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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열 아홉 번째
성경 ; 렘29:1,4-7, 딤후2:8-15, 눅17:11-19
제목 ; 이 위대하고 놀라운 진리를 잊지 마라!
이미 뉴스 보도를 통해서 잘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만, 인천 용현
동에 사는 정**라는 사람이 정선 카지노에 자주 출입하다가 많은 빚을 지게
되자, 어머니를 목 졸라 죽이고 형까지 죽이는, 끔찍하고 무서운 살인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부인까지도 지난 25일경에 스스로 목매달아 죽
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한 사람이 도박에 빠짐으로써 그의 가족 전체가 풍비박산이
되고 만 것입니다. 처음에 어떤 계기로 도박에 손을 대기 시작했는지 모르지
만, 그가 처음 도박에 손을 댈 때에는, 그 앞날에 이처럼 끔찍한 일이 발생
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도박을 해서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
았을 것입니다. 어쩌다가 한 번 도박에 손을 댄 것이, 그처럼 상상할 수도
없는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요컨대,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으
면, 아예 그 길로 들어서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단 한 번만이 두 번
이 되었을 것이고, 그 이후 세 번 네 번 출입하다 보니, 결국은 중독이 되고
말았으리라고 여겨집니다.
그런데, 일부 어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너무 믿는다는 게 문제입니다.
특히, 남자들이 이런 경우가 많은데, ‘나는 별 탈이 없을 거야,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괜찮아!’라고 하면서 쓸데없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이와 같
은, 자신에 대한 헛된 과신 때문에 자기 인생을 망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닙
니다.
어저께 미연이 외할머니 문상을 갔을 때, 어떤 아주머니께서 몹시 슬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조순자 권사님이 그 아주머니를 알아보고서는 “여
긴 웬일이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아주머니의 시동생이 이제
60인데 갑자기 쓰러져서 작고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병으로 앓다가 죽은 것이 아니라, 전혀 예상치 못하고 있다가
갑자기 쓰러져 죽는 바람에, 가족들이 그처럼 슬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
군다나, 요즘에는 60이라는 나이가 아직 젊은 측에 속하기 때문에, 더욱 아
쉬워하면서 슬퍼했으리라고 여겨집니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우리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미리 알 수가 없는 일
입니다. 아무리 용한 점쟁이라도, 우리 앞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확실하게
점칠 수 없습니다. 다만,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지금 그 마음
의 상태가 어떤지 알면, 그 사람의 앞날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가 하고 있는 일과 그 마음의 상태가, 바로 그의 미래를 어
느 정도 좌우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하고 있는 일이 하나님께
서 보시기에 합당한 일이고, 또한 그가 걸어가고 있는 길이 진리의 길이라
면, 하나님께서 그 앞길을 보장해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의 앞
날에는 반드시 밝고 소망스러운 일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경우, 십중팔구, 불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말하자
면, 그가 하는 일이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고, 그 마음상태도 평안치 못하다
면, 그가 하는 일이 결코 잘 될 리가 없습니다. 혹시 잠시 일이 잘 풀린다고
해도, 그가 하는 일이 진리에 어긋나는 것이라면, 그 일의 결과도 뻔한 것입
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진리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진리(眞理)’
가 ‘인간이 마땅히 해야 할 일’, 또는 ‘우리가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고 정
의한다면, 그 진리의 길을 결코 벗어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진리 안에서 영
생의 길을 가고자 원할 경우, 그 진리의 길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그 길
을 꿋꿋이 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 길은 분명히 힘들고 어려운 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디
모데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에서 ‘만일, 지금 주님을 섬기는 일이 힘겹거든,
주님과 함께 왕좌에 앉아서 다스리게 될 일을 위안삼아 더욱 힘써야 한다
(2:12)’고 격려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고난을 견디지 못하고 주님을 버
린다면, 주께서도 우리를 버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12)’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물론, 우리가 붙들고 있는 이 진리가
진정으로 우리를 살릴 수 있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라고 확신한다면, 그
어떤 고난과 시련이 있을지라도 이 진리를 꼭 붙들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
면, 주께서 우리를 도와주시리라 믿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의 믿음이 연약해질 때도, 주님은 우리를 도와주신다
(딤후2:13)’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약속을 잘 지키시
는 신실하신 분’이라서, 우리를 쉽사리 버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고
로, 우리가 끝까지 주님을 부인하지 않는 한, 주님은 저와 여러분을 지켜주
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1.언제까지나 진리의 예수님을 붙들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캐나다의 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당대에 아주 큰 부자가 된 ‘깁슨’
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처음에는 방앗간에서 심부름꾼으로 일했습니다. 그는 온갖 고
생을 다 하면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항상 최선을 다하고자 힘썼다고 합
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는 산림 20만 에이커와 철도 280 마일을 소유한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기는 쉽지 않지만, 어쨌든 아주
엄청 큰 부자가 된 것만은 사실입니다.
