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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불교인드라망 원문보기 글쓴이: 대각수(94)
◇ 發 願 文 ◇
南無佛, 南無法, 南無僧
우주(宇宙)에 충만(充滿)하사 아니 계신 곳 없으시고, 만유(萬有)에 평등(平等)하사
두루살펴 주옵시는 제불보살(諸佛菩薩)님이시여!
아름다운 절수행(修行) 원각회(圓覺會) 회원(會員) 일동(一同)은 간절(懇切)한 마음으로
기도(祈禱)올리오니,
아기 예수 탄생(誕生)을 축하(祝賀)하며 146기(期) 6관음(觀音) 법계(法界) 시드니
최종봉 도반(道伴)님 등 세상(世上) 모든 아픈 분들의 쾌유(快癒)와 종교(宗敎)간 화합
(和合)과 남북(南北)간 화해(和解)와 2011년도 신입생(新入生) 만 명 포교
원만성취(圓滿成就) 및 이 세상(世上)에 전쟁(戰爭) 없기를 간절(懇切)히 발원(發源)
하오니 굽어살펴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부처님 혜명(慧命)을 높이 받들어 항상(恒常) 나보다 사회(社會)를 위하여
봉사(奉仕)하는 불자(佛子)로 세세생생(世世生生) 보살도(菩薩道) 행하기를 부처님
전(前)에 서원(誓願)하오니 자비광명(慈悲光明)으로 인도(引導)하여 주십시오.
南無 釋迦牟尼佛
南無 釋迦牟尼佛
南無 是我 本師 釋迦牟尼佛
아기 예수 탄생을 축하하는 12월 25일 성탄절에
우리절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에서는 우리절 아름다운 절수행 단체인 원각회 주관으로
종교간 화합과 남북간 화해, 2011년도 신입생 만 명 원만성취를 기원하는 대관음사 1080배
절수행이 있었다.
올들어 가장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절수행에 동참하는 신도님들로 옥불보전 법당은 뜨거운
열기가 가득하였고 사시예불이 끝난 11시부터 동대문 도량 주지이신 대륜스님 집전으로
백팔찬탄문을 큰소리로 봉독하며 1080배 절수행의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첫 108배 절수행 후 대륜스님 간단한 말씀 중에서>>
여러분 지금 바르게 정진하고 계시죠? 이 부처님 누구입니까?
지금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그런데 보통 부처님을 딴 곳에서 찾죠?
찾을 수 있습니까? 없어요. 승가에서는 그것을 토끼 토각 토끼 뿔이라 그래요.
구모(龜毛) 거북이 털이라 그러죠.
지금 바르게 정진하고 있는 여러분 자신이 바로 불성이고 그것이 부처입니다. 그죠?
그런데 그것을 자꾸 영험 있는 어딘가에 가서 찾으려고 그래요.
그것을 산에서 산을 찾는다 그럽니다.
이러한 도량에서 인연 맺고 살면서 자기의 바른 정진 부처님을 찾으면 그대로 가면
될 텐데 무엇이 영험 있는 것이 없는가? 거기가면 무엇이 있다 무슨 기도가 있다
그러면 그리로 우르르 갔다가 저리로 우르르 갔다가 그 부처는 부처가 아닙니다.
우리 금강경에도
약이색견아(若以色見我) 이음성구아(以音聲求我) 시인행사도(是人行邪道)
불능견여래(不能見如來)라 그랬죠.
무엇이 영험스러운 것이 있다면서 무엇이 신비스러운 것이 있다면서 그렇게 우르르
찾아다니는 것은 아무런 영험이 없는 거요.
바른 정진 부처님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그런데 이게 내일 되면 어떻게 된다? 마음이 없어지더라 그죠?
오늘 이렇게 하면서 내일 되면 안하게 되더라.
그러면 밑에 보십시오.
한결같으신 부처님...
맞습니까? 아닙니까? 아니죠? 여러분들은 한결같으신 부처님 못 되죠?
그러면 바로 중생으로 돌아간 거요.
어제까지 바른 정진의 부처님이 오늘은 왔다 갔다 하는 중생의 부처님이 된 거지.
그 부처가 그 부처더라.
그러면 부처님께 뭐 해야 돼요? 죄송합니다. 참회해야지..
