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말은 한국 현대 정치사의 군사쿠테타 세력이나 그 사회에서 발생한 부동산 투기 세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봉건왕조 시대에 왕명을 거역하고 사병군사를 돌려 자신이 받들었던 왕과 조정을 친 이성계와 그의
후손 이자 이씨 왕조의 가장 찌질한 왕으로 핫바지 저고리에 불과했던 능양군 인조(이종)의 얘기다.
1,사실 봉건왕조의 국왕이란 것은 대지주(大地主) 란 뜻이며 자신이 다스리는 땅의 주인이자 나랏님이다.
즉 '개인국가' 이기 때문에 그들이 남겼다는 문적들에는 '아방(我邦)과 아국(我國)이란 표현이 넘쳐흐른다.
국(國)이란 개념에도 봉지의 울타리 내의 영토(땅)란 뜻이지,현재와 같은 다양한 조직을 갖춘 국가 의미를
포함하지 않는다.영역의 범위도 아주 모호하고 경계가 뚜렸하게 있었던 것도 아니다.
왕의 봉지(나라)는 여러과정을 거쳐 백성들에 의해 나눠 경작 되었는데,이때 백성들의 생사 여탈권과 재산
처분권도 왕(권한 위임자)이 가졌었다.사실 백성이란 말하는 동물이자 노예에 대한 다름표현이다.국왕인
대지주이자 영주는 토지 처분권에 따라 종친이나 공이 있는 신하에게 끝없이 토지(땅)를 나눠줬다.
이것을 식읍 또는 봉토라고 했다.그러니 왕족이나 종친, 귀족들이 못 산다고 하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이때는 땅이 돈이고 목숨이고 권력이었던 농본주의 시대였다.땅(토지:농지)이 돈이고 권력이었던 시대는
그후로 계속되어 한국에서는 1970년대까지 계속 됐었다.
이러한 분봉이 계속되고 세월이 흐르자 대부분의 쓸 만한 토지가 사유화되어 마침내는 국고가 고갈되기 시작했다.
봉토 과정에서 생겨난 권문세도가나 토호들의 힘이 강해져 조정을 향해 시위를 하는 발호가 수시로 일어나는 상황
이 전개됐다. 많은 땅과 농민들을 보유했던 권문세도가 들은 마침내 '나라안에 나라'로 군림하는 경우로 변질 되었
는데, 역사에세 그예를 찾는다면 '궁예,왕건,양길,견훤,최영,이성계,정도전'등을 들수가 있다.이들의 기세는 언제나
등등 하여 왕권을 능가 했었다.왕실 유지의 내장전(內藏田)과,정부 관리용 공해전,군대 유지의 둔전만 보유했던
왕은 이제 주요 국사와 국방을 논의 할려면 토호(지방군주)가 된 권문세도가들과 상의,협조 없이 아무일도 할수
없게 되었다.실제로 토호들은 지방의 君主 행세를 했기 때문에 재정이 소요되는 국사는 이들의 협조 없이는 처리가
불가능 했다.시간이 흐르자 왕이 나누어준 땅이자 신하였던 봉토 주인들이 이제는 땅의 주인이 되어 왕을 핫바지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대체로 이쯤되면 나라(왕조)는 소멸 할때가 됐다고 보는 것이 옳다.
예나 지금이나 쿠테타를 일으키는 목적은 한탕으로 권력(옛날로 말하면 땅을 차지하는 봉건권력) 차지하고
이어지는 전리품 차지와 분배(투기)에 목적이 둔 것이다.한마디로 하나의 도둑질이자 강도질인 것이다.따라서
역사의 어느시대 어느 나라의 장이든 쿠테타에는 자금과 인력을,그리고 두뇌를 지원하는 배후세력들이 있게
마련이다.고려말 우왕과 공양왕은(1388~1390년) 토지를 국가의 소유로 바꾸고 중앙의 조정과 왕권을 강화할
목적으로 '田制改革"을 단행하려 했으나,계획 단계에서 이성계 같은 대토호이자 지방군주들 반발로 무산되면서,
고려도 그 생명을 다하는 듯 숨을 헐떡 거리게 된다.정권 탐욕자이자 반란의 주모자 였던 이성계는 마침내
토호들의 협조를 얻은후 토호 연합세력들의 추천으로 왕이 된다.이성계 등극에는 여진족이란 지방토호들의 힘이
아주컷다.이성계는 작은 나라가 큰나라를 친다는 것은 천륜을 위배 하는 것이라고 했는데,그런 문구가 어느고전에
나오는지 알수가 없다.또 그가 받들어 모시고자 했던 대국이라는 명나라란 나라는 홍건적의 한 괴수가 만든지
얼마 되지도 않은 남경의 초라한 작은 나라에 불과 했었다.아무튼 사대의 이씨조선 찌질이는 시간상으로는
이성계로 부터 시작된다고 할수가 있다.
