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피고 진다
최 화 웅
유월을 맞아 아내가 책상 위에 화분 하나를 올려놓았다. 그 화분에서 하얀 꽃이 피었다. 눈부시고 순결하다. 넓고 빛나는 무성한 잎이 숲을 이룬 짙푸른 녹색더미를 뚫고 시원스레 꽃대 하나가 올라왔다. 그 끝에 탐스런 한 송이가 꽃을 피웠다. 고고하다. 난(蘭)처럼 키우기가 까다롭지 않고 어디에 두어도 잘 어울린다. 수수하고 편안하다. 작은 뿌리 하나만 남아도 살아가는 끈질긴 생명력에 결코 변덕을 부리지 않는다. 낮은 습도와 음지에서도 잘 참고 견딘다. 꽃은 한 달 넘게 길게 이어진다. 꽃은 갓 태어난 생명을 감싸듯 고운 강보(襁褓) 같은 포(苞)가 누렇게 변하도록 생명을 지킨다. 물주기와 관리가 까다롭지 않아 게으른 나에게 안성맞춤이다. 바람이 잘 통하는 반그늘이면 집안 어디에 두어도 잘 자란다. 부엌이나 화장실, 안방과 거실 한 귀퉁이에 두어도 아무 탈이 없다. 마치 가족 같다. 중남미 콜롬비아가 고향인 화초의 이름은 스파티필룸(Statiphyllum)이다. 꽃 이름은 안스리움이나 칼라와 같은 ‘불염포’라는 희랍어 ‘spathe’에서 유래했다. 스파티필룸은 무성한 푸른 잎과 고고한 꽃대가 조화롭다.
꽃마다 제 나름의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꽃은 국화꽃처럼 줄기 끝에 피거나 접시꽃처럼 잎이 나오는 겨드랑이에서 피거나, 꽃잔디와 수수꽃다리처럼 무리지어 피기도 한다. 우리는 목련이나 진달래같이 화려한 꽃을 꽃이라 생각하며 버드나무나 참나무류와 같이 화려한 색깔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꽃인 줄 모르고 업신여긴다. 꽃에 관한 역사기록 중 가장 오래된 것은 백제 때 국화를, 신라 때 모란을 길렀다는 기록이 있다. 모란은 632년(신라 선덕여왕 1년)에 당나라 태종이 모란을 보내왔으며 이를 최치원(崔致遠)이 각 사찰에 두루 심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철쭉류 자생지다. 진달래는 후조인 두견새가 울 때 핀다고 하여 두견화라고도 부른다. 한편 먹을 수 있다고 하여 참꽃이라 하고 강원도지방에서는 철쭉은 독이 있어 먹을 수 없는 꽃이라 개꽃이라 부른다. 산철쭉은 꽃이 피는 계절이면 계곡과 산등성이를 가리지 않고 온통 빨갛게 물들인다. 하여 영산홍이라 부른다. 신라 성덕왕 때 수로(水路)라는 미희가 강릉 태수로 부임하는 남편 순정공(純貞公)을 따라 나섰다가 남긴 사연이 헌화가(獻花歌)로 전해진다.
『삼국유사』에 소개된 헌화가(獻花歌)는 지금의 정동진 근처 화비령(火飛嶺) 고갯길에 남겨진 이야기다. 수로(水路)라는 잘 생긴 부인이 강릉 태수로 부임하는 남편을 따라 경주에서 강릉으로 갈 때의 이야기다. 따뜻한 봄날에 일행이 험한 산길을 걷던 어느 날. 일행이 한낮 해변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그때 절벽 위에 현란하게 핀 철쭉꽃을 올려다본 수로부인이 동행한 수행원들에게 그 꽃가지를 꺾어오라고 했다. 그러나 발을 디딜 곳이 없는 깎아지른 절벽이라 어느 누구도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때 마침 소를 몰고 지나가던 한 노인이 부인의 말을 엿듣고 위험을 무릅쓴 채 절벽으로 기어 올라가 철쭉을 꺾어다 바치며 헌화가(獻花歌)를 지어 읊었다. 헌화가는 꽃을 탐하는 젊은 여인의 마음을 읽은 산속의 한 늙은이가 어우러져 노래한 사랑의 이중창이 아니었을까? 오래된 꽃의 전설은 그리스 신화와 우리네 할머니들의 입으로 전해졌다. 진종일 해를 따라 다니는 해바라기의 일생이 그리스 신화에서 전한다. 물의 요정 크리티는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그녀가 머리를 빗을 때면 그 윤기가 눈부셨고 그녀가 움직이면 향기가 주위를 퍼져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눈앞에 황금마차가 동쪽으로부터 서쪽 하늘을 가로질렀다. 찬란한 은빛 깃털을 휘날리는 두 마리의 말이 끄는 그 황금마차에는 태양의 신, 아폴론이 타고 있었다. 아폴론은 짙푸른 눈에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모습이었다. 크리티는 아폴론을 보는 순간 첫눈에 반해버렸다. 그로부터 크리티는 오직 하늘만 우러러보며 아폴론이 다시 나타나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끝내 상사병이 든 크리티의 다리가 땅에 뿌리를 내렸다. 그 뒤로 그녀는 하늘의 해만 바라보며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의 사랑을 받아 주지 않는 아폴론을 지켜보다가 그대로 꽃이 되었다고 한다. 크리티는 그렇게 애달픈 한 송이의 해바라기가 되어 오늘도 해가 뜨는 하늘을 향해 애끓는 사랑을 노래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40년 만에 꽃을 피운다는 선인장 길상천(吉祥天) 꽃도 일생에 단 한 번 피고 생명을 다 한다는 대나무 꽃과 함께 그의 사연이 애절하다. 길상천은 꽃대가 올라와 꽃이 피고 지는데 5년이 걸린다고 한다. 길상천은 꽃대가 지고 나면 어미가 죽은 자리에 새끼들이 터를 잡고 자란다.