오늘은 찬탄의 기도를 올리지만 내일은 중생 속심으로 돌아가는 내 자신을 부끄러워
할 줄 알아야 된다.
그거 누가 합니까? 내가..
참회케 하시는 부처님..
모든 것은 나입니다. 중생이 바로 부처가 되는데 한결같지 않는 그 부처는 중생입니다.
한결같은 그 마음은 부처죠.
누가 자기 자신에 의해서 그것을 성찰하는 오늘 시간이 되어야 돼요.
단순하게 절을 몇 배 하느냐? 이런 문제가 아닙니다.
이 내용을 잘 하나하나 음미하시면서 기도를 정성껏 하면 지극한 마음이 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어요.
지극한 마음을 진지하게 하시고 또 부처님 한분 한분의 명호를 가슴속에 담는 그런
시간으로 이어가시기 바랍니다.◈
처음 시작을 알리는 종성과 108배를 집전해 주셨던 대륜스님께서는 다른 일정으로
잠시 자리를 비우셨고
다음은 원각회 팀장이신 법공님 집전으로 1080배 절수행은 계속되었다.
절수행 540배 절반을 마무리 할 즈음 대륜스님께서 예정된 법문을 하시기 위해
옥불보전 법당에 오셨다.
<동대문 도량 주지이신 대륜스님 말씀>
오늘 별천지 온 것 같아요.
뉴욕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지금 이렇게 기도하시는 이것이 여러분들을 위하는 기도도 되지만 인드라망이나
이런 매체를 통해서 전 세계의 불자들이 들어와 보면 정말 우리 불교에 대한 환희심,
자부심을 느끼게 되거든요.
그들에게 힘을 주게 돼요.
지금 우리절에서 하는 이런 것들이 불교적으로 혼란을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굉장한
활력을 줄 수가 있습니다.
사실 지금 많이 당하잖아요.
전에는 우리 불교는 항상 뭐라 해요? 대응을 안했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
제가 수업할 때 그런 애길 많이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좀 바꿔야 할 거 같애요.
이제는 우리 불자들이 단결해서 힘을 좀 내어서 전체를 좀 바꿔 주셔야 되고
여러분들이 한 오늘 이 절이 개인적으로 수행을 정장시키는 힘도 되지만 전 세계에
우리 불교의 힘을 알리는 큰 동기가 될 것이다. 인(因)이 되겠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뉴욕 도량에 척박한 그런 상황에 있는 신도들이 오늘 아마 여러분들의 이
모습을 보고 더욱더 분발하려는 의지 그런 신심을 키우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해서
개인적으로 굉장히 지금 너무나 고맙고 감사한 저 한분 한분의 부처님께 제가 진짜
진심으로 예를 올립니다. 여러분이 부처님이시니까..
우리가 절 집안에서 수행을 한다 그러잖아요 수행..
불교가 뭐냐 하면 완전히 깨달은 자가 깨닫지 못한 자에게 자기가 깨달은 것을 일러
주는 겁니다.
그렇게 깨달아 가는 과정을 수행이라 그래요.
거기에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어요.
무유정법(無有定法)이라 그러잖아요.
일정하게 이렇게 해야 된다는 거는 없습니다. 자기 근기에 맞게 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가장 기본은 절입니다. 절..
옛날에 나도 많이 했으니까 이제는 참선 수행을 한다. 이런 논리는 아닙니다.
마음이 부처라지만 이렇게 왔다 갔다 하는 마음은 부처 아닙니다. 실지로..
이 부처님께 기도하고 있는 자기 자신이 지금 얼마나 부처의 짓을 하고 있는지를
돌이켜보는 이런 절 수행은 정말로 너무나 괜찮죠.
여러분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하셨죠.
제가 이거 수업하고 할 때는 이 얘기를 한번 씩 예를 들어서 꼭 들려 드리는데 오늘
내가 지금껏 540배 하면서 나는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했다 손들어보세요.
지극한 마음으로 절하는 것이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다 그죠.
지극한 마음으로 했다 손들어 보십시오. 했어요?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가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예(禮)를 올리는 거죠.
정말 지극한 마음으로....진짜입니까? 미안하지만 아니에요.
