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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김춘강갤러리 원문보기 글쓴이: 春剛(金永善)
계절 (季節) |
절기명 (節氣名) |
양력(陽曆) |
음력 陰曆 |
기후(氣候)의 특징(特徵) | |
봄 春 |
立春(입춘) |
2월 |
4~5일 |
1월 |
겨울의 절정에서 봄이 조금씩 움튼다 |
雨水(우수) |
18~20일 |
얼음이 녹고, 초목이 싹트기 시작한다 | |||
驚蟄(경칩) |
3월 |
5~6일 |
2월 |
겨울잠을 자던 벌레들이 깨어난다 | |
春分(춘분) |
20~22일 |
낮과 밤의 길이가 같고, 봄기운이 무르익는다 | |||
淸明(청명) |
4월 |
4~5일 |
3월 |
하늘은 맑고, 날씨는 따뜻하다 | |
穀雨(곡우) |
20~21일 |
농사를 재촉하는 비가 내린다 | |||
여름夏 |
立夏(입하) |
5월 |
5~6일 |
4월 |
어느새 여름의 문턱에 들어선다 |
小滿(소만) |
20~21일 |
작은 꽃들이 피고, 여름기운이 서서히 감돈다 | |||
芒種(망종) |
6월 |
5~6일 |
5월 |
보리는 익어서 거두고, 모심기를 하게 된다 | |
夏至(하지) |
21~23일 |
낮이 가장 길어지고, 해가 뜨거워 진다 | |||
小暑(소서) |
7월 |
6~8일 |
6월 |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된다 | |
大暑(대서) |
22~23일 |
이윽고 무더위가 최고 절정에 이른다 | |||
가을秋 |
立秋(입추) |
8월 |
7~8일 |
7월 |
더위가 약간 수그러 들면서 가을에 접어든다 |
處暑(처서) |
22~23일 |
아침‧저녁으로 시원해지며 더위가 수그러든다 | |||
白露(백로) |
9월 |
7~8일 |
8월 |
풀잎에 이슬이 맺히며, 가을 기분이 난다 | |
秋分(추분) |
22~24일 |
낮과 밤의 길이가 같으며, 완연한 가을이다 | |||
寒露(한로) |
10월 |
7~9일 |
9월 |
찬 이슬이 맺히고, 날씨가 서늘해 진다 | |
霜降(상강) |
23~24일 |
서리가 내리면서 가을이 깊어간다 | |||
겨울冬 |
立冬(입동) |
11월 |
7~8일 |
10월 |
어느덧 날씨가 추워지며 겨울이 시작된다 |
小雪(소설) |
22~23일 |
눈이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다 | |||
大雪(대설) |
12월 |
6~7일 |
11월 |
큰 눈이 내리며 본격적으로 추워진다 | |
冬至(동지) |
21~23일 |
밤이 가장 길어지며, 겨울의 복판에 든다 | |||
小寒(소한) |
1월 |
5~7일 |
12월 |
한겨울이 닥쳐와 날씨가 몹씨 추워진다 | |
大寒(대한) |
20~21일 |
매섭고 큰 추위가 몰아쳐서 엄동설한이 된다 |
인간이 역을 만드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계절의 변화를 알기 위해서 이다. 특히 농경사회에서는 계절의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즉 농사를 짓기 위하여 씨를 뿌리고 추수를 하기에 가장 좋은 날씨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 하늘에서 태양이 1년을 통하여 지나가는 경로를 황도(the Ecliptic)라고 부른다. 이것은 지구의 공전운동으로 인해 태양의 위치가 상대적으로 하루에 1도(°)씩 천구 상에서 이동하여 생기는 궤도이다. 따라서 실제로는 지구가 공간상에서 움직이는 길이 황도이다. |
음력은 달의 운동에 근거하여 만들어지기 때문에 달의 변화는 잘 나타내 주지만 태양의 움직임은 잘 나타내 주지 않는다. 계절의 변화는 태양의 운동에 의하여 결정되므로 음력 날짜와 계절의 변화는 잘 일치하지 않는다. 이런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음력에서는 계절의 변화, 즉 태양의 운동을 표시하여 주는 24절기(또는 24기)를 도입하여 같이 사용한다. 따라서 음력은 태양의 움직임을 24절기로 표시하여 주기 때문에 태음태양력(우리가 흔히 음력이라 말하는 것은 원래 '태음태양력 太陰太陽曆'의 준말이다 여기서 '陰'은 '달'을 뜻하고 '陽'은 태양을 뜻한다)이라고 한다. 즉 달(태음)과 태양의 운동을 모두 고려하여 주는 역법이란 뜻이다.
