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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군산으로가는길 원문보기 글쓴이: 나운
조개더미 | |
조개더미란 선사인류가 잡아먹고 버린 조개껍질이 무덤을 이루고 있는 유적을 말하는데 조개무덤 혹은 패총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의 조개더미는 주로 신석기시대와 철기시대 이후에 만들어졌다. 조개더미는 조개를 잡아먹기 편리한 물가의 집터 근처에 있었으므로 조개더미 아래에 주거지 유적이 있거나 때로는 사람의 뼈나 버려진 석기, 토기, 동물 뼈 등이 함께 발견되기도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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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옥구 동마산마을 패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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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구읍에서 옥서면 소재지 방향으로 300m 쯤 떨어진 지점에 동서로 길게 동마산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이 마을은 도로를 경계로 두개로 나누어져 있는데, 패총은 이 마을의 북쪽 가장자리에 자리하고 있다. 즉 성덕수산에서 동북쪽으로 100m 남짓 떨어진 지점으로 논과 밭의 경계지점에 해당된다. 마을 사람들의 제보에 의하면, 이 일대에서는 몇 년 전에 실시된 경지정리작업 중에 다량의 패각이 노출되었다고 한다. |
당시 패각이 노출된 지점은 밭이었으나 경지정리사업으로 대부분의 지역이 논으로 바뀌었거나 아니면 폭이 10m쯤 되는 농수로가 개설된 상태이다. 농수로의 개설로 생긴 절단면에는 패각이 층을 이루며 일부 남아 있지만 작업 중에 심하게 교란된 것으로 보이며, 패각이 흘러내린 경사면의 높이는 2m 내외이다. 이 지역에서는 원삼국시대 토기편부터 회청색 경질토기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물이 수습되었으며, 그 중에서 김해식토기편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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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옥구 내류마을 패총 | |
내류마을은 금성산(124m)에서 북쪽으로 급경사면을 이루며 뻗어 내린 능선이 비교적 완만하게 바뀌는 경사면에 자리하고 있다. 이 마을은 석교들의 중앙에 있는 칠다리에서 동쪽으로 300m정도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며, 남쪽에는 U자형의 능선이 마을을 전체적으로 감싸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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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회현 금광리 월하산마을 패총 | |
회현면 소재지에서 남서쪽으로 3km 떨어진 지점에 월하산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본래 이 지역은 섬이었으나 일제 강점기에 간척사업을 실시하면서 제방을 쌓아 육지와 연결된 곳이다. 이 마을은 서쪽의 일부지역을 제외하고 사방에 민가가 조성되어 있는데, 특히 동북쪽 지역에 대부분의 민가가 밀집되어 있다. 남쪽 경사면에 위치한 패총은 해발 40m 정도 되는 정상부터 5부 능선까지 아주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자리하고 있다. 현재 지표상에는 다량의 패각이 노출되어 있는데, 특히 민가를 짓기 위해 제토작업과 밭을 계단식으로 개간하면서 생긴 절단면에는 다량의 패각이 노출되어 있다. 유물은 격자문이 선명하게 시문된 김해식토기편부터 고려토기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토기편과 자기편이 수습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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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성산 성덕리 항동마을 패총 | |
금강 하구둑에서 나포면 방향으로 제방을 따라서 항동마을을 지나 300m 쯤 가면 도로와 바로 인접된 밭 가운데에 패각이 산재되어 있다. 즉 항동마을 정반대편 도로변에는 공업용수 취수장이 있는데, 이 취수장에서 서쪽으로 대략 100m 정도 떨어진 지점의 서쪽 경사면에 다량의 패각이 노출되어 있다. 패각이 산재된 이 일대는 오래 전에 밭으로 개간된 상태이며, 일부 패각은 인접된 논 속으로 계속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 지역에서는 홍도편과 회청색 경질토기편 일부가 수습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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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성산 둔덕리 둔덕마을 패총 A | |