저도 출가하기 전에 대불회에 예불문 이런 거 학생들을 가르쳤거든요.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할 때 지심(至心)은 지극한 마음으로 모든 목숨 받쳐 귀명(歸命)
모든 목숨 받쳐서 의지하는 귀의하는 그런 절이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다 이렇게
언어적으로 얘기를 했다 말이에요.
그러면 전부 다 그렇게 알고 부처님께 절할 때 아까처럼 지심귀명례 행복주시는
부처님하면 좀 지극한 것 같애.
액션(Action)이 슬로우(Slow)라서 지극한 게 아닙니다.
본인도 지극하게 하겠죠.
그런데 저도 그렇게 절을 하면서 저는 부처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절을 한다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그것이 아니더라 이 말입니다.
저도 출가하고 알았어요. 그 말뜻을 알았어요. 알았다 해도 그건 말이 안 되지요..
앞에 찬탄하고 참회가 있고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가 있는데 그게 여기 말에
다 있습니다.
뭐냐 하면 저도 속인으로 이제 여러분과 같이 재가자로 살다가 부처님의 시절 인연이
되었는지 출가를 했어요.
관음사에서 출가를 했지요. 하고 머리를 깎았습니다.
삭발하고 행자를 하죠. 그래서 절에 왔는데 행자 때는 정신없이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주어진 것만 했어요. 그리고 계(戒)를 받았죠.
승복을 입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거요.
절 집안에 왔으니까 이제 출가(出家)잖아요. 이제 세간적인 건 떠났죠.
세속의 집을 떠났으니 절에 살았는데 한 3년쯤 되었나요.
구정 다음날 방에 있는데 아침 한 7시 30분에 전화가 왔어요.
속가의 어머니 보살이 오셨다 그래요.
가만 생각해보니 저에게도 어머니가 계신 거요. 여러분 어머니 없는 사람 있습니까?
있죠?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집에 아버지 보살도 계신 거예요.
또 가만히 생각해 보니 형님 보살 형수 보살 조카 보살 사촌 보살..다 여기 동시대에
같이 살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나는 출가해 가지고 까맣게 잊었어요.
형제간이나 사촌은 몰라도 부모는 천륜이잖아요.
그런데 출가했다는 이름으로 그들과 단절하고 완전히 머리에서 지우고 있었던 거예요.
생각이 없었어. 그런데 어머니 보살이 계시잖아요.
저는 정신없이 그렇게 부처님 법 좋다고 살고 있었는데 당신은 그렇지 않았다는 거죠.
자식이 스님이 됐다고 갔는데 당신도 독실한 불교 신자이십니다.
갓바위를 겨울에도 목욕재계하고 다니시는 분인데 얼마나 생각을 많이 했겠어요.
그러다가 자식이 보고 싶으니까 도저히 안 되니까 결국은 온 거예요.
그런데 이 자식이라는 사람은 출가했다는 이유로 잊고 살은 거예요.
기다리시는 종무소까지 가는데 참 희한하더라구요.
우리가 명절이 되면 어릴 때는 부모님께 세뱃돈 받고 어른이 되고 사회인이 되었을 때는
우리가 벌어서 용돈도 드리고 하잖아요.
그렇게 세뱃돈 늘 드렸잖아요.
그런데 출가하고 나니 그런 게 없을 거 아닙니까. 막 필름처럼 지나가는 거요.
말로도 못하겠고 감정을.. 여러분이 한번 상상을 해 보십시오.
종무소 가니까 어머니 보살이 계시는 거예요. 자식이 이래 들어가니까 자식이기 전에
스님이 오잖아요. 워낙 신심이 있는 분이니까 아이구 스님 하면서 벌떡 일어나서 저에게
삼배 받으라 하시는 거예요.
어제까지 절을 드렸던 어머니 보살이 저한데 스님이라고 ‘스님 절 받으세요’ 하시는데
제가 어떻게 절을 받아요.
그래서 어머니 보살께 그러지 마시라고 제가 붙잡았어요. 그리고는 제가
‘스님한테 절 좀 받으시소’
‘안됩니다’
‘안 되는 거 없습니다. 절 받으십시오’
그 어머니 보살 앉혀놓고 제가 승복을 입고 삼배를 올렸습니다.
절을 올리는데 그렇게 미안할 수가 없었어요.
어머니한테 너무 미안하고 죄송해서 그리고 너무 고마워서 죽을힘을 다해서 삼배를
올렸어요. 그것뿐이에요.