24절기는 태양의 운동에 근거한 것으로 춘분점(春分點,태양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향해 적도를 통과하는 점)으로부터 태양이 움직이는 길인 황도를 따라 동쪽으로 15˚ 간격으로 나누어 24점을 정하였을 때, 태양이 각 점을 지나는 시기를 말한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천구상에서 태양의 위치가 황도가 0˚ 일 때 춘분, 15˚ 일 때 청명, ....., 300˚ 일 때 대한으로 한다.
(24 × 15 = 360)
이들 24절기가 계절의 특성을 말해주지만 우리 나라의 기후가 정확하게 들어 맞는 것은 아니다. 24절기의 이름은 중국 주(周)나라 때 화북지방의 기상상태에 맞춰 붙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늘날과 같이 생태계가 엄청나게 달라진 상황에서는 더욱이 들어맞기 어렵다.
절기는 이처럼 음력을 쓰는 농경사회에서 필요에 따라 양력과 관계없이 만들었지만, 태양의 운동을 바탕으로 한 탓에 결과적으로 양력의 날짜와 일치하게 된다. 실제로 달력을 놓고보면 24절기는 양력으로 매월 4∼8일사이와 19∼23일사이에 온다.
절기와 절기 사이는 대부분 15일이며, 경우에 따라 14일이나 16일이 되기도 한다. 이는 지구의 공전 궤도가 타원형이어서 태양을 15도 도는데 걸리는 시간이 똑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절기를 쟀을까?
'농경사회에서는 태양, 별의 움직임을 재는 천문학이 아주 중요해 조선시대에는 혼천의, 간의 등으로 태양의 움직임을 관찰했고 이를 증보문헌비고나 칠정산내ㆍ외편에 기록했다'고 한다.
소한(小寒)
소한은 해가 양력으로 바뀌고 처음 나타나는 절기다. 소한때는 '정초 한파'라 불리는 강추위가 몰려오는 시기이다.
'소한땜'이 아니라도 이때는 전국이 최저기온을 나타낸다. 그래서 "대한이 소한집에 가서 얼어 죽었다."든가 "소한 얼음 대한에 녹는다."고 할 정도로 추웠다.
농가에서는 소한부터 날이 풀리는 입춘 전까지 약 한 달 간 혹한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해야 했다. 눈이 많이 내리는 지방에서는 문밖 출입이 어려우므로 땔감과 먹을 것을 집안에 충분히 비치해야 했다.
논은 지가 품고 있던 벼가 없으니
슬퍼 하늘만 쳐다본다
벼하고 지하고
더 어려운 일도 이겨 내었재
논아 너무 슬퍼하지 마고
내년에 우리
멋지게 살아보자
농촌에서 자란 한 초등학생의 시각을 통해 이 시기의 들녘을 보자. 그것이야말로 논이 가지고 있는 진정성일 것이다.
벼가 없어진 빈 들판에 눈이 내리면 특히, 동짓달과 섣달에 눈이 많이 오면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그래서 "눈은 보리 이불이다.", "사람이 보지 못하는 사이에 눈이 내리면 풍년이 든다.", "함박눈 내리면 풍년 든다."고 반겼다.
눈을 풍년의 징조로 본 것이다. 또 눈은 "첫눈 먹으면 감기에 안 걸린다.", "장사 지낼 때 눈 오면 좋다.", "첫눈에 넘어지면 재수 좋다."며 눈을 상서(祥瑞)롭게 보았다.
겨울 농사의 중요한 몫은 보리 차지다.
보리하면 경상도 특히 경북을 연상한다.