둔덕마을은 해발 40m 야산의 정상에서 남서쪽으로 완만한 경사면을 이루며 형성된 구릉의 가장자리에 자리하며, 남북으로 뻗어 내린 능선을 사이에 두고 두개의 마을로 나누어져 있다. 능선의 동쪽에 자리한 마을은 남북으로 길게 자리하는데 패총이 위치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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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성산 둔덕리 둔덕마을 패총 B | |
둔덕마을 패총 A에서 이 마을의 서쪽에 남북으로 길게 뻗어 내린 능선을 따라 정북으로 150m 쯤 떨어진 능선의 정상부에 패각이 산재되어 있다. 지표상에 노출된 패각은 50m 내외의 거리를 두고 두개의 지역으로 나누어져 자리하고 있다. 먼저 둔덕마을과 가까운 쪽에 있는 패총은 능선의 정상부에 해당하는 밭 가운데에 자리하며, 일부 패각이 밭 경작으로 인해 파헤쳐진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또 다른 패총은 제토작업으로 생긴 절단면상에 120cm 두께로 패각이 층을 이루면서 쌓여 있다. 이 마을 주민들의 제보에 의하면, 상당량의 패각이 흙을 제토하던 중에 흙과 함께 반출되었다고 한다. 유물은 김해식토기편이 주류를 이루며 일부 무문토기편도 섞여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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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성산 여방리 남전마을 패총 | |
남전마을 동쪽에 자리하고 있는 낮은 구릉의 북쪽사면에 입지를 두고 있다. 이 패총은 지난 1994년과 1995년에 국립전주박물관에서 서해안 고속도로 개설공사 구간에 대한 발굴조사를 통해 알려졌으며, 유물은 무문토기, 홍도, 김해식토기 등의 토기류와 골각기류가 다량으로 출토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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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나포 서포리 패총 | |
서포리마을에서 원서포마을로 가는 길을 따라 원서포마을에 이르기 직전 야산에 자리한다. 산의 북쪽 경사면은 서해안 고속도로 금강대교를 건설하면서 그 일부가 파헤쳐져 있는데, 유적은 이 산의 남서쪽 사면에 주로 분포한다. 유물은 무문토기와 원삼국토기가 수습되었으며, 부분적으로 확인되는 패각층은 혼토패층을 이룬다. 이 패총과 인접하여 원서포리마을 쪽으로 이어지는 산의 동쪽 사면에도 규모가 작은 패총이 자리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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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옥도 덕도 패총 | |
덕도의 서쪽 산사면에 자리하고 있으며, 산사면이 붕괴되어 패각층 단면이 일부 드러났다. 이에 따르면 패각층은 최대 두께 120cm 내외, 길이 30m 이상으로 덕도의 중앙에 있는 산의 서북반부를 점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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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옥도 신시도 패총 A | |
신시도의 남동쪽 끝부분, 즉 새만금 사업 현장사무소가 자리한 곳에 입지를 두고 있다. 패총은 새만금 사업을 위해 만든 도로의 하부에 있으며 신석기시대 문화층과 원삼국시대 문화층이 층위를 이루고 있다. 신석기시대 문화층의 두께는 30cm 내외이며, 원삼국시대 문화층은 70cm 내외이고, 길이는 25m 이상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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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옥도 신시도 패총 B | |
신시도의 남쪽에 있는 산봉우리의 서북쪽 사면에 입지하고 있다. 비교적 높은 산의 중턱부분에 입지하고 있으며 혼토패층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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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옥도 신시도 패총 C | |
