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겨울 지인을 통도사에 안내 중 자장암에 들렀을 때만 해도 없었던 부도였다.
통도사는 꽃비가 날려들고 자장암 입구에는 신록이 싱그럽다.
자장암 부도는
요즘 새로 조성한 자장암 입구 계단을 올라서면 보인다.
통도사 자장암 부도는 팔각원당형 부도이다.
부도의 종류는 탑신석의 형태를 가지고 분류하는 것이 좋다.
1. 팔각원당형 부도
2. 구형 부도
편구형
원구형
고복형
항아리형
3. 석종형 부도
4. 방형 부도
5. 이형 부도
6. 마애 부도
통도사 자장암 부도는 결론부터 말하면 모조품이 아니라 진품으로 추정된다.
그 이유는 세월이 짙게 배인 마모의 흔적과 고식 양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 : 시나브로님)
이 부도를 처음 보았을 때 돌의 색깔이 달라보여 혹시 2기의 부재가 혼합된 부도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햇살이 강력해 잘 구분이 되지 않아 시나브로님 사진을 가져왔다.
좀더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대석과 중대석이 다른 부재와는 달리 색깔이 더 검게 보인다.
그런데 이렇게 돌의 색이 다른 이유는
도괴 되었을때 땅에 오래 묻혀 있었거나
혹은 돌의 지의류 흔적이나 마모의 상태에 따라 달라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중대석과 상대석 하면 괴임과의 거리가 맞지 않아 다른 부도의 부재로 보았다.
그러나 고려초기에서 중기로 넘어가는 시기의 부도중에서
중대석과 상대석의 괴임간의 거리가 맞지 않은 부도가 적지않게 보여 유보했다.
또한 비례적인 부분도 문제가 되지 않아 같은 부도의 부재일 것으로 추정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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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이 부도의 세부적인 특징이다.
지대석은 팔각이며 표면을 거칠게 치석해 놓았다.
하대석은 원래는 2단으로 구성되었으나 하대석 하단석은 유실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이유는 현재 하대석 하단에 괴임이 있기 때문이다.
유실된 하대석 하단석은 팔각이었으며 안상이 조식되어 있었을 것이다.
현재 남아있는 하대석 상단석은
아래에 1단 각형의 괴임을 두고 그 위에 운문과 형상이 모호한 문양을 고부조로 표현해 놓았다,
운문은 소용돌이 치는 운문을 조식해 놓았는데
이는 하대석에 역동적인 운동감과 회오리치며 솟아오르는 상승감을 부여하여
역동적인 수미좌 형상을 표현해 놓은 것이다.
팔각형과 팔각형 사이에는 형상이 모호한 문양을 조식해 놓았다.
하대석 상단석 상면에는 호각 2단의 괴임을 두었는데 호는 매우 넓으며 각은 좁게 표현되어 있다.
이 부도의 큰 특징 중의 하나인데
하대석과 중대석이 일석으로 치석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은 간략화가 진행된 모습이며 시대 하강을 암시하는 것이다.
중대석에는 안상을 조식하였는데
특이하게도 안상이 2조로 구획되어 있다.
이렇게 안상이 2조로 조식되는 부도는 기억에 없고
다만 석탑에서는
고려초기에서 중기에 조성된 북한지역 불대좌형 석탑에서 2조의 안상이 보이고
일반형 석탑에서는 1020년에 조성된 개성 현화사 칠층석탑에서는 3조의 안상으로 나타난다.
상대석은 별석이며 아래에 각형 1단 괴임을 두고 그 위에 양련을 돌렸다.
앙련은 팔각의 모서리마다 넓게 배치된 단판 팔엽이다.
앙련의 연판은 판단이 첨형으로 밖으로 많이 돌출된 모습이다.
연판 내부에는 아무런 문양이 없으며 연판 사이에 아주 작은 간엽을 조식했다.
앙련의 상단은 갑석형으로 치석했다.
이 부도의 가장 큰 특징인데
탑신석이 상촉하관(上促下寬 : 위가 좁고 아래가 넓은) 이라는 점이다.
