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강의 축제
박윤규(시인)
어린 눈발들이, 다른 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이 물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 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철없이 철없이 눈은 내려,
강은,
어젯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었다
―――안도현, [겨울 강가에서] 전문
밤새 눈을 맞은 어린 나무들이 젖어 있다. 얼마나 바들바들 떨었을까.
아침이 되면서 그 젖은 것들이 더 많이 반짝인다.
어둠 속에서 지치게 하던 고통의 노래를
축제처럼 더 많이 쏟아내려는 것이다.
겨울 강가에 서면 눈이 부시다. 세상이 왜 이리 환한가.
환한 세상에 나만이 어둠이었을까 싶은 것이다.
나에게 네가 있다는 생각을 떠올리는 데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너의 사랑을 간절하게 내가 온몸으로 받을 수 있을까.
겨울 강가에 서면 나는 자꾸 가슴이 아리다.
너와 나의 인연은 세상의 몇 겁을 돌다 왔을까.
한 눈송이가 가장 아프게 내려앉은 자리, 그곳에 내가 서 있었다니.
너는 온통 하얀 꿈을 꾸었던가.
너는 내 가슴에 내려앉아 마침내 지워지지 않을 깊은 상처를 새겼구나.
네 맑음으로, 나도 하얀빛의 꿈을 꾼다.
내 몸이 눈이 부시다.
밤새 뜬눈으로 눈을 맞았을 작은 조약돌 하나.
그 작은것이 이 아침 등불처럼 환하다.
그것을 집어 물수제비로 강물에 띄운다.
통, 통, 통, 통,
그러나 강의 저 기슭에 닿지 못하고 시야에서 지워진다.
그 사라짐의 기억만이 강의 표면에 남을 뿐이다.
그것도 아주 잠시…….
살아가는 일의 정체는 뭘까?
강 저 기슭에 닿으려고 허우적거리다가
어느 지점에서야 나도 모르는 사이 형체를 감추는.
그러면 내 지나온 발자국들은 바람에 잠시 흔들리다가 사라지리라.
내가 살아있는 어느 지점에서 너를 만났으며,
또 우리가 아프게 사랑했음을,
그 아픔으로 밤새 또 강물처럼 뒤척이며 있었음을…….
아, 그런 모든 이유가 헛되고 헛됨의 긴 동아줄이 되어 우리를 가두고,
낄낄거리며 우리 살아가는 일을 조롱한다 할지라도.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되어 강물에 발을 담근다.
발이 시리다.
누군가가 강물에 띄워 보냈을 조약돌이 여기까지 밀려와
내 발바닥을 간지럽힌다.
강물이 파닥이면서 햇빛을 마구 쏘아올린다.
여기저기서 펑, 펑, 펑, 축포가 터진다.
이 아름다운 세상에 내가 살아있다니!
저 강의 물위에 길게 획 하나 긋지 않고
나는 침잠한들 또 어떠랴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