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樂想 (악상) 외 1편
홍문숙
이 많은 선율들은 어느 음계를 찾아 헤맨 것들일까
나는 아직도 어떤 언어들이 오전의 숲에 들러
또 다른 선율을 갈아입는지 알지 못한다
어제도 나는 상한 언어들과 하루치의 이마를 짚으며
강 건너 도시를 헤매었다
정오를 넘겨도 되살아나지 않는 새벽녘 꿈의 불협들
애시당초 이 아름다운 선율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수돗물은 쉽사리 斷水를 풀지 않았고
메마른 손잡이와 외출은 허용하지 않는 문들마다
저묾이 들어차고 있다
집을 갖고 있는 것은 고독을 지켜내는 일이다
고독한 자의 고독을 깨우는 일이다
덜 잠근 수도꼭지에서
똑 똑 똑 맺히는 고독의 간격을 헤아리고 있었을까
어떤 선율도 음계를 찾지 못하는 건
건너 편 숲이 음흉스럽기 때문이다
하루가 짧아서다
내가 외로운 건 타인들의 망각이 많아서다
창밖을 넘겨보자 언제 피워 올렸는지 어제의 파줄기 하나
흰 씨앗을 연주하고 있다
저녁창 / 꽃술
얼마나 되었을까
아직 덜 저문 고요에 등을 대고서
붉은 저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곧 압정같은 어둠이 박힐 것이고
생각들이란 이럴 때
희미한 체온을 더듬듯 이마 끝으로 몰리곤 한다
어제도 저녁의 불안은 뜰 밖 목련이
먼저 알아챘었다
불안을 식별하는 것엔 흰빛들이 더 치명적인 걸까
집 밖 오솔길도 중얼중얼 문가로 모여들고
이 순간 나는 거품처럼 가벼워진다
부주의하게 관여하지 말았어야 했다
원했던 것도 아니니 눈을 돌렸어야 했다
망각 이외의 휴식이란 없듯
창가에 걸린 달이 위태롭다
그렇게 나는 세상의 가장 낮은 바닥으로
그리움일 거라던 하늘을 꼭꼭 숨기고 있다
2011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바람의 겹에 본적을 둔다
김지혜
들판의 지표면이 자라는 철
유목의 봄, 민들레가 피었다
민들레의 다른 말은 유목
들판을 옮겨 다니다 툭, 터진 꽃씨는
허공을 떠돌다 바람 잠잠한 곳에 천막을 친다
아주 가벼운 것들의 이름이 뭉쳐있는 어느 代
날아오르는 초록을 단단히 잡고 있는 한 채의 게르
꿈이 잠을 다독거린다.
떠도는 혈통들은 바람의 겹에 본적을 둔다. 어느 종족의 소통 방식 같은 천막과 작은 구릉의 여우소리를 데려와 아이를 달래는 밤
끓는 수태차의 온기는 어느 후각을 대접하고 있다.
들판의 화로(火爐)다.
노란 한 철을 천천히 태워 흰 꽃대를 만들고 한 몸에서 몇 개의
계절을 섞을 수 있는 경지
지난 가을 날아간 불씨들이
들판 여기저기에서 살아나고 있다.
천막의 종족들은 가끔 빗줄기를 말려 국수를 말아 먹기도 한다.
바닥에 귀 기울이면 땅 속 깊숙이 모래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초원의 목마름이란 자기 소리를 감추는 속성이 있어 깊은 말굽 소리를 받아 낸 자리마다 바람이 귀를 접고 쉰다.
이른 가을 천막을 걷어 어느 허공의 들판으로 날아갈 봄.
2011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오래된 골목
장정희
작은 아버지 바지가 걸린 바지랑대 사이로 푸석한 골목이 보였다.
구암댁 할아버지 이끼 낀 돌담을 짚으며 모퉁이를 돌아가고
양철대문이 덜컹, 삽살개가 기다림의 목덜미를 물었다.
입대한 큰아들 주검으로 돌아오던 그날까지 놓아주지 않았다.
