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식은 강화도 전등사 부근 산골식당에서 대한민국에서 젤로 맛난식사로 대접합니다. 식사후 참숯불가마 찜질방에서 한해 묶은 때를 확~빼버릴 기회를 드립니다.
....안오시면 후회 막급
*산행문의 : 제1 산행대장 (제비:사진선 010-4819-9046 )
제2 산행대장 (구상나무:이형 010-5286-8011)
제3 산행대장 (진기:김용주 010-5318-5680)
회계총무 (제리:배수진 010-3348-6656)
인사총무 (아라:주미경 010-8630-3605)
산악회장 (알라딘:김성기 010-8788-3687)
★★ 조식 제공 ★★
※승차장소 및 승차시간을 꼭 지켜주세요※
승차장소 및 시간:
*1호차~
부평역 역전지구대앞(07:00)~부평시장역 우체국 앞(07:10)~부평구청 정문앞(07:15)~갈산역 1번출구앞(07:20)~작전역 경희보궁 길건너 맞은편(07:25)~계산역천년부페앞(07시30분)
( 차량 진행방향 부평에서>계산역 방향으로 갑니다.)
♣ ♣ 숙 지 사 항 ♣ ♣
♠-기상 여건에 따라 산행이 취소, 변경될수 있습니다.
♠-본인 의사에 따라 산행을 하므로 등반중 사고에 대한 일체의 책임은
본인에게 있습니다.
♠-민 형사상 책임을 물을수 없습니다.
♠-운영자, 카페지기, 산행공지 대장은 일체의 책임이 없습니다.
♠-상기 주의사항에 "동의하는" 회원에 한해 참석할 수 있습니다.
♠-산행(상해)보험은 안전사고를 대비하여 개인이 들으셔야 합니다.
강화도 서북단의 큰 섬인 교동도는 황해남도 연안군과 가까운 접경지역이다. 북한 땅이 빤히 보이는 바닷가에는 그리움과 통곡에 지쳐버린 실향민들의 무덤이 나란하고, 섬 가운데는 광활한 평야와 저수지가 펼쳐져 곡창을 이룬다. 화개산 자락에는 고려와 조선에 걸쳐 국제적인 항구로 이름 높았던 섬의 오랜 유래가 남아 있다. 들판과 호수를 거쳐 철책선 따라 섬을 일주하는 여정은 분단의 참상과 역사 속 왕조의 몰락을 목도하는, 조금은 무거운 길이다. 번성했던 국제항 교동도는 강화도 서북쪽에 자리한 섬으로 북한쪽 황해남도 연안군과는 2킬로미터 밖에 떨어지지 않은 최전선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경계가 삼엄해서 일반인들은 출입하기 쉽지 않은 금단의 섬이었다. 아직도 ‘교동도’ 하면 “어디에 있는 섬이지?”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이 많지만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수도와 직결되는 국제항이었다. 외국 배가 개성이나 서울로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로에 자리한 입지 때문이다. 번화했던 한 시절을 증명하는 교동읍성은 형편없이 허물어진 채 무심하게 방치되어 있고, 폭군의 대명사가 된 연산군이 유배생활을 하다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집터도 잡초에 묻혀 간다. 한때의 영화가 영락하고 나면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를 통감하게 해주는 현장이기도 하다. 닿을 듯 닿을 듯 북한 땅이 저기인데
교동읍성과 연산군 유배지에서 우울해진 마음은 난정저수지와 교동평야의 장쾌한 경관에서 일단 해소된다. 난정저수지와 교동평야는 작은 섬에서는 상상이 어려울 정도로 거대하다. 물이라고는 빗물에만 기댈 수밖에 없는 섬에서 난정저수지와 고구저수지는 풍부한 수원이 되어 너른 벌판을 넉넉하게 적셔주고, 방조제를 막아 갯벌을 간척한 들판은 강화군 최고의 곡창을 낳았다. 그러나 북한과 마주한 북쪽 해안은 철책선이 가로막아 눈물어린 시선만을 허락할 뿐이다. 옛날 썰물 때는 걸어서도 건너다녔다는 북한 땅은 닿을 수 없는 곳이 되어 버렸다. 이 땅이 분단되지 않았다면 교동도는 강화도에 버금가는 역사의 섬으로 각광받았을 것이다. 북한과 너무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군사보호구역에 묶인 섬은 역사의 향기보다는 분단의 상처가 더욱 짙다. 철책선에 가로막힌 망향대 교동도는 동서 12킬로미터, 남북 8킬로미터 크기에 면적은 47.2제곱킬로미터로 서해 최북단의 백령도와 비슷한 크기다. 강화도와는 1.5킬로미터 떨어져 있는데 연도교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지난 천 년간 개성과 서울의 관문이자 군사요지였으며, 활발한 무역항이었음을 증명하듯 지금도 중세 이전 중국의 화폐가 많이 출토된다. 섬에서 가장 높은 화개산(260m) 정상 일대에는 화개산성의 흔적이 남아 있고, 서쪽의 서한리에는 봉수대 터가 전한다. 잠깐이지만 배를 타고 들어가는 ‘진입장벽’이 단절감을 더한다. 오래 된 마을과 텅 빈 들판, 섬뜩한 철책선 옆을 달리노라면 그리움에 사무친 실향민들의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이 안타깝다. 북한 땅이 지척으로 보이는 지석리의 북쪽 해변은 실향민들이 고향을 바라보는 곳이라고 해서 ‘망향대’로 불린다. 애타게 통일을 기다리다 한을 품고 죽은 실향민들의 묘가 북한 땅을 바라보며 곳곳에 자리해 있다.
첫댓글 겁나 일찍도 올리셨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