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생연분
임병식rbs1144@hanmail.net
지금은 애완견 한 마리 교미시키는데도 공짜가 없는 시대이다. 너나없이 풀어놓고 키울 때는 제 놈들끼리 어울려다 새끼를 낳아 별 문제될 것이 없었지만, 지금은 가정에서 묶어놓고 키우니 교미를 시키려면 돼지나 소처럼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러다보니 종마(種馬)의 주인에게 대금을 치르듯 그렇게 하는 건 아니지만 그 대가로서 새끼를 준다거나, 음료수 박스라도 안겨주어야 한다.
그렇다고 하여 수석(壽石)에게까지 그런 기준을 적용해야 할까. 그것은 무리이지 싶다. 실제로 교미를 시키는 것도 아니고, 말하자면 그냥 소개비를 건네는 건데, 그러나 현실은 만만한 것이 아니다. 상당한 액수의 돈이 들어간다.
10 년 전이다, 한창 수석취미에 빠져서 탐석을 다닐 때. 하루는 뜻밖에도 양석(陽石) 한 점을 주워오게 되었다. 돌의 크기는 상당한 것이었다. 거의 1미터에 가까운 것으로 오석(烏石)에다 미끈하게 빠진 것이었다. 입석감으로 그만이었다. 이것을 집으로 가져오자 애석인들이 한 마다씩 했다. 짝을 맞추어 한 쌍을 만들어 놓으면 근사할 것 같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처음에는 가당치 않게 생각했지만 한편으로 싫은 건 아니었다. 해서 '권하는 장사 밑지지 않는다'는 속담대로 수석계의 마당발로 통해 한번 배필감을 물색해 보라며 선문을 놓기에 이르렀다. 좋은 신랑감을 둔 일종의 우쭐한 마음이었다.
그런 건 옛말에도 있지 않던가. '아유미녀 내택가서(我有美女 乃澤佳壻)' 즉, 내게 예쁜 딸을 두고 있으면 좋은 사위를 얻게 된다고. 마치 그러한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아무튼 선문을 놓으니 여기저기서 연락이 왔다. 하나 막상 짝을 맞추는 일은 녹록한 일이 아니었다. 후보감이 나타나 확인해보면, 성이 차지 않는 게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보기에 외양이 쓸 만하면 덩치가 너무 작고, 덩치가 그만하다 싶으면 이번에는 모양이 볼품 없었다.
고르기를 거듭한 끝에, 마침내 제짝을 찾게 되었다. 낙월도(落月島)의 황갈색 돌인데, 모양이 한눈에도 그럴싸하게 생긴 놈이었다.
" 흥정을 함 해보십시다"
" 먼곳에서 왔으니 큰것으로 한장은 주셔야 합니다."
" 그래도 출중한 내것보다는 못해 보이니 좀 깎읍시다:
그런데 흥정을 서두르다 그만 실수를 말았다. 이런 흥정 일수록 속내를 감추어야 하는데, 그만 타고난 천성대로 흡족히 만족감을 표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 바람에 물건값을 한 푼도 깎지를 못하고 부르는 값을 그대로 치르고 말았다. 그렇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짝이 맞춘 음석은 소장한 양석과 잘 어울리는 한 쌍의 배필이 되었다. 크기도 알맞거니와 색상의 대비도 이상적이었다. 허나, 나는 그 음석을 들여놓고는 아내의 타박을 피할 재간이 없었다. 지불한 돈도 돈이지만, 보기에 민망하다며 당장 눈에 띄지 않는 곳에다 치우라 했다. 그 바람에 나는 이 돌을 거실에는 두지를 못하고 바깥쪽 베란다 귀퉁이에다 밀쳐놓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가끔 이 돌을 보면서, 조물주도 참 짓궂은 데가 있다고 생각을 해보는 때가 있다. 어쩌면 그렇게도 민망하게 만들어 놓았을까. 그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것을 보면서 나는 조물주가 최초에 사람의 성기를 만들 때 이것을 표준삼아서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왜 그런 생각을 하느냐하면 이 돌은 이미 45억 년 전에 마그마가 끓어올라 식어진 후로 닳고 닳아 이 형상으로 만들어졌기에, 사람보다는 월등히 지구상에 존재한 것이기 때문이다.
음양석은 예로부터 다산(多産)과 풍요를 상징해 왔다. 그래서 문헌에도 보면 받들어 모신 기록들이 많이 보인다. 가까이는 무덤 양쪽에 세워진 망주석만 해도 그런 의미가 아니던가. 한데, 그런 남성을 표현한 것은 예사로 보면서 음석이 여성의 그것을 빼어 닮았다는 이유로 거부당하는 건 약간 불만이다. 그리고 또 하나, 다른 것처럼 암수 짝을 맞추었으면 그에 대한 소득이 있어야 하는데, 그와는 무관한 것도 불만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 음양석을 보고 있으면 그날 탐석 하던 날의 감격과, 짝 맞추어 놓고 기뻐하던 일이 떠올라 마음이 흐뭇해진다. 그러면서 예상치 못한 아내의 거친 항의에 당황한 일을 떠올리며 빙긋이 웃는다.(1989년 한국수필 등단완료작)
(구입한 소장석 음석)
첫댓글 그렇치가 않아도 선생님께서 자랑하시는 음양석이 어떻게 생겼을까 몹시 궁금하여 박물관에라도 한번 찾아가봐야만 할 것 같았는데 마침 올려주신 글 반갑고 재미있게 읽으며 미소를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내친김에 저도 슬쩍 소장하렵니다.
전에 쓴 글인데 카페에 빠져있는 것 같아 올렸습니다. 음양석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고맙습니다. 현재는 보성차 박물관에 전시되어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답니다. 들르실 기회가 있으면 한번 구경 하시기 바랍니다.
보성차박물관 명품이었습니다. 크기하며 생김새가 과연 일품이었습니다.
다시 사진으로 글로 접하니 반가웠고, 또 새로운 사실의 글 잘 즐감했습니다.감사합니다.
짝을 맞춘 내력을 알게 되었으니 김선생님의 인상에 더 오래 남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무라도 짐짓 눙을 치면서 심드렁한 표정으로 몽을 딸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아마도 선생님의 심상으로는 불가능한 일일 듯합니다^^
저의 치명적인 약점은 얼굴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것이지요. 기쁘면 기쁜 표정, 싫으면 싫은 표정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니 꿈이라도 연기는 못할 것 같습니다.
소장한 양석을 장가보낸 셈이군요. 보아하니 닮긴 하였으나 흉직하거나 민망할 정도는 아니네요. 감삼하기에 좋아보입니다. 둘의 조합이 마치 변강쇠와 옹녀 같습니다.
드디어 음양석이 여기에 등장했군요. 양석은 1미터, 음석은 성인이 혼자서 들기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