신시도의 북쪽에 있는 야산과 남쪽에 있는 야산의 중간부분에 자리하고 있으며, 패각층의 규모는 과히 크지 않다. 대체로 드러난 길이는 10m 내외이며, 유물은 많이 혼입되지 않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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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옥도 선유도 패총 A | |
선유도의 통계마을과 진말 사이에 있는 낮은 산구릉에 형성되어 있는 패총이다. 패각과 토양이 뒤섞인 혼토패총으로 퇴적층의 두께가 1.5∼2m에 달하는 곳도 있다. 유물은 즐문토기편과 석기 그리고 김해식토기편이 채집되었다. 즐문토기는 질이 단단한 편이며, 표면에 패각으로 긁힌 듯한 흔적이 있다. 색조는 매우 밝은 적색을 띠고 있으며, 물결무늬·격자문 등이 시문된 것도 있으나 대부분 무문이다. 석기로는 타제석기만 채집되었는데 마연한 것은 찾아 볼 수 없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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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옥도 선유도 패총 B | |
선유도에 있는 망주봉의 북쪽 사면 아래, 즉 밭으로 개간되고 있는 곳에 자리한다. 밭을 일구며 다량의 굴껍질을 반출하였다고 전하는데 현재도 깊게 파헤쳐진 곳에는 패각이 층을 이루며 남아 있다. 밭의 표면에도 패각이 거의 전면에 노출되어 있으며, 유물은 삼국토기편과 고려토기편이 수습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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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옥도 선유도 패총 C | |
무녀도 1구의 남쪽에 있는 염전의 남쪽 산 구릉에 패총이 형성되어 있다. 이 패총은 혼토패각층과 순수패각층을 이루며 2m 내외의 두께로 퇴적되어 있다. 김해식토기편이 채집되는데 회색경질토기편과 적갈색연질토기편도 혼재 되어있다. 무문인 것도 많으나 패각 따위로 쓸은 듯한 찰과흔이 있는 것, 격자문이 타날된 것도 적지 않다. 이들 토기편들은 선유도에서 출토된 것들과 극히 유사하여 양자간에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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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옥도 무녀도 패총 A | |
무녀도 1구의 남쪽에 있는 염전의 남쪽 산 구릉에 패총이 형성되어 있다. 이 패총은 혼토패각층과 순수패각층을 이루며 2m 내외의 두께로 퇴적되어 있다. 김해식토기편이 채집되는데 회색경질토기편과 적갈색연질토기편도 혼재 되어있다. 무문인 것도 많으나 패각 따위로 쓸은 듯한 찰과흔이 있는 것, 격자문이 타날된 것도 적지 않다. 이들 토기편들은 선유도에서 출토된 것들과 극히 유사하여 양자간에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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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옥도 무녀도 패총 B | |
선유도와 무녀도를 잇는 다리를 건너 무녀도에 들어서 좌측, 즉 서쪽에 자리하고 낮은 야산의 남쪽 사면에 위치한다. 이 야산에 이르기 이전에 위치한 밭에도 패각층이 자리하고 있으며, 산의 사면에는 두께 30-50cm 내외의 패층이 단애면에서 파악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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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옥도 말도 패총 A | |
얼마 전까지 말도에 자리하고 있던 초등학교의 운동장과 그 남쪽 끝 벼랑까지 이어지는 조개무지로 패각층의 대부분은 운동장 조성공사를 실시하면서 파괴된 것으로 추정된다. 유물은 빗살문토기편과 원삼국토기편이 수습되며, 운동장에는 불을 피운 유구가 드러난 곳도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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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옥도 말도 패총 B | |
말도 방파제에서 등대로 가는 길을 따라 등대에 이르기 이전의 도로에 패각이 산재되어 있으며, 그 좌우측 산의 경사면에도 패총이 형성되어 있다. 도로를 개설하면서 패총을 일부 파괴하였으며, 빗살문토기가 드물게 출토된다. 길이는 지표상에서 관찰되는 바로는 15m 이상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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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옥도 말도 패총 C | |
