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수봉에 보현봉을 보면은 봉우리가 4개로 보이는데 큰형제봉에 올라서 보니 바위 하나로 보입니다>
▲ <저 멀리 불암산의 독수리봉도 보입니다>
▲ <삼각산의 지능선인 칼바위능선도 멋지게 보입니다>
▲ <칼바위능선/왼쪽에 안부처럼 보이는 곳이 칼바위를 내려 와 산성주능선을 올라가는 길입니다>
▲ <큰형제봉에서 바라 본 작은형제봉/암봉으로 되어있습니다>
▲ <큰형제봉은 소나무숲에 둘러 싸여있는데>
▲ <작은형제봉은 사방이 탁 트였지요>
▲ <작은형제봉에서 어느 산님이 찍어주었습니다>
▲ <작은형제봉에서/보현봉을 배경으로>
▲ <작은형제봉에서/보현봉을 배경으로>
▲ <작은형제봉에서 바라 본 평창동 시가지>
▲ <국민대운동장도 보입니다/작은형제봉에서>
▲ <작은형제봉으로 올라오는 길>
▲ <두 형제봉 사이의 이정표>
▲ <대성문으로 가는 길/4월의 등산길은 진달래길입니다>
▲ <삼각산에서/ 연분홍 진달래>
▲ <삼각산에서/ 진분홍 진달래>
▲ <가랑잎 사이사이에 노랑제비꽃이 지천으로 피어있습니다>
▲ <이 노랑제비꽃은 대동문 근처에도>
▲ <군락을 지어 피어있습니다>
▲ <정릉쪽에서 올라오는 이정표>
▲ <일선사와 대성사 갈림 길>
▲ <일선사 대웅전과 약사전>
▲ <일선사 연혁/신라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 합니다>
▲ <나와 인연 닿는 모든 분들 행복하시라고>
▲ <촛불을 밝혀 기도 기원합니다/1인1등 천원>
▲ <병고자는 속히 쾌차를 하고>
▲ <기도자는 소원성취 하시기를>
▲ <포대화상의 유래>
▲ <포대화상의 배꼽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 <돌리면 무병,부귀,장수,를 얻는답니다>
▲ <일선사에서 바라본 형제봉/좌측이 큰형제봉,우측이 작은형제봉>
▲ <일선사에서 바라본 형제봉/중간에 작은 봉 하나가 더 있습니다>
▲ <일선사 뒤 보현봉을 올라가려고 하였더니 출입통제입니다>
▲ <2010년 12월 31일까지 생태계 복원을 위해 출입금지>
▲ <일선사 뒤 보현봉 아래 큰바위 밑에 새겨진 암각화>
▲ <일선사 뒤 보현봉 올라가는 길 왼쪽 옆 바위에 새겨진 암각화>
▲ <일선사를 나와서 대성문 가는 둘레 길/오른쪽으로 칼바위능선이 보이는데 나무 때문에 시야를 가립니다>
▲ <대성문 가는 길에 피어있는 노랑제비꽃>
▲ <지천인 노랑제비꽃이 눈 아래 밟힙니다>
▲ <오르막에 설치된 나무계단/이 쇠 난간 긴 나무계단을 오르고 나면>
▲ <너덜겅이 나옵니다/ 이 돌너덜을 끝에 드디어 대성문이 보입니다>
▲ <북한산성에는 5대문과 7암문, 수문, 합해서 모두 14성문이 있다고 합니다. 그 중에 대성문은 그 중에 하나입니다>
▲ <대성문에 도착/위문(백운동암문)이나 용암문, 청수동암문 같은 암문은 적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만든 문이었기에 문루가 없지요>
▲ <대성문 볕이 따뜻한 곳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
▲ <대성문의 이정표/왼쪽은 대남문, 오른쪽은 보국문>
▲ <문수봉 가는 길에 뒤돌아 본 산성주능선/동장대, 백운봉이 보입니다>
▲ <오른쪽은 칼바위능선/칼바위보다 더 높은 산성전망대>
산성전망대산성전망대는 산성주능선인 대성문과 대남문 사이에 있는데 지대가 높아 전망하기에 너무 좋은 곳이다.
여기서 바라보면 왼쪽으로 백운대쪽 봉우리와 동장대, 그리고 절벽 위에 서 있는 칼바위능선이 그림처럼
멋있게 보인다.
정면으로는 형제봉이 보이고 비스듬히 보현봉의 옆모습이 보이고 더 우측에는 문수봉이 봉긋이 솟아있다.
햇볕이 따갑고 계단을 오르내리기 힘들더라도 이 방향으로 가시는 길이 있다면 산성전망대는 놓치지 마시
고 꼭 가보시기를.....
