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교사인 40대 초반의 그녀는 최근 자존감이 낮아졌다고 하며 코칭을 의뢰했다. 그런데 코칭을 할 때 말을 이어가지 못할 만큼 눈물을 자주 흘렸다. 멈추려고 해도 멈춰지지 않는 눈물로 인해 학교에는 부모님을 간병 한다는 이유로 휴직을 했다고 했다. 코칭이 몇 차례 진행되고 신뢰 관계가 형성되었을 때 그녀는 자신의 결혼 생활과 현재 부부관계에 대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결혼 12년 차인 그녀에게는 10살 된 아들이 하나 있다. 남편은 회계사 일을 성실히 해내며, 성공적으로 잘 꾸려가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들의 결혼 생활은 처음부터 행복하지 않았다. 남편과는 중매로 만난 사이였다. 서로에 대한 첫인상이 나쁘지 않았고, 조건도 마음에 들었기에 빠르게 결정한 결혼이었다. 그런데 남편은 결혼을 결정하기 전 사귀던 여자가 있었다. 그들은 결혼 한 후로도 계속 관계를 이어가는 특별한 사이였다.
그녀는 지난 12년간 성실하게 직장을 다니며, 집안일을 하고, 아이를 키웠다. 잘 해보려고 무던히도 애를 써 보았지만 남편의 외도는 끝이 나지 않았다. 결국 결혼 3년 만에 별거를 결정했고, 이 기간 동안 남편이 정리하고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랐다.
예상대로 남편은 울며 자신의 잘못이라 말하고 함께 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녀는 남편의 모든 것을 다시 믿기로 한다. 그러기를 몇 번 반복하다 아들이 초등학교 입학을 하는 8살에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다시 함께 살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 여전히 끝나지 않고 지속 되는 남편의 외도를 보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막막하기만 했다.
자라는 동안 엄친딸이라는 말이 딱 맞을 정도로 모범생으로 자란 그녀는 우아하고 여성스러운 외모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혼자 아이를 키울 수 있을 정도로 안정된 교사라는 직업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친밀한 관계 속에서 사랑을 주고받고 지지를 받아야 할 남편과의 관계에서 받은 상처는 자기가 드러나는 것을 극도로 통제하며 살아가게 했다.
그러는동안 본래의 자신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사회적 역할인 엄마의 자리와 선생님의 자리를 감당하며 지나왔다. 쿨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견디고 있었지만 그녀의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상처 입은 존재, 한 번도 공감받고 위로받지 못한 존재, 존재 자체를 무시당한 바로 자기 자신이 멈추지 않는 눈물로 이제 더이상 자신을 외면하고 무시한 채 살아가서는 안 된다고 아우성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이 이렇게 된 것에 대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누구보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았다. 좋은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학생 때부터 노력했고,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똑똑한 아들의 탄생이 무엇보다 기뻤고, 남편과 행복한 결혼 생활을 꿈꿨다. 남편의 부모님께도 자랑스런 며느리 였다. 누구에게나 친절했고, 최선을 다하며 성실했다. 누구라도 그녀를 싫어할 이유가 없었고, 그녀도 모든 사람들, 특히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그녀에게 남은 것은 통제가 안 되는 우울한 감정과 무너져버린 관계, 낮은 자존감뿐이었다. 더욱이 그녀를 절망하게 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 남편의 뻔뻔스러움이었다.
그녀의 말은 모두 옳다. 그녀는 좋은 엄마였으며, 아내였다. 그러나 엄친딸로 성장한 그녀는 늘 집단사회가 좋다는 것만 따랐고, 그녀 자신의 마음을 소홀히 여겼다. 어머니로서의 페르조나, 아내로서, 선생님으로서의 페르조나에 자신의 자아를 완전히 일치시키며 살아온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는 결혼 초기 남편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겼을 때 적절한 반응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10년이 넘는 시간을 지나오면서 그녀는 언제나 자신의 역할과 의무, 사회적 통념 등 지켜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는 가치에 따라 살아가면서 정작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고, 돌보는 것은 해 본적이 없었다.