2, 이후 세월이 흘러 광해군 시대(1608~1623)를 맞이 하게 되는데,그는 영특한 지도자 였으나 역시 땅을 기본으로
하는 '대동법(大同法)' 시행의 실패로 좌절을 맞보게 되고 마침내 실각하게 된다.역시 돈이 문제였다.지금도 재벌들
에게 세금을 올린다고 하면 아마 쿠테타를 모의 할것이다.광해의 대동법이란 것은 '지주직접세'를 말하는 것으로
지주에게 직접 세금을 내게 하겠다는 것이였다.지금으로 말하면 대부자들이나 재벌들에게 해당되는 사안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대지주들이자 西人세력들의 반대로 좌절됐고,끝내는 왕의 자리에서 물러나 습지로 유배를가 거기서
생을 마감 했어야 했다.이렇게 재력(땅,돈등)은 무서운 것이다.왕도 추풍낙옆이 된다.지금의 그위력을 볼려면 월가의
사모펀드(투기,투자자들 모임)들이 이세상을 휘졌고 다니면서 하는 행위들을 보면 알수가 있다.
광해가 대동법을 시행하려 한것은 임진왜란의 전란복구비 충당을 위해서 했던 것인데, 당시의 부자 서인들은 나라고
왕이고 관심 없었던 세력들로 남인세력에 의해 등극한 광해를 매몰차게 외면했다.부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나라와
백성(국민:서민)들의 삶에는 관심이 없다.오직 그들과 집단의 이익에 만 골몰한다.이후 서인 중심의 권문세도가 들에
의한 역모 쿠테타로 왕이된 인조(이종)는 그야말로 부자들의 허수아비가 된다.전두환괴 이명박이 재벌과 미 자본가
들의 앞잡이로 허수아비 였던것과 비슷하다.광해군 보다 정치를 잘해 보겠다고 억지로 왕이 된 인조는 왕이 되자마자
반정의 전리품 분배 싸움이 일어나 불만을 품은 반정공신이자 최대 공로자였던 이괄이 반란을 일으켜 다시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자신은 선조처럼 하염없는 도망 길에 오른다.
결국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했던 무능한 서인세력들이자 지주들은 인조와 함께 청(후금)에게 무릎꿇고 머리를
스스로 땅에 박으며 싸움 한번 제대로 못해보고 항복했다.그것도 아주 처량하게 멸망(1636년)을 한다.이전의 광해는
명과 청이 대립하자 판세가 신생의 청이 유리한 것을 미리 알고 명을 지원하러 보내는 5도 도원수 강홍립에게
판세(1618년)를 보아 청에게 거짓 항복을 하면서 싸움을 하지 하지 않고도,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나라를 보전하는
외교력을 보였었다.이에 비해 나라를 말아먹은(망한) 인조와 서인세력들은 망해가는 명만 쳐다보다가 온갖 수모를
다 당할만큼 당하며 마침내는 청에 처절한 항복을 한후 멸망하게 된다.
이런 능양군은 죽은후에 나라를 새로 멋지게 세웠다는 뜻인' 祖 ' 란 시호의 인조가 되고, 나라를 지켜려 온갖 노력을
기울였던 광해는 묘호(시호) 조차 못 받아 君 으로만 남겨 진다는 것은 역사를 우습게 보게하는 한 장면이다.
또 나라를 망해 먹은 인조는 왕조실록에 들어가게 하고,나라를 구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한(제대로) 광해군 시대의
기록은 '광해군 일기' 로 폄하 등재되고 있다는 것도 나라의 역사서로 보기에는 웃음거리다.
첫댓글 조, 종 원칙도 없고 아무렇게나 갖다 붙였는데, 명분을 중시한다면서 조라는 업적이 없는 왕들을 이유도 없이 조라고 붙였다고 말씀하신 걸 기억합니다. 초딩들도 안믿을 역사를 책에 나왔다고 가르치는 역사학자들의 광신도 결국 자기들의 기득권 지키기에서 나온 것이겠지요.