오죽하면 경상도 하면 "보리 문디"라고 까지 했을까?
경상북도의 대다수 농지는 보리재배의 적지이자 논보리 이모작이 가능해 일찍부터 보리재배가 성했던 곳이다. 한시라도 땅을 놀리면 벌받는 줄 알았던 부지런한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들은 보리를 심어 자식들을 부양하고 그것을 팔아 농가의 농사밑천으로 사용하곤 했다.
그런데 겨울에 쌀을 먹고 여름엔 보리를 먹어야 보양(保養)이 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물론 철따라 나는 곡식을 맞추어 먹다 보니 자연 그렇게 되기도 했지만 보다 큰 이유는, 엄동에 쌀밥을 권하는 것은 천지가 음기(陰氣)에 든 겨울에, 따가운 땡볕 속에 영근 쌀에서 양기를 취하여 음양 조화를 지니려는 것이며, 한여름에는 엄동의 눈밭에서 자란 보리의 냉기를 취하여 모자라는 음기를 보강하려는 것이다.
지금은 보리 농사가 줄어 보리밭을 구경하기도 어렵지만 가곡『보리밭』이나 한흑구가 수필에서 예찬했던『보리예찬』은 늦가을부터 봄까지 우리 농촌을 대표하던 정겨운 풍경이었다. 그래서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이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고 했고, '보리밭 로맨스'니 '보리밭에만 가도 취한다'는 등 보리는 우리의 정서를 대변해 왔다.
특이한 것은 가을보리씨를 이듬 해 봄에 심으면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유는 가을보리는 혹독한 겨울을 보낼 준비가 되어 있는데 따뜻한 봄에 파종하니 자신의 성질을 잃어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이다.
가을보리를 봄에 심어 열매 맺게 하려면 '춘화처리'라는 것을 해 주어야 한다. '춘화처리'란 가을보리가 추운 대지에 뿌리내려 겨울을 나듯 보리씨를 추운 곳에 일정기간 보관했다 뿌려야 정상적으로 열매가 맺힌다.
엄동설한을 보내지 않고는 결실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보리처럼 인간의 삶도, 시련의 시절을 보낸 후에야 그 꿈을 열매맺는 것은 아닐런지….
이렇듯 하찮게 보이는 보리도 하나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추운 흙 속에 묻혀 자신을 죽이고 삭이는 인내의 굳은 시련을 겪은 후 비로소 황금물결로 춤추는 보리가 되는 것이다.
대한(大寒)
대한은 24절기의 마지막 절기이다. 소한 추위는 대한에 오면 절정에 달한다.
대한은 일년 중 가장 추운 시기이다.
시베리아 기단의 맹위로 인해 몹시 추운 날이 계속된다. 이때는 또 건조한 날씨로 불이 일어나기 쉽고, 가뭄이 들 때가 많아 보리 등 겨울 농작물에 피해를 끼치며 불이 많이 일어나기도 한다.
과거엔 소한·대한 때는 꿈쩍도 않고 집에만 있었지만 요즘은 비닐하우스일을 비롯한 여러 특용작물 재배로 인해 바쁘기는 매 한가지이다.
대한 때면 눈덮힌 겨울 들판에 황량함만이 남아 있다.
이 죽어 있는 땅에 새싹이 돋아나는 봄이 올 것 같은 희망 따위는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 죽어 자빠진 땅에도 봄은 기어이 오고야 만다. 그 희망을 소설가 김영현은 그의 작품집『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에서 건강한 농사꾼의 눈을 빌려 이렇게 표현하지 않았던가?
"도시에서 온 놈들은 겨울 들판을 보면 모두 죽어 있다고 그럴거야. 하긴 아무것도 눈에 뵈는게 없으니 그렇기도 하겠지. 하지만 농사꾼들은 그걸 죽어 있다고 생각지 않아.
그저 쉬고 있을 뿐이라 여기는 거지.
적당한 햇빛과 온도만 주어지면 그 죽어빠져 있는 듯한 땅에서 온갖 식물들이 함성처럼 솟아 나온다 이 말이네.
그것이 바로 대지에 뿌리박고 사는 민중이라네.