▲ <산성주능선에서 바라 본 형제봉/형제봉이 일렬로 보이고 중간에 대성문으로 올라오는 길도 보입니다>
▲ <산성주능선에 있는 바위/이 바위 위에 올라서면 주위의 전망이 끝내줍니다>
▲ <살피/삼각산에 성북구도 들어가 있는지?>
▲ <대남문 내려가기 전 산성에서 바라 본 문수봉>
▲ <왼쪽 끝에 문수봉의 두꺼비바위가 보이고 아래는 분홍등을 달아놓은 문수사/오른쪽이 문수봉 정상입니다>
▲ <대남문에서 문수봉 우회로 표시판/실제로 문수봉은 위험구간이 아닙니다>
▲ <대성문에 서 있는 고지대 화장실 현황 안내판>
▲ <문수봉 주변 최고 높은 바위에서 바라본 문수봉/펄럭여할 태극기가 안 보입니다>
▲ <문수봉에서/이 바위가 문수봉 근처에서 제일 높은 바위입니다/앞면은 고도의 리찌구간인데 옆면은 좀 더 쉽게 오를 수 있습니다>
▲ <문수봉에서/제일 높은 바위를 세로로 찍어 보았습니다>
▲ <문수봉 최고 높은 바위에서 바라 본 보현봉/2010년까지 휴식년제로 묶인 통제구역인데 사람들이 보입니다>
▲ <산성주능선에서 바라 본 보현봉/옆모습>
▲ <큰형제봉에서 바라본 보현봉/바위 하나로 보입니다>
▲ <문수봉 최고 높은 바위에서 바라 본 촛대바위/두꺼비바위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어금니바위라고도 하네요>
▲ <태극기가 있는 문수봉에서 바라 본 두꺼비바위?>
▲ <가까이 당겨서 찍으니 사람들이 많이 보입니다>
▲ <문수봉 최고 높은 바위에서 바라 본 승가바위, 사모바위/비봉에서 오는 길이죠>
▲ <문수봉에서 내려와 두꺼비바위 있는 곳으로 가면서 찍었습니다/일요일이라 사람들이 많습니다>
▲ <바위에 사람들이 많이 올라가 있습니다/편안히 쉬고 있는 사람들도 보이는데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습니다>
▲ <문수봉 리찌하던 곳에 쇠 난간을 설치해 놓았는데 아이 하나가 올라오고 모습이 유독 눈에 들어옵니다>
▲ <엄마, 아빠 가족 셋이 등산을 왔나봅니다/모르는 사람들인데 기념으로 찍었습니다>
▲ <기념으로 찍어서 이메일로 보냈습니다>
▲ <무수봉에 왔다간 기념사진 기억에 남겠지요>
▲ <비봉능선에서 오는 길/문수봉 리찌구간에 쇠 난간을 설치해 놓았습니다>
▲ <설치해 놓은 쇠난간을 잡으며 사람들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 <쇠 난간 설치해 놓은 것을 보고 있는데 몇 명이서 암벽을 기어오르고 있습니다/다섯 명인데 선두가 여자 분입니다>
▲ <낭떠러지 구간이라 보는 사람도 가슴이 조마조마합니다/저런 곳을 어떻게 올라갈까요?>
▲ <이 사람들에게는 쇠 난간 설치가 무의미하겠지요/정말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
▲ <쇠 난간을 설치해 놓지 않았을 때 멋모르고 오르다가 혼이 난적이 있는데 이렇게 난간을 설치해놓으니 초보자도 오르기 좋지요>
▲ <쇠 난간을 설치해 놓았지만 급경사 암능이라 오르기가 그리 쉽지는 않지만 흙길만 가는 것보다 재미있지요>
▲ <두꺼비바위 있는 곳에서 찍은 문수봉 쇠 난간 지대입니다>
▲ <쇠난간을 따라 오르다 바위를 타고 싶어서 이렇게 옆으로 새는 사람들도 있답니다>
▲ <문수봉 두꺼비 바위/가까이 가서 보니 두꺼비를 더 닮았습니다>
▲ <문수봉의 두꺼비바위>
▲ <문수봉의 두꺼비바위>
▲ <두꺼비바위 옆에 있는 바위에서 리찌 연습하는 사람/여자분입니다>
▲ <문수봉 전망 좋은 곳에서 독서를 하는 사람/산행을 하다가 가끔 책을 읽는 여자 분은 보았는데 남자 분은 처음입니다>
▲ <볼수록 두꺼비를 닮은 것 같아 다시 찍어보았습니다>
▲ <문수봉에서 제일 높은 바위를 정면에서 리찌하는 사람들/실제로 앞에 서면 수직이라 매달리기가 무척 어려운 곳입니다>>
▲ <조금 아까 두꺼비 바위 옆에 있는 바위에서 리찌연습을 하던 그 여자 분이 올라가고 있습니다>