작은 아버지는 좀체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발가락이 오그라든 대문은 문패를 버리고 밤새
신작로 쪽으로 귀를 던져 놓고 있었다.
낮은 지붕을 내려온 거미가 먼저 발을 내딛는 골목,
목줄을 잡아 맬 수 없는 굴뚝으로 연기는 담쟁이넝쿨같이 기어 나왔다.
뼈마디 드러난 상처를 덮듯 배추는 또 자라나고
햇살은 어두운 골목에 도둑고양이의 눈빛을 씨앗처럼 심어주었다.
다섯 살 박이 손자가 작은 아버지 팔을 잡아당기며 대문을 나서고.
나는 빨랫줄 문 집게처럼 뻣뻣한 골목의 시간을 만지고.
바람이 골목에 발을 담글 때마다, 나는
한 남자의 내면을 수없이 들여다보았다.
2011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오늘의 운세
권민경
나는 어제까지 살아 있는 사람
오늘부터 삶이 시작되었다
할머니들의 두 개의 무덤을 넘어
마지막 날이 예고된 마야 달력처럼
뚝 끊어진 길을 건너
돌아오지 않을 숲 속엔
정수리에서 솟아난 나무가 가지를 뻗고 꽃을 피우고 수많은 손바닥이 흔들린다
오늘의 얼굴이 좋아 어제의 꼬리가 그리워
하나하나 떼어내며 잎사귀 점치면
잎맥을 타고 소용돌이치는 예언, 폭포 너머로 이어지는 운명선
너의 처음이 몇 번째인지 까먹었다
톡톡 터지는 투명한 가재 알들에서
갓 난 내가 기어 나오고
각자의 태몽을 안고서 흘러간다
물방울 되어 튀어 오르는 몽에 대한 예지
한날한시에 태어난 다른 운명의 손가락
눈물 흘리는 솜털들
나이테에서 태어난 다리에 주름 많은 새들이
내일이 말린 두루마리를 물고 올 때
오늘부터 삶이 시작되었다
점괘엔
나는 어제까지 죽어 있는 사람
2011 문화일보 신춘문예-시 당선작
이만호 할머니의 눈썹 문신
강은진
문득, 썩지 않는 것이 있다
74세 이만호 할머니의 짓무른 등이
늦여름 바람에 꾸덕꾸덕 말라가는 중에도
푸르스름한 눈썹은 가지런히 웃는다
그녀가 맹렬했을 때 유행했던 딥블루씨 컬러
변색 없이 이상적으로 꺾인 저 각도는 견고하다
스스로 돌아눕지 못하는 날
더 모호해질 내 눈썹
눈으로 말하는 법을 배울까
목에 박힌 관으로 바람의 리듬을 연습할까
아니면 당장 도마뱀 꼬리같은 문신을 새길까
누구에게나 꽃의 시절은 오고, 왔다가 가고
저렇게 맨얼굴로 누워 눈만 움직이는 동안
내 등은 무화과 속처럼 익어가겠지만
그 때도 살짝 웃는 눈썹을 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얼굴이 검어질수록 더 발랄해지는 눈썹이었으면 좋겠다
나 지금 당신의 바다에
군무로 펄떡이는 멸치의 눈썹을 가져야 하리
눈물나도록 푸른 염료에 상큼하게 물들어야 하리
2011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새는 없다
박송이
우리의 책장에는 한 번도 펼치지 않은 책이 빽빽이 꽂혀 있다
15층 베란다 창을 뚫고 온 겨울 햇살
이 창 안과 저 창 밖을 통과하는 새들의 발자국
우리는 모든 얼굴에게 부끄러웠다
난간에 기대지 말 것