찬탄과 참회,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에 다 있습니다.
거기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해요.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는 부처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예(禮)올리는 것이다.
정말 그렇게 절을 해 보셨어요? 안 해요.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했습니까? 다시 물으면 여러분이 ‘예’ 하겠습니까?
그거 아닙니다.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이 뭔가?
제가 드리고자 하는 말씀 아시죠?
불교는 체험의 종교입니다.
정말로 부처님께 내 온 몸과 마음을 받쳐서 나와 부처가 하나 되는 그런 것들..
큰스님께서 아마 법문에 선관쌍수(禪觀雙修) 그 법문을 미국에서 많이 전하고 계십니다.
불이득력(不二得力)과 관불삼매(觀佛三昧) 오온법신(五蘊法身) 선관쌍수(禪觀雙修)라는
불이득력(不二得力)이나 오온법신(五蘊法身) 선관쌍수(禪觀雙修)가 다 이런 말속에
연결되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언어로서 잡다하게 많이 알아봐야 실질적으로 생활에 도움은 안 돼.
자기 체험이 분명하게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불성과 내가 하나 되어버리는 거죠.
그 자리가 부처 자리입니다.
거기에는 부처도 없고 나도 없습니다.
내가 중생이고 내가 부처 심불급중생 시삼무차별 (心佛及衆生 是三無差別)이라 그래서
그 부처가 내고 내가 그 부처입니다.
그런데 그게 완전하지 않잖아요.
어느 날은 되고 어느 날은 또 안 되거든요.
안되니까 또 나를 채찍 하고 스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출가하니까 스님이 절에 왔다고 먹물 옷 입었다고 제가 완전 하겠습니까?
완전해지기 위해서 그 길을 끊임없이 가는 게 수행이잖아요.
속심이 좀 일어날 때는 속인 짓도 하다가 또 부처님 전에 죄송하면 부처님 죄송합니다
하고 절하면서 나를 바르게 하고 내일 되어서 또 톡심이 일어나서 또 가다가 또
그렇게 하고 그렇게 가는 게 수행자입니다.
특히 도심 포교당에 계신 스님들은 대중들에게 바로 다 보이잖아요.
어떤 분들은 그 스님이 어떻더라 하면서 전화하는 사람도 있어요.
이 먹물 옷 입고 있는 게 뭔 죄입니까?
힘들어서 스님들 다 도망가 버리면 절은 누가 지키나요?
모든 것은 수행하고 계신 과정이고 그 스님을 우리가 외호해 드려야 되겠다고 했을 때
그 스님도 부끄러우면 또 참회하고 또 정진하면서 그렇게 또 큰 나무가 되어 갑니다.
스님들 비방하고 불교가 이러면 되니 안 되니 그러겠습니까?
그런 거 아니거든요.
불교TV에서 대관음사 1080배 절수행 취재중~
저도 지금 여러분이 보시기에 부족한 점이 참 많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내일 모레 내년도 후내년도 끊임없이 내 스스로를 그렇게 살피면서 가려 합니다.
그 살필 줄 아는 것이 불성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을 내가 완전히 통제하고 제어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늘도 이 하루를
부처님 전에 기도하고 살거든요.
불기자심(不欺自心)이라 그래서 자기 부끄러운 거 스스로 잘 안다는 겁니다.
중으로서 잘못 살면 저녁에 가만히 누워있으면 굉장히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그래서 내일 되면 더 잘 하려고 하니까
그렇게 봐 주면서 우리가 스님을 외호해주고 그럴 수 있다는 전제와 출가해서 사는 게
얼마나 힘들까 그렇게 해줬을 때 스님들이 더욱더 열심히 할 수 있는 겁니다.
스님이 어떻다고 막 말을 해버리면 스님들도 아직은 완전하지 않은 인격체이고 완전하기
위해서 가는 길이 수행인데 처음부터 완전한 걸 요구하면 되겠습니까?
그건 아니잖아요. 물론 가장 근본은 스님들이 잘 해야 되지요.
그런데 속인에서 승가가 되고 승가가 다시 완전한 부처님 길을 가는 그 과정이 수행이고
그건 재가도 마찬가지이다 이 말이죠.