▲ <문수봉 근처에 있는 살피/위도, 경도, 지번이 다 나와 있고 표고 710미터랍니다(참고로 삼각산 백운봉은 836.5미터>
▲ <길게 뻗은 산선주능선/왼쪽이 보현봉 옆모습/저 계단을 오르내리면 다리가 아프지만 능선을 타야 경치를 제대로 볼 수 있지요>
▲ <정릉방향으로 내려가는 곳 보국문입니다>
▲ <보국문에 서 있는 이정표/이리로 내려가면 빨래골, 화계사, 아카데미탐방지원센터로 내려갈 수 있습니다>
▲ <북한산성/이 성은 백제,고구려,신라가 서로 치열한 공방전을 벌리면서 뺏고 빼앗기던 쟁탈지로 백제시대 쌓은 토축산성이랍니다>
▲ <산성주능선 칼바위전망대에서/정면에서 바라 본 칼바위능선입니다>
▲ <산성주능선 칼바위전망대에서 바라 본 형제봉/일렬로 서 있어 형제봉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뒤에는 북악산 봉우리>
▲ <산성을 내려와 칼바위능선으로 가면서 찍은 사진/보기에는 이쁘장하게 생겼습니다>
▲ <가까이 가서 보면 이렇게 생겼습니다/여기가 칼바위능선에서 제일 오르내리기 까다로운 곳이지요>
▲ <<상어 입 바위)산 곳곳에 있는 무명바위들도 구전으로 내려오는 전설처럼 누군가가 자꾸 불러주면 그 이름을 갖게 되겠지요>
▲ <칼바위능선 암릉길에 서 있는 바위>
▲ <아카데미탐방지원센터로 하산>
▲ <아카데미탐방지원센터에서 500미터 올라오면 구천폭포가 있습니다/내려가는 길에 구천폭포를 들려보았습니다>
▲ <구천폭포의 중단부 모습>
▲ <삼각산 구천폭포에서/물가에 핀 복사꽃이 눈길을 잡았습니다>
▲ <삼각산 구천폭포에서/멀리서 봐도 이쁘고 가까이서 보면 더 이쁜 복사꽃>
▲ <구천폭포의 상단부 모습>
▲ <산벚꽃(개벚나무)/삼각산 구천폭포에서>
▲ <산벚꽃(개벚나무)/삼각산 구천폭포에서>
▲ <삼각산 구천폭포에서/물과 같이 있어 더 이뻐 보이는 산벚꽃(개벚나무)>
▲ <구천폭포에서/지금 올챙이들이 깨어나서 놀고 있습니다>
▲ <막 깨어나는 올챙이들도 있구요>
▲ <아직 거푸집에 많이 남아 있습니다>
▲ <세로로 찍어 본 구천폭포/수량이 많지 않아서 그렇지 꽤 운치가 있는 폭포입니다>
▲ <구천폭포 위에서 아래를 보고 찍은 사진/조금 전에 찍은 산벚꽃이 화사하게 피어 있습니다>
▲ <구천폭포 옆 능선에서 시내 쪽으로 바라 본 풍경(산 아래쪽은 이미 신록과 함께 산벚꽃(개벚나무)세상이 되어 있습니다>
▲ <아카데미탐방지원센터에서 산머리를 보고 찍은 사진/오늘의 산행 날머리 구천교입니다>
삼각산 형제봉, 문수봉, 칼바위능선
지난주처럼 이번 일요일도 수락산 기차바위를 가려고 했었는데 같이 가자는 사람들과의 일정이 맞지 않아
오늘은 혼자서 형제봉을 가보기로 하였다.
형제봉은 봉우리가 나란히 사이좋게 붙어있어서 형제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했다. 삼각산에 형제봉이
있다는 말은 진작에 듣고 알고 있었지만 가보게 되지를 않았었다.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보니 국민대 앞 북악매표소 - 07년부터 전국의 국립공원입장료가 폐지되면서 지금
은 '북악통제소'로 바뀌었다 - 를 들머리로 하면은 산성주능선에 있는 대성문으로 오르게 되어있었다.
형제봉을 오른 다음 대성문까지만 가면은 우측으로 보국문을 지나 칼바위로 하산을 하려고 산행목표를 세우
고 집을 나섰다.
수유리에서 전철을 타고 기름역에서 하차한 다음 기름시장출구로 나온다. 여기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국민
대 앞에서 하차를 한다.
국민대학교 앞 횡단보도를 건너 100여미터 정도만 올라가면 북악통제소 오늘의 산행 들머리이다.
광장같이 꽤 넓어 보이는 초입에 들어서니 9시 15분, 입구에 제법 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산행 약속을 하
기다리는 사람들이리라.
