 소년이 너무 아파서 옮길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산속에서 소년이 건강을 회복하도록 최선을 다해 간호를 위한 준비를 했다.
133:7.4 가니드가 건강을 회복하는 3주 동안, 예수는 그에게 자연과 그 여러 변화에 대하여 많은 흥미로운 것들을 들려주었다. 그들은 산을 거닐며 소년은 질문을 하고, 예수는 그것에 답을 하며, 아버지는 그 모든 과정을 놀라워하며 지켜보았다.
133:7.5 그들이 산에서 보낸 마지막 주 동안, 예수와 가니드는 인간 mind의 기능에 대해 긴 대화를 나누었다. 몇 시간 동안의 토론 후, 소년은 이렇게 물었다: “하지만 선생님, 인간이 고등 동물들보다 더 높은 형태의 자의식을 경험한다고 말씀하셨을 때, 그게 무슨 뜻인가요?” 예수는 현대적인 표현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133:7.6 아이야, 나는 이미 인간의 mind와 그 안에 사는 신성한 영에 관해 많이 말했지만, 이제 자의식이 하나의 실체임을 강조하겠다. 어느 동물이라도 자의식을 가질 때 원시적인 인간이 된다. 그같은 성취는 impersonal 에너지와 영을 인식하는 mind 사이의 기능적 조정에서 비롯되며, 바로 이 현상이 인간 personality의 절대 초점, 즉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영을 부여받을 수 있는 이유가 된다.
133:7.7 개념(ideas)은 단순히 감각의 기록이 아니다. 개념은 감각과 personal 자아의 반영적인 해석이 합쳐진 것이다; 자아는 단지 감각의 합 이상이다. 진화하는 자아에서 통합에 대한 접근이 시작되며, 그러한 통합은 절대 통합의 일부가 깃드는 존재로부터 나와서, 동물 기원을 가진 그러한 자의식 하는 mind를 영적으로 활성화킴으로 이루어진다.
133:7.8 어떤 단순한 동물도 시간에 대한 자의식을 가질 수 없다. 동물들은 감각 인식과 기억의 생리적 조정은 있지만, 감각에 대한 의미 있는 인식을 체험하거나, 지능적이고 반영적인 인간의 해석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이러한 결합된 신체적 체험들의 목적 있는 연관성을 나타내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자의식 존재의 사실은 그의 이후의 영적 체험과 결합되어 인간을 우주의 잠재적인 아들로 만들며, 우주 Supreme 통일자의 궁극적 성취의 전조가 된다
133:7.9 인간 자아는 단지 의식의 연속된 상태의 합이 아니다. 의식을 분류하고 연결 짓는 기능이 효과적으로 작용하지 않으면, 자아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통합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통합되지 않은 mind는 인간 수준의 의식 상태에 도달하기 어려울 것이다. 만약 의식의 연관이 그저 우연이라면, 모든 사람의 mind는 정신병의 특정 단계들이 보여주는 통제되지 않고 순서 없는 연관들을 나타낼 것이다.
133:7.10 육체적 감각의 의식만으로 구성된 인간 mind는 결코 영적 수준에 도달할 수 없다; 이런 종류의 물질 mind는 도덕적 가치에 대한 감각이 전혀 없으며, 시간 속에서 조화로운 personality 통합을 이루는데 필수적인 영적 지배 감각이 결여되어 있을 것이다. 또한, 이것은 영원 속에 personality의 생존과는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133:7.11 인간 mind는 일찍이 물질을 초월하는 특성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참으로 성찰하는 인간의 지성은 전적으로 시간의 한계에 얽매이지 않는다. 개인들이 그들의 삶의 성과에서 이렇게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단지 유전의 다양한 자질과 환경의 다른 영향뿐 아니라, 자기 자신이 아버지의 깃드는 영과 이루어진 통합의 정도, 이는 자아와 영이 얼마나 동일시되었는지를 나타낸다.
133:7.12 인간의 mind는 이중적인 충성의 갈등을 잘 견디지 못한다. 선과 악을 모두 섬기려는 노력은 그 혼에게 큰 부담이 된다. 가장 행복하고 효율적으로 통합된 mind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데 온전히 헌신한 mind이다. 해결되지 않은 갈등은 통합을 파괴하고 mind의 붕괴로 끝날 수 있다. 그러나 혼이 생존하려는 성품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평화를 얻으려는 노력, 고귀한 열망을 포기하고, 영적 이상을 타협함으로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평화는 참된 것의 승리를 꿋꿋하게 주장함으로 얻으며, 선이 지닌 강한 힘으로 악을 극복함으로 성취된다.
133:7.13 이튿날 그들은 살라미스로 떠나, 거기서 시리아의 해안에 있는 안티옥을 향하는 배에 올랐다.
8. 안티옥에서
133:8.1 안티옥은 로마 시리아 지방의 수도였으며, 여기에는 황제의 총독이 거주하고 있었다. 안티옥은 50만 명의 인구를 자랑하며, 제국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였고, 가장 악명 높고 부도덕한 도시로 유명했다. 고노드는 처리할 일이 많았다; 그래서 예수와 가니드는 대부분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들은 이 다양한 민족들이 모인 도시의 모든 곳을 다녔지만, 다프네 숲은 제외했다. 고노드와 가니드는 이 악명 높은 부끄러움의 성소를 방문했지만, 예수는 따라가기를 거절했다. 그러한 장면은 인도인에게 그다지 충격이 아니었지만, 이상을 추구하는 히브리인에게는 혐오감을 주는 것이었다.