내가 지금 이 자체가 부처가 맞아요. 그런데 안 되잖아요.
불성이란 게 모든 이에게 이익을 줘야 되는데 내가 스스로 이해관계에 의해서 불선(不善)
하기도 하고 해를 끼치기도 하며 지금 살고 있거든요.
그렇게 늘 살피는 게 수행입니다.
아까 제가 오망치 저거 다섯 번을 치잖아요.
다섯 번 치는 데 우리는 오망치라 그래요.
종을 예불 볼 때 보통 다섯 번 치고 저녁 예불도 오분향례(五分香禮)라 그러지요.
오분법신향(五分法身香) .. 계향 (戒香) 정향(定香) 혜향(慧香) 혜탈향解脫香
혜탈지견향(解脫知見香)입니다.
저녁에는 계향 정향 혜향... 이렇게 예불 올리는 거 아닙니까.
우리는 어떻게 해요? 멍하니 가만히 있는게 아닙니다.
물론 어려운 얘기는 어렵지만 쉽게 우리가 생활 속에서 배려해보면 그런 것들의 의미가
계향 (戒香)할 때 계가 뭐냐 하면 너무 어렵게 갈 거 없이 내 스스로 살피는 거 내가
일주일 아니면 오늘 하루 예불을 볼 때 과연 그릇됨이 없었는가? 무비..
부처님 계율에 내가 하루 살아가는 내 삶이 그릇됨이 없는가? 살피는 것을 계향 할 때
자기를 살필 수가 있어야 돼요. 그릇됨이 없는 거..
오늘 하루를 살면서 일주일을 살아오면서 한 달을 살면서 일 년을 살면서 그릇됨이 없이
살피는 것 계향은 이제 피워 놓고 내 삶을 관조하는 거 그릇됨이 없는가? 무슨 기준으로?
부처님 법에 의해서..자기 기준으로 하면 자기 합리화가 되기 때문에 그건 아니에요.
불교에 계율이 있어요.
그 계율에 의해서 내가 그릇되게 가지 않는가 하고 살피는 것이 계향을 우리가 들을 때
생각해야 되는 마인드(Mind)라.
정향(定香)은 뭐예요?
고요함이죠.
내 의식이 순간동안 산란하지 않는가?
생각 많이 하잖아요. 아까 절하면서도 아이고 죽겠다 집에 가버릴까?
오늘 교회 가면 빵 주는데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한다면 그게 산란한 것이거든요.
그것도 가다가 징글벨 소리 나고 하면 집에 가다가 트리를 얼마짜리 살까?
이런 생각도 산란한 거예요.
연말에 세금도 내야되고 얼켜버리면 잠도 안 오고 그렇거든요.
내 순간순간 생각이 들떠고 산란하지 않는가? 살피는 것이 정의향이다.
그걸 무란(無亂)이라 그래요. 어지럽지 않은가 살피는 거...그냥 가만히 있는 게 아니고
그 순간에 자기를 살피는 거..순간순간 일상생활이 다 예불이 되겠죠.
혜향(慧香)은 지혜의 향..혜향이라 그래요.
지혜라는 것이 뭐 겠습니까?
무치(無痴)..무치..어리석지 않은 거..어리석은 게 영어 단어 모르는 게 어리석은 겁니까?
반야심경 못 외우는 게 어리석은 겁니까? 천만의 말씀 그런 건 어리석은 게 아닙니다.
어리석은 건 뭐예요? 무치(無痴)가 뭐예요? 인과법을 아는 거..
콩을 심으면 콩을 땁니다. 팥을 심으면 팥을 따요.
콩을 안 심고 콩을 얻는 건 남이 주거나 내가 도둑질 해 오는 수밖에 없어요.
딱 두 가지 뿐입니다.
콩을 남이 나한테데 안 주면 어떻게 돼요? 필요하면 내가 도둑질해야 돼.
그러면 그 결과가 어떨까요? 남이 주는 거 받으면 빚이 되고 남의 것을 훔치면 그거는
죄가 됩니다.
빚도 갚아야 되고 죄도 내가 받아야 돼요. 그 과보를...벌을 받아야 되잖아요.
그거 괴로워요 안 괴로워요? 괴로워요.
그러면 그 짓 안 해야지..안 할라하면 어떻게 해야 돼요?