국립공원은 들머리에 들어서면 언제나 이정표가 먼저 기다리고 있지만 이정표 말고 절 안내판도 나란히 같이
서 있다. 우리나라 산 어디에 절 없는 곳이 있을까만은 삼각산에도 절이 참 많다.
이정표 옆에 심곡사, 영불사, 서광사, 대흥사, 왕녕사라는 절 안내판을 보면서 산 입구로 들어선다.
그런데 들어서자마자 소로길이 아닌 차 한대가 다닐 수 있는 비포장도로의 큰길이다. 임도 같아 보였다.
태백산도 유일사매표소 있는 곳에서 유일사 근처까지 임도가 나 있었는데 이곳도 비포장도로로 가다가 어느
지점부터 포장길이 나온다.
매끈한 포장도로는 아니지만 시멘트를 조금 섞어서 다져놓은 길이 영불사까지 이어진다.
호젓한 산길은 아니지만 어떻게 보면 꽃보다 예쁜 것 같은 새순들이 한창 나오고 있었고 하얀 꽃들이 만발
하여 눈을 즐겁게 한다. 바로 개벚나무의 산벚꽃이다.
개벚나무는 꽃이 나고 잎이 나는 벚나무와는 달리 잎이 나면서 꽃이 피는데 지금 이 근처의 숲을 온통 하얗게
물들이고 있었다.
꽃사진도 찍고 절구경(영불사)도 끝내고 등산로라고 쓰인 화살표를 따라서 오른다. 아까 절 밑에서 세심천이
라는 약수처를 보았는데 북악천이라는 약수터가 또 하나 있다.
산에 오면서 물은 기본적으로 다 가지고 오지만 내려가는 길에 물이 모자랄 때가 있는데 그때 이 약수터를 만
나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이 약수터를 끝으로 포장도로가 끝나고 흙길이다. 본격적인 산행은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대성문 2.5킬로 라
는 이정표가 보인다.
산행은 시작인데 벌써 0.9킬로 올라왔다. 대성문방향으로 가면 형제봉이 나오는 것을 짐작으로 알 수 있지만
아는 길도 물어서 가라는 속담처럼 정릉탐방지원센터로 내려가시는 곱살한 할머니에게 물어본다.
그런데 할머니는 '형제봉이요' 하시더니 다른 말씀을 꺼내신다.
지난해 할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부터는 혼자서 올라갈 수가 없어서 형제봉을 못 올라가 보았다면서
젊었으니 부지런히 다니라고 하신다.
길을 묻다가 뜻하지 않는 애상의 젖는 듯한 할머니의 촉촉한 음성을 들으니 마음이 애잔해
진다. 나이가 들면
서 죽음이 두려워지지 않고 자꾸만 무뎌져 간다.
건강을 챙기지 못한 사람들이 뜻하지 않게 풍을 맞아 얼굴이 돌아가거나 사지를 잘 못쓰는 것을 보면서 이
렇게 내 발로 걸어서 산을 오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영불사를 왼쪽에 끼고 흙길로 들어서니 역시나 제일 먼저 반겨주는 것은 봄 산의 요정인 진달래이다.
언제 봐도 어여쁘기만 한 진달래, 진달래꽃을 보면서 걷는데 어느 실업자의 아내가 쓴 글의 한 구절이 마음
을 아프게 한다.
'날마다 꽃만 보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요'
정말 하루하루 생계를 걱정하며 사는 사람의 눈에 꽃인들 들어올까. 직업이 없어 실업자로 살면서 가족의
생계를 짊어지고 있는 가장의 눈에 꽃이 돈으로 보이는 것은 아닐까.
나 역시 그렇게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는 것도 아니고 내 탓도 아닌데 왜 괜한 죄책감이 들어오는지 모르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오르다보니 삼거리 이정표가 나온다. 올라온 길 북악통제소인 영불사길과 형제봉통제
소, 대성문으로 가는 길이다.
우측인 대성문쪽으로 가야하지만 이쪽에 올라온 목적이 형제봉을 보기 위해서였으니 형제봉통제소에서 홀로
오고 있는 산님께 형제봉이 어디냐고 물어보았다.
지금 자기가 오고 있는 길이 형제봉 가는 우회길이고 이정표에 없는 가파른 산길로 올라가면 큰형제봉이라
고 자세히 가르쳐 주신다.
큰형제봉에 올라서니 제일 먼저 내 눈에 잡히는 것이 보현봉이다. 만날 저 반대쪽인 문수봉쪽에서만 보다
가 보현봉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니 그 모습 또한 새롭다.
문수봉에서 보면 보현봉이 두 개의 봉우리로 보이는데 큰형제봉에서 보니 하나의 바위로 보인다.