말도 등대의 아래로는 군부대가 숙영하던 곳이 있다. 패총은 이 군부대가 숙영하던 자리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파괴가 심하여 부분적으로 남쪽 끝 부분, 바다에 면하는 단애상에 패각층이 30-50cm 두께로 남아 있는데 붕괴가 심한 상태이다. 유물은 매우 드물게 혼입되어 있으며, 원삼국시대 토기편이 수습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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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옥서 옥봉리 남동마을 패총 | |
신시도의 북쪽에 있는 야산과 남쪽에 있는 야산의 중간부분에 자리하고 있으며, 패각층의 규모는 과히 크지 않다. 대체로 드러난 길이는 10m 내외이며, 유물은 많이 혼입되지 않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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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옥서 선연리 난산 패총 | |
선유도의 통계마을과 진말 사이에 있는 낮은 산구릉에 형성되어 있는 패총이다. 패각과 토양이 뒤섞인 혼토패총으로 퇴적층의 두께가 1.5∼2m에 달하는 곳도 있다. 유물은 즐문토기편과 석기 그리고 김해식토기편이 채집되었다. 즐문토기는 질이 단단한 편이며, 표면에 패각으로 긁힌 듯한 흔적이 있다. 색조는 매우 밝은 적색을 띠고 있으며, 물결무늬·격자문 등이 시문된 것도 있으나 대부분 무문이다. 석기로는 타제석기만 채집되었는데 마연한 것은 찾아 볼 수 없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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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군산 서흥남동 패총 | |
선유도에 있는 망주봉의 북쪽 사면 아래, 즉 밭으로 개간되고 있는 곳에 자리한다. 밭을 일구며 다량의 굴껍질을 반출하였다고 전하는데 현재도 깊게 파헤쳐진 곳에는 패각이 층을 이루며 남아 있다. 밭의 표면에도 패각이 거의 전면에 노출되어 있으며, 유물은 삼국토기편과 고려토기편이 수습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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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군산 내흥동 패총 | |
망주봉에서 북쪽으로 토끼꼬리 형태로 이어지는 낮은 구릉이 있으며 이 구릉의 남쪽 사면에 자리한다. 규모는 크지 않으며 유물의 혼입도 많지 않다. 지표상에 드러난 규모는 10m 내외의 크기이며, 바닷가에 접하고 있어 파괴가 진행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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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사옥마을 패총 | |
군산내흥초등학교 바로 뒤쪽에는 나즈막한 산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산의 정상에서 남서쪽으로 흘러내린 경사면이 끝나는 지점에 사옥마을 패총이 자리하고 있다. 이 일대는 오래 전에 밭을 계단식으로 개간하면서 생긴 여러 개의 절단면이 단을 이루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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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노래섬 패총 | |
노래섬은 남북 500m, 동서 250m의 작은 섬으로, 패총은 해발 10∼20m 사이에서 5개소, 섬의 정상부에서 1개소 등 총 6개소가 조사되었다. 원광대학교 발굴조사단에 의하여 실시된 조사 결과에 의하면, 패각층 두께는 50∼70cm이며, 층위는 세분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혼토패층과 순패층으로 구분되는데, 이런 층위구분도 간층이 보이지 않고 유물에 있어서도 확실하게 구분되지 않아 문화층으로 구분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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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가도 패총 | |
가도는 동서 950m, 남북 300m 내외의 작은 섬으로 가운데가 잘룩한 장고모양으로 동과 서에 각각의 봉우리를 두고 있다. 패총은 서쪽 봉우리의 해발 10∼20m의 남동사면에 주로 위치하고 있다. 5개 지점으로 나뉘어 패총이 형성되어 있는데, 그 중 충남대학교 박물관에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패각층은 굴껍질이 주를 이루며, 층위는 대략 9∼7층은 신석기 문화층, 6층은 청동기 문화층, 5∼2층은 초기철기-삼국시대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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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오식도 패총 | |