진짜 훌륭한 諍염《窄?농민과 같을거야.
적당한 온도와 햇빛만 주어지면 하늘을 향해 무성히 솟아 나오는 식물들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민중들이구.
일시적으로 죽어 있는 듯이 보이지만 그들은 결코 죽는 법이 없다네."
무릇 농경 사회에서 겨울 석달은 농한기로, 다음 해 농사를 하기 위한 휴식·준비의 시기였다. 그러나 농촌에 휘몰아친 변화의 바람은 결코 농한기로 안주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 농한기를 부지런히 움직인 이가 부와 명예를 얻을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벼농사 중심의 농가는 본격적인 농한기에 해당된다.
기껏해야 보리밭의 월동 거름덮기, 농기구 손질, 겨울 땔감 준비 등이다.
예전엔 가마니 짜기, 새끼 꼬기 등도 빼놓을수 없는 일이 몸부림쳤다.
특히 겨울에는 크게 힘쓸 일도 없고 나무나 한두 짐씩 하는것 말고는 대부분 놀고 먹기에 삼시 세 끼 밥 먹기 죄스러워 겨울 점심 한 끼는 반드시 죽을 먹었다. 이는 쌀을 아끼려는 눈물겨운 노력이자 일하지 않고는 밥을 먹지 않겠다는 투철한 노동정신이 스민 것임을 알수 있다. 또 양식 있는 겨울에 아끼지 않으면 돌아오는 보릿고개에 모두가 굶어 죽게 되니, 있을 때 아끼자는 깨어있음의 청정한 정신이었다
壽와 福
그리고 고대 『설문(說文)』에 의하면 “수(壽)는 오래됨이다.[壽, 久也].”라고 하여 ‘수(壽)’자는 ‘오래됨’, ‘변함없음’ 등을 상징하는 글자이다. 『광운(廣韻)』에서는 “수(壽)는 장수를 의미한다.[壽, 壽考 ]”라고 하였는데, 여기서의 ‘수고(壽考)’는 곧 ‘장수’와 동일한 뜻으로서 ‘오래 삶’을 의미한다. 또한 『서경(書經)』에서는 “오복(五福)의 첫째는 壽이다[五福, 一日壽]”라고 하여 인간의 다섯 가지 타고난 복 가운데서도 수(壽)가 첫 번째 항목이며, 여기서의 수(壽) 또한 ‘오래 삶, 장수’등을 가리킨다. 특히 『정자통(正字通)』”에 의하면 “무릇 금옥과 비단을 남에게 선물하는 것이 이른바 수(壽)이다[凡以金帛贈人日壽 ]”라고 하여 고대로부터 인간은 오래 살기를 기원하면서 술과 제물 등을 선물하였는데, 여기서의 수(壽)는 곧 장수를 기원한다는 차원에서 ‘축수(祝壽)’와 ‘축복(祝福)’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편 ‘복(福)’자는 『설문』에 의하면 ‘福은 돕는 것이다[福, 祐也].”라고 하여 ‘도움’,’행복’등의 ‘보우(保佑)’를 상징한다. 예로부터 장수와 부귀, 건강과 안녕, 상서롭고 원만함을 두루 갖춘 것을 모두 복(福)이라 여겼다. 『시경(詩經)』에서는 “군자가 이르시니 복록(福祿)이 이엉처럼 쌓였다[君子至止, 福祿如茨].”라고 하여 복(福)은 화(禍)와 상반된 의미로, 부귀와 장수 등을 두루 갖춘 ‘제비(齊備)’의 의미가 있다. 즉. 『예기(禮記)』에서 “복이란 갖추는 것이다. 갖춘다는 것은 모든 것이 순조로움을 말하는 것으로, 삶에 불순(不順)이 없는 것을 이른바 갖춘다는 것이다[ 福者, 備也, 備者, 百順之名也, 無所不順者謂之備].”라고 하였는데, 이때 복(福)은 부귀나 장수 등을 두루 갖추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수(壽)’와 ‘복(福)’은 인간이 윤택하고 평안하게 살아가는 데 근간이 되는 명제이다. 특히 공자(孔子)가 “어진 자는 오래산다[仁者壽].”라 하였고, 자허원권(紫虛元君)이 “복은 맑고 검소한 데서 생긴다[福生於淸儉].”고 했듯이 ‘수(壽)’와 ‘복(福)’은 인간의 장수 및 부귀와 공명을 넘어 성현(聖賢)의 인생경계와 경건한 예(禮)의 정신을 구현하는 상징적 가치도 지니고 있다. 아울러 ‘수(壽)’와 ‘복(福)’이란 글자 자체에는 영생(永生)과 홍복(洪福)을 염원하는 동양인들의 축수(祝壽)와 기복(祈福)의 원시적 신앙사유를 온전하게 내재하고 있다. 따라서 ‘수(壽)’와 ‘복(福)’은 고대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생경계의 가장 지극한 행복처(幸福處)이자, 인간의 삶을 오래도록 보우하고 안녕하게 해주는 21세기적 아이콘이라 할 수 있다.