지난주에 올랐던 칼바위능선도 조망이 된다. 거리가 멀어서 아찔한 느낌을 받을 수는 없지만 이쪽방향에서
보면은 절벽 쪽인 낭떠러지가 전체적으로 조망이 된다.
저 멀리 암봉이 하나 보여서 물었더니 불암산의 독수리봉이라고 산님이 알려준다.
큰형제봉에서 작은형제봉을 바라다본다. 바로 눈앞에 쇠난간이 설치되어 있는 봉우리가 이쁜 모습으로 다
가온다.
얼른 가보고 싶었지만 아침도 먹지 않고 올라와서 배가 고프다.
먹는 맛으로 산에 오기도 하지만 홀로 산행 길에 얼마의 음식이 필요하랴. 싸온 김밥 두 개 중에 한 개를 풀
어서 먹는다.
바람도 심하지 않고 햇볕도 강하지 않아 산행하기에 딱 좋은데 아직 더운 날씨가 아니어서 밥 먹는 동안 땀
이 식으면서 등이 차가워져온다.
다리가 아파 조금 더 쉬고 싶지만 얼른 일어나 작은형제봉으로 출발을 한다. 작은 형제봉을 오르는 길은 왼
쪽 오른쪽 두 갈래인데 둘 다 쇠난간을 잡고 오르게 되어 있다.
와, 이곳에 오르니까 큰형제봉보다 전망이 더 끝내준다.
사방을 돌아가면서 탁 트여 있어서 내가 올라온 국민대의 운동장도 보이고 북악산의 스카이웨이도 보이고
바로 아래에 평창동의 동네가 활짝 펼쳐져 보인다. 진달래 능선쪽에서 보면 상계동쪽은 전부 아파트인데
이곳은 전부 단독주택들이다.
소나무 숲에 둘러싸인 큰형제봉보다 전망은 암봉인 작은형제봉이 훨씬 더 좋다.
여기 올라와서 알았는데 작은형제봉에서 내려가면 다시 국민대로 내려 갈 수도 있고 평창동으로 내려가는
길이라고 한다. 바로 형제봉통제소와 평창통제소이다.
형제통제소로 산행 들머리를 잡았다면 작은형제봉, 큰형제봉을 거쳐서 대성문으로 곧장 바로 갈 수도 있
는데 나는 북악통제소를 들머리로 잡았기 때문에 대성문으로 가려면은 온 길을 다시 되돌아 가야한다.
그러나 형제봉통제소로 올라왔다면 북악통제소쪽에 있는 영불사라는 절 구경은 못하고 왔을 것이다. 오늘은
영불사가 나와 인연이 닿았기 때문에 그쪽으로 이끌었다고 생각을 하니 그것도 다 인연이 있어서가 아니
겠는가.
다시 삼거리로 와서 보현봉을 보면서 대성문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아까부터 작게 들리던 독경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려온다.
어느 절에서 나오는 소리인가 싶어서 찾아보았더니 보현봉 우측 아래 우측에 절 하나가 시야에 잡힌다.
가보면 알겠지만 그새를 못 참아서 나란히 가지 않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가고 있는 어느 부부산님께 물어
본다. 일선사라고 한다. 그런데 이 독경소리는 녹음된 테이프가 아니고 스님의 육성으로 하루 종일 저렇게
직접 하신다고 한다.
큰형제봉에서 작은형제봉을 보고 작은형제봉에서 큰형제봉을 봐도 왜 형제봉인지 자세히 알수 없었던 형제봉,
산봉우리는 자기가 그 곳에 서 있으면 절대로 그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 가까이 있을 때 마
음을 모르다가 멀리 떨어져 있어봐야 그리움을 아는 것처럼 멀리서 보아야 비로소 그 모습을 자세히 볼
수가 있다.
일선사 절 경내에 들어서서 형제봉과 정면으로 마주하니 비로소 왜 형제봉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정말 봉우리 두 개가 나란히 서있다.
어느 봉우리가 큰지 가늠할 수는 없으나 왼쪽이 큰형제봉, 오른쪽이 작은형제봉인데 중간에 작은봉이 하나 더 있다.
양쪽 두 봉에 비해서 낮아서 그렇지 봉우리는 분명 봉우리이다.
그럼 이 봉우리를 형제봉이라고 하지 말고 삼형제봉이라고 해도 무방하리라.
스님의 독경소리를 등뒤로 들으면서 왼쪽에는 보현봉, 우측 저 멀리 칼바위능선을 보면서 대성문을 향해 가
는 둘레길은 참으로 길이 좋았다.
목적지가 정상이라고 정상만 향해 무턱대고 가는 사람 눈에는 노랑제비꽃같이 키 작은 꽃이 보일 리 만무하
겠지만 가랑잎 사이로 노랑제비꽃이 수도 없이 피어있었다.
봄산은 능선이 아니라도 꽃이 있어 즐거운 산행이다.
