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주국으로 받들던 중국도, 바다 건너 일본도 서양 세력의 군사적 힘 앞에 굴복하고 나라의 문을 열었습니다.
조선에도 조만간 서양 세력의 위협을 동반한 통상 요구가 현실로 나타날 것이라는 예상은 누구나 가능한 것 이었습니다. - 어찌할 것인가!
대원군과 조선이 선택한 방안은 과거로부터의 전통적 정책인 쇄국정책이었습니다. - 표류해 오는 외국인을 구호해 보내주되, 통상은 절대 불가하다. 우리는 오랑캐와 섞이지 않고 예의를 지키며 우리끼리 살아가겠다.
대원군의 이러한 정책은 국내 정치에도 그대로 이어져 천주교를 전파하고 신봉하는 프랑스 신부와 조선의 유력자 들을 가차 없이 효수하고, 신도들에 대한 색출 역시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하고 끈질기게 행해져 천주교 신자 수천명 이 처형되었습니다.
1866년 7월 영국인과 미국인 등이 탄 제너럴셔먼호가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 와 통상을 요구하다가 조선 백성 7명을 죽이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에 평안 감사 박규수는 제너럴셔면호에 접근해 불을 질러 서양인들을 잡아들였고, 분노한 평양 군민이 이들을 남김 없이 때려죽이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조선 조정은 고무되었고 외세에 대한 자신감마저 갖게 되었습니다.
(병인양요 1866년) 한편, 조선의 검거 선풍을 피해 중국으로 탈출한 프랑스 신부 리델은 톈진에 있던 프랑스 동양함대 사령관 로즈를 찾아가 그간의 경위를 설명했고, 분노한 프랑스의 뜻이 청 조정을 통해 조선에 알려졌습니다. - 조선이 선교사 9명과 많은 신도를 살해했으므로 프랑스 가 조만간 군사를 일으킬 것이라 했소.
이에 조선은 천주교 탄압의 불가피성을 거듭 강조한 후 탄압의 고삐를 더욱 조였습니다.
1866년 9월, 중국의 말대로 로즈 제독이 인솔하는 프랑스 군함 3척이 리델 신부와 조선인 신자 3명의 안내로 인천 앞바다에 나타났습니다.
이들은 선교사가 죄 없이 죽었기 때문에 왔다고 하면서, 죽은 프랑스 천주교회 선교사 9명에 갈음하여 조선인 9천 명을 죽이겠다고 협박하였습니다.
이들은 강화도를 손쉽게 점령하더니 문수산성 마저 가볍게 파괴하고 서울 근교 양화진 일대에까지 진출하였습니다.
조선군을 심하게 얕본 이들은 어디든 거침없이 다니며 약탈을 일삼았고, 급기야 대포도 없이 술과 음식 등 짐들을 꾸려 다소간의 군사만으로 정족산성을 점령하겠다며 여유 있게 진군하였습니다. - 아무리 허접해 보이기로서니 그래도 하나의 ‘나라’인데... 심하다.
<조선왕조실록(148)> 고종 6 - 병인양요와 신미양요(2)
조선을 심하게 얕보고 소수 병력만으로 중무장도 하지 않은 채 달려드는 프랑스 군!
정족산성 수성장에 임명된 양헌수는 포수들로 구성된 군대 를 매복시켰다가 일제 사격을 명했고, 예기치 못한 기습에 프랑스군은 수십명의 사상자를 낸 채 물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 작은 나라 조선을 치자고 지구 한바퀴를 돌아 군대를 보낼 수도 없고, 실익도 없다!
이 때 프랑스군은 강화 외규장각에 있던 각종 금은궤와 주요 서적을 닥치는 대로 약탈했고 장녕전, 외규장각에 불을 지르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이후 프랑스 역사학자 인 박병선 박사와 정부의 외교적 노력으로 2011년 대여 라는 명목으로 외규장각 약탈 도서 상당부분이 반환 되었으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이와 같이 어찌되었든 프랑스군을 물리친 일로 자신감을 가진 대원군은 기존의 쇄국정책을 더욱 강화하게 되었습니다.(이 와중에 프랑스와 독일인이 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를 도굴한 사건까지 일어나니 대원군 의 척사의지는 더욱 굳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신미양요)
아비의 무덤까지 도굴해가는 서양인의 폭거에 대원군의 척화의지는 더욱 강고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원군은 병인양요 후 해안에 포대를 설치하는 등 해안방어에 더욱 박차를 가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1871년 미국은 제너럴셔면호 사건을 공동조사 하자는 것과 통상교섭을 하자는 내용의 편지를 정중한 필체로 중국을 통해 보내왔습니다.