오식도는 원래 섬이었지만 현재는 간척사업으로 인하여 연육된 곳이다. 해발 15m 지점의 2개 지역에서 패총이 목포대학교 박물관에 의하여 조사되었는데, 군인들에 의해 설치된 참호와 교통로로 인하여 유적의 대부분이 유실되었거나 교란된 상태이며, 거의 단일층으로 형성된 패각층의 두께는 40cm 내외이다. 오식도 패총은 굴껍질 위주의 얇은 패각층과 유적의 입지조건을 고려해 보면 정주성 생활근거지보다는 계절적으로 사용하였던 곳으로 판단되며, 패각층도 비교적 단기간에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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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비응도 패총 | |
비응도의 해안사구에 4개소의 패총이 밀집되어 있는데, 지난 1994년 전북대 박물관 주관으로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이들 패총은 단일 패총에서 동시대의 문화층이 형성되지 않고 지점에 따라 시기가 다른 문화층이 형성되어 주변 모래 언덕의 형성과정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여 당시 자연환경의 변화를 살필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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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원당마을 패총 A | |
군산대 후문에서 북쪽으로 시멘트로 포장된 도로를 따라 100m 정도 가면 원당저수지가 나오는데 이 저수지의 북쪽에 원당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이 마을은 저수지의 주변부터 시작하여 경사면을 따라 북으로 계속되며 원당교회가 마을의 중간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패총은 원당교회에서 동북쪽으로 200m 정도 떨어진 구릉상의 밭과 산이 경계를 이루는 지점에 위치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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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원당마을 패총 B | |
원당마을 패총 A지역에서 서쪽으로 300m 남짓 떨어진 지점으로 원당마을의 서쪽 경계 지점에 자리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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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신관마을 패총 A | |
월명산에서 남북으로 길게 뻗어 내린 능선을 사이에 두고 군산대 바로 반대편에는 남북으로 길게 자리한 신관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시멘트로 포장된 도로를 경계로 두개의 마을로 나누어져 있다. 이 중에서 북쪽에 자리한 마을은 비교적 규모가 큰 마을로 능선의 정상에서 남서쪽으로 돌출된 구릉상의 남서쪽 사면에 많은 민가가 밀집되어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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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신관마을 패총 B | |
신관마을 패총 A가 자리한 야산의 정상에서 남서방향으로 완만한 경사면을 이루며 형성된 해발 5m 내외의 구릉 상에 자리하고 있다. 다시 말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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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신관마을 패총 C | |
마을 중앙에 소재한 농협창고에서 시멘트로 포장된 마을길을 따라 서쪽으로 약 50m 정도 가면 도로 변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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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신관마을 패총 D | |
마을의 남쪽 입구에는 남평문씨 효열비가 세워져 있는데 이 비석에서 마을 안쪽으로 약 10m 정도 떨어진 지점에 패총이 자리하고 있다. 패각이 산재된 지점에는 얼마 전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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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작선마을 패총 A | |