위문에서 백운봉 올라가는 길에 미끄러지지 말라고 나무계단에 고무발판을 깔아 놓았는데 여기 가파른 길에
도 쇠난간 손잡이에 나무계단이다.
이 계단이 끝나는 곳에 너덜겅이 나오고 돌너덜 끝에 대성문이 얼굴을 빼꼼이 내민다.
드디어 산성주능선(대성문)에 올라왔다.
여기서 갈등이 생겼다.
처음의 산행 계획대로라면 여기서 우측으로 보국문을 지나 칼바위능선을 타고 하산을 하려고 했는데 왼쪽
으로 몇 백미터가 더 가면 문수봉이 있다.
03킬로 가면 대성문, 계단과 산성봉우리를 몇 개 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대성문과 청수동암문 사
이에 문수봉이 자리를 하고 있고. 문수봉에 갔다가 문수봉의 바위들을 구경하고 되돌아온다고 해도 1킬로
정도 안팎이다.
문수봉은 2년 전에 독바위역에서 향로봉, 비봉. 사모바위, 승가바위를 거쳐서 올라와 보기도했고 진달래 능
선으로 올라서 가보기도 했지만 이 곳에는 촛대바위, 또는 두꺼비 바위라고 불리는 바위 말고도 기암괴석도
많고 그 주변의 전망도 뛰어나다.
지난 산행에서 멋모르고 어느 산님을 따라 문수봉 리찌구간을 올랐다가 얼마나 혼이 났는지 다시는 안 오른
다고 다짐, 또 다짐을 했었는데 그 리찌구간에 쇠난간을 설치해 놓았다고 했는데 어떻게 만들어 놓았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시계를 보니 아직 2시밖에 되지를 않았다. 그래, 여기까지 왔으니 문수봉 한 번 더 보고 가자며 발걸음을
왼쪽으로 돌렸다.
산성주능선을 따라 대성문에서 대동문 가는 높은 봉우리에 산성전망대가 있는데 이곳에서 보면은 문수봉
오른쪽 끄트머
리에 달랑 올라 앉아있는 듯이 보이고 보현봉의 옆모습도 보인다. 일선사에서 정면으로 보이던 형제봉도 비
스듬히 보인다.
그러나 이 산성전망대에서는 무엇보다도 칼바위능선이 가장 멋진 자태를 드러내 보이며 그 위용을 자랑한다.
문수봉에 오르니 여기서도 큰형제봉처럼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보현봉이다. 큰형제봉에서 볼 때는 하
나의 바위로 보였으나 여기서 보면은 4개이 봉우리가 줄지어 서 있다.
이제 형제봉은 보현봉에 가로 막혀서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보현봉은 문수봉에서 보아야 그 위용을 제대로 볼 수가 있다. 봉우리 4개가 일렬로 쭈욱
서 있는데 우측
두 개의 암봉이 무척 크게 보인다.
그런데 우측 꼭대기 바위에 사람들이 보인다. 지금 현재 보현봉은 입산금지, 휴식년제중이고이다
육모정 탐방지원센터가 있는 육모정고갯길의 영봉은 올해부터 해제가 되었지만 보현봉은 2010년까지 아직
3년이 더 남아 있다.
어기면 벌금 50만원이라는 경고가 붙어있는데도 사람들이 올라가 있는 것을 보면은 올라가고 싶은 유혹의
충동을 뿌리치기 어려운 모양이다.
보현봉을 감상하고는 문수봉에서 최고 높은 바위에 올라갔다.
보통은 문수봉에 태극기가 있는 곳이 정상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바로 옆에 더 높은 바위가 있다. 안전시
설이 설치가 되어 있지 않아 리찌를 해야 올라가 볼 수 있는 곳이지만 노련한 사람들은 쉬운 바위이고 산
행 초보자들은 쉽게 오를 수가 없는 바위이다.
이 바위에 올라서 내려다보니 백운봉의 정상처럼 힘차게 펄럭여야 할 태극기가 오늘은 보이지를 않는다.
바람이 많이 불어 찢겨나가지나 않았는지. 태극기가 바람에 막 날리고 있어야 생동감도 느끼는데 깃대만
덩그러니 서 있어 잎 없는 나무같아 보였다.
문수봉 정상에 서면 보현봉의 위용도 대단하지만 비봉 방향으로 유난히 시선을 끄는 이상한 바위가 하나 있다.
육모정 고개에 있는 주먹바위를 두고 누구는 코끼리 바위라고 하고 또 어떤 이는 주먹바위라고도 하는데
그것처럼 여기의 이 바위를 두고 촛대바위라고 하기도 하고 햇불바위, 또는 두꺼비바위라도 한다.