애당초 낭떠러지에 오르지 말 것
바람이 불었고
낙엽이 이리저리 굴러 다녔다
우리는 우리의 가면을 갖지 못한 채
알몸으로 동동 떨었다
지구가 돌고
어쩐지 우리는 우리의
눈을 마주보지 않으면서
체위를 어지럽게 바꿀 수 있었다
우리는 우리의 멀미를 조금씩 앓을 뿐
지구본에 당장 한 점으로
우리는 우리를 콕 찍는다
이 점은 유일한 우리의 점
우리가 읽은 구절에 누군가 똑같은 색깔로 밑줄을 그었다
새들은
위로 위로
날아
우리는 결코 가질 수 없는
새들의 발자국에게 미안했다
미끄럼틀을 타는 동안
우리의 컬러링을 끝까지 듣는 동안
알몸이
둥글게 둥글게
아침을 입는 동안
우리의 놀이터에
정작 우리만 있다
2011 신춘 한라문예 시 당선작
고사목
고경숙
연대기를 알 수 없는
검은 책이다
먼 시간을 집대성한 페이지를 넘기면
불탄 새의 발자국이 떠도는
바람의 유적지
막다른 길에서 시간은 일어선다
이마에 매지구름 걸쳐놓고
진눈깨비 맞는 산,
박제된 새소리가 나이테를 안고
풍장에 든 까닭 차마 발설할 수 없어
활활 피우는 눈꽃은 은유다
명조체로 흐르는 햇살이 서술하는
몰락한 종교의 잠언서
나무의 필적이 행간을 읽는 동안
다하지 못한 어둠이 전하는 고전이다
꺾인 나뭇가지는
허공을 수식하는 문장이다
숨찬 몇 권의 눈부심이 사리처럼 반짝인다
새떼들 젖은 울음이 밑줄을 긋고
구전하는 말씀들
일편단심이다
생은 뼈를 삭이는 절명시다
맨몸으로 그루잠을 건너온
울창한 기억들
작자미상의 목판본 한 질을 집필하고 있다
2011 강원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덩굴장미
김영삼
저 불은 끌 수 없다
차가운 불
소나기 지나가자 주춤하던 불길 거세게 되살아나 담장을 또 활활 태운다 잔주름 늘어나는 벽돌담만 녹이면 단숨에 세상을 삼킬 수 있다는 건가 막무가내로 담장을 오르는 불살, 한 번도 불붙어 본 적 없는, 마를 대로 마른 장작 같은 몸뚱이 확! 불 질러 놓고 재 한줌 남기지 않고 스러져도 좋을 무덤, 큼직한 불꽃이 서로 팔들을 엮고 저들의 등을 밟고 올라선 불꽃들이 또 하나의 일가를 이룬 곳으로 나는 걸어 들어간다 나에게 불을 다오, 저들의 영토에 손을 내미는 순간,
나는 차가운 화상을 입는다
불똥은 땅에 떨어져 꽃으로 자꾸 피어나는데
나는 졸지에 불을 잃다
2011 영남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아주 흔한 꽃
변희수
갈 데까지 갔다는 말을
안녕이란 말 대신 쓰고 싶어질 때
쓰레기통 옆 구두 한 켤레
말랑한 기억의 밑창을 덧대고 있다
달릴수록 뒷걸음 치는 배경 박음질 해나가듯
나란히 하나의 길을 꿰고 갔을 텐데
서로 다른 기울기를 가진 한 짝
축을 둥글게 깎고 고르는 순간
길은 저마다 제 발에 꼭 맞는 문수로
열려 있었을 것이지만 떠날 때는
모두, 안개를 배경으로 걸었을 것이다
가파른 직선 혹은 곡선의 에움길을
밀어 넣을 때마다 팽팽하게 긴장하던 구둣볼
끈을 고쳐 매고도매듭 없이
결의만 다지던 저녁이 온 것처럼
코끝을 돌려놓고 자도