그렇지요...먹거리를 쥐고 있는 세력들이 있으니까요...
중요한 이야기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좋은 글들에서는 대조선을 비하하는 표현들이 종종 있는 것 같은데요
리씨왕조, 사대의 리씨조선, 찌질 리성계,, 이런 표현들이요
이미 망하고 있던 고려를 이어 새황제국 대조선을 일으킨 태조고황제 리성계가 없었다면 이미 우린 없는 거 아닌가 해서요
선생님의 좋은 글들 속에서 분명히 드러내고 있는 문제의식에 대해 매번 공감하고 동의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시간이 나시면 조선왕조실록을 찬찬히 독서 해보시길 권하겠습니다.
거기에 답이 어느정도 있습니다.더불어 고려사나 고려사 절요의 원문도 중국사와
비교해 찬찬히 읽어 보시면 강단과 제도권에 익숙해진 역사가 아닌 비교역사학
차원에서의 고려와 근대조선의 실체를 알수 있을 것입니다.
리이(LEE)님께.
대조선이라함은
우리 한민족의 역사적 정체성을 근간으로한 포괄적 영역의 문제에 대한 것이며...
비굴하게 한족에 빌붙어 연명한 이씨조선은 민중과 민족사적 입장에선 반란이며 수탈이었을 뿐입니다!
@리오넬 말씀하시는 얘기가 바로 식민사관입니다
리씨조선이라 비하하는 조선이 19세기 말(혹은 20세기 초)까지 본토에 존재한 대조선입니다
전지구에 대한 우리 한민족의 역사적 정체성을 근간으로한 포괄적 영역의 문제에 대한 것이 대조선이다
뿐만 아니라
할아버지, 증조 할아버지 같은 윗세대가 살던 조선이 대조선이다 까지 넓혀 생각해야 합니다
@리오넬 민족사적 반란은 고려시절 최씨정씨 무신정권이며 임금 뒷편의 권력을 유지하여 나라를 뒤죽박죽 만들던 그때의 문제가 현 대한민국의 문제와 닮아있습니다
조선은 Chosen입니다 선민적이고 가장 앞서있었던 나라입니다(이미 대조선을 자랑스러워 할 많은 자료가 카페에 있습니다) 가톨릭+왜 세력에 의해 꾸준히 망가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씨 조선시대와 현재의 대한민국이 빼다박은 듯이 닮았다.
경~끼가 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
그러한 생각이 바로 식민사관에서 비롯된 사고라 생각합니다
오히려 현 대한민국은 고려시절 '정중부의 난'으로 시작된 최씨정씨 무신정권이랑 닮았으며 임금 뒷편의 권력을 유지하여 나라를 뒤죽박죽 만들던 모습은 고려와 닮아 있습니다
다ㅇ끼마ㅇ오(박ㅇ희), 전ㅇ환으로 대표되는 무신세력이 집권하며 대조선을 이은 유일한 나라 '대한민국'마저 망쳐놨습니다
현재도 그 세력을 이은 박ㅇ혜 신천지당정권이 대한민국을 사이비종교화(거짓 희망을 강요한다는 점에서..)하고 있습니다
ㄴ 조선이 식민사관에 의해 작고 못난 역사가 된다면 그에 맞게 고려 역시 문제 많은 부끄러운 역사가 됩니다 .. 무신정권 쿠테타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몽골에 의해 중간에 망해서 조선이 건국될 때까지 존재하지도 않았다 정도로 이야기해야 합니다 (식민사관을 조선에만 적용하고 선대국가는 대단했다? 그건 더 말이 안되는 일입니다)
역사 공부를 하기 위해 또 잘하기 위해서는 앞글에서 '독서(공부)와 여행과,토론(대화)과정을 거쳐야 완성 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또 진보적 역사관을 가져야 하는 21세기에 역사학도는 기존의 프레임을 어느정도 제거하지 않고는 새로운 역사의 판을 누릴수 없습니다.국가와 민족이란 용어가 언제 생겼냐를 알고,식민사관이란 시스템이 제국주의와 함게 생겼다는 것들을 인지 하시고 봉건왕조 시대의 역사를 논하는 것이 아주 훌륭한 학도의 자세 일것입니다.겉도는 의문보다 먼저 공부를 한후에....진정한 역사를 만날수 있습니다.
명언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