이에 조선도 최대한 정중한 자세로 이를 거절하는 답변을 하였습니다. - 우리는 작은나라로서 물산도 변변찮은 등 교역할 만한 것이 없으니 가라고 전해주소.
이를 전해들은 미국은 군함 5척에 1,200명의 군사를 싣고 조선 해안에 나타나 북상을 계속하였습니다. 미국 배가 손돌목을 들어서자 광성진에서 준비된 조선 해군이 대포를 쏘았으나 배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미국은 광성진을 공격했고 성채는 이내 허물어졌습니다. 이재연이 이끄는 조선군이 죽기로 맞섰으나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 이재연을 비롯한 조선군 350명이 죽고 미국 사상자는 3명에 지나지 않았다!
보고를 받은 대원군은 더욱 척화의 의지를 불사르며 이날 로 종로와 주요 도시에 척화비를 세웠고, 열악한 장비에도 불구하고 미군이 정박한 초지포를 공격해 결사항전의 의지 를 명백히 하였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미국은 결국 소리 없이 조선을 떠났습니다. - 참으로 완고한 조선이로다. 이깟 조그만 나라에 먹을 것도 없는데 일단 떠나자. - 조만간 다시 오면 되지 않겠나.
신미양요는 미군이 전투에서 승리하였으나 조선의 입장 에서는 결사 항전하여 이양선을 몰아낸 사건으로 인식 되었습니다. 대원군은 이를 계기로 전국에 척화비를 세우고 쇄국 정책을 더욱 고수하게 되었으나 조선이 척화 만으로 생존할 수만은 없다는 인식이 식자층에서 힘을 얻어가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는 조선말기 대원군의 쇄국정치로 망국의 길을 걸은 것처럼 배웠으나 이 또한 식민사관이다...최선의 방편은 아니었을정 차선의 선택이지 않았나 싶다...그러고도 백여년 지나서 세계경제강국 반열에 오른 자긍심과 자신감이 필요한 지금이다...고작 탄핵정국을 주도한 불온한 종북세력과 세월호세력이 이나라를 어찌하지는 못할거다. 이를 지키고지 한다면.
산골의 아침이라 춥내요
눈도 조금 내렸고요 별이 초롱초롱 하내요
권선국 일찍 일어났구먼...
대청댐 준공이후 대전ㆍ청주가 많이 추워진것 같어....
윤우섭 그러게 늘 이시간이면 일어나는데 속리산 자락이라 그럴꺼야
권선국 그러지..속리산자락 영향도 있겠지
대신 공기좋고 물 좋잖누
윤우섭참나무숯불인가? 군밤내지는 군고구마가 생각나는군! ㅎㅎ
김재원 그거도 좋지...
재원성 갖고오는 특수부위 쇠고기 구워먹기도 좋고...ㅋㅋ
낼 오시나?
김재원 아직 무릎상태가 허락을 못하네...2월첫주를 목표로 재활해야할듯...
윤우섭 그러세요! 내몸 내가 챙겨야지. 넘 무리하지마시게나! 내가 우섭성몫까지 열심히 뛸께! ㅇㅋ
김재원 고마우이...두륜산에는 합류할수있게 해볼게...
우리는 조선말기 대원군의 쇄국정치로 망국의 길을 걸은 것처럼 배웠으나 이 또한 식민사관이다...최선의 방편은 아니었을정 차선의 선택이지 않았나 싶다...그러고도 백여년 지나서 세계경제강국 반열에 오른 자긍심과 자신감이 필요한 지금이다...고작 탄핵정국을 주도한 불온한 종북세력과 세월호세력이 이나라를 어찌하지는 못할거다. 이를 지키고지 한다면.
이동훈 식민사관이 참으로 국민과 국가를 망쳐놓은것같아...
중ㆍ일 양국이 우리보다 너무 엄청난 국가처럼 보이잖아...
남ㆍ북이 하나 된다면 충분히 그들을 부셔버릴수 있을텐데.....
힘에 부친다면 쪽바리만이라도 부셔버린다면 두눈 편히 감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