늘 잘 못 든 길처럼 헛갈리는 아침
이정표 없는 허방에도 덜컹, 꽃피는 길 있었는지
밑창에 찍힌 발가락 모양이 꾹꾹 눌러놓은
압화처럼 선명하게 피어 있다
어느 고대국가의 지층에 새겨진 족적처럼
누구나, 뒤축이 닿는 순간 스스로의 삶을
탁본하게 되는 것이므로
몫의 모서리를 둥글게 다듬어놓고
서늘하게 빠져나간 맨발
얼룩도 꽃의 흔적을 닮을 수 있는지
헐렁한 구두 속의 여백이 꽉 찬다
2011 불교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분천동 본가입납(本家入納)
이 명
태어나 최초로 걸었다는 산길을 돌아
푹신한 나뭇잎을 밟으며
청주 한 병 들고 능선을 밟아 내려갔니더
누님이 벌초를 해놓은 20년 묵은 산소는
어둡고 짙은 주변의 빛깔과는 달리 어찌나 밝은지
무덤이 아니었니더
봉긋하게 솟아오른 아담한 봉오리
그랬니더, 그것은 어매의 젖이었니더
진초록 적삼을 살짝 풀어 헤친 자리에 속살이 드러나고
빛이 쏟아져 나왔지요
나는 그만 아기가 되어 한참동안 보듬고 쓰다듬고
얼굴을 파묻었을 때는 맥박소리가 들려오고
숨이 턱 막혔었니더
내가 오는 줄 알고
미리 나뭇잎으로 길을 덮어두고
아삭아삭한 소리까지 그 속에 갈무리해 두었디더
나는 낙엽을 밟으며 산등을 넘고
어매는 그 소리에 옷고름을 풀었겠지요
적삼 속에서 영일만 바다가 아장아장 걸어 나오고
해안선이 출렁거리고
몽실몽실한 백사장이 예전과 같았니더
이 젖의 힘으로 여태껏
이름 모를 풀벌레들이 환하게 한 세상 살고 있고
하늘 가득 씨앗들이 날아오르고
파릇파릇 아기 부처들이 자라나고 있었니더
2011 영주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등대
정금희(일반부 당선자)
그것은 선명한 결을 잘 익힌 맛이다
나의 하얀 말도 새벽 바다 동쪽 하늘을 잡아당긴다
잡아당겨도 그대로 서 있는 것은 뿌리가 있기 때문
어린 바다 뿌리를 이리저리 파 본다
바위 속에서 물의 보푸라기를 잡는다
그 보푸라기를 비벼 차를 끓이면
주전자 속에 끓어오르는 물의 시간
폭포소리가 보인다
소나무 송진향이 보인다
잠이 정수리를 타고 내려온다
고향의 뿌리를 천천히 잡아당긴다
새벽 닭 울음
먼 빛의 진동소리가 보인다
그 맛이 뾰족뾰족하다
D-day
송혜경 (학생부 당선자)
열 뚜우ㅡ시!
요 귀여운 꼬마아가씨가
여태 잠을 안자고 내게 시간을 알린다.
휴대폰 폴더를 열었다.
화면구석에 메모 하나가
얄밉게도 내게 오늘의 일정을 알린다.
거울을 들여다본다.
눈 아래 검은 그림자가 내 얼굴을 집어 삼킨다.
잔잔한 여드름이 뚫고 올라와 자리한다.
책상을 살펴본다.
구김 없이 빳빳한 문제집이 나를 얄밉게 쏘아본다.
다 듣지 못한 동영상 강의가 자장가를 불러준다.
내일을 위해, 아니 오늘을 위해
이제 그만 따뜻하게 데워진 전기장판으로 달려가
그간 매고 다니던 피곤을 내려놓고 싶다.
한ㅡ시!
잠 좀 자라, 꼬마아가씨야!
휴대폰을 다시 집어 들었다.
화면구석에 메모 하나가
얄밉게도 내게 오늘의 일정을 알린다.
오늘의 일정 : 중간고사 D-day.