스타티필룸의 흰색 포엽(苞葉)은 꽃이 아니고 꽃과 꽃받침을 둘러싼 채 꽃을 보호하는 작은 잎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꽃은 하얀 포대기 안에 숨어 있는 도깨비방망이처럼 생긴 원통의 황갈색 방망이가 있다. 그것이 스타티필룸의 꽃이다. 꽃말은 ‘세심한 사랑’이다. 우리 집에서는 아내와 딸이 모두 스파티필룸을 좋아한다. 10여 년 전 딸이 결혼할 때였다. 딸의 아이디어로 신부가 입장할 성전의 통로에 스파티필룸 꽃으로 장식했다. 결혼식이 열리는 날 이른 아침 석대 꽃시장에서 스파티필룸을 사다가 가족들이 둘러앉아 꽃송이를 종이로 싸서 꽃길을 만들었던 것이다. 나는 그 길을 딸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 들어갔던 기억을 떠올릴 때면 지금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그 딸아이가 결혼한 지 10년 만에 첫 아기를 낳게 되어 온 가족과 이웃에 기쁜 소식이 되었다. 포기나누기와 수경재배를 하면 집안의 습도 조절에 효과적이다. 새집에 들었을 때는 새집증후군의 원인이 되는 포름알데히드, 아세톤, 벤젠 등 유해 물질의 제거와 오존과 미세먼지를 흡수하는 공기정화능력 탁월해 서양의 상가에서는 향 대신 스파티필룸 꽃을 쓰기도 하고 새집으로 이사한 이웃에게 선물한다. 스파티필룸은 값싸고 흔해서 마음만 먹으면 손쉽다. 나이 들면서 복잡하고 까다로운 일이 번거롭게 여겨진다. 가족처럼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게 좋다.
성인 남녀가 배우자를 선택하여 결혼하고 자식을 낳아 기르는 단위 가족을 핵가족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가족은 제도·구조·기능의 측면에서 많은 변화를 겪어왔는데 근대화 이후 대가족공동체에서 부부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핵가족으로 변해왔다. 가정은 자녀를 양육·사회화하는 삶의 터전이다. 아프거나 불구인 가족을 돌볼 뿐 아니라 출산을 제도화하고 성관계 규제에 대한 지침을 수립하여 사회적·정치적 기능을 두루 수행하는 삶의 현장이다. 경제적으로는 가족 구성원의 생존을 위한 의식주와 함께 신체적 안전을 제공하며 사회 전반적으로 질서와 안정을 추구한다. 우리는 어디에서나 꽃을 쉽게 볼 수 있다. 나는 꽃을 보는 자신에게 묻는다. 꽃을 눈으로 읽는가? 마음으로 보는가? 순결한 스타티필룸의 하얀 꽃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면 몸과 마음에 감흥과 위안이 스스로 차고 넘친다. 오, 아름다워라. 나의 꽃이여! 꽃은 하늘 같이 높푸르고 바다처럼 넓은 마음을 펼치는구나. 책상 위 스타티필룸 꽃을 오래도록 응시하면 내 마음 또한 어느새 기쁨에 젖어 한없이 맑아진다. 꽃이 피고 지는 일상에서 슬픔과 기쁨이 여울진다. 꽃을 피우기 위해 그 긴 인고(忍苦)의 시간을 살아온 꽃의 일상에 안개, 비, 바람, 무더위와 강추위가 함께 지나간다. 꽃은 바람 불고 물 흐르듯 오늘도 피고 지기를 계속하며 삶에 지친 나를 치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