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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저에게 수학을 가르치다가 해고 당한 과외 선생 이대제 씨가 이런 남자일 줄은 몰랐습니다. 지금 시점에서 생각해보니 모든 게 맞아떨어지는 것입니다. 과외 시간 내내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거나 전화 통화하기에 바쁘고, 새어나오는 목소리 대부분은 여자였지요. 제가 알아들을 수 없는 이런저런 말들을 주고 받기도 했어요. ‘부스’를 잡았는데 ‘게스트’ 인원이 맞지 않는다는 둥.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다 클럽에서 만난 여자들을 상대하는 것이었나봐요. 이 아저씨에게 제가 이제는 클럽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 시절에 선생님이 만나는 여자 이야기 해달라고 제가 조를 때마다 과제 다 해오면 들려주겠다고 했었죠. 그리고 전 그리 좋은 학생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이젠 오빠의 이야기를 좀 적극적으로 듣고 싶습니다.
술은 알지만 클럽은 아직 모르는 나의 친구 도희는 언니가 미국에서 사온 파티드레스를 빌려 입기로 했다는군요. 저도 마음이 급해집니다. 이번주 금요일까지 전투복을 마련해야만 합니다. 평소에 입던 옷을 입고 ‘강남 클럽’에 가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옷을 입고 클럽에 가야 하나. 언제나처럼 제가 먼저 전화하면 받지 않는 이상한 남자. 제 멋대로인 아저씨. 할 수 없이 저 스스로 정보를 수집해야 하는 군요.
동화 주인공 ‘신데렐라’의 이름 뜻은 재를 뒤집어 쓴 소녀, 라고 합니다. 그걸 처음 들었을 때 신데렐라가 무도회장에 참가하는 대목까지가 무척 흥미롭게 느껴졌었습니다. 신데렐라는 결코 재를 뒤집어 쓴 채로 무도회장에 참가하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유리구두를 신고서 무도회장 내 모든 사람들을 숨멎게 합니다. 그 이후의 사건이란 제게 아무런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유리구두의 임자임을 증명하거나, 왕자와 재회하는 것 따위의 스토리는 제 취향이 아니랍니다.
싸이 노래 가사에 의하면 뭘 좀 아는 여자가 강남스타일이라던데, 그런 면에서 전 확실히 강남스타일은 아닌가봐요. 그래서 국내최대포털싸이트 ‘네이놈’에 들어가서 이미지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클럽> 엔터키 탁.
얼굴 죄다 조막만한 지지배들이 손꾸락 죄다 브이자 표시를 해가며 찍은 사진들이 쏟아지는군요. 그리고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군요. 옷보다는 드러난 살의 면적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 이게 포인트구나. 밤에 잘 웃는 옷은 지마켓과 옥션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요가바지와 운동화를 싸게 살 때 조차 피팅모델들의 옷 ‘빨’에 많이도 속았습니다. 그녀들은 모두 째끄맣고 마른 일당들입니다. 하물며 몸에 딱 핏되야하는 클럽옷을 사야하는 이 상황에, 전 더 이상 속지 않으려 합니다. 답답한 마음에 연락 안받는 나쁜 과외 선생에게 문자를 보내놓았습니다.
[선생님, 나 이번주에 클럽가요. 근데 뭘입고 가야할지?를 모르겠단 말예요ㅠㅜ]
어차피 답이 올거란 기대는 하지 않습니다. 얼른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고민을 올려 보았습니다.
[여러분, 나 이번주에 클럽가요. 귀 빠진 이후 처음! 근데 입고 갈 옷이 없어. 클럽 옷 어디서 사나욧].
잠시 후, 엄지 페북 역사상 최다 [좋아요]를 기록하면서 온갖 댓글이 달렸습니다.
평소 블로그 팬이었던 마담느와르님께서는 ‘내일 푸쉬버튼 패밀리 세일 있어요. 저랑 같이 가요.’
페친인지도 몰랐던 행위 예술가 분께서는 ‘명동 포에버21에 가보세요. 가격이 착해!’ 라고 댓글 달아주셨습니다.
재투성이의 신데렐라가 21세기 서울에 재림한다면 요정할머니의 존재 조차 필요 없는 것입니다. 적어도 저는 필요없었습니다. 저에겐 요정할머니보다도 강력한 인터넷&스마트폰 친구들이 있군요. 불금날이 오고 말았습니다. 도희와 함께 명동 포에버21에 쳐들어갔습니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마트만큼 대단한 평수의 매장에 속옷부터 악세사리까지 모든 걸 다 취급하는 곳이었습니다.
2시간 동안 보물찾기를 했고, 마침내 초강력 채도의 파란색 광택이 나는 튜브형 드레스를 손에 넣었습니다. 열 칸 넘는 탈의실에 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로 장사가 잘 되는 이 곳을 보면서 ‘한국 경제 별로 이상 없나봐’하고 도희와 재잘재잘.
새틴 재질의 초미니 드레스를 2만 6천원에 낚아 신나는 기분으로 강을 건넙니다. 지하철 7호선을 타고 청담역으로 향하는데 갑자기 카톡 메시지 하나가 도착합니다.
이 나쁜 이상한 과외선생님이군요! 저는 이 아저씨가 저와 카톡 친구 사이인줄도 몰랐답니다. 한 물 간 책제목 같은 카톡에 도희와 저는 지하철에서 다만 황당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