어느 날,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 찾아온 신문기자가 그에게 성공의 비결
을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첫째는 절대로 술을 마시지 말 것, 둘
째는 힘들고 고된 일이라고 해서 마다하지 말고 부지런히 일할 것, 셋째는
하나님을 믿고 모든 일에 염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가 오늘의 저
를 있게 만든 것입니다.”
그러자, 그 기자는 “그거야, 누구나 다 아는 평범한 이야기가 아닙니까?”
하고 되물었습니다. 이에, ‘깁슨’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그렇습니
다. 아주 평범한 이야기죠. 하지만, 알고 있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누구나 다 아는 평범한 진리이지만, 그 진리를 실천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
이 있겠습니까? 정말로 중요한 것은, 작은 것 하나라도 직접 실천에 옮기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진리를 깨달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진리에 따라 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처음부터 엄청난 진리를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진리부터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중의 하나가 ‘감사하는 일’
입니다.
우리가 흔히 ‘구주 예수’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만, 알다시피 이 뜻은 ‘우
리를 구원하신 예수’라는 뜻입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주신 주님에 대해
서 감사한 마음을 갖고 살 때, 괴롭고 힘든 일도 잘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
렇지 않고, 감사한 마음을 잊어버리고 산다면, 고난이 닥쳤을 때에 그 고난
을 이겨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범사에 감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범사
(凡事)’란, 우리가 겪게 되는 모든 일들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즐겁거나 기
쁠 때뿐만 아니라, 괴롭고 힘들 때에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현대어성경’은
이 부분을 ‘어떤 처지에 있든지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말라’고 번역하고 있
습니다.
어느 날,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던 중에, 갈릴리와 사마리아의 경
계를 지나가시게 되었습니다.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자, 나병환자 열 사람이
“예수 선생님,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하고 소리 지르면서 자신들
의 병 고쳐주기를 간청했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보시자 불쌍히 여기시고 “제사장에게 가서 당신들이 나
았다는 것을 보여주도록 하시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제사
장한테 가는 도중에 그들의 병이 모두 나았습니다.
이에, 그들 중 한 사람이 주께 다시 돌아와서 큰소리로 “주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제 병이 나았습니다.”하고, 감격에 찬 목소리로 말했습니
다. 그리고 그 사람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서 얼굴을 땅에 대고 주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유대인들이 늘 경멸하면서 무시하는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둘러서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열 사람이 낫지 않
았소? 그런데, 나머지 아홉은 어디 있는 거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돌
아온 사람은 이 이방인 한 사람뿐이란 말이오?”하고 따져 물으셨습니다. 그
리고는, 주님 앞에 엎드려서 치병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드린 사람에게 말씀
하시기를 “일어나 가시오. 당신의 믿음이 당신을 구원하였소!”하고 선언하셨
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사마리아 사람뿐만 아니라, 나머지 아홉 사람들도
분명히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하늘
이 내린 형벌이라고 해서, 한 번 걸리면 죽을 때까지 평생 고칠 수 없는 무
서운 나병에서 해방되었는데, 어찌 감사한 마음이 안 들었겠습니까? 하지만,
그들에게는 ‘감사’가 생활화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인사도 없
이 그냥 돌아갔던 것이고, 단 한 사람만이 주께 돌아와서 감사의 인사를 드
렸습니다.
이 비유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세상에는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너무나 적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사실 따지
고 보면 우리에게는 감사할 일이 너무나 많은데도 불구하고, 아직 이루어지
지 않은 것, 부족한 것, 다른 사람한테 서운했던 일들만 생각하고 살다 보니,
감사를 잊어버린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내가 고난을 당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들에게 예수 안에서 주시는 구원과 영원한 영광을 가져올 수 있다면, 나
는 어떠한 고난도 기쁘게 받을 것이다(딤후2:10)’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기쁘고 좋은 일이 있을 때에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형제를 위해서
당하는 고난이라면, 그 고난까지라도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겠다
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런 믿음을 갖게 된 것은, 그가 ‘참으로 위대하고 놀라운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에서 말하기를 ‘예
수가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셨다는 사실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
다는, 이 놀라운 진리를 언제나 잊어버리지 말라(딤후2:8)’고 했습니다. 그
러니까,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성육신과 부활’을 확실히 믿고 있었던 것입
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사도 바울로 하여금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하는 원동
력이 되었습니다.
