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이번에 가면 집하나 살 수 있을 겁니다,
지금 은행에는 내 이름으로 따로 만든 통장에
아버지가 송탄에 보내라고 준 돈에서 따로 얼마씩 떼어 모아 놓은 돈에,
내 월급 전부,
또 내 년에 공사대금을 받으면 집값의 일부를
아버지가 주신다고 했으니 모두 합친다면 충분합니다,
집 없는 설음을 이번에는 해결해야지요.
어머니가 가게가 두 개 정도 달려 있는 집을 미리 알아보세요.
가게 세 받아서 생활비로 쓸 수 있는 정도의 집으로요.
나중 생각해서 세만 받아도 살 수 있는 집을 구하는 거예요,
항상 몸조심하시고요. 이제는 큰 걱정 하지 마세요,
언젠가는 모두 모여 살날이 오겠지요.
맛있는 것 아끼지 말고 사서 드세요.
아버지가 같이 가실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다른 공사를 또 맡아서 바쁘시거든요.
어머니가 직접 아버지에게 편지하시면 안 돼요?
다른 집 부모들은 안 그런데
두 분은 왜 그러시는지 우리는 모르겠어요.
날이 정말 춥네요.
여기 산에는 벌써 눈이 쌓였습니다.
내년에는 꼭 가겠습니다. 건강 조심하세요.
정옥이와 정필이에게 편지 좀 자주 하라고 하세요.
정길 올림~
전도사는 정길이 예상외로 성극에 열정을 보이자 흥이 났다.
또 정길과 은숙
두 사람이 서로 바라보는 눈길이 예사롭지 않아 보여,
이것도 인연인가 보다 하며,
마음속으로 두 사람 사이가 잘 되기를 빌어 본다.
오늘은 밖에서 그들만이 만나 하는
첫 연습 날이라 전도사는 일찍이 희숙의 집으로 출발했다,
희숙이 집에 일찍 돌아와서 보니 전도사가 이미 와 있었다,
차를 마시는 전도사를 방에 두고,
밖에 나가 두 사람을 기다리다가,
먼저 오는 정길을 반갑게 맞는다.
이어 잠시 후에 은숙이 들어오자
둘러앉아같이 차를 마신 후, 첫 야외에서의 연습을 시작한다.
“자! 대본을 펴세요,
오늘은 처음이니 대화가 비교적 많지 않은 장에서 하도록 하지요,
아! 여기 호세아와 고 멜의 처음 대면하여 나누는 대화부터 시작합시다,
처음의 물꼬는 실바가 먼저지요?”
“예, 제가 먼저 합니다.
고 멜, 저기 저 남자 너무 멋있다.
옷도 좋은 옷이고 품위가 있어 멋져 보인다.
우리 저 남자 유혹할래?
남자는 뭐니 뭐니 해도 멋이 있어야 해.
잘 생기고, 안 그래 고 멜?”
“자! 고 멜은 실바와 호세아를 흘깃 쳐다보면서,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 한다.
시작.”
“얘, 실바 저런 남자는 허우대만 멀쩡하지 실속이 없단다,
그저 남자는 돈 많고 힘이 좋아야 하는 거야.
너처럼 얼굴만 보고 사람을 고르니까
늘,
네가 돈을 쓰고도 먼저 차이는 거야.”
“쳇, 그래,
나는 그래도 저 남자에게 꼬리 칠거야, 호호호
내 눈에는 너무 멋있게 보이거든,
너와 나는 남자 보는 눈이 틀리니까.”
“여기서 제가 고멜과,
실바의 남성 편력에 대한 것과, 당시의 음란한 사회의 병적인 모습과,
나라가 처해있는 상황을 설명하는 내레이션이 있고.
이어서 호세아의 외침이 시작 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아 들으라.
여호와께서 너희와 쟁변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오직 저주와, 시위와, 살인과 간음뿐이요.
강포하여 피가 피를 부르며,
아! 여기서 잘! 음, 음 잊어버렸네요. 다시 합니다.”
~숨을 가다듬고 다시~
“피를 부르는 도다.
이 땅이 슬퍼하며, 여기 거하는 짐승과 새가 다 쇠잔할 것이요.
바다의 고기도 없어지리라.
네가 네 하나님을 잊었으니,
나 여호와도 너와 네 자녀들을 잊으리라.”
“자, 한 번 막혔지만 표정과 감정 표현이 좋았어요.
그럼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며 고멜의 대사,
호세아를 반박하는 표정과 어투로 강렬하게
모두에게 들으라는듯이 한 손을 들며,
시작.”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여 여기에 이르렀거든,
지금의 영화가 그가 주신 것이요.
포도주와 곡식의 풍성함이 그가 주신 것인데,
당신이 누구이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잊었다 하는 것이요.
당신이 선지자 여든 이 나라를 축복하시어,
진정한 선지자임을 알리시오.”
야외에서의 첫 연습인데도 처음부터 손발이 척척 잘 맞아,
그동안 꽤 연습한 거 같은 성과에 그들 모두 흥이 났다.
전도사가 몇 군데를 지적하여 손동작과,
발성을 고쳐주자,
분위기가 더욱 살아나며 서로가 극 속에 빠져들어,
자신을 잊고 극 속의 인물에게 심취해 들어간다,
정신이 극중의 인물과 동화되어 무아지경에 빠졌다.
“자, 좋습니다, 여기까지만,
다시 한 번하시고 끝내지요, 다음부터는 제가 안 옵니다,
여러분끼리 하셔야합니다
. 저는 먼저 갈 테니, 끝나시고 평안히 가세요.
