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일 에 시작된 탄핵반대 집회가 하나의 거대한 흐름을 형성한 것은 아마도 12월 17일 동아일보 앞에서 부터라고 생각된다. 그날 집회 시각보다 1시간 정도 늦게 도착하여 시청 전철에 내렸을 때 너무 많은 인파에 도보로 올라가기가 힘들 정도이었다.
동아일보 앞은 청계천 2개 로선은 그인파의 끝이 보이지 않았고, 광화문 쪽으로 뻗는 인도에는 발디딜 틈이 없었으며
주최 측도 이렇게 많은 군중이 모일 줄은 미리 예상하지 못한 듯 낮은 연단에다가 마이크가도 잘 들리지 않아 시민 모두가 발디딜 틈이 없이 밀착하여 격정적인 연설에 목이터지게 호응하는 것이었다.
전문 시위꾼들이 기획하는 집회이고 의식적인 데모꾼이라면 군데군데 간격을 띄워 공식인증 참가자들을 뻥터기할 터인데도 전혀 그런 꾼들의 모습은 어디에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어서 구 서울대학 마로니에 공원으로 행진하는 거대한 흐름은 민심의 표출을 한눈으로 보여 주었으며 중도 이탈이 거의 없는 한사람 한사람의 열기띤 행동에는 역사의 흐름이 이쪽으로 미소 짓고 있다는 확신을 느꼈다.
다음 날 성공한 10여명의 고향 친구들의 모임에서 그 모습을 전하였고 다음 주 참석을 권유 하였다.
무리하게 끌고가는 탄핵에 대해서는 이구동성으로 분노를 느끼면서도. 여기에 참가 하였다가 적화가 되면 받게될 탄압을 우려하는 친구의 말에서 이 사회 저변의 이런 흐름도 있구나 하는 섬뜻한 감정이 다가왔고 행동하지 않는 소시민의 소심함을 실감하였다. 공감은 하지만 참석을 주저하는 태도에서 잘못되어 가는 우리 조국의 미래를 슬프하였다.
장미꽃을 준비하여 행진하는 다음 주의 집회에는 예상대로 친구들이 나오지 않았지만 국가를 걱정하는 자발적 민중의 수효는 이미 거대한 용암의 분출을 기대해도 좋을만 하였다.
1월 14일 그 흑한의 추위에도 군중은 흩어질 줄 몰랐고 소극적이던 친구가 5명이나 다른 친구를 데려오는 것을 보고는
정치적 흐름의 변화도 동시에 느꼈다.
이 민심을 외면하는 자는 반드시 망할 것이라는 ....
사회자가 노약자는 중도에 가셔도 좋다는 안내에도 시청 앞까지 수많은 군중이 함께 하였고
이 거대한 파도가 새로운 역사를 잉태하리라는 확신이 마은 속 깊이 자리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