대와 남쪽으로 인접된 작선마을은 월명산에서 남북으로 길게 뻗어 내린 능선을 사이에 두고 두개의 마을로 나누어져 있다. 능선의 서쪽지역에는 U자형 형태로 흘러내린 또 다른 능선이 자리하는데 그 능선의 남동쪽 사면에 황운산씨의 집이 자리하고 있다. 이 집에서 서쪽으로 100m 남짓 떨어진 지역의 남쪽 경사면에는 곳곳에 많은 패각이 노출되어 있다. 패각이 노출된 일대는 능선의 정상에서 남쪽으로 완만한 경사면을 보이며 흘러내려 오래 전에 이미 밭으로 개간된 상태이다. 일부의 패각은 밭을 계단식으로 개간하면서 파내어 밭둑에 상당한 깊이로 쌓여 있거나 일부는 계속된 경작으로 인해 심하게 유실되었다. 유물은 격자문과 승석문이 시문된 김해식토기편이 주류를 이루며, 이외에도 일부 무문토기편과 회청색 경질토기편 등의 다양한 토기편도 섞여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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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작선마을 패총 B | |
A에서 능선의 정상을 따라 200m쯤 올라가면 오래 전에 개간된 밭의 서쪽 경사면에 자리하고 있다. 패각은 이미 밭으로 개간된 능선의 정상부터 경사면을 따라 아래쪽으로 흘러내린 것으로 보이지만 잡목이 무성하게 우거져 그 범위를 확실하게 파악할 수는 없다. 다만 패각이 산재된 지역이 개간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기 때문에 유적의 보존상태는 상당히 양호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 지역에서는 패총 A와 거의 흡사한 속성을 띠는 토기편이 일부 수습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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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개삼마을 패총 | |
마을에서 신관마을 방향으로 약 200m 가면 한 그루의 팽나무가 서 있는데, 그 지점에서 다시 동쪽으로 100m 떨어진 밭에 일부 패각이 노출되어 있다. 이 지역은 개삼마을을 감싸는 동쪽 능선에서 서쪽으로 완만하게 흘러내려 형성된 구릉지대로서 거의 대부분이 밭으로 개간된 상태이다. 또 패각이 산재된 지역은 얼마 전에 농로를 확장하면서 심하게 파헤쳐져 있는데, 그 당시에 유적의 상당부분이 심하게 훼손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제토작업으로 생긴 절단면에는 패각과 몇 개의 토기편이 박혀 있는데 그 깊이는 50cm 내외로 상당량의 패각이 이미 유실되었다. 이 유적에서 수습된 유물로는 김해식토기편이 거의 대다수를 차지하며, 일부 무문토기편과 회청색 경질토기편도 공반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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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원당마을 패총 B | |
마을은 월명산에서 남쪽으로 뻗어내린 능선이 거의 끝나는 지점에서 다시 서쪽으로 완만하게 흘러내려 형성된 구릉상에 자리하고 있다. 이 지역은 군산시와 옥구읍이 경계를 이루는 지점으로 마을의 서쪽에는 일제 강점기 때 축조된 옥구저수지가 위치하고 있다. 이 마을에서 개삼마을로 이어지는 소로의 서쪽은 해발 10m 내외의 구릉지대로 대부분의 지역이 오래 전에 밭으로 개간된 상태이며, 패각은 이 밭에 산재되어 있다. 패각은 경사면을 따라 아래쪽으로 흘러내려 지표 상에 광범위하게 산재되어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밭을 계단식으로 개간하거나 경작 중에 파헤쳐져 심하게 노출되어 있다. 패각이 산재된 지역에는 패각과 함께 홍도편부터 회청색 경질토기편에 이르기까지 많은 유물이 산재되어 있는데, 특히 격자문과 돗자리문이 시문된 원삼국시대 토기편이 거의 주종을 이루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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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개이마을 패총 B | |
마을의 동쪽에 남북으로 뻗어내린 주능선에서 서쪽으로 약간 돌출된 야산의 북쪽 경사면에 패총이 위치한다. 다시 말해 이 마을과 개삼마을의 중간지점으로 개이마을 패총 A에서 북쪽으로 100m 정도 떨어진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야산의 정상에는 여러 기의 민묘가 자리하며 북쪽사면은 몇 년 전에 사과나무를 심어 과수원으로 경작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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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갈마마을 패총 | |