중년을 연구한 심리학자 칼 구스타브 융은 우리 삶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결국 우리 자신이 ‘자기self’에 도달하도록 안내하는 무의식의 초대로 바라보았다. 융의 관점으로 볼 때 그녀의 통제가 어려운 눈물과 우울증은 오랜 시간 그녀를 힘들게 했던 남편과의 관계와 그녀 자신과의 관계를 새롭게 바라보고 보다 온전한 성장을 촉구하는 신호로 볼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 때 신이 인간의 삶에 감춰 놓은 역설의 축복을 발견할 수 있는 지혜의 눈이 뜨인다.
"우울이나 고통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축복이다"
우리들 각자의 삶에 찾아온 고통과 고난은 보다 온전한 모습, 전체정신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내면 깊은 곳은 ‘자기’의 외침이다. 그것을 인식할 때 아무리 지독한 현실의 고통일지라도
타인과 세상을 향하던 비난과 분노와 억울함이 멈춘다. 그리고 자신의 깊은 내면과 만나기 시작한다.
융 심리학에 따르면 우리의 무의식은 개인으로 하여금 자신이 속해 있는 외부세계에 대한 경직되고 일방적인 페르조나와 그에 고착된 삶으로부터 나와 내적 세계와의 균형을 이루며 진정한 자신으로 살아가게 돕는다. 그래서 전체정신으로부터 멀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녀에게 우울이 찾아온 것이다. 즉 무의식은 자아가 무의식을 경시하고, 그것과의 대면을 피할 때, 자아로 하여금 그것을 보지 않을 수 없도록 자극함으로써 무의식의 경향을 의식화할 수 있는 '기회'를 자아에게 준다.
서로 사랑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배우자는 물론 자녀와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시련과 고통, 갈등과 절망, 상실의 아픔을 겪게 하는 외도는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러나 오늘날 외도는 너무나 흔한 일이 되었다. 외도 배우자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코칭 하는 여정은 모든 심리 코칭의 과정을 총망라한 과정이다. 그만큼 큰 고통을 겪고 있다고 보면 된다.
코칭 과정에서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밖으로 향하던 비난을 멈추고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기 시작할 때이다. 융은 말한다, 아픔과 고통이야말로 자기성찰의 귀중한 기회이며, 성숙에는 의미 있는 고통이 따른다고, 그런 의미에서 인생 중반에 찾아오는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은 자신을 돌아보고 보다 성숙할 기회를 제공 받은 ‘선택된 사람‘이다. 그러나 이런 행운도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야‘라며 투덜거림과 비난을 멈추지 않고, 내면의 소리는 외면해 버리고 덮어버리는 사람에게는 이내 사라져 버린다.
마지막으로 당부를 하나 하자면, 외도 배우자로 인한 심리적 혼란과 고통 상태일 때 성급하게 이혼을 결정 해서는 안된다. 삶이 가져다준 고통을 보다 온전한 새로운 삶으로 들어가는 문이라 생각하자. 자기를 돌보고, 깊이 돌아보는 시간을 갖음으로써 성숙한 인간이 죽는 날까지 추구해야 할 전체성을 회복하고, 비로소 ’자기‘와 만날 수 있는 기회로 삼길 권한다.
더 나은 삶을 위한 코칭 TIP
1.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상대에 대한 비난을 멈추고 자신의 내면에 귀 기울인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느껴보고 들어준다.)
2. 지금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 일이 나에게 이야기 하는 것은 무엇인가?
3. 이 일을 통해 나는 무엇을 배울 수 있나?
4. 문제가 단숨에 해결된다면, 나는 어떤 상태가 되기를 바라나?
5. 내가 ’선택된 사람‘이라면 나는 이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을 어떻게 이 세계에 돌려줄 수 있나?
*글에 소개한 코칭 사례는 실제 코칭 사례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진실한 한 사람의 이야기가 땅에 떨어져 많은 생명을 살리고 회복케 하는 선한 영향력으로 전해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