이 바위를 문수봉 정상에서 보면은 촛대바위처럼 보이나 가까이 있는 바위에 올라가서 내려다보면 영락없는
두꺼비를 닮아있다.
정말 자연은 신기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인공적으로 정교하게 만들어 놓는다 한들 어찌 저보다 자연스럽
게 빚어놓을 수가 있을까.
멋모르고 따라 오르다 가슴이 철렁했던 적이 있었던 제일 궁금한 리찌구간으로 가본다. 바위로 덮인 암릉길
에 쇠난간을 줄줄이 설치해 놓은 것이 보인다.
쇠줄을 만들어놓았다고는 하나 위에서 보기만 해도 스릴이 느껴진다.
저 밑에까지 다 내려가 볼 수는 없고 중간쯤만 내려가 보고 오려고 내려가는데 분홍색 웃옷을 입은 여자아이
하나가 눈에 쑥 들어온다.
아빠가 앞에 서고 엄마가 뒤에 중간에 아이가 낑낑거리면서 올라오는데 너무나 기특해 보였다. 숨을 쌕쌕
몰아쉬며 다 올라온 아이의 얼굴을 보니 올라오느라 힘을 쓴데다 올라왔다는 기쁨에 상기된 두 볼이 발그스
레하다.
갑자기 사진을 찍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사진 몇 장을 찍어주고 메일을 적으려고 하니 오늘
따라 볼펜이 보이지 않는다.
혹시나 하고 산에 갈 때는 메모지와 볼펜을 항상 가지고 다니는데 볼펜을 챙긴다고 했는데 넣지를 않았나 보
다. 할 수 없이 내 손전화기에다 입력을 해 놓는다.
쇠난간을 잡고 내려가 본다. 쇠난간을 설치해 놓았지만 난간 바깥쪽이 절벽이라 스릴이 느껴지는 것이 아
니라 공포감이 엄습해온다.
저 밑에 끝까지 다 내려갔다가 오기는 힘겹고 시간이 잡히면 비봉쪽에서 다시 한 번 와 보리라 생각을 하
면서 되돌아 올라온다.
올라오는데 놀라자빠질 만큼의 광경을 목격했다. 바로 다섯 사람이 문수봉의 암벽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못
돼도 몇 십 미터는 될 것 같은 경사진 암벽을 붙어서 오르고 있는데 선두가 여자였다. 와, 정말 대단한
사람들. 나는 죽었다 깨도 흉내조차 못낼 것이다.
이 사람들에게는 설치해 놓은 쇠난간은 그저 남의 일이고 무의미할 것이다.
일요일 날 문수봉에 있으면 시간가는 줄을 모른다.
리찌하는 사람들도 많고 기암괴석도 많아서 둘러보면은 사진 찍고 싶은 바위도 무지하게 많다.
시계를 보니 4시가 되어간다. 이제 대성문까지 온 길로 되돌아가서 칼바위를 타고 아카데미탐방지원센터로 하
산을 하면 된다.
지난주에도 왔다가 간 칼바위, 오늘은 그 칼바위를 산성전망대에서 실컨 감상하였고 그 칼바위능선을 넘어
서 내려왔다.
일단 바위로 된 능선을 넘어서 삐죽삐쭉 튀어나온 급경사진 돌길을 엉덩이를 끌면서 내려오면은 그 다음부
터는 아카데미하우스까지 골짜기로 내려오는 편한 길이다.
골짜기 길은 아직 꽃도 잎도 많이 피지 않아서 볼 것이 별로 없어 은근히 지루하다.
대동문을 오르는 화장실이 있는 삼거리 길 기슭까지 내려왔다. 여기서 0.5킬로가 더 가면 오늘의 산행 날머
리인 구천교다.
바로 내려가려는데 왠지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산에 두고 온 물건도 없고 잊고 온 것도 없는데 뭐가 그리
도 아쉬울까.
다시 발길을 근처에 있는 구천폭포로 옮긴다.
며칠간 비가 와서인지 가까이 가니까 제법 많은 수량의 물이 쏟아져 내린다.
말이 폭포이지 바위로 된 구천폭포는 제일 꼭대기에서 떨어지는 몇 미터의 물줄기 말고는
폭포랄 것도 없다.
그러나 여느 개울이나 골짜기와는 달리 아래서부터 물이 떨어지는 위까지 전부 바위로 되어 있어서 여럿이
앉아서 쉴 곳이 많다.
물 근처에서 담소를 나누기도 좋고 쉬어가기도 참 좋은 곳이다.
바위를 한 발 한 발 디뎌가며 위에까지 올라가 본다. 이 구천폭포는 자주 와 본 곳이다. 산 입구에서 가까
워 아이들이 어렸을 때, 산이 뭔지도 모를 때 치킨과 김밥을 싸 가지고 와서 먹고 놀다가 간 적도 있었다.