오랜 목숨(壽)처럼 길게 불(火)이 '비출 도(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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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燾)자는 형부인 불(火→ )과 성부인 '목숨 수(壽)'자가 '도'로 전음 된 형성자이다.
그러니 도(燾)자는 오랜 목숨(壽)처럼 길게 불(火)이 '비추다(燾)'라는 뜻이다.
밭두둑처럼 길게 입과 노인이 밭두둑에서 목숨 수(壽)
손놀림이 살아있는 긴 목숨 소리칠 정도로 장수한 수명
성부인 수(壽)자는 '비출 도(燾)'자의 본의를 담고 있다. 수(壽)자는 士部 글자로 형부인 장발(毛→士)'과 성부인 '장수할 수'자 꼴이 변형 된 형성자이다. 그런데 수(壽)자는 본디 '늙을 노(老)'자와 '헤아릴 고(考)'자에서 동일한 부분인 ' '가 장발(長髮)을 한 굽은 허리모양이 '선비 사(士)'자와 쭉 편 '한 일(一)'자의 허리를 나타내며, '匕'자와 '' 모양의 지팡이는 '기교 교(巧)'자의 형태 및 쩌렁쩌렁하게 말을 하는 입(口)과 손목 마디(寸)에 힘을 주어 일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수명으로 목숨을 유지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목숨·수명·장수하다·오래 살다(壽)'라는 뜻으로 유추된다. 그러니 수(壽)자를 포함한 글자들은 늙은 노인의 노련미를 바탕으로 한 활동성이 스며있는 글자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노련하고 활기찬 목숨으로 길게 타는 불의 상태를 나타내는 도(燾)자는 불(火)이 오랜 목숨(壽)처럼 길게 '비추다(燾)'라는 뜻이다.
불(火)이 오랜 목숨(壽)처럼 길게 타면서 비추어(燾) 기르는 도육(燾育)은 갈 보호하여 육성해야 하는 인간의 교육 방법이라 여겨진다. 다른 여타의 생명체 중에서 사람만큼 장시간 동안 기르는 동물이 있는가. 먼 옛날 농경사회와는 다르게 지금과 같은 정보홍수와 지식폭발 사회에서는 그야말로 수명(壽命)이 다할 깨까지 신정보와 신지식이라는 불(火)이 있으면 경쟁에서 오래 살아남기(壽) 위해서라도 국민들에게 계속 비추어주는(燾) 평생교육의 시대가 되었다.
<밭고랑처럼 골진 기나긴 목숨(壽)으로 통하는 한자들>
(도) 濤(큰물결 도), 燾(널리 비출 도), 禱(<신명에게 일을 고하고 길게>빌 도) /
(수) 壽(목숨*오래살 수) /
(주) 鑄(쇠를 부어만들 주), 疇(밭두둑*밭경계 주), 躊(<길게>머뭇거릴*주저할 주)
福 한자풀이
한자어로 복을 살피면 '보일 시(示) 한 일(一) 입 구(口) 밭 전(田) 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福이란 하나님(示)께서 첫(一)사람(口)아담을 에덴 동산(田)에 두신 상태를 표현하는 말이다.