콩 심어야지 내가..심어서 거둬가지고 더 많은 사람들한테 나눠주면 나는 더 좋지..
안 그러면 내거라도 내가 거둬야지.
그게 인과입니다. 철저하게 내가 지어서 내가 거둬야 되는데 아니면 남에게 나눠줘야
되는데 나는 안 하면서 어떻게 합니까?
남의 것을 훔치거나 남이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게 작금의 복이라는 끈으로 기억이
된 거라.
그런 거 없잖아요. 주면 고마울 수는 있죠. 받으면..
그런데 그거는 빚이란 말이요. 빚은 반드시 갚아야 돼요.
우리는 어떡해요? 내가 지을 생각은 안 하고 자꾸 부처님인데 와가지고 콩 달라 그래요.
부처님 자주 주기는 주겠지만 버릇없는 사람한테 자꾸 주면 어떻게 됩니까?
아무것도 못합니다.
그래서 어떤때는 자성을 깨달아서 네가 콩을 심어라고 안줍니다.
그러면 근기 있는 사람은 어떻게 돼요? 아! 심어야 되겠구나.
그런데 어떻게 해요? 여기는 콩 안 주네. 저기 가면 콩 준단다. 가자..우루루 갑니다.
그러면 다음 생엔 뭐가 되겠어요? 거지 됩니다. 그것도 아주 상거지가요.
지혜가 있는 사람은 인과를 알기 때문에 오늘 하루 어떻게 살지를 알아요.
열심히 살죠. 그러면서 콩을 심어면서 살죠.
그러면서 콩을 거둬들여서 남도 나누어 주면서 살죠.
그냥 나누어 주기 전에 콩을 심어면 네가 다 거둬들이고 빚지지 말라는 것을 알려주는
게 교거든요.
그들에게 그걸 알려주죠.
이러한 계향 (戒香) 무치(無痴) 무란(無亂) 이런 것들을 알았을 때 무비 이런 것들을
알았을 때 어떻게 되요? 내가 삶이 자유로워지잖아요.
내가 왜 지금 오늘 이렇게 살고 있는가?
이해를 하게 되잖아요. 내 업이란 것이 왜 이렇게 형성되어있는가?
자작자수(自作自受)구나. 이해를 하게 되잖아. 그러면 어떻게 되요?
남 원망 안하고 부모 원망 안하고 사주팔자 따지지 않습니다. 조상 무덤 안 따지죠.
자유로워 지더라. 해탈..아! 전생의 빚이 지금 와서 내가 잘못 살은 것이 내 환경을
이렇게 만들었구나.
그러면 지금부터 노력해서 내 환경을 개선해야 되겠지요. 누구 원망 할게 없지요.
자유롭고 그게 해탈입니다. 대자유 부처님 아까 했지요?
그렇게 살면 돈이야 저사람 백만 원 벌고 나는 십만 원 벌고 저 사람은 차타고 다니고
나는 자전거 타고 다녀도 그것들은 그들의 인연이다 이 말입니다.
뱁새는 뱁새대로 태어났고 황새는 황새대로 태어났지 뱁새가 황새를 부러워할 이유가
0.1%도 없는 거예요.
황새는 황새대로 사는 거예요. 뱁새는 뱁새대로 사는 거예요. 그게 다예요.
그게 해탈이요.
그걸 아는 사람이 그러면 지금 뱁새라서 황새를 부러워하는 저 사람에게 뱁새의 삶이
얼마나 지중하고 자기 인연이 뱁새로 살 수 밖에 없는 인연을 알면 그들에게 그걸
전해줘야 되겠지요.
그게 해탈지견입니다. 그게 결국 포교야 포교..
내가 잘 살려고 하는 게 아니다. 그들에게 정말로 돈 주는 게 아니고 돈 주는 것도
물론 귀중하지만 콩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콩을 네가 심어서 네가 따 먹어라.
더 나아가서 그 콩 딴것을 남들을 위해서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라.
제가 미국에 있으면서 특강 때 할 거지만 불교인드라망에 보신 분 있을 거요.
뉴욕 도량 들어가면서..
가서 제일 먼저 법당을 만들면서 BUD ZEN CENTER 한국불교대학 뉴욕도량이라고
현판을 딱 붙이니까 붙이는 다음 날 부부가 들어 와 가지고 어떻게 오셨나 그러니까
동네에 사는데 저 간판 떼라는 거예요.
