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다려주는 가족 있어 한국인으로 우뚝 | |||||||||
I 이주여성 희망 터 I (하) 경상도 사투리 말하기 대회 특별상 받은 티감 씨 | |||||||||
| |||||||||
"지는 예 베트남에서 시집온 지가 딱 4년 됐어예. 그동안 말끼를 몬 알아들어 욕본기 이거삐 아이고예 천지삐까리였심미더." 여느 어머니처럼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겠다는 당찬 결혼이민자 응우엔 티감(25·베트남). 함안군 군북면에서 사는 그녀의 말에는 행복하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예쁘게 살고 싶어 하는 새댁의 기대감과 자신감이 넘쳐난다. 한국의 일반 주부처럼 알콩달콩 살림의 재미를 더해가던 평범한 그녀가 사투리 하는 별난 이주여성이란 별칭을 얻으면서 공중파 방송에 출연하는 등 유명세를 타고 있다. 지난해 9월 마산 3·15 아트센터에서 열린 제3회 경남도지사배 경상도 사투리 말하기 대회에 참가해 뛰어난 실력으로 특별상을 받으면서 그에게 이목이 쏠렸던 것. "한날은 시아부지께 진지드시러 오시라는 말을 '아부지 밥 무우로 온나, 안오끼가 우리끼리 먼저 무삔다' 이래캐가예 꾸중을 배터지게 얻어뭇어예." 대회당일 아동양육지도사로 그녀와 인연이 닿은 이병숙 씨가 써 준 원고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자신 있게 늘어놓던 그 모습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가녀린 몸에 베트남 전통 의상을 곱게 차려입고 단아한 매무새로 연단에 선 그녀가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를 막힘없이 풀어낼 때 청중들은 하나같이 아낌없는 갈채를 보냈다. 대회장에서 아들과 함께 며느리를 지켜보던 시어머니는 감격의 눈물을 쏟아 냈다. 한국인도 하기 어려운 사투리를 긴장한 기색도 없이 맛깔 나게 풀어놓는 며느리가 대견하고 신통방통해서일까. 아들이 국제결혼을 한다고 할 때 내심 걱정이 컸었는데 4년을 지켜본 며느리는 어디 내놔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눈에 쏙 들어온단다. 위아래 알고 행동거지 바르고 예의범절에서 음식까지 가르쳐주면 주는 대로 잘 거둬 따라하는 모습이 늘 대견하다고. 4년 전 결혼이주한 베트남 막내딸 혈육이 가까이 있어 덜했겠지만 향수병에 목이 멜 때가 잦았고 언어와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장벽이 그녀를 애달프게 했다. 베트남에서 6남매의 막내딸로 비교적 다복한 가정에서 티 없이 자란 그녀는 전문대에 다니다 한국으로 시집왔다. 네 살배기 아들과 20년간 한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성실하고 듬직한 남편, 세심한 시어머니는 티감의 든든한 후원자. 특히 남편 김영동 씨는 그녀의 전폭적인 지지자이며 그녀의 안목과 생각을 넓혀주는 친구이자 연인이다. 문화가 달라 아이양육과 지도에 애로가 많을 거라 걱정한 남편이 직접 아동양육지도 과정을 신청할 정도로 아내 사랑이 극진하다. 인터넷 지도에서부터 아동도서와 문학전집, 육아정보에 관한 책이 빼곡히 꽂혀 있는 독서환경은 남편의 깊은 심지와 미래를 내다보는 넓은 안목을 짐작하게 했다. 살림·일 척척…대학 진학 계획도 몸이 약한 아내를 걱정하며 건강만 허락이 되면 무엇이든 꿈을 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김 씨. 간호사의 꿈을 안고 있는 티감이 사이버교육에 관심을 두자 아직 한국어가 익숙지 않아 교육을 소화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한 그는 2년 정도 한국어를 더 배워 정식 교육 과정을 밟을 수 있도록 해 주겠다며 아내를 다독이는 자상함도 잊지 않는다.