복(福)의 의미
세속에 살면서 우리는 복 타령(남편 복, 여복, 자식 복, 재산 복, 건강 복, 인 복, 미인/미남 등등)을 많이 하며, 이것은 마음 바탕에서가 아니라 육신 바탕에서 이야기하는 것일 겁니다. 그런데 복이 어디서 나오며,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를 명확히 알지 못합니다.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자기 자신과 비교하여 이러 저런 불평을 하거나, 나는 왜 이렇게 복이 없는가 하고 흔히들 말합니다. 주변의 사람들을 보면 성실히 살아가지도 않는데 잘 먹고 잘 살아 가는 것을 보거나 그와 반대로 성실하고 알뜰하고 부지런하고 똑똑한 데도 그저 밥 세끼 먹으면서 살아가거나, 또한 법이 없이도 살 수 있고 매우 근면한 삶을 사는데도 불구하고 정말로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우리는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는 말을 흔히 합니다만 이것은 중생 육안의 바탕에서 보니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불교의 무량 전생, 금생, 내생 등 삼세의 관점에서 보면, 무량 전생에 많은 복을 지은 사람은 금생에서 주변 환경이 좋은 때(시간)와 장소(공간)에서 태어나는 것이며, 즉 척박한 사막의 공간이나 싸움이나 전쟁이 없는 공간(문명과 문화가 잘 발달된 공간과 시간에 태어남)과 잘 먹고 풍요로움을 즐길 수 있는 시간에 태어나는 것입니다. 또한 지엽적으로 생각한다면 무량 전생에 복을 많이 지은 사람은 풍요롭고 여유로운 가정에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간과 공간에 태어나도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며 금생에서 부지런히 지극정성 열심히 살아가지 않으면 무량 전생과 금생에서 복을 벌지 못한 것이므로 매우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며 내생에 그 만큼의 대가를 치를 것입니다.
반대로, 매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남을 위해 성실하게 살아가면 그 복으로 내생에 훨씬 좋은 삶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부유하고 풍요로운 시간과 공간에 태어나도 모두가 지능, 미모, 바보, 장애, 어리석음 등등은 각자의 무량 전생의 복과 지혜의 차별입니다.
세상 도리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복과 지혜의 차별 세계이며, 그 차별 자체가 평등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세상이 나를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차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 세상에 태어나서 지극 정성 갈고 닦아 우주의 진리를 깨달아 지혜를 터득하고 무량 복을 지으라는 것입니다.
복이란 주고받고 난 나머지가 복이며, 주는 사람은 자신에게 복으로 돌아오고 받는 사람은 기쁜 것입니다. 우리가 10원을 가지고 남에게 베풀려고 할 때 현명한 지혜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에게 똑같이 5원씩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라 10원 모두를 가난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세생생 무량 복을 벌어야 하는 것이지만, 이 세상에 태어나서 만약 예를 들어 100원어치 복을 벌어야 되는 것이라면 부단히 지극정성 불교 진리를 깨달아 모든 중생들에게 부처님 말씀을 가르쳐 주는 것이 99원의 복이요, 나머지 1원의 물질적인 것을 남에게 베풀어 복을 버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금강경에도 삼천대천세계에 칠보로 보시해도 금강경 네 글귀의 계송만이라도 남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 더 큰 복을 짓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주는 것은 나와 네가 둘이 아닌 경지에서 주는 것이며, 주는 것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가르쳐 주는 것, 고쳐주는 것, 져 주는 것, 돈 주는 것, 사 주는 것, 먹을 것을 주는 것 등등 중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복은 부처님 말씀인 우주의 진리를 깨달아 중생들에게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불경을 공부하는 것도 교양 지식을 쌓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를 터득하여 우주 진리를 일체 중생에게 가르쳐 서로 뺏는 세계에서 주는 세계로 바뀌면 세계는 일가(一家)요, 인류는 동족(同族)인 것이며, 이 세계가 바로 용화세계입니다.
따라서 주는 데서 복(福)을 벌고 복의 결과가 부(富)입니다. 복과 부의 한자에서 보듯이 두 글자의 알맹이가 같습니다.
[한자 이야기]福(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