이는 이 부도가 고식임을 암시하는 근거가 된다.
이렇게 탑신석이 상촉하관인 부도의 작례는
곡성 대안사 적인선사 부도, 구례 연곡사 동부도를 비롯하여 10여기 존재하며
주로 전남지방에서 유행하던 매우 희귀한 작례의 부도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상대석과 탑신석이 일석으로 치석되어 있다.
이 또한 시대하강의 근거가 된다.
또한 탑신괴임이 없는 것도 큰 특징이며
탑신괴임이 없는 대신 상대석 상면에 각호각 3단의 괴임을 두었다.
즉 탑신부에 상촉하관 탑신석, 상대석과 탑신석 일석, 탑신괴임 생략,
이렇게 3가지 큰 특징이 있는 희귀한 부도이다.
탑신석은 팔각으로 조성했으며
전후에는 문비를 조성하였고 그 안에 자물쇠를 모각하였으나 희미하게 보인다.
나머지 구획면에는 아무런 조식이 없다.
옥개석 하면에는 1단의 받침을 두었고
받침의 외연에는 넓게 치석하여 공포부를 모각하였다.
공포부의 모서리에는 각을 주어 팔각을 유지하였으며 공포부 외연에는 편평하게 치석하여 처마를 표현하였다.
처마의 모서리에는 넓게 사절된 음각선으로 추녀를 나타내었다.
사암과 철분이 많이 함유된 재질이라 마모의 상태가 심한 편이다.
옥개석 처마선은 상하 수평으로 흐르가다 전각부에서 가볍게 반전하고 있다.
옥개석 낙수면에는 기왓골이 표현되지 않았고 낙수면의 물매는 비교적 완만한 편이다.
옥개석 낙수면의 합각부는 내림마루로 표현하였다.
내림마루는 상단은 좁고 낮지만 하단으로 갈수록 넓어지고 높아지다가 끝에는 큰 귀꽃으로 장식하였다.
귀꽃은 큰 편이며 하단은 좌우 대칭형 고사리문으로 조식되었으며 상단은 둥근 화문으로 표현되어 있다.
옥개석 정상에는 각형 1단과 같은 용마루를 표현하였다.
용마루 위에는 높은 각형 1단의 괴임을 마련하였고 괴임 위에는 하부가 내곡된 갑석형으로 배치하였다.
그 위에 일석으로 치석된 앙화 받침이 깨어진 채 흔적만 남아있다.
옥개석 정상에는 상륜부를 지탱하는 찰주 구멍이 뚫려있고 모든 상륜 부재는 유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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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으로 보아 통도사 자장암 부도의 가장 큰 특징은
1. 상촉하관의 탑신석
2. 상대석과 상촉하관 탑신석이 일석
3. 탑신괴임이 없는 점
3. 하대석과 중대석이 일석
4. 하대석 소용돌이 치는 운문과 상대석 단팔 팔엽의 넓은 앙련
으로 볼 수 있다.
이 부도와 친연관계가 있는 부도는
11세기 중반경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순천 선암사 동부도와
괴산 외사리 석조부도이다.
모두 상촉하관의 탑신석을 가진 부도들이다.
그런데 자장암 부도는 위의 두 부도와 달리
상대석과 상촉하관 탑신석이 일석이고 하대석과 중대석이 일석이며
각 부재의 문양이 극도로 배제된 것으로 보아 간략화가 많이 진행된 모습이다.
개인적으로는
12세기~13세기경 고려중기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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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암 부도는 어떤 연유로 이곳으로 옮겨왔는지 알 수 없지만
어느 개인 수장고 구석에 오랬동안 방치되어 외롭게 있었거나
혹은 어느 고관대작의 정원에 배치되어 장식품으로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사 인연이 되어 절집에 자리를 찾았으니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비록 마모가 많이 진행된 부도이긴 하지만
탑신석이 상촉하관인 거의 마지막 작례의 소중한 부도라고 생각된다.
위의 특징으로 보아
문화재로 지정해도 그리 무리가 없는 부도이므로 널리 알려 문화재청의 관심을 갖게 만드는 것이
우리같은 답사객들의 사명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