마을은 월명산에서 남북으로 길게 뻗어 내린 능선에서 서쪽으로 1km 쯤 떨어진 나즈막한 구릉지대의 정상부에 소재하고 있다. 이 마을의 중앙에는 정미소가 있는데 이 정미소 바로 뒤편에 패각이 노출되어 있다. 패각이 노출된 지역은 오래 전에 밭으로 개간되었는데 밭을 개간할 당시에 상당량의 패각이 땅 속에 매몰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계속된 밭의 경작으로 인해 패각의 일부가 지표 상에 노출되어 있을 뿐이다. 이 일대에서는 소량의 회청색 경질토기편과 자기편 등의 유물이 수습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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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내초도 패총 A | |
도는 80년대 공단을 조성하면서 육지와 연결된 섬으로 거의 중앙에 자리한 해발 58m 쯤 되는 산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길게 형성되어 있다. 이 섬의 중앙부분에는 서쪽 경사면을 따라 상가와 대규모의 마을이 형성되어 있으며, 서북쪽에는 산을 절개하여 골재를 채취하는 작업현장이 자리하고 있다. 아울러 서쪽에는 작년에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가도와 오식도가 자리하고 있는데, 이들 지역은 군장국가공단 조성사업을 실시하여 육지로 연결된 곳이다. 패총은 해변에 위치한 내초초등학교에서 해안선을 따라 북쪽으로 150m 정도 떨어진 지점에 입지하고 있다. 즉 산의 정상에서 서쪽으로 흘러내린 해발 10m 정도 되는 지점부터 경사면을 따라 해안까지 넓은 지역에 걸쳐 자리하고 있다. 패각은 이미 밭으로 개간된 경사면에서 심하게 교란되었으나, 해안선과 만나는 지역은 비교적 안정된 층을 이루며 잘 남아 있다. 이 유적에서는 석영이 약간 포함된 모래질 태토에 희미하게 빗질 흔적이 남은 빗살문토기편 3점과 승석문이 시문된 김해식토기편 1점이 수습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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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내초도 패총 B | |
A에서 해변을 따라 북쪽으로 400m 남짓 떨어진 지점의 서쪽 경사면에 자리하고 있다. 이 지역은 산의 정상에서 북쪽으로 길게 뻗어내려 형성된 해발 10m 내외되는 완만한 구릉지대로 거의 U자형의 지형을 이루고 있다. 서쪽 경사면의 중간부분에는 공사를 위한 작업도로가 개설되고 해안선에는 교통로가 지나가고 있다. 최근에는 U자형의 해안선을 가로질러 축대를 쌓고나서 그 안에 흙을 채워 해안선의 상당부분이 땅 속에 매립된 상태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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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내초도 패총 C | |
위에서 소개한 패총 B에서 해변을 따라 북서쪽으로 100m쯤 떨어진 지역의 남쪽 경사면에 자리하고 있다. 이 패총은 패총 B와 지표 상에 산재된 패각이 서로 연결되지 않고 다음에 소개할 패총 D와는 경사면을 완전히 달리하여 별도로 구분하였다. 즉 거의 U자형을 이루는 해안선이 직각이 되게 북쪽으로 꺽이는 지역의 남쪽 경사면에 자리하고 있다. 패각은 해안선을 따라 교통로를 개설하면서 생긴 절단면에 15m 정도 정연하게 노출되어 있다. 이 패각은 깊이가 50m 내외로 상당히 안정된 층위를 이루고 있는데 교통로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계속되고 있다. 이 지역에서는 길이 20cm 정도 되는 냇돌의 양쪽을 깨뜨려서 만든 대형 어망추 1점만을 수습하였다. 이 패총은 비록 토기편은 수습되지 않았지만 빗살문토기편이 수습된 B, D패총의 중간지점에 자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시기도 이들 패총과 비슷할 것으로 판단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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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내초도 패총 D | |
내초도에서 조사된 4개의 패총 중 가장 규모가 제일 큰 것으로 바로 위에서 설명한 C패총에서 북서쪽으로 50m 쯤 떨어진 지역에 자리하고 있다. 이 지역은 완만한 곡선을 이루는 해안선을 따라 바위가 아주 발달해 있고 그 중간에는 부분적으로 모래사장이 들어서 있다. 해안가에 드러난 패각층은 약간 돌출된 지형을 중심으로 3개의 지역으로 세분되지만 패각이 서로 연결되고 있기 때문에 하나의 지역으로 설정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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