여기는 기독교 나라니까 떼라는 겁니다. 관에서 나와서 법으로 떼라하면 떼고 벌금을
내든지 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길 가다가 기분 나쁘다고 떼라는 거지요.
우리가 만약 교회 간판 보면 기분 나쁘겠습니까?
그냥 교회다 하잖아요. 그 마음이..
그런데 괜히 불교 대관음사라고 딱 붙으니까 내가 불편한가 봐요.
그게 입이나 뗍니까? 길을 막습니까? 벽에 붙어있고 남의 집에 붙어있는 건데..
그런데 불편하다고 들어와서 다짜고짜 떼라는 거요.
그게 어리석은 중생의 속심 아닙니까.
그런 사람들이 세상을 다 뒤집어서 이 세상에 있다면 우리가 제대로 살 수 있겠습니까?
같이 살겠습니까?
그런 거는 사랑 아닙니다. 사랑 사랑 자꾸 이야기 하는데 그건 아니에요.
우리는 자비(慈悲)잖아요. 자(慈)..불교의 자(慈)는 애(愛)하고 틀립니다. 그죠?
교회가 붙어있던 이슬람이 붙어있던 남묘호렌게교가 붙어있던 그 시절 인연에 따라서
우리가 인정을 하잖아요.
그게 불교 아닙니까. 이러한 사람들이 많아지는 게 좋습니까?
불교는 무조건 현판을 떼야 되는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는 게 좋겠습니까?
그건 아니지요.
그러한 사람들에게 이러한 법을 걸림 없는 법을 전해주는 것이 이 시대 우리의 소명이라.
그러려면 내가 수행을 해서 정말로 해탈의 계정혜(戒定慧 )삼학을 통한 해탈이 이루어
지고 그것을 일깨워주는 포교가 당연히 안 될 수가 없지요.
그러한 사유가 없는 사람들은 입으로 맨 날 책만 보고 앉아있는 그런 사람들에게는 그저
언어일 뿐입니다.
실질적으로 행이 안돼요.
저희들이 포교 포교하니까 포교 그거 그냥 절 키우기지..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그런 거 아니에요.
절 키우면 골치 아파요. 스님들 힘만 들어요.
(대승회에서 준비해 준 점심공양 갱시기죽)
그러나 뉴욕 도량에 작지만 절을 만들어 놓으니까 거기에 오는 사람들은 눈물을 흘려요.
감격을 해 가지고요. 여기 지금 절하면서 눈물 흘리는 사람 잘 있습니까?
감격해 가지고..이렇게 좋게 크게 해 놔도 불평불만 말하는 분 많지요.
미국에 멕시코에 캐나다에 정말로 우리가 열심히 살아서 그렇게 만들었고 만나지는 못해도
그 사람들은 너무나 감사할 거 아닙니까.
전 세계가 그렇게 불국토가 되는 거지요.
우리가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그 갇혀있는 사람들을 자꾸 마음을 열어 줘야지..
저 보고 자꾸 마구니,사탄 이러는 거요..이렇게 잘나고 착한 사탄 봤습니까?(웃음~)
저는 예수 믿는 것도 좋아가지고 축하합니다.. 그러는데 저 보고 왜 자꾸 욕을 하고
나쁜 사람 만드는지 모르겠어요.
그게 전도몽상(顚倒夢想)이고 그런 사람들을 일깨워주는 게 가르침이다 이 말입니다.
그 인격 자체가 그 사람들 불성입니다. 그런데 아직 그걸 모르잖아요.
사람없다 소리말고 우리가 포교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전부 예비 불자들이고 천지 곳곳이 사람입니다.
미국에 90%가 기독교인 나라에서도 신도들 불교대학 열어서 5월10일부터 강의를
했는데 대한민국 사람 전체 수 천만이 살고 있는 이 땅에 한국사람 이렇게 많은 이 거리
이 땅에서 포교를 왜 못해요. 절대 그런 말 하지 말아요.
말이 너무 길어질 거 같고 하여튼 옛날에는 우리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가 절을 하는
것이 물론 다른 기도도 많이 하고 봉사도 많습니다마는 이 절수행이 참 기별로도 활성화
되었었고 정말 절을 많이 했었어요.