201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유빙(流氷)
신철규
입김으로 뜨거운 음식을 식힐 수도 있고
누군가의 언 손을 녹일 수도 있다
눈물 속에 한 사람을 수몰시킬 수도 있고
눈물 한 방울이 그를 얼어붙게 할 수도 있다
당신은 시계 방향으로,
나는 시계 반대방향으로 커피 잔을 젓는다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우리는 마지막까지 서로를 포기하지 못했다
점점, 단단한 눈뭉치가 되어갔다
입김과 눈물로 만든
유리창 너머에서 한 쌍의 연인이 서로에게 눈가루를 뿌리고 눈을 뭉쳐 던진다
양팔을 펴고 눈밭을 달린다
꽃다발 같은 회오리바람이 불어오고 백사장에 눈이 내린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하얀 모래알
우리는 나선을 그리며 비상한다
공중에 펄럭이는 돛
새하얀 커튼
해변의 물거품
시계탑에 총을 쏘고
손목시계를 구두 뒤축으로 으깨버린다고 해도
우리는
최초의 입맞춤으로 돌아갈 수 없다
나는 시계 방향으로
당신은 시계 반대방향으로
우리는 천천히 각자의 소용돌이 속으로
다른 속도로 떠내려가는 유빙처럼,
2011 신춘 '무등문예' 시 당선작
외출을 벗다
장요원
한낮의 외출에서 돌아가는 나무들의 모습이 어둑하다
탄력에서 벗어난 하반신이 의자에 걸쳐 있고
허공 한쪽을 돌리면
촘촘했던 어둠들, 제 몸쪽으로 달라붙는다
의자의 각을 입고 있는 외출
올올이 角의 면을 베꼈을 것이다
이 헐렁한 停留의 한 때와 푹신함이 나는 좋다
실수를 엎질렀던 재킷과
몇 방울 얼룩이 튄 블라우스의 시간을 벗을 수 있는 헐렁한 집
여전히 외출들은 걸려 있거나 접혀져 있다
그러고 보면 문 밖의 세상은
모든 외출로 건축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불빛도 식욕도 변기의 물 내리는 소리도 모두 외출에서 돌아와 있는,
텅 빈 건너편이 조용히 앉아있는 의자
침묵의 소요들이 모두 돌아간
세간들에 달라붙는 귀가한 소음들
왜 집안엔 깨어지기 쉬운 소리들만 있는 것인지
물이 뚝뚝 떨어지는 저녁
오늘의 바깥은 다행히 한 올의 올도 나가지 않았다
눅눅한 각을 입고 있는 스타킹과
긴 팔을 뻗어 아카시아 이파리를 헹구는 바람의 시간
잠든 몸을 조용히 돌아다니는 숨소리
괄호를 열고 몸을 구부리는 잠이 깊다.
2011 경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팔거천 연가
윤순희
여름밤 내내 *팔거천변 돌고 또 돌았습니다 아직 물고기 펄떡이는 물 속 물새알 낳기도 하는 풀숲 달맞이꽃 지천으로 피어 십 수년째 오르지 않는 집값 펴지기를 깨금발로 기다리지만 대학병원 들어서면 3호선 개통되면 국우터널 무료화 되면 하는 황소개구리 울음 텅텅 울리는 탁상행정 뿐입니다
풀숲에서 주운 새들의 알 희고 딱딱한 것들 날마다 수성구를 향하여 샷을 날려 보내지만 죽은 알들은 금호강을 건너지 못하고 팔달교 교각 맞고 튕겨져 나옵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강을 건너지 못하면 저 물새들 살얼음 낀 물속에서 언 발 교대로 들어 올렸다 내릴 텐데
환하게 타오르던 정월대보름 달집태우기의 불빛 온기는 어디까지 번져 갈 것인지요
물새들의 울음소리 팔거천 가득 울려 퍼지는 날 낮달 같은 새댁들 강변 가득 붉은 나팔 불며 여덟 갈래 꿈꾸며 비상 하겠지요.
*팔거천 : 팔공산 자락에서 흘러든 여덟 갈래 물줄기가 합쳐져 대구의 강북인 칠곡 신도시를 거쳐 금호강으로 흘러드는 하천, 해마다 정월대보름이면 달집태우기 행사를 한다.