우리 또한 사도 바울처럼, 주님의 성육신 탄생과 십자가 후의 부활을 확
실히 믿는다면, 우리에게 어떤 고난이나 시련이 있을지라도, 그 고난과 시련
을 두려워하지 않고, 항상 감사하면서 기쁘게 살아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믿음 때문에 겪는 고난이나 시련이 있다면, 그 시련과 고난은
우리가 장차 받게 될 영광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롬8:18)’라고, 바울은
주장했습니다.
그러니, 예수를 구주로 믿고 받아들여서 살고 있는, 저와 여러분은 어떻
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2.어디서든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주님의 백성답게 살아야 합
니다.
로마제국 시대 때에, 기독교를 국교(國敎)로 선포했던 사람은, 아시다시
피 ‘콘스탄티누스 대제’입니다. 하지만, 원래 그는 기독교인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로마제국에서 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기독교를 믿는 사람
들이, 백성들뿐만 아니라 신하들 중에도 아주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독교인들을 찾아내어 모아놓고 “기독교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관직을 내놔야 한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자, 그 말을 듣고서 많은 수의 기
독교인들이 관직을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신앙을 버리고 관직을 택한 사람
들도 있었습니다.
콘스탄티누스는 그들 두 부류의 얼굴 표정을 서로 비교하면서 깊이 관
찰했습니다. 그런데, 신앙을 선택한 신하들의 얼굴은, 비록 관직을 잃었음에
도 불구하고, 항상 밝고 환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를 버리고 관직을 선택
한 신하들의 얼굴에는 언제나 항상 근심걱정으로 가득했습니다. 콘스탄티누
스는, 이들의 표정을 살펴본 다음, 기독교의 진리가 옳다고 하는 것을 깨닫
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독교를 선택한 신하들을 바로 복직시켰습니다. 그리고 기
독교신앙을 버리고 관직을 택했던 신하들은 모조리 몰아냈습니다. 그리고 그
는 곧,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했던 것입니다.
기독교의 진리가 얼마나 위대하고 놀라운 진리인지, 천국에 가게 되면,
그 사실을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미리 그 사실을
알 수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독교의 진리를 믿는 신앙인들의 얼
굴 표정이 언제나 항상 밝고 환하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 마
음에는 구원의 진리를 믿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 감
사한 마음으로 살기 때문에, 그 얼굴표정이 항상 밝은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사는 사람들은, 항상 기쁜 마음으
로 그 말씀에 순종하게 마련입니다. 부모님의 은혜를 고맙게 생각하고 감사
하는 자녀들이, 그 부모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듯이 말입니다. 그런고로,
진실한 기독교인이란, 언제나 항상 밝은 표정을 하고 살면서, 그 말씀에 순
종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주님의 백성이 지켜야 네 가지’를 부탁했습니
다.
가. 사소한 일로 논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별 것도 아닌 일로 다투는
것은 백해무익하다는 것입니다.
나. 하나님께서 잘했다 칭찬하실 수 있도록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것입
니다. 하는 둥 마는 둥 할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던지,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 우리가 천국에 가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때, 부끄러움을 당하
는 일이 없도록, 주님의 훌륭한 일꾼이 되어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은, 열심히 하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야 하게 마련입
니다. 그러나 주님을 위한 일은, 자신에게 유익이 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자신의 돈과 시간을 써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천국에 들
어가게 되면, 과연 무엇이 우리에게 더 큰 유익이었는지 확실히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라. 진리의 말씀이 무엇을 가리키고 무엇을 뜻하고 있는가를, 늘 배우고
깨우쳐야 한다고 했습니다. 성경공부 시간을 소홀히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
다. 그들이, 진리를 어느 정도 안다면, 그렇게 소홀히 할 리가 없습니다. 그
래서 더욱 안타깝습니다. 진리의 참맛을 본 사람이라면, 본인 스스로가 열심
을 낼 수 있을 텐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많으니, 담임목사인 저로서는 어
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무쪼록, 이 위대하고 놀라운 진리를 소홀히 여기거나 잊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시기를 바랍니다. 바라건대, 진리 안에서 인생의 참된 의미를 깨닫
고, 그 진리에 따라 열심히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될 수 있기를, 주
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