133:8.2 예수는 팔레스타인과 여행의 끝에 가까워지면서 점차 진지하고 사색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안티옥에서는 거의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고, 도시를 돌아다니는 일도 드물었다. 가니드는 왜 선생님이 안티옥에 그렇게 관심을 보이지 않느냐고 여러 번 물었고, 결국 예수는 이렇게 말하게 되었다: “이 도시는 팔레스타인과 그리 멀지 않다; 언젠가 다시 이곳에 올지도 모르겠구나.”
133:8.3 가니드는 안티옥에서 무척 흥미 있는 체험을 겪었다. 이 젊은이는 자신이 영리한 생도임을 입증했고, 이미 예수의 가르침을 얼마큼 실천하기 시작했다. 안티옥에는 아버지의 사업과 관련된 어떤 인도인이 살았는데, 그는 아주 불쾌하고 불평을 많이 해서, 그를 해고하는 것이 고려되었다. 가니드가 이 말을 듣자 아버지의 사업 장소로 가서 동료 인도인과 함께 길게 의논했다. 이 사람은 자기가 적당하지 않는 자리에 배치되었다고 느꼈다. 가니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 관하여 일러주었고, 여러모로 그의 종교적 시야를 넓혀 주었다. 그러나 가니드가 말한 모든 것 중에, 히브리 속담을 인용한 것이 가장 효력이 있었다. 그 지혜의 말씀은 이러했다: “네 손에 무슨 일이 맡겨지든지, 힘을 다하여 일하라.”
133:8.4 낙타 카라반에 짐을 실을 준비를 한 후에, 그들은 시돈으로 내려가, 거기서부터 다마스커스로 건너갔고, 3일 후 긴 모래 사막 횡단을 준비하였다.
9. 메소포타미아에서
133:9.1 사막을 가로지르는 카라반 여행은 이렇게 많이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경험이 아니었다. 가니드는 선생이 자원하여 낙타 스무 마리에 짐을 싣는 것과 그들의 동물을 모는 것을 지켜보고는 외쳤다. “선생님, 당신이 할 수 없는 일이 있나요?” 예수는 다만 웃으며 말했다. “부지런한 생도의 눈에는 선생님이 명예가 없는 것은 분명 아닌가 보구나.” 그들은 고대 도시 우르를 향해 출발했다.
133:9.2 예수는 아브라함의 고향인 우르의 초기 역사에 많은 관심을 가졌고, 수사의 옛터와 전통에도 똑같이 마음이 끌렸다. 그로 인해 고노드와 가니드는 예수가 더 많은 시간 동안 조사를 할 수 있도록, 또한 그가 자신들과 함께 인도로 돌아가도록 설득할 수 있는 더 좋은 기회를 잡으려고 이 지역에서의 체류를 3주 더 연장했다.
133:9.3 가니드는 우르에서 지식, 지혜, 진리의 차이에 관하여 예수와 길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히브리인 현자의 말에 크게 반하였다: “지혜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지혜를 얻으라. 지식을 얻으려는 온갖 노력으로 사물을 이해하라. 지혜를 높이라, 그리하면 지혜가 너를 높이리라. 오직 지혜를 품고자 하면 지혜는 너에게 명예를 가져올 것이다.”
133:9.4 마침내 이별의 날이 왔다. 모두가, 특히 소년이 용감했지만, 그것은 고통스러운 시련이었다. 그들은 눈물을 흘렸지만, 마음만은 굳게 먹었다. 가니드는 선생에게 작별을 고하며 말했다: “작별이예요, 선생님, 하지만 영원히는 아니예요. 다마스커스로 가면, 선생님을 찾겠습니다. 사랑합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선생님과 같은 분이시리라 생각합니다; 적어도 나는 당신이 그분에 대해 내게 말씀하신 것처럼 많은 것이 닮았다는 것을 알아요. 선생님의 가르침은 기억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선생님을 결코 잊지 않을 겁니다.” 가니드 아버지가 말하였다: “우리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고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도와주신 위대한 선생님께 작별을 고합니다.” 예수는 대답했다. “당신에게 평화가 있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축복이 늘 당신과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는 해안에 서서 작은 배가 그들을 정박한 배까지 나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렇게 주는 인도에서 온 친구들을 카락스에서 떠나보냈다; 이 세상에서는 다시 그들을 만나지 못했다. 그들도 나중에 나사렛 예수로 나타난 그 사람이 막 작별을 고한 친구―그들의 선생 요수아―인 줄 결코 알지 못했다.
133:9.5 인도에서 가니드는 자라서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되었고, 그의 뛰어난 아버지의 훌륭한 후계자가 되어, 그가 사랑하는 선생님 예수에게서 배운 많은 고귀한 진리들을 널리 퍼뜨렸다. 이후 가니드는 팔레스타인에서 십자가에서 생을 마친 이상한 선생에 대해 들었을 때, 이 사람의 아들의 복음과 그의 유대인 선생님의 가르침 사이의 유사성을 인식했지만, 이 두 사람이 실제로 같은 인물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133:9.6 이렇게 사람의 아들의 생애에서 '요수아 선생님의 사명'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장(章)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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