그 때 이 맑은 계곡 물에서 막 깨어나서 자라는 올챙이를 정신없이 들여다보다가 윗주머니에 넣은 손전화
기가 빠뜨린 적도 있었다.
그때도 이맘때쯤이어서 그 때 생각이 나 앉아서 들여다보았더니 역시나 올챙이들이 바글바글하다. 크기로
봐서는 알에서 깨어난지가 아직 얼마 되지 않은 듯 머리가 작은마한 것들이 꼬리를 살레살레 흔들며 수면
으로 떠올랐다 내려앉는다. 한 놈이 내려가면 또 다른 놈이 올라 왔다가 내려가고 끝임 없이 반복을 하고 있다.
또 한쪽에는 아직 부화되지 않은 알들이 거푸집에 까맣게 박혀있는데 조것들도 따슨 햇볕 한 자락 쏘이면
바로 깨어나서 이 계곡의 주인으로 살아가리라.
그런데 그 때는 이곳에서 보라색 제비꽃도 보았고 싸리꽃, 병꽃도 보았는데 싸리꽃과 병꽃이야 아직 필
때가 이르지만 보라색 제비꽃은 터를 잡지 못해서 구천폭포와 이웃을 하지 못하고 대신 산벚꽃이 만개를
해서 구천폭포를 더 아름답게 수를 놓고 있었다.
또 그 바로 옆에는 그때 보지 못한 복사꽃이 몽우리가 가득 안은 채 막 피어나고 있었다.
전에 가족들과 왔을 때 올챙이가 개울을 떠날 무렵 다시 와 보자고 약속을 해놓고는 못 오고 말았는데 이
올챙이들이 커서 물을 떠날 때쯤 다시 한 번 또 와보고 싶다.
그런데 글쎄요다.
약속이란 지키라고 있는 것인데 때로는 이렇게 마음속에 담아두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인지도 모른다.
마음속으로 구천폭포를 다시 찾으리라 생각을 하며 날머리인 구천교를 조금 이른 시간? 인 6시에 건넜다.
인터넷 어느 블러그에서 만난 한 산님은 산을 가면서 두 가지가 싫은 것이 있는데 하나는 산들머리까디 길
게까지 길게 이어진 포장도로이고 또 하나는 산 아래로 내려 올 때가 가장 싫다고 했다.
혹자는 그럼 산에서 살면 되지 하고 비꼴지 모르지만 자연을 사랑하고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같은 마음일 것이다.
나도 조금 더 있다가 내려오고 싶었지만 저녁 8시 있는 볼링모임에 시간을 맞추려면 지금은 더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다.
볼생볼사,
볼링에 살고 볼링에 죽는 것은 아니지만 볼링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들어있으면서도 기껏해야 한 달
에 두 번 있는 정기전, 비정기전의 볼링모임에도 열의를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듣는데 그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얼른 목욕탕에 가서 씻고 볼링장으로 가야한다.
끝으로 오늘 형제봉에 올랐다가 대성문으로 가는 길에 헬기의 프로펠라 소리를 들었는데 산에 헬기가 떴다
는 것은 사고가 난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지난 달 영봉에 올랐을 때도 바로 앞에 보이는 인수봉에서 헬기가 정지비행을 하면서 부상당한 사람을 들
어 올리는 것을 보았었다.
오늘 들리는 이 헬기소리도 멀리서 들려오는 것을 보니까 만경봉이나 인수봉쪽에서 사고나 났나보다 생각
을하며 큰 부상이 아니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는데 기어이 한 명이 죽었다고 한다.
국립공원의 입장료가 폐지되면서 산을 찾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고 각종사고가 더 빈번히 일어난다고 하는데
그 일을 맡아서 하는 분들이 소방서 사람들이다.
모임의 사람이 도봉소방서 의용소방소 대장이라 불확실한 정보가 아니라 확실한 정보다. 용암문과 위문사
이에서 사고라고 하니까 그 사이라면 바로 만경봉이 있는 곳이 아닌가.
아마 만경봉을 리찌하다가 실족사한 것이 아닌가 추측을 해보는데 삼각산에서 만경봉이 제일 위험하고 사
고가 가장 많이 나며, 그 다음은 염초봉이라고 한다.
리찌를 하는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짜릿하고 성취감에서 하겠지만 당하는 사람은 불운하고 그런 소식을 들
어야 하는 산군들의 마음은 다 같이 아프리라.
아까 문수봉에서 리찌하는 사람들도 아차 실수하면 큰 부상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아래가 전부 바위인데다
오르는 구간의 길이도 상당히 길고 경사도가 심한 지역이다.
추락을 하면 바로 죽음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음 일요일 산행은 말만 꺼내놓고 가보지 못한 수락산을 갈 예정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