우리 기별로 올해 삼천 배 한번 해보자 천 배 해보자 오백 배를 같이 해보자 이런 것들로
법당이 늘 활발해져야 되는데 덩치가 커지면서 뭔가 그런 것들이 약해지고 절하는 것이
일처럼 이렇게 느껴지고 그래서 근기가 자꾸 약해지는 거지요.
우리가 이 원각회가 모태가 되어서 정말 우리가 절을 하고 하심하면서 봉사하는 그런
것들이 활발하게 되었을 때 이 불교대가 사격에 맞는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어떤 기준
점이 되지 않을까 저는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말 끝나면 동대문 도량 주지를 하니까 동대문 도량 주지가 동대문엔 없고
붕어빵에 붕어 없듯이 동대문 도량에 지금 동대문 주지가 없어.
이래가지고 되겠어요(웃음~)..
조금 있다가 KTX타고 올라 가야 되니까 어차피 여러분들도 여러분 기도와 더불어
우리 절을 위한 기도도 하시고 우리절이 더욱 더 발전 할 수 있게 전 세계에 부처님 법을
전할 수 있게 큰스님도 조석으로 매일 그렇게 108배를 하시고 그렇게 하십니다.
그 미국에서도 지금도 한 순간도 그렇게 흐트러지게 안사십니다.
물론 저도 마찬가지구요 우리 대중 스님들도 다 그렇습니다.
그런 긍정적인 마인드(Mind) 감사한 마음 가지시고 정말 우리도량이 내년 신묘년에는
더 발전할 수 있게 여러분들이 그냥 자기 자리에서 정말 열심히 해 주시고 전단지
뿌리자하면 전단지 뿌리고 그 자체가 자기가 부처님 법을 이어서 불자의 본분을 하는
거예요.
절에 일은 딱 두 개입니다.
하는 거 안하는 거.. 어느 것이 좋은지는 알아서 하세요.
건강하시고 공양 드시고 마무리 절 잘 하시기 바랍니다.
대륜스님의 법문에 이어서 우리절 아름다운 절수행단 원각회 진공심 총무님 사회로
1년 동안 원각회 절 수행 하면서 가장 열심히 참석해 주신 분들에 대한 시상식 있었다.
210년 한해동안 매주 토요일 마다 평균7~8명 꾸준히 절수행에 참석한 기수
135기 불광화 기장님
135기의 부부이신 진명 거사님과 심심안 보살님 1년 개근상 수상
신입생 기수 중 관음 단합을 위해서 매주 절수행에 동참한 관음에 대한 시상식
144기 16관음,146기 15관음
특별상- 원각회 준비위원 팀장 91기 묘각님 원각회 홍보대사 다솜이와 무상원님
불교인드라망 카페를 통해서 절수행에 참석한 진주에서 오신 진아님..
1080배 절수행에 가장 많이 참석한 기수에 대한 시상식
1등 146기 고산 기장님, 2등 144기 호기 기장님
동대문 도량 주지스님의 법문과 각종 이벤트 시상식을 끝으로 절 수행 오전 일정이
마무리되고 우리절 무료급식 단체인 대승회에서 준비한 갱시기 죽을 점심공양으로
편안한 속을 달래었다.
특히 오늘 절수행에는 그동안 원각회 절수행에 꾸준히 동참하신 분들을 중심으로
삼천배 절수행하시는 분들이 삼십 여분이나 되었다.
옥불보전 여기저기 걸린 플랭카드가 대변하듯 大관음사 1080배 절수행은 자기 만의
작은 원성취가 아닌 나보다는 남을 생각하고 크게는 세계의 평화와 불국토 건설의 대원을
생각하며 신묘년 새해를 맞이하려는 아름다운 절수행이었다.
아름다운 절수행단 원각회가 우리절의 작은 신행단체에 머무르지 않고
종교간 화합과 남북한 화해, 우리절 2011년 만 명 포교 원만성취의 대원을 기원하며
경인년 한해를 마무리 할 수 있도록 절수행 법석을 마련해준 원각회 법공 팀장님을
비롯한 임원진 여러분께 박수를 보냅니다.()()()
첫댓글 쉽게 법문 잘해주셨습니다 .......... 관세음보살 ()()()
대륜스님 법문 참 좋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