모두 주일날 뵙겠습니다.
아! 나오지 마시고 자! 갑니다.”
“제가 오늘은 현장 사무실로 가야해서 가는 방향이 같으니,
은숙 자매와 함께 가도 되겠네요.”
“그래요? 잘됐네요.
희숙아 잘 있어, 목요일 날 다시보자.
집사님 안녕히 계세요.”
“목요일에 다시 오겠습니다.
집사님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희숙 자매도 잘 있어요.”
“조심해서 가세요, 목요일 날 기다릴 게요.”
두 사람이 서로 느끼는 감정이 일치해서인지,
별로 어색함도 없이 보조를 맞추어 걷는다.
이왕에 같이 걷는 동안에,
그 이상한 감정의 정체가 무엇인지도 알아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정길에게 문득 찾아 든다.
먼저,
대체 저 얼굴과 모습이 왜 이렇게 낯이 익고 친밀하게 생각 되는지
살피려고 은숙에게 얼굴을 돌린다.
마침 은숙도 얼굴을 돌리는 탓에 눈이 마주쳐,
두 사람이 동시에 미소를 지으며,
서로가 상대방이 말을 꺼내기를 빌 때,
정길이 먼저 말을 건넨다.
“우리 그냥 걸을 까요?
버스를 안타고 걸어서 가도 시간이 얼마 안 걸릴 겁니다.
오늘 별로 춥지 않으니 걷도록 하지요.
으음, 나는 왜 은숙 자매가 낯이 설지 않고
오래 알던 사람같이 친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어요.”
“그건 제 얼굴이 너무 평범하고,
표준적으로 생겨 그런가 보지요. 호호호
너무 흔한 모습이라서 말이죠.”
“하하하하 그건 절대 아니고,
은숙 자매가 예전에 알고 있던 사람이나,
아주 친밀하게 지내던 사람같이 느껴져,
자매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이 많았었는데,
기회가 왔네요.
우리 정식으로 다시 인사하지요.
나는 지금 대한민국에 사는 스물 둘의 나이에 신체 건강한 남자이고,
학교는 고등학교 졸업,
직업은 아버지가 대표로 있는 천진기업사의 자재과 직원
아니, 창고지기입니다,
동생 남매와 어머니가 경기도 송탄에서 살고 있습니다.
내 말이 너무 빠른가요? 다시 말해 줄까요?”
“아니요. 호호호!
저는 스물 하나이고요, 남동생하고 살고 있어요.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일 때문에 외국에 나가 계세요.
앞으로 삼 년 정도 더 있어야 일이 끝나고 돌아오실 거예요.”
‘에이! 뭐 야 쳇!
두 살이나 연상이야?
그래, 지연 누나는 여덟 살이 연상이었는데,
두 살 정도 위야 뭐 어때.’
“사실 처음부터 관심이 있었어요.
강릉역사 준공식에서 설핏 보고 교회에서 봤지요.
참 아름답구나 하고 생각 했는데,
교회에서 앞자리에 앉으면서 자매를 다시 보고는
어디서 보긴 봤는데 누구지?
하다가 성극 때문에 모였을 때야 알아봤어요.
이상하게 느껴지던 감정도 있었는데, 몰라봤으니 참 둔하죠?”
“아니요.
힘 안들이고 말씀도 잘 하시네요.
저는 사람을 잘 사귈 줄 몰라서 직장에서도,
교회에서도 친구가 별로 없는데,
정길 형제는 서울 사람이라선지 싹싹해서 말하기가
정말 편안하네요.”
“우리 둘이 있을 때는 친구로 지내는 게 어때요?
서로 편하게 이름을 부르기로 하고
거북스러운 말보다 아예 편하게 서로 평대하는 게 좋지 않아요?
기왕에 만났으니 우리 바로 진도를 높여보죠.”
“호호호 그럼 그러세요.
난 시간이 지나면서
정길 형제가 더 편해진 다음에 말을 놓을 게요.”
“아예 지금부터 하지요.
나부터 할게.
은숙이 우리 지금부터 친구다.
친구 따라 강남에 간다고 하는 말 알지?
거절하지 말아야 할 부탁 하나를 꼭 들어 줘야 하는데?
들어 줄 거야?”
“호호호 아유,
너무 급해요.
세상에 무슨 부탁을 이렇게 해요.
그래도 몇 번 만난 다음에 한다면 몰라도,
아마 성극이 좀 그래서 그런 거 같아요,
총각 처녀가 탕녀의 이야기의 주인공이라니 참.”
“사실은 삼척에서,
다음 토요일 날 친하게 지내던 누나의 결혼식이 있는데,
혼자 가기에는 너무 멋쩍어서 갈까 말까 하는 중이거든.
아침에 일찍 갔다 끝나면 바로 오면 되는데,
아버지가 같이 가기로 했다가 못 가게 되셔서,
혼자 가야 해서 그래. 어렵지 않은 부탁이지?”
‘같이 가면 누나 얼굴도 편하게 볼 수 있고,
은숙이와도 뭐가 될 것 같기도 하고,
어 어! 이것 참
지연누나 때문에 죽느냐 사느냐 한 게 언젠데, 이래도 되는 건가?
이거 내가 너무 나쁜 놈 인거 아닌가?’
“호호호 생각 좀 해 볼게요,
같이 갈 마음이 준비 되면 성극 연습하는
목요일 저녁에 알려 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