2011 경향 신춘문예 시 당선작
아버지의 발화점
정창준
2011 매일신문 신춘문예 詩 당선작
1770호 소녀
우광훈
꿈꾸듯, 한 편의 오래된 우화(寓話)가 소녀의 동공 깊숙이 스며든다. 소녀는 과묵하고 비밀스런 눈빛으로 책장만을 넘겨댄다. 별이 뜨고, 소녀는 마을 어귀 파피루스 숲 사이를 미끄러지듯 빠져나와, 광활하고 황량한 사막이 있는, 때론 우아하고 권위적인 무덤이 있는 이곳 오시리스 동물원으로 흘러든다. 바다표범도, 펭귄도, 사막여우도, 치타도, 판다도 없는 이곳에는 햇볕에 잘 그을린 허허로운 얼굴에 키 큰 금발의 코끼리가 있다.
소녀는 향수어린 얼굴로 코끼리를 바라보다 석관 속에 놓인 접시저울을 조심스레 끄집어낸다. 타조깃털만큼이나 가벼운 그녀의 심장. 사육사의 경쾌한 신호음에 맞춰 코끼리가 저울 위로 올라선다. 똬리를 튼 비단뱀처럼 매끄럽게 내려앉는 그녀의 영혼. 순간 불꽃이 흩날리고, 파도가 울부짖고, 사자(死者)가 춤을 춘다. 기괴하고, 음울하며, 극도로 염세적인 그들만의 연극. 불멸을 향한 오래된 문명의 허망한 몸짓.
나일강에 물그림자 드리우고, 피안(彼岸)에 다다른 소녀는 희미한 달빛 아래에서 목욕을 한다. 늙은 고양이처럼, 별과 달이 질 때까지
그녀의 푸른 목덜미 아래로
모래 이빨 자국만이 선명하다.
☆ 1770호 소녀= 1976년 맨체스터대에서 로잘리 데이비드 박사가 집도한 이집트 미라. 학자들은 방사능 분석을 통해 서기 105~405년 사이에 미라로 제작된 갈색 눈의 소녀로 추정하고 있다.
2011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새장
강정애
나무 밑 떨어진 이파리들은 모두
누군가 한 번쯤 신었던 흔적이 있다
낡은 그늘과 구겨진 울음소리가 들어있는 이파리들
나무 한 그루를 데우기 위해
붉은 온도를 가졌던 모습이다
저녁의 노을이 모여드는 한 그루 단풍나무 새장
새들이 단풍나무에 가득 들어 있는 저녁 무렵
공중의 거처가 소란스럽다.
후렴은 땅에 버리는 불안한 노래가 빵빵하게 들어 있는
한 그루 새장이 걸려 있다
먼 곳을 날아와 제 무게를 버리는 새들
촘촘한 나뭇가지가 잡고 있는 직선의 평수 안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후드득, 떨어지는 새들의 발자국들
모든 소리를 다 비운 새들이 날아가는
열려 있으면서 또한 무성하게 닫혀 있는 새장
허공의 바람자물통이 달려 있는 저 집의
왁자한 방들
잎의 계절이 다 지고 먼 곳에서 도착한 바람이
그늘마저 둘둘 말아 가면
새들이 앉았던 자리마다 새의 혀들만 남아 있을 것이다
그늘이 사라진 자리에는 새의 혓바닥들만 부스럭거릴 것이다
모두 그늘을 접는 계절
간혹, 지붕 없는 새의 빈 집과
느슨한 바람들만 붙어 흔들리다 간다
한 그루 단풍나무가 제 가슴팍에 부리를 묻고 있는 저녁
후드득, 바닥에 떨어지는 나무의 귀
누군가 새들의 신발을 주워 책갈피에 넣는다.
첫댓글 시가 지리멸렬한 까닭은 사상의 통일성이 없어서 그렇지요. 감정과 사상이 융화된 몇몇시는 내일의 지평을 열어갈 것입니다
시는 심사기준이 심사위원들에게 달려있어서 통일하기 힘이드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사상의 통일은 신춘심사위와 다른 각도에서 시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다시 읽어도, 고경숙 우광훈 작품이 와 닿네요. 님들은 모두 다르시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