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할 수 있으려면 기동성이 있어야 한다며 아내의 등을 떠밀어 올해 2월에는 면허증도 취득했다. 작은 승용차를 구입해 티감이 여기저기 배움도 구하고 세상을 보는 눈을 넓힐 수 있도록 배려했다. 문화예술 애호가인 김 씨는 주말이면 아내와 함께 영화나 음악회 등 문화생활과 여행을 즐긴다. 티감의 영민함은 그녀의 타고난 능력도 있지만 남편과 벗하며 세상 밖에서 쌓은 산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을 거라고 이병숙 지도사는 이야기한다. 남편의 관심과 사랑, 가족 구성원의 애정이 행복한 결혼생활의 끈이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자신감과 열정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티감의 끼를 세상 밖으로 꺼내 준 건 다름 아닌 결혼이민자의 한국생활을 돕는 아동양육지도사 이병숙 씨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씨와의 만남은 내면에 꿈틀거리던 그녀만의 장점을 꺼내 놓는 계기가 됐다. 사투리 하는 결혼이민자. 특별하고 유별난 일이긴 하지만 가족들의 도움과 본인의 의지가 없었다면 가능이나 한 일이었을까. 친구·연인으로 적극 도와주는 남편 제1회 사투리대회 수상자이며 사투리 사랑이 몸에 밴 사투리 전도사인 이 씨가 넌지시 티감과 남편에게 대회 참가를 권유했다. 샘이 많은 티감과 그녀의 지지자인 남편 김영동 씨가 흔쾌히 수락했고 문화원에서 한 달 달포를 이 씨와 함께 하루 3시간씩 연습에 매달렸다. 다행히 언어습득 능력도 뛰어나고 인터넷도 곧잘 하고 음식 솜씨에서 인사성까지 배우는 대로 자기 것으로 소화하는 티감을 보면서 큰일을 내겠다는 확신을 했고 대회결과 이 씨의 생각은 영락없이 적중했다. 베트남에서도 무대에 서본 경험이 없는 그녀가 침착하게 배운 대로 역할을 해 내는 모습은 너무나 대견스러웠단다. 티감의 가정은 다문화가정의 모범사례로 꼽을만한 행복한 가정이라고 이 씨는 소개하면서 더디다고 채근하지 않고 가족 구성원 모두 인내하고 서로 아끼고 감쌀 때 행복의 무지개가 뜨는 단란한 가정으로 설 수 있다고 말했다. 아동양육지도사 이 씨는 농촌지역의 다문화 가정은 보편적인 문화로 자리 잡았다고 강조한다. 농촌 소규모 학교에는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이 싹으로 자라고 있다. 10년 내에 그 싹들이 한국의 일꾼으로 설 날이 머지않았다. 싹을 키워 낼 사람이 다문화가정의 이주여성이며 가족 구성원이다. 더디다고 채근하지 않는 가족이 힘 어머니가 보고 배우는 것이 자녀들에게 고스란히 이어져 한국의 인적자원이 형성되는데 성급한 배움은 자칫 아동의 싹을 밑둥부터 자르는 결과를 낳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다. 때문에 그녀는 늘 이주여성들에게 10년을 기점으로 차근차근 깊이 공부해 나가야 한다고 교육한다. 아동양육지도사의 자질향상과 평생 배움도 뒤따라야 한다. 손재주가 유난히 많은 티감. 그녀는 둘째아이를 낳고 애들도 돌보며 대학 진학의 꿈을 펼칠 계획이다. 간호사가 꿈인 그녀는 노인 병간호에 관심이 많다. 간호사 자격증을 취득해서 간병, 이·미용봉사도 할 계획이다. 베트남 결혼이민자에게도 자기의 경험과 지식을 나눠주는 길잡이로 서고 싶다고 말했다. 동향 친구들과 얽힌 소송사건 판결문을 번역해 주고 돕는 일도 그와 무관치 않다. 꿈이 있기에 희망이 있는 삶, 푸른 꿈을 안고 당당한 어머니로 서고자 배워야 할 것이 널렸다는 그녀는 지금 친정이자 고향인 베트남 나들이를 준비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