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가 예술적인 방면에 심혈을 기울이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보다 뭔가 엉뚱한 면이 있는가하면 보통사람들이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평범한 생활보다 조금은 특이한 생활을 하는 것을 종종 보며 그들이 우리에게 비춰지는 생활상은 그렇게 화려하거나 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별로 많지가 않다
우리나라에도 내 노라 하는 화가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으며 또 해마다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개성과 독창성을 가지고 배출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작고하신 고암 이응로 화백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그는 우리나라는 물론이요 세계적으로 평가받을 만한 작품을 남겼으며 올해는 화백의 탄생100주년이 되는 해라해서 고향인 홍성이나 대전에서는 그의 작품을 위한 전시관을 만들고 있지만 그의 생애 역시 질곡과 고통으로 점철되어 있으며 가정생활에서는 조강지처를 버리는 안타까운 화가이다
그가 태어난 곳은 1904년 충남홍성군 홍북면 중계리라는 농촌마을에서 5남1녀 중 넷째로 태어나 홍성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6세에 결혼19세 때부터 그림에 손을 대기 시작하여 화가로서의 일생을 바쳐 현대 미술사에 걸출한 화가요 국제적으로도 인정받는 화가가 되었다 그는 1957년 자신의 예술 무대를 독일을 거쳐 프랑스 빠리로 향할 때 본 부인이 아닌 45세나 연하인 이화여대 제자인 박인경 여사를 동행하여 그렇게도 지극 정성이던 본 부인을 버린다
지난날1968년 동백림 공작단 사건으로 중앙 정보부에 납치된 후 대전교도소에 1년 반 동안 옥살이를 할 때 헌신적인 옥바라지를 하던 본 부인을 버리고 미모의 젊은 제자에게로 빠져버린다 올해로 고암 선생의 탄생100주년이라고 그의 작품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관리해야된다는 것이 학계 미술계의 관심사가 되어가고 있다
고암의 본 부인은 현재충남에 있는 수덕사 입구에 수덕여관을 하고 있으며 아직은 생존해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들리는 소문에는 그 본 부인이 얼마나 성품이 고운지 지금도 작고한 남편에 대하여 원망하거나 섭섭함이 없이 묵묵하게 수절하고 있다 한다
현재 프랑스에 거주하는 둘째 부인 박인경 여사는 어떠한 마음의 소유자인지 모르나 같은 여자입장으로서 어떻게 남에 유부남을 그것도 나이차이가 45세나 차이가 나는데 야멸차게 빼앗아 갔는데도 그의 이러한 인간적인 내면은 뒤로하고 대성한 화가로서의 이미지가 크로즈업 되는 것은 그의 작품성이 뛰어나기에 숨겨져 있는지는 모른다
불과 몇 년 전 작고한 화가로서 이름석자만 대도 누구나 잘 아는 그분도 딸과 같은 여인과 일생을 살아갔지만 젊고 아름다운 여인들이 왜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들에게 매력을 느끼는지 우리는 모른다 다만 그것은 그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나 그림을 보는 혜안이 부족해서인지는 모르나 대개가 예술을 흠모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우리네와는 무엇인가 틀리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